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의 결혼 적령기가 뒤로 밀려 신부들의 평균 연령이 높아졌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혼주들의 나이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그러나 감량 감원으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다급한 산업 전반의 현실 상황에서 조기 퇴직으로 떠밀려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하니 혼주들의 은퇴 시점은 오히려 당겨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기왕 결혼을 할 거라면 아빠가 은퇴하기 전에 결혼식을 올리라는 나의 엄마의 주문처럼, 결혼식이 부모의 잔치인 성격이 아직 짙은 한국에서, 부모의 사회적 은퇴는 자연스레 하객 숫자의 감소를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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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웨딩’과 ‘스몰 웨딩’이라는 단어가 예비 신부들에게 회자되기 이전, 그 시발점은 연예인들의 비공개 결혼식이라고 추정된다. 본격적으로 유행어처럼 번진 건, 카리스마 넘치는 디바와 옆집 언니의 친근한 이미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이효리의 결혼식부터였을 것이다. 그녀의 제주도 집 앞마당에서 치러진 결혼식에 초대받은 이는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 몇몇뿐이었겠지만, 소속사가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소박하고 아름다운 결혼식 사진들은 많은 예비 신부에게 작은 결혼식의 매력을 단박에 이해시켰다.
황금빛 밀밭 길을 걸어와 혼인서약을 했던 원빈·이나영 커플의 결혼식도 마찬가지다. 한복을 차려입고 앞치마를 두른 아낙들이 밀밭 한켠에서 가마솥에 국수를 삶던 모습은 예비 신부들뿐 아니라 웨딩 마켓 종사자들에게 그야말로 비주얼 쇼크였다.
결혼식은 곧 부모들의 잔치라는 등식이 당연하던 시대를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그들이 보여준 결혼식 형태는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제주도에 세컨드하우스를 갖거나 밀밭에 그랜드 피아노를 옮겨다 놓을 능력과 배포가 없는 대다수에게 그 모습들은 그저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일 뿐이다. 요샛말로 넘.사.벽. 푸른 하늘을 이고 녹색의 대지가 펼쳐진 장소를 통으로 대관해 하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능력은 대다수에게 주어진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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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 ‘데스티네이션 웨딩’이라는 용어를 간단히 설명하면, 커플의 거주지가 아니면서 신랑 신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 특히 해외에서의 웨딩을 일컫는다. 결혼식은 물론 결혼식과 관련된 여러 이벤트 및 축하 파티를 위해 하객들이 주말 동안 머물며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완비된 리조트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하객들이 떠난 후 같은 장소에서 신랑 신부의 오붓한 허니문이 이어지기도 한다.
휴가지로 여행을 온 듯한 형태의 웨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획일적으로 치러지는 식상한 혼인서약과 밥만 먹고 일어나는 결혼식 관행 대신,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까닭이다. 그저 알고 지낼 뿐인 다수의 손님들 대신, 주인공인 신랑 신부에게 의미 있고 친밀한 이들만을 초대해 진심 어린 축하를 받고 싶어서인 것이다. 예식 자체뿐 아니라 환영 연회와 각종 여가 활동들로 다 함께 미니 휴가를 즐기며 긴 주말을 함께 보내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므로,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더욱 섬세하게 준비해 잘 대접하고 싶게 마련이다. 200~300명의 하객을 위한 예산을 60~80명에게 집행하는 셈이니 결국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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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의 웨딩드레스 산업이 렌트 마켓으로 자리 잡은 아주 독특한 구조와 시스템 덕에 욕구 분출을 위한 대체재가 존재한다. 흔히들 스튜디오 촬영, 리허설 촬영, 야외 촬영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프리웨딩 촬영’이다.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웨딩드레스는 구매하거나 맞춤으로 입어야 하고 이 관습은 빈부와 무관하다. 부유하지 않은 신부도 웨딩드레스는 구입한다. 다만 저렴한 것을 구입할 뿐이다. 그러므로 유명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두세 벌씩 입고 각종 소품과 액세서리들을 활용해 스튜디오의 더러운 바닥과 야외의 정원을 쓸며 마음껏 촬영하는 기회를 갖는 건 해외에선 극소수의 슈퍼 리치 신부가 아니고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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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웨딩드레스를 고를 땐 무척 까다롭게 굴던 신부들도 내 남자의 결혼식 예복엔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경우가 꽤 많은 듯하다. 결혼식을 마치고 소셜 네크워크를 통해 공개한 그녀들의 결혼식 사진에서 신랑의 예복을 보는 순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신부의 웨딩룩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날로 변화무쌍해지는 것에 비해 그저 ‘양복’으로 통칭되는 남자들의 예복이 상대적으로 단조로워 보여서일까. 남자들의 입성에서 시간과 장소, 상황에 적절하도록 요구되는 규칙과 매너는 생각보다 엄격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신부도, 당사자인 신랑도 옷을 통해 지켜야 할 에티켓을 대부분 잘 모른다. 조언이라도 구하면 좋으련만 언제부터 그런 근거 없는 믿음이 정착되었는지 신랑은 으레 턱시도를 입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턱시도를 입어야 하고 언제 슈트를 입어야 할지 모호하거나, 턱시도와 슈트의 명확한 차이조차 알지 못하는 대다수의 예비 신랑을 위해 클래식 턱시도의 구성 요소들과 함께 우선 이 둘을 구분하는 특징부터 설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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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으로 시작해 마라톤까지, 하드 코어 스포츠 종목들을 두루 섭렵하며 탄탄한 몸을 가꿔온 건강한 이미지의 배우 이시영을 신부 고객으로 소개받기 위해 성사된 만남은, 사실 거절을 하기 위해 나간 자리였다. 위에 열거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그녀의 결혼식 날짜와 같은 날, 공교롭게도 마음이 많이 쓰이는 또 한 명의 중요한 고객이 있었던 이유로 더더욱 고사하고 싶었다. 아무래도 같은 날 두 곳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배분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돌린 건 “제가 결혼식 날짜를 바꾸면 맡아주실 수 있으실까요?”라며 재차 의사를 타진해온 신부의 이 한마디. 여배우의 후광이 걷힌 세상 소탈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하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건강하고 수수한 그녀의 평소 이미지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모두의 기억 속에 특별하게 남을 웨딩을 디자인해보고 싶었다. 아이디어는 그녀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샐러드 식단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운동 마니아에 채소와 해산물 위주의 건강한 식단을 선호하는 신부와 신랑이 운영하는 샐러드 레스토랑의 느낌, 그리고 오곡백과가 풍성해지는 추석 직전의 결혼식이라는 데서 교집합을 찾기 시작하자 이내 머릿속에 바로 웨딩 콘셉트가 그려졌다. 화려한 꽃 장식 대신 수수한 시골 농장에서 치러지는 결혼식처럼 탐스러운 가을 과일들과 황금 들녘이 연상되는 곡식들로 꾸며보고 싶었다.
--- pp.147-148
문제는 베일이었다. 웨딩드레스 못지않게 신부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요소가 바로 신부의 상징과도 같은 베일이다. 그런데 짧고 경쾌한 똑단발에, 길어서 치렁치렁 바닥을 쓰는 베일은 묵직해 보여 어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고 끝에 과감히 베일을 생략하고, 대신 만화 속 캐릭터 같은 그녀의 이미지에 잘 어울릴 법했던 호스헤어 소재의 큼지막한 리본 장식을 헤드피스로 매치해보았다. 의외성이 보여준 결과는 당혹스러움이 아닌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녀의 똑단발 머리 위로 하얀 새 같은 리본이 명랑하게 올라붙자 ‘와우!’ 하는 감탄사가 절로 외쳐지고 눈이 시원해졌다.
그러나 신부가 일반인이 아닌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연예인이라는 점에서 바윗덩이 같은 부담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혹시라도 너무 생경한 신부의 모습으로 인해 그녀가 워스트 드레서의 수모와 가학적 악플에 시달리게 되는 건 아닌지 밤잠을 설치며 조마조마한 날들이 지나갔다. 비공개 예식이 치러진 다음 날 아침, 강혜정의 소속사에서 공개한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나는 비로소 구원을 받았다. 치아교정 이후 갑자기 양산된 그녀의 안티들마저 단번에 호감으로 돌려놓을 만큼, 리본 스타일링에 대한 열광은 내 상상과 기대를 훨씬 웃도는 뜨거운 반응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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