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영국을 여행할 기회를 얻은 사람들은 바쁜 일정과 부족한 시간에 쫒기며 관광객으로 붐비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증명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데 그치기 일쑤다. 이 책은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는 저자가 남편과 함께 차를 렌트해서 에어비앤비에 머물면서 영국 남부의 구석구석을 여행하여, 스물 다섯개의 꼭지로 정리해 쓴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충만한 여행기이다. 잘 알려진 영화의 촬영지를 중심으로 짜여진 일정은 런던의 구석구석을 포함하여 잉글랜드의 남부해안에서 북쪽의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이르른다. 영화의 배경은 그대로 문학과 역사의 배경이기도 해서 토마스 하디,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윌리암 워즈워스 등 영문학 작가나 작품, 역사적 인물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지는데, 저자가 여행을 떠나기 전 얼마나 꼼꼼히 준비하고 공부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몇몇 방문지는 들어본 적이 있는 곳이었지만 많은 장소가 생소했는데, 내게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한 곳은 레스터의 리처드3세 방문자센터였다. 셰익스피어의 사극에 묘사된 리처드3세는 '흉한 몰골에 잔악한 꼽추'의 모습이다. 그런데 2012년 발견된 그의 유골에 대한 유전자검사 결과 그가 심한 척추측만증을 앓은 것은 사실이지만 '꼽추에 한쪽 다리를 절었다'는 셰익스피어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고, 이는 장미전쟁 이후 새로운 튜더왕조 치하에 살던 그가 '이전 왕조의 정통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격하'한 것이었다고 한다. (!)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고장, 스트래드포드 어폰 에이본은 왜 방문지에서 빠진 것일까? ^^ 책에는 이 밖에도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영화, 문학, 역사 이야기가 생생한 컬러사진과 함께 빼곡하다. 아무래도 나의 여행 스타일로는 이 모든 곳을 방문하기는 어려울 듯 하니, 책으로 호사를 누리는 수 밖에... ^^ 웨일즈, 스코틀랜드, 노던 아일랜드, 아일랜드를 다룰 예정이라는 저자의 두번 째 '영화 속 영국을 가다' 시리즈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