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다는 것에 대하여.
실제로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을 겪으며 참 많이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다.
큰 상실감과 절망에서 오랜시간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위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쉽게 이야기하는 가벼운 위로들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했다.
이대로는 견디기 힘들고 무서웠다.
어느순간 나는 사별에 관한 도서들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공감이 큰 힘이 되었다.
그 책들 중 하나가 이 책이였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자꾸 한숨이 나고 눈물이 난다. 상실한 사람들을 위한 애도 심리학이라는 이 책의 표지에 적혀 있는 " 너를 어떻게 잊어야할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까"하는 말이 아프게 가슴에 박힐 뿐이다.
"갑자기 소중한 사람이 나를 떠난다면"
어릴적 엄마를 잃은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세상 사람들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삼십여 년이 지나도록 나를 괴롭히는 알수없는 슬픔을 생각하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일년에도 몇 차례씩이나 엄마를 잃었던 그 당시보다 더 슬프고 서럽게 울고나도 알수없는 죄책감과 상실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왜 그렇게 오랜 시간 힘들었는지 조금은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저자는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때 빈 자리를 서둘러 채우지 말고 슬프고 화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음껏 울어도 좋고 침묵하는 것도 좋고 글쓰기도 좋고 어떤 방법을 통하던지 슬픔의 감정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한다. 당시 나는 장녀라는 책임감에 어린 동생들과 혼자 남으신 아빠가 더 힘들까봐 슬픔을 꾹꾹 참고 씩씩한척 쿨한척 슬픔을 외면했던것 같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상처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나는 상처를 외면함으로서 치유의 시기를 놓쳤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은 적게, 대화는 많이"
슬픔의 감정을 해결하는 데 있어 머리로 슬퍼하는 것보다는 말로 슬퍼하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힘들때에는 힘들다고 말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감정이 정리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긍정심리학 방법 중에 '시간의 선물'이란 게 있다고 한다. 시간의 선물이란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위해서 기꺼이 나의 시간을 쓰겠다는 의미이다. 문득 얼마전 실연을 한 친구와의 만남이 생각났다. 깊은 슬픔에 빠진 친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서 친구의 힘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어떤 말을 해줘야 하나 진땀이 났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웃어주어서 안심할 수 있었다.
책에 밑줄을 그어가며 끝까지 읽었지만 소중한 이를 잃은 사람을 만나면 아무런 위로도 못할 것 같다. 그저 함께 울어주는 일 밖에는 할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이 책을 전해주고 싶어질 것 같다.
한때 '참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금만 뭉클해도 주르르 눈물을 흘리는 게 꽤나 창피해서였다.
또 보기보단 심약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주위의 시선들 또한 표출하지 않고 잘 참아내면 칭찬하던 어른들도
심심찮게 있는 편이라 참는게 다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 같다.
도대체 몇 살부터가 어른인지는 모르지만(법적 성년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30세가 넘어서야 그것이 나의 감정이 아닌 다른 이들의 눈을 의식하여
나를 누른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스스로가 나보다 남을 의식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슬픔에도 엄연한 타이밍이 있다' (p.153)라고 한다.
즉각 구급약을 바르지 않으면 상처는 더 짙은 흉터만을 남길 것이라고...
상실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것이지만,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진 못한다.
그것이 나에게 온 것에 대한 갖은 원망과 남 탓만을 늘어놓는 편이
자신을 가장 잘 달래는 것이라는 듯이, 사고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그 안에서 자책감과 분노를 키우기만 한다.
'참는 것'은 더 이상의 해결책이 아니다.
상실의 '이자'를 더 하지 말자.
'원리금'을 잘 갚아나가야지 빚더미에 올라앉지 않는다.
자신의 상실을 은행에서 빌리지 마라. 시간이란 '이자'는 언젠가는 큰 빚더미로
당신을 짓누를 것이다.
나도 아직 다 버리지 못한 '이자'들을 키워가는 상실들이 있다.
가끔 '이자'들이 조금씩 붙어서 날 괴롭힌다.
그렇지만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은 다들 괴롭다.
그러나 '참는 것'보다 '덜어내기'를 잘하는 인간이고 싶어 한다.
나도 그런 인간일 뿐이다...
살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은 의외로 많지 않다. 오히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많다. 이런 예측 불가능한 삶에서 상처는 필요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처를 나도 받았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는 삶의 흔적 같은 것이지 결코 삶의 흠집도 약점도 아니다. p.32
진정한 치유란 없었던 일처럼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나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다음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그 상처의 흔적을 볼 때마다 그때의 아픔과 슬픔이 떠오르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내 삶에 고통만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든든한 삶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상처에서 슬픔을 통과하는 법을 배우고, 그럼으로써 더 성숙한 눈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테니까. p.33
정신과 의사인 여자 후배의 남편이 어느 날 "당신과 사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아. 우리 이혼하자"라며 느닷없이 이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당황한 후배는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못한 일은 무엇인지를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혼을 하자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더 잘해주지 못 해서' 또는 ' 내가 예전처럼 매력적이지 않아서'등등. 하지만 이혼은 어느 한쪽의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후배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선뜻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이혼이 자신의 잘못으로 벌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제야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혼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인생이 '깨진 유리 조각'처럼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상처가 없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을 거라며 한탄한다. 하지만 정말로 상처만 남은 것일까? 아름답게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려보자. 깨진 유리 조각들이 뿜어내는 환상적인 빛! 만약 온전한 유리였다면 그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만들어 내지는 못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시간은 과거가 아니라, '여기 지금(Here &Now)'의 현재이다. 나의 현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과거까지도 새롭게 해석하는 눈이 필요하다. 그때 그 일을 겪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삶의 모습도 분명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상실을 계기로 관계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고, 나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다. 모곤 스콧 펙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선 "정신건강이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을 끊임없이 현실에 헌신해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그 상실의 자리를 떠나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P.189
|
평소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에 별 관심이 없던 내가
이번 세월호 사건에는 엄청난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한참을 내 마음을 관찰하고 상실과 애도에 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도 이별은 있었다.
어렸을 적 아빠와의 사별, 기르던 개와의 이별 등등...
그때마다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했는가 생각하니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슬픔이 무의식 속에 감춰있다가
이번 세월호 사건으로 내 슬픔의 감정이 되살아나게 되었던것 같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별.
그 상실의 슬픔과 고통을 충분히 느끼는 것은 내 감정을 억압하지않고 존중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이별한다는 것.
애도한다는 것.
내 슬픔의 정체을 알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하며
상실의 고통을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