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그리기 연습-벨루가
감개무량했다. 드디어 도형을 지나 생명체를 그리는 날이 왔구나. 너무나 고대하던 날이어서 화실에 가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여름이 오는 것도, 무성해지는 초록을 보는 것도 다 좋았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빨리 화실에 도착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어떻게 구도를 잡는 것이 좋은지 시범을 보이셨다. 이번에는 내 차례. 도화지 가득 벨루가가 차도록 위치를 잡았다. 종이 위쪽에서부터 직선으로 떨어지는 등을 그은 후에 이마의 굴곡진 부분을 정성껏 표시했다. 문득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무언가를 이토록 관찰하고 살펴보는 일이 내 삶에 일어났을까 물음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일어나지 않았을 것 같았다. 평소 일상을 살 때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관찰하는 것도 그 대상에게는 폭력적인 시선이 될 까봐 자제하는 편인데, 오히려 이런 관찰을 통해서만 얻게 되는 것도 있구나. 새롭게 알게 됐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떤 물체나 생명체의 표면은 같은 색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구나. 어떤 부분은 유독 어둡거나 밝기도 하고, 상처나 얼룩이 있기도 하구나.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그리는 생명체의 눈동자에 환한 빛이 찍혀 있는 것 같기에 모양을 자세히 살펴봤더니 사진을 찍은 내 얼굴의 거기에 담겨있었다. 눈동자는 이토록 선명하게 누군가를 반사할 수 있기도 하구나 깨달았다. 똑같은 회색이라고 생각했는데, 진한 회색부터 중간 회색, 밝은 회색까지……. 언어로는 다 쪼갤 수 없는 무수한 색이 있다는 것. 그저 사물에 떨어지는 빛이라고 착각했는데, 어떤 고유한 존재의 형상이 그 안에 들어있기도 한 것. 그림을 통해서 배운 것들이다.? 벨루가를 그리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그라데이션이었다. 벨루가는 전체적으로 구 형태가 많고, 피부가 하얘 명암이 잘 드러나는 특성이 있다. 그것에 맞게 색감을 잘 넣어야 안구가 얼마만큼 안으로 들어가 있는지 혹은 앞으로 나와 있는지, 입술의 두께감은 어떠한지 입체감 있게 선명히 드러낼 수 있다. 완성된 그림만 보면 손쉽게 쓱쓱 그린 것 같지만……. 한 달 동안 형태잡기부터 색감, 그라데이션 단계를 차근차근 진행해갔다. 그림을 다 완성한 날, 북극을 헤엄치는 벨루가 영상을 찾아봤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쌓여서 저만큼 거대해진 것인지 인간의 시간으로는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는 빙하를 넋 놓고 보고 있는데, 깨진 얼음 조각을 헤치고 벨루가 무리가 수면 위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공중에 물을 내뿜는 소리와 함께 주파수 높은 맑은소리. 맞다, 책에서는 벨루가를 바다의 카나리아라고 소개하기도 했지. 찌직- 새가 지저귀는 것 같기도 하고, 고드름과 고드름이 부딪힐 때 나는 소리 같기도 한 벨루가가 내는 소리에 잔뜩 마음을 빼앗겨 있는데, 아쿠아리움에서 이상 행동을 하는 벨루가의 영상을 발견했다. 북극을 시원하게 누비는 벨루가가 내는 소리와 수족관 유리벽에 머리를 대고 있는 벨루가의 소리가 너무나도 달라서 놀랐다. 솔직히 말하면 경악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2021년 11월,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9세 암컷 벨라를 바다로 다시 돌려보낼 계획과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일각에서는 벨라가 야생으로 돌아간 뒤 거친 환경에서 생존이 가능하겠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인간은 이토록 인간 중심적이다. 자연을 비롯한 다른 동식물들은 언제나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인간은 그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벨라가 자신의 동료와 함께 바다를 마음껏 헤엄치고, 새끼를 기르고, 때가 되면 따뜻한 강 하구로 몰려가 거칠거칠한 자갈에 온몸을 비비며 죽은 피부를 벗겨내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인간이 만든 울타리는 부수면 그만이다.
원근법-물체가 맞닿은 지점이 가장 어둡다 물체가 지면에 닿은 지점이 가장 어두워요. 빛과 어둠의 흐름을 생각하며 그림자의 형태를 잡고 있는데, 그 말을 들었다. 물체와 물체가 맞닿은 지점은 가장 밝은 것이 아니라 어두운 거구나.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걸지도 몰라. 알사탕 같기도 하고 야구공 같기도 한 구를 칠하다가 아롱이의 그림자와 내 그림자가 겹쳐진 순간이 생각났다. 어두운 밤 달빛을 받으며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 우리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가 겹쳐졌다가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기쁘게 웃었다. 그날의 장면은 어두운 밤보다 더 짙은 검정으로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한때의 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부딪히는 자리는 낮처럼 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사물의 구조를 드러내는 빛처럼 사람의 마음은 솔직하고 투명하게 서로를 향해야 한다고. 만남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올 때,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침묵의 시간이 찾아올 때 쉽게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너무도 강한 빛은 식물의 잎을 태워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어둠에 잠든 박쥐의 잠을 괴롭힐 수 있고, 바다를 헤엄치는 사람의 등에 햇빛 화상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어떤 존재가 간직한 어둠과 신비를 견디지 못하고 낱낱이 파헤치는 태도야말로 광적이고 폭력적인 태도 아닌가, 지금은 반문하게 된다. 어둠을 어둠으로 내버려 두는 것.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언젠가 책의 한 귀퉁이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왜 내면을 가만두지 못하는가? 물론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반성은 스스로 자책하거나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 기울기 십상이기 때문에 추락하기 좋은 얼음 골짜기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빙벽의 상태를 확인하듯이 내면의 상태를 짚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을 내면 그 자체로 둘 줄 아는 것. 달의 그림자 이야기를 들으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이지만, 달의 입장에 서서 지구를 보면 자신은 늘 한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 달라지는 점은 빛을 받은 부분이 그날그날 바뀌는 것이다. 달에게 이목구비가 있다면 오늘은 빛이 나의 눈동자를 비추고, 내일은 이마, 모레는 눈썹을 비추는 식이다. 요즘 나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마음을 섣부르게 짐작하지 않고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것 같다. 타인의 어둠을 응달에 놓아둔 채로 언젠가 그가 준비되었을 때 자신의 일부를 조금씩 조금씩 보여 주는 순간을 기다린다. 이따금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내가 쌓아온 관계들이 파도 한 번에 무너지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 아롱이가 더 짙은 그림자를 맞대며 곁에 있어 준 순간을 떠올린다. 어둡고 어둡다가 마침내 창문에 여명이 맺히는 순간. 그래 지금은 어두운 면에 맞닿은 때야. 그냥 기다리면 돼. 또 다른 빛의 모양이 나타날 때까지. 주문처럼 읊조리면 한마디 대화 없이도 몸과 몸으로 기대 맞이하는 아침이 선물처럼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