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 허라취는 새로운 디자인과 밝은 색감이 넘쳐났던 패션화의 새 시대에 딱 알맞은 스니커즈였다. 하지만 스우시를 제거해버린 나이키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당시에도 스우시는 신발에 붙어 있기만 하면 매출을 보장하는 보증 수표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네오프렌 소재를 주로 사용한 이유는? 세상이 스우시조차 없는 수상 스키용 부티 모양의 스니커즈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판단한 걸까? 어떻게 이런 신발이 팔릴 거라고 확신한 걸까?
팹 파이브는 힙합을 듣고 자란 첫 세대의 선수들이었기에 퍼블릭 에너미, N.W.A, 투팍 등의 노래 가사에 내재된 관점과 이야기에 강하게 끌렸다. (…) 팹 파이브와 바클리는 이런 시대의 전환을 반영하며 대중의 시선에 노출돼 있어도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새로운 흑인 남성상을 제시했다. 그들은 미국 사회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흑인성의 한 면을 선보였다.
에어 조던 14 라스트 샷이 레트로 재발매되기 전, 빨강 설포가 달린 에어 조던의 견본이 언론에 노출됐다. 미세하지만 눈에 띄는 차이점은 초기 온라인 스니커즈 커뮤니티에 적지 않은 소동을 일으켰다. 순수주의를 부르짖는 스니커헤드는 그들이 사랑하는 모델이 아주 작은 세부 요소 하나하나까지 최대한 원작의 모습을 재현해주길 바랐다. 이들은 이내 빨강 설포를 반대하는 불만이 담긴 글로 나이키 웹사이트 게시판을 도배했다. 이들은 검정/빨강 에어 조던 14처럼 상징적인 신발을 함부로 변형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2005년 2월 23일 『뉴욕 포스트』 1면은 암울한 헤드라인으로 가득했다. (...) 이 사건 이전에도 스니커즈 역사상 중요한 순간이 여럿 있었지만, 그중 압도적인 대다수는 조던이 하양/시멘트 에어 조던 3를 신고 1988년 슬램 덩크 콘테스트에서 우승한 것처럼 운동 경기와 연관된 사건이었다. 하지만 덩크 ‘피존’은 달랐다. 순전히 운동화 자체가 주목받은 사건이고, 스니커헤드 문화의 주요한 전환점이었다. (...) 스니커즈 문화는 그들이 푹 빠져 있는 무언가였으며, 나이키토크 게시판과 같은 인터넷 한구석에 모여 수다 떠는 소재였다. 그러던 것이 말 그대로 세계 미디어 중심의, 그것도 1면을 장식하는 뉴스가 된 거다. 스니커헤드 문화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었다.
맨발로 뛰는 게 매우 유익하다는 생각은 어떤 면에서는 운동화 회사의 존립에 위협이 된다. 하지만 토비 햇필드는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하나의 도전으로 여겼다. 그는 단순히 기술 진보로 받아들여졌던 개념에 저항하며, 신발에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더하려는 경향성이 실제로 스니커즈를 발전시키는지 의문을 품었다. 어떤 면에서는 수천 년 전의 가장 순수한 형태의 달리기 방식을 가져와 21세기의 보다 시의적절한 디자인과 기능 위에 섬세하게 배치했다.
심지어 수프라 내부에서도 스카이탑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있었다. 브루베이커는 “직원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몇몇 사람은 우리 면전에서 대놓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게 뭐야, 우주인이 신는 부츠인가? 대체 뭐야?’” 회사의 판매 담당자들도 제품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몰라 난색을 표했다. “이 모델이 생산에 들어가고 공식적으로 우리의 제품이 됐지만, 출시된 첫 시즌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심지어 우리 판매 담당자 중 몇 명은 제품을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들에게 제품을 선보일 자신이 없었던 거다.”
1989년 11월 22일 「백 투 더 퓨처 2」가 개봉했을 때,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와 주연 마이클 J. 폭스, 크리스토퍼 로이드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의 러닝 타임 105분 중 몇 분 동안만 등장했을뿐더러 고작 네 단어로 구성된, 단 한 문장에서만 거론된 소품인 스니커즈 한 켤레가 훗날 실제로 제작돼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 「백 투 더 퓨처 2」에서 박사와 맥플라이가 도착한 날짜인 2015년 10월 21일 오후 3시 5분에 마이클 J. 폭스 재단은 첫 번째 트윗을 게시했다. “이 사진은 진짜다. 오늘 찍은 사진이다. 2016년 봄 발매 예정. cc: @RealMikeFox @Nike”라는 간결한 문구와 함께 에미 상 트로피가 올려진 선반을 뒤로한 채 나이키 맥을 신고 의자에 앉아 있는 폭스의 사진이었다.
패션 산업의 보수적인 종사자들이 웨스트를 선지자적 인물로 인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팬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본인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는 『GQ』에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내 말을 한번 들어봐. 장담하건대 나, 그러니까 카니예 웨스트라는 사람은 남성 신발 전체 매출의 50퍼센트 이상에 영향을 미쳐. 나, 그러니까 단 한 사람이 말이야. 판매되는 모든 발렌시아가 신발의 50퍼센트.”
“구매하신 플라이니트를 쪄드릴까요?” 2013년 나이키 플라이니트 루나 1+가 처음 출시됐을 때 매장에서 종종 들을 수 있었던 질문이다. 마치 체형에 맞게 줄어드는 데님이라도 되는 듯이 몇몇 나이키 매장에서는 플라이니트를 구매자의 발에 딱 맞도록 스팀으로 쪄주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방법은 이랬다. 구매한 플라이니트를 ‘스니커 사우나’에 30초간 넣어 플라이니트 섬유를 가열하고 축축하게 적시는 것이다. 이후 아직 따뜻하고 축축한 스니커를 구매자가 바로 착용하면 플라이니트 섬유가 구매자의 발에 딱 맞게 줄어들었다. 이 과정을 거친 플라이니트 스니커즈는 나이키 스니커즈 중 가장 가볍고 발에 꼭 맞는 러닝화가 됐다.
2017년, 나이키는 이전과 다른, 낯선 상황에 맞닥뜨렸음을 깨달았다. 나이키가 개척한 러닝화 시장에서 울트라 부스트의 성공에 힘입은 아디다스가 어느덧 모든 화제의 중심이 돼버린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자, 나이키는 출시 후 1년 안에 인기가 떨어지고 마는 디자인 중심의 신발보다 뛰어난 뭔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찾은 해답은 기능성과 미래적 디자인을 결합한 모델, 줌 플라이였다.
리액트 엘리먼트 87이 발매되자, 이 신발을 손에 넣은 사람들은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을 마주했다. 갑피에 반투명 소재가 사용되어 착용자의 발이 신발의 전체적인 외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맨발인지, 또는 양말을 신고 있는지에 따라 신발의 외관은 달라졌다. 리액트 엘리먼트 87은 열흘 내내 같은 신발을 신어도 매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신발이다. 스타디움 굿즈의 브랜드 디렉터 벤 제이컵스는 “이 신발을 손에 넣기까지 투명한 갑피의 특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많은 얼리어답터가 공유한 감정을 묘사했다. “양말 색깔이 신발의 외관을 어떻게 바꿀지를 생각하는 것은 코디 측면에서 완전히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일이다.”
LDV 와플을 특별하게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스니커즈 신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스니커헤드와 OG 수집가는 당연히 이 신발을 즐겨 신었지만, 스니커즈를 거의 신지 않던 패션 피플도 이 모델에 빠져 있었다. 어찌 보면 이 신발은 오늘날 스트리트웨어와 스니커즈 문화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오늘날 스트리트웨어는 하이 패션이다. 스니커즈 산업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 산업이 됐다. 그리고 럭셔리 업계는 마침내 스트리트웨어와 스니커즈 문화의 힘과 영향력을 파악했다. 이렇게 볼 때, 이 모델이 스트리트웨어의 개념이 변화한 파리의 패션 위크 기간에 처음 공개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마침내, 불가능한 일이 현실이 되었다. 킵초게가 마침내 해낸 것이다. 그는 2019년 10월 마라톤 경기에서 한 시간 59분 40초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그의 브레이킹2 기록과 마찬가지로 표준 마라톤 조건에서 뛰지 않았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세계 기록은 아니다.) 그는 알파플라이 넥스트%의 프로토타입 버전을 착용했는데, 기록이 과할 정도로 단축돼 나이키를 비난하는 이들은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이 신발을 금지하리라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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