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30분.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여차하면 누구 하나 죽이고도 남을 만큼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다. 특히 10월 8일 화요일 아침, 나는 7시 45분부터 이미 살인 충동을 느꼈다. 메이플 시럽 범벅인 두 살배기에게 기저귀를 채우느라 아등바등하는 사이, 곧 유치원에 가야 하는 네 살배기는 제 머리를 직접 자르겠다고 설치고, 행방이 묘연해진 베이비시터를 내내 수소문하면서, 수면 부족 때문에 커피포트에 필터 끼우는 걸 깜빡한 탓에 넘쳐 흐른 커피 가루를 치워본 경험이 없다면 내가 똑똑히 알려주겠다. 누구라도 걸리기만 하면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에 대해. 누가 됐든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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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방식으로든 상관없어요. 말씀대로 깔끔하게 처리해주시면 돼요. 그냥 내 남편을 제거하고 싶어요. 내게 현금 5만 달러가 있어요. 그 사람을 떠나려고 마련해둔 돈요. 하지만 역시 이 방법이 낫겠어요.”
“무슨 방법요?”
“그 사람, 오늘 밤 러시에서 열리는 사교 모임에 참석할 거예요. 어떻게 처리하실지 방법은 알고 싶지 않아요. 장소도요. 일을 끝내고 이 번호로 연락만 주시면 돼요.”
전화가 끊겼다.
기괴하게 전개된 대화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무릎에 놓인 피 묻은 손수건을 내려다봤다. 벌어진 기저귀 가방 속의 칼과 딜리아의 머리카락이 엉킨 덕테이프를 내려다봤다. 바닥에 놓인 있는 내 가방을 흘깃대며 우리의 대화를 엿듣던 그 여자의 핼쑥한 얼굴을 떠올렸다.
‘아름답고 상냥한 비운의 여인을 나쁜 놈한테서 구하면 그만인걸. 나쁜 놈만 제거하면 가련한 여자는 진심으로 고마워할 테고, 모두모두 행복해지는 거죠. 당신은 보상을 두둑이 받고요.’
이런, 세상에.
‘1만 5천 달러 이하로는 안 받을 생각이에요…….’
‘다음 건은 이번 건을 해치운 다음에 이야기하죠.’
5만 달러. 그녀는 내가 5만 달러를 원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 이럴 수가. 안 돼, 안 돼, 안 돼!
--- pp.29~30
“저 사람은 누구예요?”
“누구 말이에요?”
그녀는 해리스의 발을 향해 턱짓을 했다.
“아, 저 사람요?” 식은땀이 나서 몸이 근질거렸다. 나는 목을 긁적이며 몸을 꼿꼿이 세워 그녀의 앞을 막았다. “그냥…… 아까 술집에서…… 만난 사람이에요.”
베로는 뒤를 보려고 내 양옆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입을 떡 벌리고 한 발짝 다가와 갈라지고 찢어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죽었어요?”
“아니에요!” 긴장한 채 미소를 지었더니 얼굴 근육이 뒤틀렸다. 뺨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끼고 손을 갖다 댔다. “말도 안 돼요. 왜 그렇게 생각하죠?”
“누가 봐도 죽은 사람 같잖아요!”
나는 억지로 해리스를 내려다봤다. 입술은 보랏빛을 띠고 피부는 묘하게 푸르뎅뎅했다. 아, 맙소사.
베로는 내게서 떨어져 벽 쪽에 붙었다.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가려던 참이니까.” 그녀는 차고 문을 여는 버튼을 눌렀다. 우리 머리 위에서 모터가 윙윙 돌아갔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깐만요! 내가 다 설명할게요.”
“설명하실 거 없어요.” 그녀가 버튼을 다시 꾹 누르며 나와 차고 문 사이로 시선을 던졌다. “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 아무것도 모르고요. 죽은 남자한테는 관심 없어요.” 모터가 내는 소음 속에서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 p.88
나는 행주를 떨어뜨렸다. 두꺼운 100달러 지폐 뭉치를 넋 놓고 보다가 의자에서 떨어질 뻔했다. 얼른 내려가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다. “저게 다 뭐예요?” 나는 돈을 가리키며 물었다.
“3만 7천 500달러에서 40퍼센트를 제한 돈이죠. 고마우면 저녁을 사면 돼요.”
“무슨 돈이냐고요.”
“이리나 보로프코프를 만나서 절반을 선불로 받았어요.” 숨이 턱 막혔다. 무릎이 꺾이면서 나는 서 있던 의자 위로 미끄러졌다. “핀레이? 왜 그래요?” 베로가 내 의자의 다리를 걷어찼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그 여자 남편이 누군지 알기나 해요?” 내 목소리는 공포의 깊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섬뜩할 만큼 차분하고 나직했다.
베로는 쓸데없는 소리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나를 등졌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었다. “물론이죠. 이리나가 다 말해줬어요. 엄청 나쁜 놈 같던데요. 양심의 가책 같은 거 없이 처리할 수 있겠어요.” ‘이리나’라고, 베로는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 이름을 불렀다.
“베로.” 일부러 절제된 목소리를 냈다. “안드레이 보로프코프는 러시아 마피아의 행동대장이에요. 살인이 직업인 인물이라고요. 사람들의 목을 갈라요. 지난여름에 헌든의 창고에서 발견된 세 남자처럼요.”
--- pp.188~189
“내가 보기엔 이 책이 엄청난 히트작이 될 텐데, 그러면 지난번에 계약한 원고료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 아니겠냐고 편집자한테 얘기했죠. 작가님이 이미 받은 계약금을 내가 직접 갚고 새로 충분한 보상을 받게 해주고 싶어서요.”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나 싶어 전등을 켰다. 불빛 때문에 눈물이 맺힌 눈을 가늘게 떴다. “편집자는 뭐라던가요?”
“작가님 초고를 읽고는 내 말에 동의했어요. 이번 작품이 대박을 터뜨릴 것 같대요!”
“정말요?”
“기막힌 설정이잖아요. 소심한 아내가 누군가를 고용해 끔찍한 남편을 살해하고, 용감한 여자 주인공과 젊고 섹시한 변호사는…… 엄청 잘 어울리던데요? 아주 흥미진진했어요, 핀레이. 여태 쓴 작품 중 최고예요. 살인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죽겠더라고요.”
음험한 미소가 내 입가를 스쳤다. “저도요.”
“편집자가 말하길, 작가님이 다른 출판사로 옮기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판권을 구입하고 싶대요. 계약을 두 권으로 늘리고, 계약금을 올리고, 초고를 쓸 마감 기간을 연장해줄 거예요.”
“계약금을 올려준다고요? 얼마나요?”
“권당 7만 5천 달러.” 내 입이 무릎까지 벌어졌다. 출판사가 내게 15만 달러를 준단다. 해리스 미클러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범죄의 세부 내용을 속속들이 묘사한 책으로. 지금 수사 중인 데다가 나도 은밀히 연루된 사건으로. “핀레이, 듣고 있어요?”
--- p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