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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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리뷰 총점 9.3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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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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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건국의 정치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a******7 | 2023.03.08 리뷰제목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무혈입성이요 역성혁명이 바로 조선의 건국이 아닐까 싶다. 여말선초의 그 긴박하고도 급박한 정치 현실을 잘 녹여낸 책이 이 책이 아닌가 싶다. 몇몇 글에서 찾아보니 드라마 정도전을 기획할 때 이 책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읽을 때마다 드라마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 하나하나 지나가는 듯하다. 정치란 대체 무엇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는
리뷰제목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무혈입성이요 역성혁명이 바로 조선의 건국이 아닐까 싶다.

여말선초의 그 긴박하고도 급박한 정치 현실을 잘 녹여낸 책이 이 책이 아닌가 싶다.

몇몇 글에서 찾아보니 드라마 정도전을 기획할 때 이 책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읽을 때마다 드라마 속에서 봤던 장면들이 하나하나 지나가는 듯하다.

정치란 대체 무엇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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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건국의 정치:여말선초 혁명과 문명 전환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k*******2 | 2022.11.27 리뷰제목
공민왕 때는 격변과 소용돌이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전쟁과 반란, 개혁과 반동 등 정치에서 가능한 모든 것이 일어났다. 이 무렵부터 중국 대륙에서는 원명 교체의 대변동이 시작되어 , 그 여파가 한반도로 밀려왔다. 강력한 대원 제국의 힘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힘의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63-) 측근정치의 세번째 폐단은 그들이 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리뷰제목

공민왕 때는 격변과 소용돌이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전쟁과 반란, 개혁과 반동 등 정치에서 가능한 모든 것이 일어났다. 이 무렵부터 중국 대륙에서는 원명 교체의 대변동이 시작되어 , 그 여파가 한반도로 밀려왔다. 강력한 대원 제국의 힘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힘의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전쟁이 계속되었다. (-63-)

측근정치의 세번째 폐단은 그들이 왕을 위협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조일신은 자신의 독자적인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조일신의 세력으로 포섭된 인물들은 대부분 전대의 정치적 폐단의 중요한 책임이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약점 때문에 조일신에게 더 깊이 의존하게 되었을 것이다. (-112-)

또 김용의 난 직후에 이루어진 공시 책정에서 공민왕은 347명(실인원 280명) 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공신을 책봉했으며, 그들에게 하사된 토지는 2만 7000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 공신들은 주로 무장들이었고, 문신은 6명에 불과했다. 이재현과 윤택은 물론이고 당시 현직에 있던 백문보, 이인복,이무방 , 한수 등도 제외되는 등 문신관리들은 이 무렵 거의 정권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195-)

명 태조는 이에 따라 불교와 정치가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하고,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본다. 불교는 백서을 교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놀고 먹는 집단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국가가 불교의 존재 의미를 논란할 필요는 없으나, 불교를 이용하려는 집단에 대해서는 개입해야 한다. 이는 매우 실용주의적인 태도읻가. (-296-)

경복흥과 더불어 이 사건에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최영의 정치적 입장이다.그는 이인임의 정적들인 신진 유신들을 죽일 정도로 고문했다. 즉 최영은 사실상 이인임 정권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 최영의 모든 덕목에도 불구하고 이는 그의 근본적인 정치적 한계를 보여준다. 공민왕 대에도 그는 유신 집단과 대립했다. 외형적으로 신진 유신들과 유사한 정치적 성향을 보였던 그는 놀랍게도 이들과 아무런 정치적 연계도 맺지 않았다. 그는 신진 유신들의 정치적 비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영은 사실 고려 말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드문 정치적 대안이었다. 그는 애국적이었을 뿐만 아니아 강력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역사적 대안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단순한 애국자에 그쳤던 것은 바로 이러한 한계 때문이었다. (-397-)

정도전이 품은 분노는 이처럼 격렬한 것이었다. 한영우의 지적대로 신분상의 장애는 그가 이색의 문하에서 벗어나 혁명의 길에 들어선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윤, 조영규 등 조선의 개국공신들 중 다수는 정도전과 동일한 장애를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다. 뛰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고려왕조에서는 그들에게 희망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혁명을 꿈꾸는 대항 엘리트로 변신했던 것이다. (-527-)

회군의 정치적 읩미를 극도로 한정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을 야기시킨 것은 명이었다. 이튿날 우왕은 최영의 처벌 요구를 거절하고, 회군파가 반역죄를 지었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장군들이 만약 과오를 인정한다몀 영원히 부귀를 함께 누리겠다고 회유했다. (-5634-)

1388년 10월에는 이색이 이숭인과 함께 며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그의 행차는 명이 오랜 세월 동안 집정 대신의 조회를 요구해왓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였다. 이색은 이성게에게 "중국과 분란을 일으킨 일을 해명하기 위해 집정 한 사람이 친히 황제의 조정에 조회하지 않으면, 공(이성계)의 충성을 천하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색의 지위와 명망을 고려할 때 이는 파격적인 사신행차였다. 그의 이름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었다. 그는 원의 과거에 합격했을 뿐 아니라, 그의 책문은 시험 감독관들의 찬탄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630-)

셋째, 불교가 남녀의 혼인을 끊고 가업을 버리며, 효도를 다하지 않아 인륜을 훼손한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충효는 인간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신하와 아들이 되어 충성과 효도를 다하는 사람은 드물다.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출가하여 애욕을 벗어나 참된 진리를 깨달았다. 그 뒤 귀향하여 아버지를 뵙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법을 설계해 제도했다. 뿐만 아니라 서인의 이름을 얻어 만세에 전했으므로, 이야말로 큰 효도이다. 공자 역시 "덕을 갖추고 도를 행하여, 그 이름을 후세에 떨쳐 부모를 빛내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라고 말했다. (-757-)

조선의 건국자은 세 사람이다. 이성계는 군사적 건국자, 정도전은 정치적 건국자, 정몽주는 정신적 건국자이다.이성계는 전쟁으로 고통받던 고려인들의 희망이 되어 마상 馬上에서 조선을 건국했다. 정도전은 성리학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하고 백성을 정치의 목적으로서 재발견했으며, 조선 정치제도의 모범을 제시했다. 정도전은 불교 비판을 통해 조선의 정신도 창조하고자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조선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은 정몽주였다. (-803-)

고려는 불교의 나라이며, 조선은 유교의 나라이다. 고려 31대 왕 공민창왕, 왕(1351~1374) 에 이어서,우왕이 고려의 32대 왕이 되었으며, 공양왕으로 이어졌으며,여진족을 토발하려 했던 모적에서 벗어나,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이성계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 책은 여말 선초, 1352년에서 1392년까지 망국의 나라 고려의 마지막 모습을 역사적 흐름으로 들여다 보고 잇었다. 홍건적의 난으로 고려는 피폐해지고 있었다. 문란한 군주로 생각해왔던 공민왕은 실제로는 개혁의 군주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초창기의 모습과 후반으로 갈 수록 공민왕의 리더십은 무너지고, 생존을 위한 정치적 역량을 채우기 급급하였다. 무능하고, 측근정치를 추구한다. 그러나 고려의 신하들은 버젓히 살아 있었으며, 목은 이색 밑에 있었던 고려의 문신과 최영과 함께 했던 무신 권문세족이 있다.하지만 최영의 한계와 이성계의 역사적인 존재, 이성계는 정도전이 꿈꾸는 나라의 중추적인 대안이 될 수 있었고, 그는 망국의 역사를 한순간에 건국의 역사로 전환시켰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정도전은 태종 이방원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고,그의 역사적인 의미는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복권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조선에 대한 이해 뿐만 아니라 고려가 멸망할 수 박에 없었던 역사적 이유, 대몽항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고려의 모습을 원하였던 공민왕의 리더십은 용두사미에 불과하였으며, 고려가 무너지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결국 왕의 역할이 자신의 안위민 생각한다면, 공민왕처럼, 순종 임금처럼, 망국의 마라의 마지막 왕으로 기억될 수 있다. 건국의 역사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만, 망국의 역사는 역사의 패배자로 기록된다. 조선을 건국한 세사람,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이들이 고려멸망의 명분을 쌓았고, 조선이 건국될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다.그것이 역사의 큰 흐름에서, 여말선초, 40년간의 역사를 들여다 보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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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드라마 정도전을 보고 급관심이 생겨서 검색해보다 읽게된 책 평점8점 | f*****1 | 2014.09.23 리뷰제목
보스를 잘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려준 책.ㅡㅡ; 세계적으로 왕정이 몰락하고 대의민주주의가 득세한 이유는 왕정하에서 잘 난 보스 만나기가 어려워서일 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한 왕정보다는 가능성이 높으니까.저자분이 정치학을 전공해서인지 사실의 나열이 아닌, 그 시대의 정치 상황을 엿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아마도 저자는 '정치가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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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를 잘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려준 책.ㅡㅡ; 세계적으로 왕정이 몰락하고 대의민주주의가 득세한 이유는 왕정하에서 잘 난 보스 만나기가 어려워서일 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완벽하진 않지만 최소한 왕정보다는 가능성이 높으니까.

저자분이 정치학을 전공해서인지 사실의 나열이 아닌, 그 시대의 정치 상황을 엿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아마도 저자는 '정치가 순수할 필요는 없지만 분배의 정의라는 목표를 까먹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던 듯 하다. 그런 목표만 생각한다면 쉬울 것도 같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분배는 어렵겠지.

개인적으로는 영화 '웰컴투동막골'에서 마을을 어떻게 잘 다스리냐는 질문에 '뭐를 잘 멕여야지'했던 촌장님 대사가 기억에 남았었는데 이 책에서도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결국 다 먹고 살자고 이러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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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두께에 비해 재미있다 평점8점 | w*****e | 2008.07.31 리뷰제목
일반 독자가 이 책을 사볼 일은 거의 없을 정도의 두께이긴 하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는 않은데 막상 읽어보면 생각 외로 재미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상황이 사학과 출신이 아닌 정치과 출신의 저자가 풀어내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한다. 책의 뒷부분에는 불교와 유교의 정치사상적인 풀이가 나오는데 딴 데서 이런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흥미있었다.   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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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독자가 이 책을 사볼 일은 거의 없을 정도의 두께이긴 하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는 않은데

막상 읽어보면 생각 외로 재미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의 상황이 사학과 출신이 아닌

정치과 출신의 저자가 풀어내서 독특한 시각을 제공한다.

책의 뒷부분에는 불교와 유교의 정치사상적인 풀이가 나오는데

딴 데서 이런 걸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론 흥미있었다.

 

뒷부분을 먼저 본 후에 앞부분의 역사부분을 봐도 될 것이다.

나도 그랬다. 뒷부분 정독 후에 앞부분을 보니

나름의 논리가 서서 이해에 훨 도움이 된다.

 

이 책을 보고 느낀 건,

전공자가 자기 전공을 파고 드는 것보다,

전공 외의 사람이 달려들때 관점의 차이가

사고의 깊이를 달리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도 전공자들이 서로 교환해서 학문을 하면 어떨까.

그럼 새로운 해석이 더 많이 나올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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