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국민의 행복지수가 이렇게 높다니 놀라웠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는 유럽의 나라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인도 옆에 있는 부탄은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소득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 자신도 더 오랫동안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 돈을 모으려고 합니다. 일단 저는 신랑이랑 싸우지만 않으면 대체적으로 행복합니다. 그런데 안 싸우기가 힘들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33. 더불어 부탄을 설명하는 의미 있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바로 '불교'입니다. 부탄에서 불교는 종교를 넘어 생활이자 문화이기에 국민들의 행복지수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석가모니가 불교를 세운 곳은 인도인데 인도는 10세기 이슬람의 침략으로 불교가 사라지죠. 그 인도의 마지막 불교의 모습을 오롯이 가지고 있는 나라가 부탄입니다. 그래서 여행자 중에서도 사실 불자가 많고, 그들에게는 무척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47.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인도 사람들은 부탄에 출입국할 때 다른 외국 사람들과 달리 '프리패스'라고 합니다. 입국하려면 경비를 선불로 내고 비자를 발급받는 까다로운 절차를 받아야 할 만큼 일정 부분 쇄국정책을 유지하는 부탄임에도, 인도 사람들은 무비자로 드나듭니다.
이쯤 되면 부탄과 인도 두 나라의 특별한 관계가 궁금해집니다.
국민총행복지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나라! 멋있네요. 사실 모든 나라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합니다. 실업률을 줄이려는 것도 복지를 확대하려는 것도 다 국민 행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행복!이라고 하니 뭔가 느낌이 다르네요.
73. 올바른 생각과 태도를 도덕이라고 한다면 부탄 사람들은 적어도 상식의 수준에서 도덕적입니다. 그들은 일평생의 행적이 다음생과 같은 또 다른 삶에 미치는 기록으로 쌓인다고 믿죠. 그렇다고 해서 낱낱의 언행에 관해 노심초사하면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순진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모두에게 유익하고 자신에게도 득이 된다는 지혜로운 수칙을 일상의 문화로 삼은 것이죠.
그들의 내면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겉으로 겪은 바에 따르면 부탄 사람들은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서로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기만이나 은밀한 위반은 불필요하고 그런 부도덕한 행위가 오히려 번거롭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도시에 인구가 늘어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말이죠.
윤회사상은 도축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동물을 사람과 동일한 선상에서 생각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안 먹는 건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 하긴 하지만 직접 죽이지 않겠다는 마음은 알 것 같습니다. 개들의 천국일 것 같아 부럽습니다.
99. 나무가 아낌없이 준다고 해도 부탄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나무를 베지 않는다.
지하자원을 캐려고 무리하게 땅을 파헤치지도 않는다.
그들이 보존하는 숲과 나무는 바람이 지나는 소리를 들려주고,
오염되지 않은 비를 내리게 하고, 가두지 않아 세차게 흐르는 물은,
부탄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주었다.
돈이 곧 행복은 아니라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이 나라 행복의 비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전쟁도 경제전쟁을 한다는데, 그것은 곧 돈이 모든 것의 최우선에 위치한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일일 것입니다. 물론 경제력은 곧 국력이므로 경제력이 약한 나라는 국권의 위협을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부탄은 어떻게 그 위기를 잘 극복해 나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125. 부탄은 기로에 서 있는 듯하다.
오늘날 부탄의 도회지에서는 전통 옷보다
청바지를 입은 청년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힘든 농사일보다 공무원 같은 사무직을 선호한다.
외부 세계와 물리적으로 차단된 히말라야 산중에서
자급자족을 통해 그럭저럭 행복을 영위할 수 있도록 차단막이 되어주었던
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걸 부인할 수 있을까?
부탄의 다음 세대가 선택하는 변화는 기성세대와 정치인들의 예상보다 더 빨라질 수도 있다.
174. 19세기 말 우겐 왕추크는 난립하던 세력들을 물리친 뒤 1907년 하나의 왕국을 세웠고 비범한 외교술로 대영제국과 교섭해 왕조를 인정받은 동시에 독립국가로서의 자립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가계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왕추크 왕조입니다. 왕조의 역사는 짧지만 폭군은 한 명도 없었고 국민의 신망을 얻은 왕들의 치세를 거쳐 입헌군주국이 되었습니다.
201. 부탄은 부정부패 지수가 매우 낮은 나라입니다. 국민행복을 내세우는 정부와 고위 공무원들이 솔선수범해서 노력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일상적인 개인과 이웃 간의 문화였습니다. 내가 악의를 품고 뭔 일을 저지르면 금방 소문이 나고 피해에 상응하는 불이익이 스스로에게 돌아올 거라는 걸 잘 아니 그런 분위기에서 맘 편히 살려면 나부터 악행은 접어두고 서로 사이좋게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라가 워낙 작고 국민수가 적다 보니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주위의 사람들이 타인 아닌 타인인 셈이죠. 국민수가 적어서 장점도 있는 듯합니다.
253. 부탄 사람들은 인간 존재의 본질이나
부조리한 삶에 대한 절망, 죽음 앞에 높인 생의 철학 등
인류가 그토록 오랜 기간 고민해온 문제로부터 홀가분하다.
그들은 죽어서 다시 태어나고 또다시 태어나고
언젠가는 해탈에 이른다고 믿는다.
그들은 그저 다음 생에서 좀 더 나은 존재로 태어나기 위해 현세에서 마음씨를 다듬을 뿐이다.
'휴식을 누리려고 휴식을 유보한다'라는 얘기가 와닿았습니다. 저희 남편도 벌써 재작년부터 육아휴직을 쓰고 싶어 했습니다. 너무 쉬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몇 번은 그래 쉬어라 하고 큰맘 먹고 얘기해 주기도 했는데 결국은 본인이 결정을 못 내리더라고요. 요즘은 짜증도 많이 내고 집에 있으면 잠만 자고 정말 피곤해 보이기는 하는데 어찌 방법이 없네요. 마음 같아서는 술과 회식을 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게 낙이라니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젊은 날을 보내야 하나 조금 답답한 마음도 들어요.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기 위해서 돈을 모은다지만 그 시간 동안은 또 그렇게 힘들게 버텨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여유가 생겼다고 쳐도 그게 진정한 여유가 될지, 또 어떤 다른 이유로 쫓기고 있지는 않을는지 그런 것도 걱정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면서 살면 좋을 텐데, 욜로 하면 나이 들어서 힘들고, 노후를 생각하자니 현재가 힘이 듭니다. 어느 쪽이든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가야겠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금수저가 아닌 이상 둘 다 가지기는 힘듭니다.
291. 부탄은 지금도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 나라다. 세계의 정치, 문화, 경제, 제도권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서서히 모습을 바꾸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미지의 가능성을 보고 부탄을 마지막 샹그릴라라고 부르나보다.
"나는 부탄에 다녀왔다"라고 으쓱대며 친구들에게 얘기를 늘어놓으며 "그렇게 화들짝 놀랄 정도는 아니더라. 막상 가서 보면 다 같은 사람 사는 세상일뿐이다"라고 말하고 돌어서지만, 이성의 헤아림이 살피지 못하는 가슴 어딘가에서 나만 아는 은은한 놀라움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