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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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의 시대

우리는 왜 냉정해지기를 강요받는가

리뷰 총점 9.1 (38건)
분야
인문 > 심리/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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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무관심이 위험한 이유 [인문-무관심의 시대]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j***6 | 2019.12.05 리뷰제목
책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무관심의 시대]. 무관심은 안 좋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겠지. 이 시대가 무관심을 강요하는 데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테니 그 이유를 알아보고 무관심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짐작했던 대로 주제는 흘러갔다. 그런데 내용은 내 짐작을 완전히 넘어서 있었다. 이런 책을 읽으면 나는 고마움을 먼저
리뷰제목

책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무관심의 시대]. 무관심은 안 좋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겠지. 이 시대가 무관심을 강요하는 데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테니 그 이유를 알아보고 무관심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짐작했던 대로 주제는 흘러갔다. 그런데 내용은 내 짐작을 완전히 넘어서 있었다. 이런 책을 읽으면 나는 고마움을 먼저 느낀다. 깨달음이나 감동은 한참 후에 온다. 왜 이제야 이 책을 만났나, 그래도 이제라도 만나서 정녕 다행이다, 나만 읽으면 많이 섭섭할 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나처럼 고맙고 다행스러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게 결국 다 거기서 거기고 비슷할 테니 같은 방향으로 같은 마음으로 같은 희망으로 같이 살아가는 게 맞겠다...까지.

 

무관심은 관심이 없다는 말이다. 관심이 없다는 건 어떤 대상에 대하여 끌리는 마음이나 흥미가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좋은 뜻을 품고 있는 무심과는 다른 뜻을 가진 무관심이라고도 하니 관심이 없다는 게 어찌하여 위험하다는 것인지 새겨들을 필요가 있겠다. 책은 이 부분에 대해 아주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특히 최근 나 아닌 다른 쪽에 관심을 갖지 않으려는 세태가 생겨난 배경과 특징까지도. 그게 당장은 나 자신을 편하게 해 주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길게 보았을 때, 그리고 넓게 보았을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편협한 태도라는 것까지. 심리학을 바탕으로 내세우는 각종 이론들도 마냥 옳은 말만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나니 이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겨난다.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것자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시대가 된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의 어떤 행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와 달라서 그렇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일 경우라고 느껴지는 때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인가 스스로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래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지경의 사람을 본다. 관심이 넘치거나 관심이 없거나 사람은 다 제각각이고, 그게 또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상식이라는 게 있고 도덕이라는 것도 있을 텐데 우리는 어찌하여 이리도 다른 결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일까 염려는 되는데, 아무려나 할 수 있는 만큼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길을 따르고 싶다. 내 자유의지로, 세상과 사물과 사람에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으로, 내 작은 기여로, ‘내가 존재하는 것은 좋은 일이야(241)’라고 늘 되새기면서.

 

책에서 가장 주의하며 읽은 내용은 인과적 접근이나 결정론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동안 이렇게 말하는 책들을 꽤 많이 읽으면서 체념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받은 만큼 주는 존재라거나, 태어나면서부터 그러한 유전자를 받은 것이라거나, 바람직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경우 바람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랄 확률이 높다거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을 줄 줄도 모른다거나, 폭력 부모 아래 자란 사람은 폭력적 성향을 갖게 되기 쉽다거나 하는 등등의 수많은 예시 자료들. 그리고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데에 근본적인 어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답을 얻지 못하니 머리는 아프고 결국은 도망치게 되고 회피하게 되고 체념하게 되고 마침내 무관심해지고자 했던 것이었겠지. 나라도 살아야겠다 싶기도 했고.

 

책은 인과적 접근이나 결정론의 한계를 여러 실험들을 바탕으로 조목조목 설명해 준다. 이게 아니라는 말만으로도 희망이 보일 정도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답답했을 리가 없다. 인간의 역사가 비틀비틀하는 듯 보여도,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듯 보여도 그래도 바른 쪽으로 나아가려는 공통된 의지만큼은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것이라는 확신도 얻었다. 오히려 인과적 접근이나 결정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도를 짚어 보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어디에나 늘 있는 일이듯 일부 사람들이 제 이익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주장이라는 것을.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키워주고 보살펴준 사람들만 떠올려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다. 내가 지금 갖고 있고 누리고 있고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축복이다. 이걸 인정하고 나를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행동을 하라는 작가의 당부가 나는 너무도 따뜻하고 고맙게 들린다. 대단한 일을 하라는 게 아니다. 작은 기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데, 울컥 했다. 그렇지, 세상은 이렇게 소박하고 다정한 사람들로 인해 채워지는 곳이었다. 잘난 사람들은 잘난 대로 살라고 할 일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세상에 기여하는 몫이 있겠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우리들, 보통의 사람들, 특별한 업적 없이 살다가 가는 사람들의 소중한 소명을 작가는 아주 귀하게 대접하고 있다. ‘당신이 있는 것이 세상에는 참 좋은 일이랍니다하면서.

 

프로이트 심리학이나 아들러 심리학만으로는 답답했던 마음이 환해진다. 나는 오늘이 아주 소중해졌고 내 주변의 모든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잘 살고 있는 게 이 세상에 기여하는 내 소명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고 보니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도 알겠다.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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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련의 사건과 사물의 배후에서 또 다른 의미를 추측하여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할 때 차이를 이해하게 된다.

 

17

다른 사람의 행복은 무시하고 자신만 위하는 행동이 장기적으로 볼 때 자기에게 가장 큰 해를 입히는 삶의 방식은 아닐까?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선하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우리의 재능을 발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어제는 우리 자신의 작은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이용했지만, 오늘은 그들의 도움과 호의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18

한 개인이 자신과 다른 사람, 세상에 대해 만드는 이미지는 그 자신에 대한 단서가 된다.

 

22

무언가에 열광하고 만족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개인이나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으로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욕이 결핍된 것이다.

 

23

문제는 우리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면 삶도 우리를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24

사람들이 체념에 빠지면 자신의 행복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과 곤경에도 똑같이 눈이 멀게 된다.

 

26

인간의 이상과 사명감은 천부적인 것이다.

 

28-29

불안하고 의지할 데 없는 대중을 움직이는 가장 단순하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수단은 환상을 품게 하는 것이다.

 

31

우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이 바로 우리를 증명해 주고 있다.

 

32-33

이해관계나 단순한 감정에 이끌리는 행동은 우리를 고독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진정한 만족감에 다가가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정확히 말하면 삶 자체로부터 우리를 차단시킨다. 왜냐하면 삶은 기본적으로 책임과 참여, 관심과 반응을 통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38

우리가 다른 사람의 사랑과 이상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랑과 이상을 바탕으로 현재에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는 진실을 잊는 것이다.

 

40

관심과 호의, 삶의 가치와 의미는 우리의 일생, 나아가 인류 역사의 발전과 질서를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47

삶의 희망과 의미를 포기한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본질적 특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며, 예술, 아름다움, 위안, 온기, 사랑, 학문적 발견의 기쁨, 감격, 유의미하고 참여적인 삶의 모험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50

여기에는 두 가지 희망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 세상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개인적인 공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는 희망이다.

 

100

우리의 삶은 결코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행복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104

더 이상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어둠이 아니라 빛이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조차 거부하기 때문이다.

 

114

우리는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한 사람의 부를 결정짓는 삶의 영역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행위를 통해 풍요로움을 무한대까지 증대시킬 수 있다.

 

241

내가 존재하는 것은 좋은 일이야.

 

245

어떠한 삶도 만남 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떠한 만남도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며, 어떠한 자유도 책임 없이는 불가능하다.

 

246

모든 개인은 필요한 존재다.

 

248

한 명의 개인은 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세계를 바꿀 수는 있다. 그것도 매일, 매 시간을!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소명이 주어져 있으며, 누구나 세상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

무관심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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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어떻게 하면 선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평점10점 | 이달의 사락 j****3 | 2019.12.23 리뷰제목
저자리히텐슈타인에 위치한 빅터 프랭클 연구소 창립자, 의미치료에 대한 그의 사상이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될 수 있도록 디렉터의 역할을 하고 있음. 빅터 프랭클 아카이브의 첫 번째 편집자며 <의미치료 요법 및 실존 분석> <의미에 대한 임상적 관점> 등 집필. 현재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미치료 및 실존분석 등을 강의. 모스크바 대학에서 실존심리학 교수로 초빙
리뷰제목

저자

리히텐슈타인에 위치한 빅터 프랭클 연구소 창립자, 의미치료에 대한 그의 사상이 세계 여러 나라에 소개될 수 있도록 디렉터의 역할을 하고 있음. 빅터 프랭클 아카이브의 첫 번째 편집자며 의미치료 요법 및 실존 분석> <의미에 대한 임상적 관점등 집필. 현재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미치료 및 실존분석 등을 강의. 모스크바 대학에서 실존심리학 교수로 초빙 강의. 주로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현대인의 결핍과 무기력한 삶을 분석하고 활력과 용기를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학자. 저자가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 듯해 소개해 둔다.

 

내용

우리는 무관심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무관심은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음을 말한다. 자신만 알고 자신의 것만 찾고 자신의 목표만 쫓는 것을 말한다. 주변에 대한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어도 다가갈 수 있는 힘이 없다.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여건이 안 된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다. 요즘은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 간다. 이것은 큰 문제다. 자신만 알고 타인을 자신을 위한 도구로 여길 수 있는 것도 이런 사고 때문에 일어난다. 그들에겐 타인은 아예 인격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 그곳에 있는 물상,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 상황 등은 자신이 있기에 존재하고 자신과 관련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러기에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부류들이 생겨나고 지속되는 것이다.

 

체념은 삶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에 높은 이상을 푼은 뒤 그것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빈자리에 무관심이 스며든다. 무관심이란 모든 자발성과 이상, 책임감으로 만들어지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모든 믿음을 파괴한다. 또 우리의 삶이 어떤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한탄하며 외면하고 싶어 하는 암담한 일상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무관심이란 말이 체념과 관련이 많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체념은 포기를 통해서 생겨나고 포기는 자신의 능력과 관련이 된다. 그리고 능력이 없고 할 수 없다는 생각 속에 무관심이 생겨난다. 이런 무관심이 미래를 파괴하는 기능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 무관심은 나아짐과는 상반된 개념이다. 관심이 있을 때 관계를 맺고 나은 것들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행동이 이루어진다. 무관심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개인이 많아지고 이런 일이 사회적이 될 때 그 집단의 미래는 암담하게 된다.

 

체념적 삶이 확산되면 개인의 삶을 암울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회 발전적 관점에서도 톡톡한 대가를 치른다. 사람들이 체념에 빠지면 자신의 행복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과 곤경에도 똑같이 눈이 멀게 된다.

 

정말 사회적으로 이런 분위기가 되면 곤란한 현상이 일어난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이 없어지고 제사장이나 레위인 같은 사람들이 가득해 지는 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는 분명 암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지 못하는 사회에서 불안해 지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만 따라하거나(추종주의)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원하는 것만을 한다.(전체주의) 군중심리에 조종된다는 말이다. 혼란이 야기되기 좋은 사회가 된다. 즉 무질서 사회의 근간이 형성되어 가는 상황이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을 만들어 나가는 사회를 진단해 보고 그 속에서 체념적인 사람들이 어떠한 형태로 관여하는가를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이 개인에게 주어진 조화롭고 성숙한 상태, 즉 개인과 세상, 사명이 조화가 이루어야 하는 상태에 장애가 생긴 상황을 살펴본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길을 찾고 사명과 책임에 부응하는 이상적인 상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그것들을 살펴보고 일깨우며 힘을 주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 나아갈 방향이라고 여겨진다.

 

즉 다양한 논거와 학문적 연구 결과를 참작하여 개인이 조화로운 인간으로 될 수 있다는 시각이 희망적이고 현실적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개인들이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다른 얘기다. 이러한 시각에서 인간이 본질과 부합하고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 이미 그러한 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것은 무관심을 세상에 빛으로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을 내보이는 것이다. 부정을 긍정으로 치환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눈물겹다.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세상이 풍요로워 질 수 있다는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개인의 공헌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말들 수 있다는 희망이다. 이 두 희망은 호의와 관심에 의해 이루어진다. 흔히 사람은 소망이 없으면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유한적인 인간의 삶, 가치가 상실하면 무의미해 진다. 이런 문제는 실존의 문제와 함께 해결되어야 한다. 실존의 문제가 무관심 앞에 놓였을 때 사람들은 자극을 받고. 새로운 가치를 찾을 것이다. 죽음은 무의미의 대명사가 되니까? 무관심에 대한 관심이 철학적인 문제에까지 나아간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것이냐는 인간이 있음으로 내재해 온 질문이다. 무관심의 문제가 이렇게 실존의 문제에 맞닿아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음을 저자는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삶의 마지막에만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이성적 사고와 직감과 더불어 철학적 전통애서는 양심으로 나타나고, 사람의 입으로 전해지는 말로는 마음의 지혜라고 불리는 것이 우리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정신적, 영적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즉 비극을 승리로 바꾸는 인간의 기적적 능력을 보게 된다. 그것은 무관심의 극복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승리까지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이 된다. 저자는 그렇게 실존의 가치를 통해 재생과 관심의 삶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다. 무관심이란 것이 모든 이성이 마비되고 사고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겨나가는 것은 냉정해 지고 노력이 가미되어야 한다. 삶의 활력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이겨나가고자 하는 열의, 그리고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그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다. 우리는 정말 행복해 지길 원하는가? 그러면 가능성은 항상 내재하고 있다. 행복한 진정한 의미의 실존과 가치 추구를 해나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되고, 자신을 잘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긍정의 마인드를 통해 극복되어질 수 있음을 누누이 이야기해 나가고 있다. 무척 힘을 주는 글이다. 아마 이 글을 읽으면 무기력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도 재생의 기운을 느껴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힘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주면서 여러 예화를 통해 흥미롭게 일깨워 주고 있다. 감사하게 읽은 책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만드는 책이다.

 

정리

우리 자신을 존재의 중심에 세우기보다 각각의 상황에서 무수한 의미 가능성에 대한 책임을 느낄 때 진정한 치유와 각성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그저 가능성으로만 남을 뿐 실현될 수 없다. 우리의 자아가 함께 작용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자아도, 자아가 행할 수 있는 것도 궁핍해 진다. 우리가 바라는 선은 우리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없이는, 우리의 동의와 노력 없이는 선은 결핍형태로 남게 될 것이다.

 

인간은 행복하게 살기를 지향한다. 그것이 관심사이든 그렇지 않던 관계가 없다. 그 행복은 선을 기점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아름다운 경험, 성공적인 예술 작품, 타인의 친절함)이 아직 미원성이며 우리가 기여할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 선은 결핍상태에서는 항상 빈자리로 남아 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인간들의 몫이다. 결국 행복은 우리에게 인색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의 근거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을 만들어 가는 것은 긍정적인 시각의 우리들의 몫이다. 세상이 좋은 것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체념하는 것, 그것은 큰 착각이다. 우리에게 모든 선을 실현시킬 무한한 자원이 우리의 본질 안에 내재하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고 있을 따름이다. 인간들이 존재의 본질을 인식할 때 우리는 충분히 선을 지향해나갈 수 있고, 행복함을 누릴 수 있다. 그것은 인간들이 찾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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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체념이 습관이 된 나에게 필요했던 책 - 무관심의 시대 / 알렉산더 버트야니 평점8점 | t*******y | 2019.12.13 리뷰제목
어차피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확신과 믿음을 정당화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크다. 왜냐하면 더 이상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어둠이 아니라 빛이 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조차 거부하기 때문이다. p.104인생에 엄청 대단한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꽤 늦게 알았다. 대학만 가면 된다는 말에 어
리뷰제목

어차피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이상 실망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확신과 믿음을 정당화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크다왜냐하면  이상 좋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어둠이 아니라 빛이   있는 모든 가능성조차 거부하기 때문이다. p.104


생에 엄청 대단한 순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꽤 늦게 알았다. 대학만 가면 된다는 말에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다 잘되어 있을 줄 알았다. 사회에 나가 일을 하게 될 때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나 너무 멀리 돌아온 것 같았고, 다시 새로운 길을 가기엔 삶에 여유가 없었다. 능력과 경제력, 시간을 다 살피니 남은 것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그제야 궁금했고, 부모님은 다 그렇게 타협하며 사는 것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나는 기대를 버리고 안정을 택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지만 그 안정이 어디 쉬울까? 안정도 없이 무기력에 시달린다.


불행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거나 이에 무관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어떤 불행도 제거하지 못한다. 그가 제거하는 것은 불행에서 비롯된 단순한 결과다. , 불쾌라는 단순한 감정 상태를 없앨 뿐이다. p.211


저자의 서술은 거울을 보는 듯했다. 

'현재 고통이 일단 끝나버리길 기다리는 사람' '모든 것이 사회로부터 결정되었고 나에게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이 세상이 날 필요로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현재의 사회 제도에 불만을 느끼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 '타인과의 불쾌한 관계를 차단하고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사람'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 등.

나는 이 모든 모습이 나라는 점을 인정했다. 잘못됐다는 사실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지만 스스로 정리할 힘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에 전문가가 필요했다. 단순히 자신감을 가지라고 뭔갈 하라고 말하기보다 나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길 원했다. 내가 타인을 위해 살아도 되는지.


필요한 경우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혹은 자신이 아닌 어떤 대상을 위해 우리에게 느껴지는 고통, 변경할 없는 고통을 견뎌낼 있다. 하지만 우리 자신만을 위할 때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p.225


세상이 권하는 불편한 삶을 피하고 이기적이고 편한 삶의 문제를 곱씹는다. 내 한 몸 편안하기 위한 선택에 정작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를 알고 싶었고 나름의 해답을 얻었다. 나 스스로는 정리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만 이런 생각의 흐름도 있구나! 안심이 됐다. 과거의 이론이라 생각했던 빅터 프랭클의 책 또한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로 책의 결말과 내용을 쓰지 않는 이유는 내가 제대로 내용을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어떤 상태고 어떤 상태이기에 이 책에 감명을 받았는지 적는다면 나와 같은 사람이 읽고 확신을 얻으리라 생각한다.


현재는 운명의 협상 장소다. 이곳에서 우리는 협상가가 되기도 하고, 활발한 삶의 동맹자가 되기도 하고, 혹은 적이 되기도 한다. 현재에 대한 선택과 책임을 갖는 것이다. p.102


덧붙여서 이 책은 공감 가는 말로 가득하지만 꽤 어렵다. 나는 '저자의 논리 구조에 익숙하지 않아서' 거나 '문장 구조 파악이 쉽지 않아서'라고 추측할 뿐이다. 문장을 아주 집중해서 봐야 가까스로 저자의 논리를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반전은 논리를 놓쳐도 결론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가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읽기 전부터 생각하던 내용이기에 문장 하나하나 공감이 갔다. 


이 책에는 내가 듣고 싶고 필요했던 말이 가득했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리뷰를 마친다.


나쁜 일을  때는 삶의 대부분이 우리에게서 멀어진다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삶의 가장  부분이 멀어지며중요하지 않은 것을  때는  전체가 멀어진다. ... 모든 시간들을  붙잡아라오늘을  붙잡으면 내일에  의존하게  것이다삶은 하루하루  빨리 지나간다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속해 있지만시간만은 우리의 것이다. p.62~63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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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실존적 공허와 불안을 극복하기 평점9점 | 이달의 사락 z***a | 2019.12.09 리뷰제목
좋아하는 책을 서너 가지 다른 언어 버전으로 여러 번 읽어본 경험이 있다. 그럴 때 한 권을 읽고 있지만 동시에 서너 가지 목소리가 겹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가령 한 권의 소설을 영어, 중국어, 한국어 세 가지 판본으로 읽었을 때, 중국어 글을 읽다보면 먼저 읽었던 영어나 한글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스치고 지나간다. 누군가 귓속말로 소곤거리는 것 같은, 마치 모국어가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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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을 서너 가지 다른 언어 버전으로 여러 번 읽어본 경험이 있다. 그럴 때 한 권을 읽고 있지만 동시에 서너 가지 목소리가 겹치는 경험을 하곤 한다. 가령 한 권의 소설을 영어, 중국어, 한국어 세 가지 판본으로 읽었을 때, 중국어 글을 읽다보면 먼저 읽었던 영어나 한글의 목소리가 거의 동시에 스치고 지나간다. 누군가 귓속말로 소곤거리는 것 같은, 마치 모국어가 다른 세 사람이 한 권의 동일한 텍스트를 동시에 읽고 있는 몽환적인 묘한 느낌이다. 


이와 비슷한 동시발생적 경험이 인문학 서적을 읽을 때도 간혹 일어난다. 서양 인문학을 읽다보면 동양의 유불선 사상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알렉산더 버트야니의 『무관심의 시대』(나무생각, 2019)를 읽었을 때, 그 첫 핵심 문장에서 곧장 대승불교의 '자리이타'의 보살도가 겹쳐보였다. 자리란 결국 "삶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거기에 기꺼이 참여하려는 마음"이고, 이타란 결국 "공동체적 목표를 자신의 사명으로 인지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결코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운명과 행복에도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비록 불교적인 언어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벽안의 저자가 말하는 핵심 메시지는 보살도를 걷는 수행자의 목소리와 완전히 겹친다.


'빅터 프랭클 연구소' 창립자인 저자는 현대인에게 만연한 가치 상실과 실존 위기를 빅터 프랭클의 의미치료와 실존분석 이론에 근거해 진단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학자인 빅터 프랭클의 개념 가운데 '실존적 공허'가 있다. 이는 삶에 대한 회의와 체념, 불안, 그리고 타자의 곤경과 처지에 대한 무관심이 특징이다. 니체가 말한 유럽 문화의 니힐리즘과도 통한다. 빅터 프랭클은 불안과 두려움만 가득한 실존적 공허가 나치즘과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와 인종차별이나 혐오범죄 같은 심각한 결과를 야기했다고 보았다. 이런 전지구적인 실존적 공허와 무관심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책임과 참여, 관심과 반응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가치 있는 삶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책임의식이다.


"우리에게 숙명처럼 주어진 사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고 기대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것이다. 임상적, 학문적으로 증면된 관점에 따르면, 참여적이고 유의미한 인간성은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존재 방식이다. 비결정성을 자유로 경험하고 더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을 우리의 사명과 책임으로 인식하는 존재 방식인 것이다. 우리가 눈길을 주지 않으면 그 무엇도 현실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이 바로 우리를 증명해 주고 있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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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무관심의 시대 - 우리는 왜 냉정해지기를 강요받는가 평점8점 | s*****0 | 2019.12.09 리뷰제목
빅터 프랭클 재단 이사이자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저자 알렉산더 버트야니는 책 <무관심의 시대>를 통해 왜 우리 사회가 냉담하게 변하는지를 진단하며 우리 개개인이 이기적이고 냉담한 사회에서 다시 촬력과 용기를 찾고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 만들어내야 하는 것들, 즉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관심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적극적인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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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 재단 이사이자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저자 알렉산더 버트야니는 책 <무관심의 시대>를 통해 왜 우리 사회가 냉담하게 변하는지를 진단하며 우리 개개인이 이기적이고 냉담한 사회에서 다시 촬력과 용기를 찾고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전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 만들어내야 하는 것들, 즉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관심이 아니라 삶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책임에 기인한다.


저자는 냉담한 삶의 자세가 마치 '자기 충족적 예언'처럼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란 잘못된 예언이 어떤 행동을 유발시켜 결국 그 예언이 현실화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면 삶도 우리를 소홀히 한다.


"세상이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여기고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세상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그의 연주만 기다리고 있는데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느끼는 상황이다. 이런 사람은 기다리기만 하다가 제때 연주를 시작하지 못한다. 지나치게 미세해서 자신의 삶이라는 곡이 음색을 내기에는 너무 빈약하다고 여긴다."


저자는 체념적 삶의 자세가 확산되면 개인의 삶을 암울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회 발전적 관점에서도 톡톡한 대가를 치른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체념에 빠지면 자신의 행복에만 눈이 먼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고통과 곤경에도 똑같이 눈이 멀게 된다.


"삶에 대한 강한 불신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단순한 공통분모는 결국 세상과 인간에 대한 체념이다. 이러한 체념적 가치관의 배후에는 좌절과 비구속성이 스며들어 있다. 따라서 인간 존재의 이상적 본질을 특징짓고 삶의 의미와 깊이, 가치를 부여하는 그 어떤 주도권과 책임, 활기, 기쁨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무관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위로가 필요한 타인에게 다가가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그 역시 절망과 개인적으로 경험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무관심은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거부한다.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것이다.


"체념은 삶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들은 애초부터 높은 이상을 품은 뒤 그것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겨난 빈자리에 무관심이 스며든다. 무관심이란 모든 자발성과 이상, 책임감으로 만들어지는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모든 믿음을 파괴한다. 또 우리의 삶이 어떤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우리가 한탄하며 외면하고 싶어 하는 암담한 일상으로 우리를 되돌려놓는다."


저자는 사랑은 무관심, 이기주의에 반대된다고 말한다. 이기주의는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며 '우리가 왜 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귀를 닫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태어나서 첫 번째로 맞이하는 장은 사랑의 장이다. 사랑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최초의 메시지이자 핵심이다. 누가, 왜 우리에게 사랑을 주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누군가가 몹시 기뻐해주었을 것이며, 우리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모든 새 생명이 야기하는 희망을 우리에게서 인식했을 것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삶의 사실들에 응답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미완의 사실들 앞에 서게 된다'는 믹터 프랭클의 말처럼 우리가 발견하는 모든 미완의 것들은 아직 절충 가능한 것임,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한다. 즉 '존재하는 것'에서 '존재 가능한 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명 속에서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것', 다시 말해 우리의 조력을 통해 의미 실현의 가능성을 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상황도 똑같지 않기 때문에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사람이 중요하고 모든 사람의 기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 희망이 존재한다. 하나는 이 세상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개인적인 공헌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는 희망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세상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이 세상도 우리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자체가 사람들이 관대함으로 세상과 연대를 맺을 수 있는 최고의 토대가 된다."


저자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과 우리가 세상으로 발산하는 것 사이에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과 자유의 순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빼앗긴 것과 선물받은 것, 기만당한 것과 지지받은 것, 이 모든 것은 경험이다. 하지만 이 경험이 우리의 모습을 만들지 않는다. 저자는 인간은 보다 성숙하고 의식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이기적인 행동으로부터,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결정이 우리의 모습을 만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행동할지를 선택할 수 없다. 더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운명이 우리에게 무엇을 쥐여줄지를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발산할지를 결정할 수는 있다. 우리의 기여,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받았는지가 아니라 받은 것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세상을 향해 발산하겠다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실존적 자원은 우리가 그것을 실현하고 공유할 준비가 되어 있는 만큼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


"우리는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한 사람의 부를 결정짓는 삶의 영역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행위를 통해 풍요로움을 무한대까지 증대시킬 수 있다. 반대로 충분히 나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존적 자원을 아끼면 그만큼 궁핍해진다."


저자는 희망이 가져오는 생동감은 그저 우리가 잘 살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데 당연하고 꼭 필요한 것임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우리의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와 합칠 준비가 된다면, 우리의 강점과 약점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희망은 일반적으로 개인의 유의미한 성취나 욕구 충족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공도체적 성취를 바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희망을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 혹은 최소한 우리와 관계된 주변 세계로 확대하면 저절로 활력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력은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과 관심을 가지는 자세가 원래부터 인간에게 내재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저자는 풍요로운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가 습관적으로 자신의 욕구에만 관심을 가질 때, 일상의 기쁨과 성공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문제없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우리의 영역에 대하여 흥미를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선행을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발산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누군가로부터 선물받은 것이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때, 그리고 다른 사람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그럴 수 있는 것(자유), 그래야만 하는 것(의미와 책임)과 우리를 결합시킬 때 그 답을 찾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사라졌다고, 혹은 망각되었다고 믿었던 꿈과 희망, 이상주의를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받아들이고 주요한 행동 요인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만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아름다운지 알게 된다."


저자는 행복에 대한 우리의 질문이 고통에 대한 성숙한 대처로도 이어진다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근본적인 모순은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을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고통과 세상의 궁핍함을 외면하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에게만 몰두하고, 상황적 감정만 좇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는 삶으로부터 우리를 잘라냄으로써 스스로를 소심하게 만들고, 비겁함의 장소로 퇴각시킨다고 이야기한다. 행복이 아니라 소심함과 비겁함이 있는 곳, 우리 자신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 삶의 다채로움과 도전을 질식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과 불쾌함을 주는 곳에서 말이다.


저자는 행복은 삶에 대한 우리의 관여, 슬픔에 성숙하게 대처하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관심과 함께 생겨난다고 말한다. 행복은 삶과 동맹 관계를 유지할 때 생겨나며, 진정한 행복과 충만함과 여기에 기인한다. 삶의 행복과 충만함은 삶의 깊이를 외면하고 높은 곳만 쳐다보고 있으면 생겨날 수 없다는 저자의 글에 공감한다.


"대상적 지향은 행복뿐만 아니라 슬픔 속에서도 우리 자신을 강하게 하고 보호한다. 행복이나 슬픔은 우리가 혼자서 견뎌내는 것보다 잘 견뎌낼 수 있는 근거들을 우리와 결합시켜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삶에 있어서 정당한 무관심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기껏해야 무관심의 환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모든 상황을 경험하며, 감각적, 미적, 도덕적인 속성을 비롯한 모든 다양한 속성 속에서 그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고 상상할 수 있다. 저자는 세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인식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것, 사람들에게 주어진 자원, 다른 사람의 약점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강점 등의 관점에서 우리가 미완의 사실들을 인지하고 호의적인 기여를 통해 내적으로 풍성해진다는 점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되고 자신의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이는 무관심과 냉담함을 극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자신과 세계의 최선을 관철하고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고통 앞에서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실주의자로서 삶에 관여하고 이상주의자로서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논의되는 것은 인간의 치유뿐만 아니라 세상의 치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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