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떻게 일을 하니?
누가 물으면 나는 딱 한마디로 답합니다. 열심히. 상대가 피식 웃으면 나는 농담이 아니라고, 열심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정색하며 말합니다. ‘열심히’가 없으면 내 이름 걸고 수십 년 같은 일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거듭 추궁하면 세 마디로 대답합니다.
생각도 나 홀로.
생산도 나 홀로.
배달도 나 홀로.
이게 내가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생각과 생산과 배달은 내 공책에 고스란히 기록됩니다. 물론 공책은 종이 형태로만 존재하는 건 아닙니다. 피씨 속 한글 파일도 늠름한 내 공책입니다. 기억의 공책도 있지요. 굳이 글자 형태로 변환할 필요가 없는 생각은 머릿속 기억의 공책에 보관합니다. 그때그때 내 생각을 저장하는 블로그나 페이스북 또한 충직한 기억의 공책입니다. 이 책은 그것들을 죄다 꺼내어 주르륵 펼쳐 보이는 책입니다.
---「머리말」중에서
생각은 없습니다.
우리 머릿속엔 생각이라는 녀석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는 괜찮은 생각은 거의 한 톨도 없습니다. 생각의 씨앗이 군데군데 흩어져 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당장 글이 될 만한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머릿속 생각을 종이 위로 이동시키라고 말합니다. 이 모순은 뭘까요. 생각은 찾는 것입니다. 꺼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입니다. 머리를 때리고 비틀고 꼬집어 어렵게 받아 내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협박도 하고 고문도 해야 합니다. 어떻게든 머리를 못살게 굴어야 합니다. 그 난리를 쳐야 비로소 생각이라는 녀석이 배시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때 녀석 멱살 잡고 종이 위로 데려가면 글이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머릿속 생각’이라 칭한 것은 때리고 비틀고 꼬집는 노동으로 생산한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중에서
앞서 말 했듯이 나는 생각을 활자로 변환하는 일을 한다네. 활자를 위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책상 앞에 앉는 일이야. 몸도 앉아. 마음도 앉아. 연필도 종이도 앉아. 누군가에게 받은 자료도 연필과 종이 곁에 나란히 앉아. 준비의 시간이지. 모두 제 자리에 앉으면 작업을 시작한다네. 받은 자료 한 장 한 장 넘기며 찬찬히 살피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은 사전 찾고 포털 뒤지며 두 번 세 번 읽어. 과학의 시간이지. 그러다 카피 실마리가 될 만한 것이 보이면 그것이 무엇이든 긁어모으지.
느낌 좋은 키워드, 맵시 있는 문장, 생각나는 컬러, 떠오르는 인물, 눈에 밟히는 영화,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노래, 책, 만화, 드라마, 속담, 격언, 유언, 연설, 역사, 법률, 뉴스, 낙서, 소문 뭐든 좋아. 과학이 내게 찔러주는 건 모조리 챙기는 거지. 챙긴 그것들은 내 공책 속으로 들어가 생각의 재료가 된다네. 수십 페이지 자료를 한두 페이지에 눌러 담는 압축의 시간이지. 생각의 재료가 추려지면 추린 그것들만 붙들고 씨름을 하지. 이때 내 눈은 매의 그것이 된다네.
---「편지」중에서
우리 모두는 매일 어디엔가 글을 씁니다. 문자를 보내고, 카톡을 하고, SNS에 글과 사진으로 내 하루를 올립니다. 메일도 글, 리포트도 글, 자기소개서도 글, 기획서도 글입니다. 무인도에 홀로 살지 않는다면 누구나 글을 써야 합니다. 어차피 써야 한다면 잘 써야겠지요. 잘 쓰려면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할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내 강의입니다. 하지만 ‘무엇을’과 ‘어떻게’가 내 강의의 목적지는 아닙니다. 이것들은 목적지로 난 두 갈래길입니다. 나는 첫 시간에 강의의 목적지를 밝힙니다. 한 학기가 끝난 후 이 강의가 도착하고 싶은 곳은, 나도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쓰는 기술보다 쓰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쓰고 싶어야 쓰게 되니까요. 쓰다보면 잘 쓰게 되니까요. 그동안 몇이나 목적지에 도착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글 쓰는 즐거움을 잘 전해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가끔은 듣습니다. 교수님, 저 도착했어요! 이런 대답 하나가 나를 다음 학기로 데려갑니다.
---「누구나 카피라이터」중에서
문장력은 어휘력입니다. 풍부한 어휘를 지닌 사람이 풍성한 문장을 만듭니다. 그런데 어휘를 아주, 특별히, 대단히, 엄청나게 많이 손에 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책 좀 읽은 사람이라면 손에 쥔 어휘의 양은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고만고만한 어휘를 얼마나 많이 동원해 이렇게 저렇게 문장을 조립해보느냐, 이게 핵심입니다. 세상은 이 일을 치열하게 하는 사람에게 이런 찬사를 바칩니다. 너는 글을 참 잘 써.
---「자문위원이면 자문만 할 것이지」중에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먼저 적을 살폈습니다. 의학 지식 빵점인 나는 이 괘씸한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어떻게 우리를 괴롭히는지 몰랐습니다. 적진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도 아는 게 없어 침투할 수 없었습니다. 과학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과학은 침 튀기며 뜨거운 설명을 했지만 하나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내 귀에 들리는 건 오직 코로나19라는 이름뿐. 과학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적을 아는 일에는 거의 실패. 나라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마저 알지 못하면 이 캠페인 접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정철입니까. 코로나를 상대로 싸우려는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아니, 대한민국입니다.
적과 나를 살폈더니 단어 두 개가 보였습니다. 또렷이 보였습니다.
코로나
코리아
그래, 이거다. 1탄 헤드라인이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카피라이터는 압니다. 비슷하게 생긴 단어를 잘 조합하면 리듬 좋고 맛 좋은 카피를 건질 수 있다는 것을. 헤드라인이 뚝딱 조립되었습니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코로나는 코리아를 이길 수 없습니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