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허호
웅진지식하우스/2016.5.9.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어려워 도서관을 전전하며 공무원 시험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시험에 떨어지고 비관한 젊은이가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것은 큰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집으로 돌아오는 가장의 머리위로 떨어져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는 뉴스는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흔히 N포 세대라 부르기도 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함 속에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암울한 시대는 비단 오늘날만의 것은 아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근대화의 끝자락에 군국주의의 야욕으로 벌인 태평양 전쟁의 패배와, 암울한 미래에 대한 젊은 지식인의 절망의 이야기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그 중의 하나다.
<인간 실격>은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방탕한 생활과 술, 담배, 약물중독 등에 빠지기도 하고, 결국 네 번의 시도 끝에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동반자살 한 다자이 오사무의 자서전적인 작품이다. 함께 실려 있는 <사양(斜陽)>은 가즈코라는 한 여성의 입을 빌려 고백 수기 형식으로 쓴 최후의 귀족 가족이 소멸되어 가는 과정을 통해 전후 변해가는 일본 사회의 세태를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다자이 오사무 문학의 중심 소재인 ‘죄의식’, ‘익살’, ‘파멸’은 작가 자신의 삶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그의 성장 과정이나 인생편력을 아는 것은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대표작으로는 <만년><추억><부악 백경><사양><인간실격> 등이 있다.
‘나는 그 사내의 사진을 석 장 본 적이 있다.’로 시작되는 <인간 실격>은 주인공 요조의 이야기다. 한 장은 그 사내의 어린 시절, “열 살 전후로 추정되는 무렵의 사진으로, 수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정원 연못가에 굵은 줄무늬 정장을 입고 서서 고개를 30도 정도 왼쪽으로 기울인 채 밉살스럽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p.10)” 이 사진과 관련된 내용이 바로 첫 번째 수기 내용인 어렸을 때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있었던 익살꾼의 이야기다. 두 번째 사진의 얼굴은 깜짝 놀랄 정도로 변모된 학생 모습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며 겪는 갈등과 고민, 그리고 사회를 알아가는 두 번째 수기의 내용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자의 사진이 가장 기괴하였다. 전혀 나이를 알 수 없다. 학교를 중퇴하면서 불량한 친구를 만나 사회인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내용이 세 번째 수기가 되는 것이다.
끝 부분에 후기 형식으로 사진을 보게 된 내용이 나와 있다. 교바시의 마담이 ‘요조’라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공책 3권을 주었는데, 그 공책엔 3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요조’라는 사람이 남긴 그 공책의 내용을 수기라는 형식으로 옮겨 소설을 완성했다. 세 장의 사진으로 처음에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들여 소설을 이어가며 마지막에도 수기의 출처를 밝히며 사진 이야기로 매듭을 짓는 것이다.
패전 직후 일본의 혁명적 분위기를 배경으로 한 <사양>은 이즈의 산장에서 생활하는 귀족 출신 모녀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양>은 가즈코라는 한 여성의 입을 빌려서 고백 수기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그러나 <사양>의 묘미는 주요 인물, 즉 어머니, 가즈코, 나오지, 우에하라 등 네 명이 모두 작가인 다자이의 분신이라는 점에 있다. 후반에는 처자가 있는 작가 우에하라와, 그의 아이를 자진하여 낳겠다는 이혼녀 가즈코와의 특이한 사랑 이야기로 전개된다. 즉 최후의 귀족인 어머니와 나(가즈코), 남동생 나오지와 그의 문학적 스승인 소설가 우에하라, 등이 주요 인물이라고 하겠다. 어머니는 결핵으로 죽고, 동생 나오지와는 자살하고, 우에하라는 자포자기와도 같은 향락주의에 빠져 지내는 가운데, 가즈코만이 관습적 도덕에 대항하여 스스로 새로운 도덕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을 번역한 허호는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세계-라는 작품 해설을 하면서 사양의 접근방법으로 작품속의 인물들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진정한 매력을 느낀다고 의견을 덧붙인다.
“순수한 삶을 고수하며 죽어가는 ‘최후의 귀족’인 어머니, 그와는 반대로 사랑과 혁명을 외치며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가즈코, 좌절 속에서 신음하다 자살한 나오지, 현실에 몸을 맡긴 채 데카당 생활을 계속하는 우에하라. 여기에는 다자이의 꿈과 희망과 좌절과 현실이 그대로 의인화된 형태로 나타나 있다. <사양>은 이러한 복합적인 배경과 요소를 염두에 두고 읽을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p.370)”
‘일본 근대문학의 인기 작가 3명을 들라면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가 아닐까 한다.’라는 옮긴이의 의견대로 일본 근대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그 시대의 한 단면을 보며 나름대로의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은 내게 익숙한 이름이다. 그의 책을 접해서가 아니다. '만년'이라는 책 제목으로 [비블리아고서당 사건수첩]이라는 책에서 언급되면서부터였다. 그 '만년' 초판본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간에 줄다리기하는 내용을 시리즈로 읽다보니 그 이름과 책제목마저도 익숙한 이름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의 이름과 책제목은 내 머리속에서 각인되었었다.
'예스럽다'라는 말이 딱 맞겠다. 나쓰메소세키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기도 하지만 오래전 문체라는 것이 번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드러난다. 고전을 읽는 재미를 느낄수가 있는 부분이다. 고전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들을 알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 책을 읽는 사람들은 술술 넘어가는 요즘 책과 달라서 어렵게 읽힐 것 같기도 한 느낌이다. 어떤 책이든 고전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은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다른 책에서 이미 귀한 것으로 설정이 된 만큼 일본 문학역사에 남을 책임에는 틀림없다. 역자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책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반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작가이름과 직업이 주인공 이름과 직업이 똑같은 경우도 있듯이 말이다. 이 책도 그러하다. 작가의 인생 스토리를 안다면 조금더 특별한 느낌으로 그가 왜 이런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이해하며 읽을수 있다.
주인공처럼 작가 또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고 여러차례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고 같이 죽으려고 했지만 자신만 살아남기도 했다. 이 또한 작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로 주인공은 여자와 함께 자살을 시도했지만 여자는 죽고 자신만 살아남게 된다. 어려서부터 익살을 추구한 것도 비슷하다. 익살스러운 면이 있었던 작가는 주인공인 나의 이미지를 자신에게서 따왔음이 틀림없다. 여러 여자를 만난것도 비슷하다. 오로지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녹여낸듯한 그런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인간실격'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을 인간실격자에 비유한 것일까. 자신의 삶이 그렇게 썩 좋지 못했다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총 세개의 수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이야기는 우연히 보게 된 세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시기는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 찍은 사진. 분명 웃고 있는데 그 웃음이 밝고 맑지 않고 무언가 꺼림직한 그런 세장의 사진이다. 어릴 때 사진이 그런 느낌이었다면 청년기의 사진은 좀더 색적인 느낌을 풍기고 마지막 노년의 사진은 배경은 기억할 수 있어도 정작 그 사진의 주인공은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그런 세장의 사진. 그 사진의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오래전 어른들은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인간말종'이라는 단어를 쓰곤 했었다. 인간말종 그리고 인간실격. 둘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단어가 아니었던가.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서 어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고 그것으로 인해서 어떤 공감을 얻고자 했을까.
앞에서도 언급한 '만년'이 궁금해졌다. 후대 사람들이 그렇게 지키려고 노력했던 초판본이 아니어도 좋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는 또 어떤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지아니면 다른 주인공을 쓰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작가의 인생을 어느 정도 알아낸 지금 다른 작품을 읽는다면 어느 부분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여졌는지 짐작을 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일본고전문학. 관심이 가는 분야가 아닐 수 없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꽤 유명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읽기를 미뤄왔던 작품이다. 사실 일본의 근대문학에 관심이 많은 터라 나쓰메 소세끼를 비롯하여 모리 오가이, 시마자키 도손의 작품들을 두루 접해본 적은 있지만, '퇴폐'와 '파멸'로 점철되는 듯한 분위기의 <인간 실격>은 왠지 나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번의 자살시도와 마지막 자살로 삶을 마감한 그의 행보는 일본의 전후를 경험한 이력과 더불어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바로 그의 작품들로 말이다. 특히 <인간 실격>은 일본의 종전 이후 1948년 그가 자살하기 직전에 쓴 작품이기에 그의 불안한 심리와 더불어 혼란스러운 당시 사회에서 방황하면서 일탈하는 개인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각각 다른 시기의 3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장면을 시작으로 오바 요조의 27년간의 삶의 수기가 시작된다. 익살로 표현되는 그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기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점점 퇴폐적인 삶 속에서 허우적되는 오바 요조의 모습은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모습이다. 남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으면서 익살을 통하여 남을 웃기는 행동을 하는 오바 요조의 모습은 왠지 불안해 보인다. 실제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가 자살로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때가지 그대로 이어진다. 도대체 왜 그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중략) 인간에 대하여 언제나 공포로 부들부들 떨며, 또한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행동에는 전혀 자신감을 지니지 못하고, 혼자만의 고뇌는 가슴속의 작은 상자에 숨긴 채 그 우울함과 초조함은 꼭꼭 숨기고, 오로지 천진난만한 낙천성으로 위장하여 점차로 저는 익살스러운 괴짜로 완성되어 갔습니다.
- p. 22 -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요조는 위와 같이 자신이 익살스러운 괴짜가 되어야함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공포는 성장함에 따라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좀더 구체화되면서 여전히 그를 따라다니게 된다.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인간의 자신감과 폭력을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하면서도 겉으로는 조금씩 타인과 진지한 얼굴로 인사를, 아니 사실 저는 역시 패배의 익살로 쓴웃음을 짓지 않으면 인사를 하지 못하는 성격입니다만, (중략)
- p. 69 ~ 70 -
이러한 내용을 통하여 생각해본다면 결국 요조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작품 내내 보여준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기에 급급한 그의 태도는 결국 그를 술, 여자, 약물이라는 수단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간다. 심지어 요조의 내연녀가 불륜으로 의심되는 행위를 목도하고도 그는 그 상황에서 뒤로 물러설 뿐이다. 이제 우리는 요조에게 어떠한 삶의 희망 또는 갱생의 여지를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세상이란 개인이 아닐까?'라고 되뇌이면서 잠시나마 삶의 의욕을 되찾는 장면은 단순히 <인간 실격>이 한 인간의 일탈과 퇴폐적인 삶을 그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당시 그가 겪은 일본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이 작품이 집필되던 일본의 종전 후의 상황은 요조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인간의 본성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개인이라고 생각하는 요조의 생각은 결국 다자이 오사무의 사회 속에서의 나약한 개인의 모습과 혼란스러움을 바로 요조로 대변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시작과 끝이 요조의 모습으로만 그려진 줄로만 알고 있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또 다른 분신인 '나'의 등장도 다자이 오사무의 혼란스러운 삶에 대한 자각을 여실히 보여준다.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요조를 바라보는 나는 정상적인 시선으로 요조의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요조의 수기를 읽으면서 가족에게 줄 선물을 고심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다자이 오사무의 삶이 결코 요조의 그것으로만 볼 수 없음을 시사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삶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요조와 평범한 이미지의 '나'를 대비시킴으로 해서 자신이 겪은 혼란에 대하여 주지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에 실려 있는 또 다른 작품 <사양(斜陽)>이란 작품도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혼란과 평범이라는 상황을 작품 자체로 보여준다. 애초에 몰락한 귀족 가문의 이야기로 접근하던 이 작품은 막판에 여자의 연애사로 변질되면서 독자에게 혼란스러움을 선사한다. 작품성으로 접근한다면 아마도 이 작품은 평생 그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던 미시마 유키오의 의견에 동조하게끔 한다. 그러나, 이 작품 자체가 바로 다자이 오사무가 겪은 혼란스러움을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여지는 있다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인간 실격>과 <사양(斜陽)>을 작품의 흐름으로만 놓고 본다면 우울한 잿빛 하늘을 연상케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잿빛 하늘이 왜 떠오르는지를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극단적인 평가를 받으면서도 오늘날 일본에서 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또한 퇴폐 문학의 상징으로 보여지던 <인간 실격>을 다시금 인간 자체에 대한 공포와 사회의 혼란스러움으로 인하여 인간이 얼마나 위축된 삶을 살 수 있을지를 느낄 수 있었기에 의미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 이 책은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의 도서 지원으로 읽고 쓴 리뷰입니다. >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표지가 고상하고 고귀하다는 느낌.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보니 영정 사진 같다는 생각이 듦을 어쩌누.
<이책은>
서평 모집 당첨 도서
<저자는>
저 : 다자이 오사무 ---발췌하다 다자이는 일본 동북 지방의 아오모리 현(靑森縣)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로, 아버지는 그 지방의 대지주이며 귀족원(중의원) 의원이기도 하였다. 8남매 중의 막내로 형제들에 대하여 항상 열등 의식을 지니고 부모의 사랑도 모른 채로 유모의 손에서 성장하였다.
다자이는 고등학교 시절 동인 잡지에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과 위선을 폭로한 『무한 나락』을 발표했으며, 3학년 때인 1929년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첫 번째 자살 미수 사건을 벌였다......
다자이의 최후는 비참했다. 폐의 질환이 악화되어 각혈은 물론, 계단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지경에 이른 다자이는, 1948년 6월 13일 밤 동거 중이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 강 수원지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그 시체는 닷세 후인 19일 아침, 썩어 짓무른 채로 발견되었다. 그날이 바로 다자이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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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은 소감>
인간 실격
세상엔 많은 책이 있고, 자기개발서적이 아닌 문학 중에는 마치 읽은 것 같은 책이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냈는데 몇몇 리뷰가 마음속으로 들어왔었다. 구매해야지, 어디 출판사가 좋을까 하던 중에 이벤트로 만나졌다. 드디어 만나진 설렘만큼 놀라움도 컸다. 일본 책이 이렇게 세밀하고 심리 묘사가 탁월하네, 이런 심리를 가진 사람이 존재할까. 평소 저자부터 읽는데 사정상 책 먼저 읽었고, 나중에 저자 이력을 읽으매 이거 완전 저자 얘기로구먼.
실격(失格). 알고 있지만 그 뜻을 다시 한번 찾아봤다. 1. 격식에 맞지 아니함. 2. 기준 미달이나 기준 초과, 규칙 위반 따위로 자격을 잃음. /네이버 국어사전. 인간 실격의 뜻은 너무나 기막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돌아가는 과정까지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했다고 말할 자 몇이나 될까. 스스로가 인간 실격자 라는 자격지심으로 살아내는 사람의 정신이 얼마나 불안정한 지를 읽어내는 시간은 처참했다. 이렇게나 예민한 정서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게 기막혔다. 냉소적인데 감정이 배제된 상태의 독백 같은 과연 살아있는 자의 감정인가 싶었다.
음울하고 감정선이 어찌나 불안한 지, 극예민성 정서를 가진 요조라는 인물이 신기(?)했다. 매사 비틀린 심사지만 대놓고 거부감도 표현하지 못하며,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못해, 오히려 상대 방 마음은 잘 읽는다. 촌철살인의 익살꾼으로 각인되는 아이러니함. 고관집 자제, 미남자에다 건강은 덜 좋으니 책을 많이 보는 계기가 되고 성적우수는 따논 당상. 대인관계시의 속내는 조마조마, 불안불안인 이유를 읋어대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설득력이라. 듣기가 처음이고 보기가 처음인 요조 라는 남자를 직접 대한 것처럼 상세묘사가 대단하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기에 주는 사랑 담뿍이요, 뭐든 마음먹기 따라서 다 가질 수 있는 여건이었음에도 늘 결핍을 달고 산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비틀린 사고를 하고 그런 사고에 빠져야했을까. 냉소적이고 배배 꼬인 심성이라지만 글은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다. 우울하지만 깊은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문체는 아니다. 그렇기에 그나마 읽으면서 기분이 몹시 나쁘고 같이 우울해지는 경험은 덜하다.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음은 살아가는 날들이 쌓일수록 깨닫게 된다. 경험으로 더 쉬운 것도 있지만 책임의 무게가 곧 삶의 무게가 됨을 알아가기 때문이다.
요조라는 인물은 참 복잡한 내면을 가졌음이라. 인간으로 태어나 실격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을텐데 매사 구렁텅이로 빠질 일이 생긴다. 거부하는 방법도 모르고 어떤 상황에 처하면 그냥 안착하는 것으로 삶이 영위된다. 보통의 사람들이 할 법한 생각을 하지 않으니 평탄한 삶이 될 수 없었던 건지. 안쓰런 마음도 한 켠엔 자리했지만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자학하는 삶을 사는 것도 고역이었겠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인간들의 범주 안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해야 인간 실격은 당하지 않는데. 삶에 대한 지독한 자학으로 점철된 허송세월을 되는대로 살다갔느니.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씨가 되어서. 여자들 없는 세계로. 훠이~훠이.
평소엔 책을 받으면 저자의 이력을 먼저 읽어본다. 모르는 저자일수록 더 꼼꼼하게 읽으며 이미 나온 책이 눈에 익는지를 본다. 이번 경우에는 서평책도 빡빡한데다 서평책을 읽을 수 없는 상황발생, 따라서 양해를 구하고 읽다 보니 저자의 이력을 나중에 읽게 되었다. 맞네, 맞어. 저자의 이력에다 살이 좀더 붙었거나 뺏거나 차이일뿐. 따라서 저자의 이력이 좀 무서웠다. 자신의 생을 인간 실격이라는 책으로 써놓고서 멀리 멀리 떠난 것처럼도 보였다. 이 세상에 이런 사람, 이런 사고를 가진 인간 한 명이 살았섰노라, 그 인간은 인간으로 살지 못하고 실격 처리되어 결국은 인간 대열에서 낙오되었다. 유한한 삶인데 누구는 인간 실격이 되고 누구는 또...
사양
귀족이 별건가 싶은데 마지막 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어머님과 돌싱인 딸이 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가세는 기울었고 숙부님의 도움으로 이사를 한다. 규모를 줄였고 건강을 위한 별장은 정원이 아름답다. 뱀이 여기저기 같이 지낸다는 면이 괴기스럽다. 어여쁜 꽃들에 걸려 있는 모습을 말해도 섬찟함이다. 아들은 전쟁에 투입되어 행방불명, 어머님은 오매불망 기다리는데 드뎌 소식을 전해듣는다. 마약중독자라 완치 상태가 되면 귀가조치한다고. 돌아온 남동생은 마약 대신 술을 마시면서 여전히 일탈을 하고 어머님과 누나는 전전긍긍하면서도 말리지 못한다.
누나가 결혼한 상태에서 약값이 필요했던 동생은 어떤 식으로든 회유와 협박, 애걸, 동정 등을 동원해 많은 돈을 받아낸다. 누나를 남몰래 은애하는 이 있음을 남편이 묻자 누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아이를 잉태한 상태서 태내 아이를 의심받는 지경은 스스로가 판 무덤이 되자 사산이 되고, 그녀는 돌아온 것. 귀족으로 살던 사람이 뭘 해봤으며 뭘 할 수 있으리요. 기껏 생각해 낸게 남동생이 존경하는 사부라는 사람의 처가 되기를 바라는 것. 그 사람의 아이를 낳고 싶다고 혼자서 술주정뱅이를 찾아가기에 이르고...
고귀한 삶을 살던 노부인은 결핵에게 침범당하고 딴에는 비교적 행복한 삶이었다고 생각되었는지 편안한 생을 거둔다. 남동생은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적어도 유서에는 남긴다. 자신이 마약중독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과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음도 고백한다. 남동생을 찾아 온 여인과 시간을 보내라며 남동생의 사부를 찾아나선 시간에 남동생은 자살을 실행한다. 누나는 6년 전의 계획을 실현한다. 가세가 기울어가니 첩이 되고 아이를 꼭 낳고 싶다는 것. 먼 거리를 찾아가 동침하지만 혼자서 사모한 그 남자는 없었다. 계획을 실현할 상대로 6년 동안 꿈을 꿨고 아이는 가졌다.
섬나라의 정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섬마을 여선생 사건을 봐도 그렇다. 일본의 저 시대 정서가 그런지는 몰라도 경제적 능력이 안되니 첩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이 이해 안된다. 아마도 시대상인지도 싶다. 나이 차이도 굉장한 남자에게 편지로 자신의 속내를 밝히나 답이 없는 남동생의 사부. 그 남자는 술로 시간을 죽이는데는 일가견이 있는데 그런 남자를 선택하고, 아이를 갖고 싶을까. 이런 문화가 일본 문화의 자연스런 한 부분이라고 이해할 밖에. 였튼 이런 기괴함들이 난해했는데 퇴폐와 파멸을 기조음으로 삼은 퇴폐문학의 진수라 일컫는다니 그런가 한다.
다자이는 일본 동북 지방의 아오모리 현(靑森縣)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로, 아버지는 그 지방의 대지주이며 귀족원(중의원) 의원이기도 하였다. 8남매 중의 막내로 형제들에 대하여 항상 열등 의식을 지니고 부모의 사랑도 모른 채로 유모의 손에서 성장하였다.
다자이는 고등학교 시절 동인 잡지에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과 위선을 폭로한 『무한 나락』을 발표했으며, 3학년 때인 1929년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첫 번째 자살 미수 사건을 벌였다. 1930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이부세 마스지를 만나, 이후로 사제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게이샤 출신의 오야마 하쓰요(小山初代)가 도쿄로 찾아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받게 되나, 그 때문에 다자이는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하였다. 분가 제적의 실질적인 원인으로는 당시의 다자이가 비합법 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구도 에이조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좌익 운동에 가담하였고, 당시의 작품인 『지주 일대』와 『학생군』은 착취계급이나 국가 권력에 대하여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 다자이는 일본 동북 지방의 아오모리 현(靑森縣) 기타쓰가루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로, 아버지는 그 지방의 대지주이며 귀족원(중의원) 의원이기도 하였다. 8남매 중의 막내로 형제들에 대하여 항상 열등 의식을 지니고 부모의 사랑도 모른 채로 유모의 손에서 성장하였다.
다자이는 고등학교 시절 동인 잡지에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과 위선을 폭로한 『무한 나락』을 발표했으며, 3학년 때인 1929년에는 다량의 수면제를 먹고 첫 번째 자살 미수 사건을 벌였다. 1930년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이부세 마스지를 만나, 이후로 사제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다. 같은 해, 게이샤 출신의 오야마 하쓰요(小山初代)가 도쿄로 찾아와,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받게 되나, 그 때문에 다자이는 고향의 가족들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하였다. 분가 제적의 실질적인 원인으로는 당시의 다자이가 비합법 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도쿄대학 불문과에 입학한 다자이는 구도 에이조의 끈질긴 권유에 못 이겨 좌익 운동에 가담하였고, 당시의 작품인 『지주 일대』와 『학생군』은 착취계급이나 국가 권력에 대하여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1931년 구도가 검거된 이듬해에 자수한 이후로 비합법 운동에서 탈락하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고향 집으로부터 분가 제적을 당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자이는 긴자(銀座) 카페의 호스테스와 함께 가나가와 현 에노 섬에서 투신 자살을 기도하였는데, 다자이만 살아남아 가마쿠라(鎌倉)의 병원에 수용되었다. 이 자살에 관하여는 『도쿄 팔경』『인간실격』『광언의 신』『허구의 봄』『광대의 꽃』등에서 다자이 스스로가 언급하고 있다. 다자이는 자살 방조 혐의로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이때의 체험 역시 평생 동안 죄의식으로 남게 되었다.
퇴원 이후의 다자이는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방황을 하던 중, 대학을 졸업할 가망이 없게 되자 미야코 신문사의 입사 시험에 응했지만 그것마저 실패한다. 그 후 1935년 가마쿠라의 산중에서 혼자 자살을 기도하고, 결국 미수에 그쳤다. 같은 해 ‘일본낭만파’에 합류하였으며 『역행』으로 제1회 아쿠타가와상 차석을 차지하지만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심사 위원이었던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항의하는 글을 발표한다. 그 후 복막염으로 입원했고, 처방된 마약성 진통제 파비날에 중독되어 정신착란적인 문체를 선보이기도 한다.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되었으며, 1936년 입원하여 있는 동안 하쓰요가 불륜을 저지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듬해 두 사람은 미나카미(水上) 온천에서 동반 자살을 기도한다. 이 자살도 미수로 끝나고, 마침내 하쓰요와 결별한 다자이는 후지 산 기슭에서 홀로 지내며 마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1939년 미치코(石原美知子) 부인과의 결혼으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다자이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활발한 작가 활동을 하며 소시민으로서의 생활을 즐겼다고 할 수 있다. 다자이가 후지 산 기슭에서 홀로 지내던 당시의 생활을 기록한 것이 『부악백경』이다. 1945년 일본 패전 후 전쟁에서 패하여 윤리적 기반을 잃은 일본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무뢰파 작가로서, 이른바 '유행 작가'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사카구치 안고, 오다 사쿠노스케 등과 함께 ‘데카당스 문학’, ‘무뢰파 문학’이라 불리며 패배감에 쌓여 있던 일본 젊은이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다.
다자이의 최후는 비참했다. 폐의 질환이 악화되어 각혈은 물론, 계단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지경에 이른 다자이는, 1948년 6월 13일 밤 동거 중이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 강 수원지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그 시체는 닷세 후인 19일 아침, 썩어 짓무른 채로 발견되었다. 그날이 바로 다자이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