「르네 33, 자네가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그 미래의 가지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야. 이번 짧은 방문에서 자네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게 있네. 우린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에는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 시간이 얼마 없군.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가야지.」 --- p.24
「인간이 소비하는 식물의 80퍼센트가 꽃식물이네. 그리고 이 꽃식물의 80퍼센트가량의 수분을 담당하는 곤충이 바로 꿀벌이야. 그동안 꿀벌은 서서히 사라지는데 인구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던 거야. 인간이 직접 손으로 하거나 로봇을 이용한 수분이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지. 조그만 원인 하나가 결국 치명적인 결과를 낳아 전 세계 농업 생산량이 급감했어. 그런 상태에서 기온까지 상승하니 곡물 생산은 더 줄어들었고. 지표면의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물 부족이 심화되다 보니 관개수에 드는 비용이 너무 커져 농민들은 이용을 할 수가 없었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 국가들에서는 메뚜기 떼가 창궐해 농사를 망쳐 버렸어. 식량은 부족한데 인구가 많아지면 배고픔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건 필연적이고 불가역적이지. 지구상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들은 무자비한 방식으로 진압됐네.」 --- p.69
「아까 내가 한 지식인 그룹 얘기를 했었지. 그들이 사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최근 있었던 모임에서 어떤 책에 관한 얘기를 들었네. 시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책이 있다더군.」 「책이요? 어떤 책이죠?」 「내가 기억하는 건 제목뿐이야. 〈꿀벌의 예언〉이라는.」 --- p.72
「두 분은 정신의 힘을 통해 이 두 시공간을, 다시 말해 이 두 개의 원을 이은 거예요…….」 그녀가 종이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원 두 개를 붙였다 떼기를 반복한다. 「이건 결국 시공간을 접어 구부림으로써 연결하는 거예요.」 --- p.244
밀랍이 시간을 견뎌 냈어. 꿀벌은 9백 년의 시간을 버티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구나……. 르네가 벌집을 손전등으로 가까이 비춰 본다. 그가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오렌지색 밀랍층을 조심스럽게 떼어 내기 시작한다. 단단하기는 캐러멜 같고 투명하기는 유리 같아. 떼어 낸 밀랍 속을 들여다보니 꿀벌들이 그 안에 갇혀 화석이 돼 있다. 그중 한 마리는 유난히 다른 벌들보다 크고 통통해 보인다. --- p.299
2권
「그거 아나? 서기 30년 다니엘이 진흙으로 된 발이 달린 거인의 이미지를 빌려 메시아의 출현을 예고했을 때, 예루살렘에서 메시아를 자처한 사람이 170명이 넘었다는 거? 그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경쟁자였던 셈이야.」 메넬리크가 르네와 알렉상드르를 쳐다보며 말한다. 「그 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예수가 이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 pp.31~32
르네는 살뱅이 수정 중인 양피지를 어깨 너머로 내려다본다. 밤인 데다 방이 어두워 전체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앞머리 몇 글자만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마침내 그 순간이 도래하게 될 것이다. 심장이…….〉 현관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자 살뱅이 황급히 예언서를 덮는다. --- p.58
나더러 이 예언서를 지키라고? 방금 기사단장한테 들은 얘기가 그의 가슴을 짓누른다.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이자 그가 포기하는 심정으로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단장에게 물어본다. 「이 예언서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요?」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이 아주 상세히 적혀 있다네. 아주 먼 미래, 정확히는…… 2101년의 일까지 말이야.」 --- p.80
「아크레 성전 기사단 내부에 예언서의 존재를 독일 기사단에 알려 준 배신자가 있었던 게 분명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내가 예언서를 들고 배에 탔다는 걸 알았을 리가 없어요.」 듣고만 있던 멜리사가 끼어든다. 「그로부터 장장 73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성전 기사단과 독일 기사단이 다른 세력과의 연합을 거듭하면서 예언서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세 사람이 말없이 시선을 교환한다. --- p.168
「전체 식물종의 80퍼센트가 꿀벌이 있어야 번식을 할 수 있어요. 꿀벌의 실종은 우리가 그 파장을 예측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환경 재난을 불러올 거예요. 꿀벌에 의한 수분을 사람이나 로봇을 이용한 인공 수분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이미 중국에서 한 바 있어요. 하지만 효율이 형편없었죠. 꿀벌을 구하는 일은 여러 가지 환경 문제 중 하나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투쟁입니다.」 --- p.221
「굳이 그렇게 부른다면야, 그래요, 〈당신〉 꿀벌. 그 메시아의 귀환을 막으려면 예언서의 내용을 알아야 했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꿀벌의 예언』을 손에 넣어야 하는 이유였죠. 이제 예언서와 여왕 꿀벌이 다 내 수중에 있으니 그 가능성의 나뭇가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됐어요. 제3차 세계 대전은 인류에게 반드시 필요한 정화 과정이에요. 끝까지 지속돼야 하는 이유죠. 그래야 과잉 상태의 인류가 딱 필요한 수까지 줄어들게 될 테니까.」 --- p.345
예언이 저절로 실현된다는 말은 우리가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입에 올리는 순간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예언이 없었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조차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