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건은 자신의 책에서 "SF소설의 가장 큰 가치는 미래에 대한 실험이고 대안적인 운명을 탐구하는 장이며 미래의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SF소설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폭넓게 관심을 끄는 이유 중 하나이다."라고 했다. 익숙한 듯 낯선 SF 소설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책, 정세랑 작가의 인트로 제목을 빌려 "당신은 사실 SF를 싫어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을 믿게 만드는 책. 그런 책이다, 《오늘의 SF#2》은.
우리가 우주복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 있다. 아시아 사람 얼굴의 AI가 상상이 안 가지만 그것도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죠. 외계인도 늘 미국이나 유럽으로 오잖아요. 우리는 항상 늦어. 우리가 먼저 우주선을 볼 수도 있다는 뻔뻔한 접근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을 텐데, 조심하지 않아야 쑥 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_ 52~53쪽
이 책은 해리포터에 나오는 리멤브럴 같았다. 잊어버린 것이 있으면 붉은색으로 빛나는 구슬처럼, SF라는 장르를 잊어버린 나에게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았냐고 넌지시 묻는 책이었다. 리멤브럴은 색만 변하지,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점까지 비슷한데, 내가 어떤 SF소설을 잊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즐겨 읽었었는데, 그 소설들이 무엇인지 골몰하는 과정까지 굉장히 SF스러웠다.
작년부터 다시 읽은 장르로, 정세랑 작가님, 김초엽 작가님, 심너울 작가님의 작품으로 입문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그 상태 그대로 멈춰있지만, 예전보다 매우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지는 장르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익숙한 이름으로 펼쳐진 SF라는 장르가 낯설어서였다. 그간 내가 즐겨온 SF도 미국과 영국 중심으로 펼쳐놓은 세계였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우리나라를 무대로 한 소설을 읽다 보면 익숙함이 자연스러움으로, 그래서 낯설다는 것을 넘어선 감상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인트로, 에세이, 비평, 인터뷰를 지나 읽은 초단편 소설, 단편 소설, 중편 소설은 독특하게 검은색 종이에 흰색 글씨로 인쇄되어 있었는데, 꽤 몰입해서 읽은 작품이 많았다. <이토록 좋은 날, 오늘의 주인공은>은 씁쓸하면서 허를 찌르는 위트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고, <프레퍼>는 기후변화란 위협을 SF와 결합해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임시조종사>는 쉽사리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한문과 영어가 교차하는 페이지들이 신비로웠다는 감상을 남겨본다. (개인적으로 소설 내지가 너무 예뻐서 괜히 집중이 더 된다)
SF는 사실 일어난 적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을 현실에서 벗어난 세계관 속에서 구체적인 장면과 언어로 대신 표현해 줌으로써, 미처 구체적인 장면과 언어로 대신 표현해 줌으로써, 미처 구체화하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의 결을 좀 더 분명히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_ 289쪽
다 읽고 나니 내가 잃어버린 것은 상상이라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떨까 싶은 상상력. 남자친구가 알고 보니 외계인일 수도 있는 것, 최후의 인간으로 인공지능을 다스린다면 어떨지를 상상해보며 그런 조금 허무맹랑하고, 그래서 피어나는 웃음과 여유. 그래서 가끔 내 예상을 벗어나는 궤도의 일을 마주했을 때 의연할 수 있는 담대함이 아닐까. 이렇게 언어로 정리하고 나니까. 책을 읽으며 계속 켜져 있던 마음의 리멤브럴의 색이 바뀐 듯싶다.
덧붙여, 이렇게 예쁘고 변화를 이끄는 다양한 목소리가 담긴, 오늘을 위해서도 내일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SF를 다룬 "오늘의 SF" 시리즈의 3호가 나왔으면 좋겠다. 그땐, 반가운 마음으로 장바구니에 담는 독자가 될 것을 약속한다.
2020년은 SF를 쓰고 읽기 좋은 해라고 올해 초입에 말한 적이 있는데, 말했던 의도와는 격하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어 애도와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꽉 찼지만 한 손에 쥐이는 이 잡지가 아직 오지 않은 더 나은 날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배율 적절한 망원경이면 좋겠다. _ #정세랑
글을 읽다 보면 선호하게 되는 분야가 생긴다.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고 더 알고 싶어져 찾아 읽다 보니 해당 작가의 작품이나 장르를 파고들게 되는? 지난여름 <삼체> 시리즈를 읽으며 '어? 생각보다 재미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까? SF 무크지 「오늘의 SF 2호」의 페이지를 넘기며 국내 SF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가게 된다. 시네마틱 드라마 <SF8>은 Wavve에서도 시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찾아봐야겠는걸?)
SF라는 장르의 영화를 가끔 보긴 했지만, 굳이 책까지? 찾아읽는 수고를 하지 않았었는데, 한국의 SF 작가들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글이랄까? 생소한 작품세계, 단어에 대해 알게 되고, 수록된 7편의 짧은 SF 소설들을 읽으며 취향의 작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SF에 대한 에세이, 인터뷰, 칼럼, 리뷰 등 다양하게 접근해 SF에 대한 장르에 대한 접근을 호감으로 안내하는 국내 유일 SF 무크지 「오늘의 SF 2호」 앞으로 출간될 무크지의 소식도 기대가 된다.
SF는 지금 이곳 너머를 말하는 장르이지만
SF라는 장르는 지금 여기에 있다.
이 현재성이 갖는 가능성을 깊이 고민하여
오늘날 한국 SF를 가능한 한 모든 방향에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한국에서 SF를 읽고 쓰는 사람들이 질리도록 들어온 악담이 있다. 바로 "한국의 SF의 불모지"라는 이야기다. 다행히도 이제는 이런 말들을 한마디로 헛소리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 만큼 한국 SF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_27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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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