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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국영 :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얼마나 좋을까 그대가 여전히 함께 한다면
오유정 저
소외감을 소속감으로 변화시키는 옷에 관한 이야기
<아무튼, 후드티>를 읽고
최근에 ‘후드티’ 두 벌을 샀다. 학창 시절에 한여름을 제외하고 즐겨 입었던 옷이었지만, 직장생활자가 된 후부터는 어른의 멋(?)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후드티를 산 적이 없으니 십여 년만의 일이다. 큰 폭의 할인율이 구매를 부추긴 게 사실이지만 불현듯 오랜만에 후드티를 입어보고 싶은 충동도 무시하지 못하리라. 이런 연유로 <아무튼, 후드티>를 집어 들었다면 독자로서의 개연성이 부족한 것일까? 적어도 아무튼 시리즈에 한해서는 아닐 듯하다. 아무튼 시리즈가 대체로 그러하듯 독자가 처음 각 주제어를 마주할 때 ‘뭐 이런 소재로 책 한 권을 썼다고?’라는 호기심으로 출발하여 다음 얘기는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는 법이기에. 옷장 속 어딘가 고이 모셔두고 잊어버린 그것처럼 2020년에 아무튼 시리즈 서른여덟 번째로 출간된 책을 2023년에 후드티를 새로 산 기념으로 꺼내 본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후드티 애호가인 저자에게 후드티란, 옷의 기본적인 기능(역할)을 넘어 지금까지의 삶을 지탱해 준 원동력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반복되는 하루의 루틴을 소화하는 일상복이자 인생이라는 전쟁에 임하는 전투복임을 저자의 경험담과 생각을 통해 알게 된다. 친구를 따돌리고 자신도 따돌림을 당하면서 고통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밝힌 저자는 그때마다 스스로 혼자임을 견디는 데 필사적이었다고 덧붙인다. 숨 막히는 학교를 벗어난 그에게 PC방과 만화방은 숨통을 틔워준 공간이었다. 가상의 게임(그 중에서도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과 만화는 당시 그에게 현실 그 이상의 안도감과 위로를 전하는 세계로 여겨졌다. 후드티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그것들에 몰입할 때면 독서실의 책상 칸막이와 같은 효과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저자를 보면서 눈가리개로 옆을 가리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가 떠오르기도 한다. 길고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학창 시절을 빠져나가는 그의 모습과 겹쳐 보이면서 말이다.
여기서 잠시 저자에게서 눈길을 거두고 후드티에게 초점을 맞춰보자. 책에 따르면 콩글리시인 후드티를 국어사전에서는 ‘머리 부분을 덮는 쓰개가 달린 티’라고 뜻풀이하며, 외국에서는 '후디(Hoodie)'라고 부른다. 후디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파에눌라(Paenula)’, 즉 소매가 없는 망토 형태의 옷, 동화 『빨간 모자』에서 빨강 망토 소녀가 입은 형태의 옷으로 당시에는 ‘모자'라는 의미는 들어 있지 않았다. 13세기 팔을 넣을 수 있는 소매가 있지만 장식용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형태의 ‘에리고(Herigaut)’는 모자보다 소매에, 중세시대 수도승들이 입던 모자 달린 ‘로브(Robe)’도 위아래가 붙은 긴 복식에 각각 중점을 둬서 모자를 주목하지는 않았다.
비교적 최근인 1930년대 미국에서 현대적인 후드티가 등장하는데, 풋볼 선수 벤저민 러셀 주니어가 울로 만들어져 따갑고 두꺼운 운동복 대신 훨씬 부드럽고 땀 흡수력이 좋은 스웨트셔츠를 직접 만든 것이다. 뒤이어 챔피온사가 각 단체의 로고를 인쇄하고 모자를 단 ‘후디드 스웨트셔츠’를 개발하여 대중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 후드티의 3요소를 운동, 단체, 로고라고 부른단다. 여기에 복잡한 ‘일상’을 추가하여 최우선으로 놓고 여전히 후드티를 평상복이자 작업복으로 상시 애착하는 저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낮에는 개발자로 일하며 IT회사에 다니고, 퇴근하면 아이를 하원시켜 돌보고 아이를 재우고 난 후에는 만화평론가와 사회활동가(캠페이너)로 활동중인 ‘N잡러’의 삶을 살고 있다. 지난 시절 후드 안에서 개인의 구원을 바라던 그가 현재는 후드 밖의 세계로 나와서 자기는 물론 타인들을 보듬고 돌보는 데 든든한 동반자로 후드티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후드티가 소외감을 소속감으로 변화시켰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상류층 기업인이 후드티를 입었을 때 그는 자유와 혁신을 담보한 (그리고 새로운 방식의 노동 착취도 겸한) 뉴엘리트로 구별된다. 후드티를 입은 노동자는 더 낮은 계급으로 특정된다. 그렇게 후드티는 구별 짓기의 도구가 된다. 누가 언제 입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가 된다는 건 기이한 일이다.(44쪽)
후드티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후드티가 신분증이 될 때’라는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의복이 신분을 나타내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지배층이나 기득권층은 신분 질서를 시각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것이 옷임을 간파한 것이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 PF소프트사 회장이 나온다면 현실 세계에는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기업인들이 후드티를 ‘젊음과 혁신의 아이콘이자 자기 권력을 명징하게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반면, 어떤 이에게는 후드티가 몸 그 자체로 인식되어 사람들이 그를 그저 ‘후드티’로 바라보기도 한다. 십여 년 전 미국에서 후드티를 입고 길을 가던 한 흑인 청소년이 자율방범대원이 범죄자로 오인해 쏜 총에 맞아 죽는 사건이 그러하다. 소년의 죽음은 흑인 차별 반대 운동의 도화선이 되고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서는 결과를 낳는다.
저자 또한 예전 직장에서 후드티처럼 편한 옷을 입은 하청업체 직원과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은 정규직 노동자 사이에서 옷이 신분을 구별 짓는 도구로 쓰이는 현장을 목격하고 직접 겪어낸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는 후드티에게서 긍정적인 것들을 더 많이 발견해낸다. 엄마의 후드티가 추위로부터 아이를 감싸주는 쓸모 외에도 후드패딩은 얇은 재질에 가벼워 놀기에 편할 뿐 아니라 속이 깊은 모자에 애착 담요와 인형을 넣을 수 있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겉옷이다. 특히 대학 시절에 후드티를 입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은 이유가 단지 자신의 배를 가려주고 뭇사람의 시선을 막아줘서가 아니라는 저자의 생각을 곱씹게 된다. 학창 시절 깡마른 내 몸을 감추기 위해 후드티를 즐겨 입었는데, 어쩌면 그의 말처럼 나 역시 그땐 인지하지 못했으나 후드티를 입으면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은 뒤 새로 산 후드티를 입고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오는 길, 불어오는 늦가을 찬바람이 내 머리와 두 손의 행방을 알려준다. 도톰한 후드가 머리를 감싸고 두 손은 후드 주머니 안에서 사이좋게 서로를 맞잡고 있다. 아주 오랜만에 후드티가 전하는 따스함을 느끼며 절로 엷은 미소가 지어진다. <아무튼, 후드티>의 저자는 후드티가 건네는 말들에 예전부터 그리고 자주 귀 기울이며 삶의 나날들을 밀고 나갔으며 오늘도 그러한 하루를 보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집에 들어와 후드티를 잘 개켜 정리하면서 후드티의 가슴을 톡톡 두들기며 말해본다. “앞으로 나도 잘 부탁해.”
나에게 중요한 건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이다. 대개의 오늘, 나는 후드티를 입는다. 후드티는 하루를 견디게 할 뿐 아니라 여기저기 터져나가는 내 온갖 호기심을 끝없이 지탱해준다. 내가 가장 외로웠던 날들, 가장 잘 해내고 싶은 날, 그리고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 있는 날까지 나는 후드티와 함께였다.(34쪽)
후드티 정말 좋아해요. 따뜻하고 포근하고 특히 저 후드!! 나만의 동굴 쉼터이자 햇빛 가리개이고 모자 우산 등등. 정말 한 달 내내 입고 지낸 적도 있어요. (시험 기간 때만 되면 다들 그랬으니 뭐...) 후드티가 아닌 반팔들이었지만 입는 것만으로도 공부심 뿜뿜 너두? 야나두! 그 목과 머리 사이의 따뜻함, 아이의 수납 능력에 감탄하며 너무 귀여워서 여러 번 읽었습니다.
후드티 이야기인줄알았더니 나를 웃기다 울리다 미소를 띄게 만드는 아기자기한 인생 이야기.
마냥 좋아하기만 하던 후드티였는데, 후드티만의 매력을 더욱 알게해준 책
후드티 자주입는 분들에게 강추!!
가장 인상깊었던 구절 발췌합니다
후드티 입은 여자는 어디든 간다. 최소한 옷에 관해서는 아무런 걱정 없이. 아름다운 옷이 주는 효용도 물론 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옷들이 나름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훨씬 더 편해졌으면 한다. '옷이 날개'가 되려면, 말 그대로 옷이 날개가 되어야 한다. 날개의 효능은 멋이 아니라 날아가는 데 있다.
후드티를 입는 이유는 있다. 맨투맨보다 후드티는 모자에서 생기는 '아우라(?)'가 있어서 조금더 예쁘다. 모델들이 입은 거 보고 너무 간지나는 게 예뻐보였다.(실제로 나는 매우 다름에 실망하기 했지만) 그래서 몇 개 구입하다보니 입는다. 겨울에 입기에 따뜻해 좋다. 두 겹을 입어도 즉, 후드티 안에 티 하나를 더 입어도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비오거나 눈 올 때 가림막이 되어 준다. 얼굴 가리고 싶을 때 딱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나는 겨울에 주 3회정도는 후드티를 꺼내입는다. 그 정도면 후드티를 즐겨입는다고 생각했다. 물론 17벌(후드집업 포함)이라는 저자분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말이다. 후드티에 대해 아무튼 시리즈로 내줄 정도라니, '후드티'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얼마나 분명하신 분이길래? 그게 그렇게 궁금했다. 후드티가 캐주얼하다보니 내용도 단순하고 캐주얼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진지했다. 그래서 의외로 좋았다. 후드티를 중심으로 마인드맵처럼 뻗어나간 생각들이 인상적이었다.
후드티의 이름과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후드티를 통해 저자의 여러가지를 바라본다. 항의의 의상이었던 것부터 자신의 직업(개발자), 사회 운동하기에 입기 좋은 옷, 자신이 후드티를 여러벌 사들이게 된데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 살과 체형에 대한 이야기, 육아 등 그녀의 인생전반에는 후드티가 있었다. 후드티가 자신을 이야기해줬고,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저자의 삶 속에서 후드티는 최고의 실용성과 효율성을 선사했다.
나무꾼과 선녀에게도 선녀옷보다는 후드티가 하늘로 날아가기 좋을거라고 은근스레 추천인듯 추천아닌 추천같은 이야기를 쓴 면에선 큭큭 웃음이 났다. 나 또한 그 말이 공감이 됐다. 아 좋지!! 후드티 타고 하늘을 올라가면!!
그럼! 아이 셋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가려면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하나 상상해보기도 했다. 가장 어린 아기는 후드티 모자에 구멍을 두 개 뚫어 다리를 넣어서 보행기마냥 탈 수 있게 하고, 양 사이드에는 힙시트(어깨띠없이) 받침을 두 개를 둔다. 아이를 엉덩이를 엉덩이 받침에 걸치게 태워서 올라가면!! '승천안정성'이 보장 아니겠어?라는 생각! 오! 그러면 기저귀나 가재수건, 물티슈 담을 가방도 어깨에 맬 수 있겠어!! 이런 생각?
아무튼, (정신차리고) '후드티'로 돌아와서 ...
IT 쪽 일하시는 분답게 객관적인 정보를 설명할 뿐 아니라, 글도 자기 분석적이고, 사색적이었다. 후드티로 시작한 글에서 생각지 못하게 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갈 뿐 아니라, 문장 또한 좋았다.
소소한 소재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색다른 임팩트와 통찰을 가져다 줘서 좋았던 책이다.
사회문제나 참여에 진심이신 분들, 직장을 다니시는 여성분들 그리고 워킹맘, 체형에 대해 비관적이셨던 분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다. 한번 읽어보시면 위로도 되고 자신의 생각도 정리해볼 수 있는 책이다. 여성분들에게 많이 공감과 도움이 될 것같아서 추천해드리긴 하나 남성분들이 읽고 싶으시다면 굳이 말리지 않는다. 무슨 책이든 나쁠 건 없으니까요!!^^ (남성혐오 같은 건 전혀 없으니 날세우지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