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9세기는 여성에게 가혹한 시대였지만 그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있어서 나는 그 시절을 돌아보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때에도 글을 쓰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하던 여성들의 변화와 진취적인 행보가 있어서, 그런 이야기들을 경탄해 마지않는 마음으로 배워갈 수 있어서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나에게 확실한 재미를 보장하던 책이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만큼이나 내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가득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듣는 제인 오스틴 이야기라거나 브론테 자매의 생가 방문기 같은. 조지 엘리엇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고,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쓴 샬럿 브론테의 전기를 울프가 읽고 글을 쓰는 등의. 내 안에서 고유한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던 세계관들이 충돌하며 나는 마치 그 시절을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흥분하곤 했다.
책 속에는 여성, 여성의 지위 혹은 그 변화 등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는 열여섯 편의 산문이 실려있다. 연설을 바탕으로 쓴 글이거나 서평, 서문 등이 그것이다. 「여성과 지적 지위」 같은 경우는 데즈먼드 매카시와의 논전을 실은 글인데, 데즈먼드 매카시가 ‘상냥한 매’라는 필명으로 여성 비하의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옹호하는 서평을 싣자 그걸 읽은 버지니아가 반론이 실린 편지를 편집자에게 보내며 시작되었다. 당연한 얘기라는 듯 여성의 지적 수준이 낮음을 말하는 상대에게 조곤조곤하면서도 얼마나 조리 있고 박력 있게 반박 의견을 펼치던지. 굉장히 재미있게 읽은 글 중 하나다.
그 글을 읽으면서 울프는 행동하는 작가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여성 노동자 조합의 추억」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이 글은 여성 노동자 조합의 연례 총회에 참관했을 때를 회고한 글로, 당시 연단에 나와서 연설하던 여성 노동자들을 바라보던 버지니아 울프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저마다의 지역구를 대표해서 나온 여성들이 차례로 연단에 오르며 자신에게 주어진 5분 동안 이혼과 교육, 임금 인상과 근무 시간 단축 등 지당한 일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시는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시절로, 그 여성들은 그 일들을 관철시키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 생각에 울프는 “몹시 짜증이 나고 울적해졌”다. 실체가 없는 그런 연설들은 “몽롱하고 공허한” “말잔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연설자들을 이해해 보려고 했는데, 그들이 되어서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자신의 것처럼 느껴보려는 시도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상상력이라는 것도 육체의 산물이니, 세탁 대야 앞에 서보지 않은 몸으로는(207쪽)” 세탁 대야 앞에 서본 여인이 될 수 없었다. 이에 버지니아는 “아무리 그녀들에게 공감한다 해도 우리의 공감은 다분히 허구적(213쪽)”이며 “그런 공감은 항상 신체적으로 불편한 법(같은 쪽)”이라는 말로 연설회장에서 자신이 느꼈던 불편함을 밝힌다.
이 글은 버지니아 울프가 중산층 여성이기에 노동하는 여성들에게 온전히 공감할 수 없던 한계를 보여주는 글이기에 더욱 인상 깊었다. 「두 여자」에서 케임브리지 여자 대학 커턴 칼리지를 설립했던 에밀리 데이비스와 빅토리아 여왕의 시녀였던 레이디 오거스타가 여자 대학 설립이라는 문제로 만나던 지점처럼 여성 안에서도 분리되어 있던 어떤 면을 맞대어 보는 장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 조합의 추억」은 연설회가 있은 지 17년이 지나서 쓴 것이고, 말미에서 울프는 당시 조합의 여성들이 쓴 글을 “문학으로서도 식자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질들을 지니고 있(226쪽)”다고 평하며, “그 총회를 그토록 잊을 수 없게 했던, 답을 알 수 없는 의문들로 무성하게 했던 오래된 궁금증과 당혹감에 다소나마 빛을 던져 주었(225쪽)”다고 썼다. 17년의 세월이 여성의, 버지니아 울프의 무엇을 바꾸어놓았는지를 헤아려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헤아림은 언제나처럼 현재의 시간까지 쏘아진 듯 이어져온다.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버지니아 울프 작가님의 <집 안의 천사 죽이기> 리뷰입니다.
평소에 열린책들에서 나오는 시리즈물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좋은 시리즈로 찾아왔습니다.
<자기만의 방>으로 유명한 버지니아 울프의 시리즈입니다.
아름답고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과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판형, 가벼운 무게 등으로 이동하면서 읽기 딱 좋은 책입니다.
시작은 페미니즘과 여성 문학에 관한 에세이와 글을 중점으로 싣고 있습니다.
여성이 직업과 지적 지위를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나오는데 지금 당장 읽어도 적용되는 논리라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타 출판사에서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조금 딱딱하고 이해가 어려웠는데 열린책들에서 나온 글들은 번역도 쉽고 단어가 유려하여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강력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