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는 SF소설이다. 그 동안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로판에 익숙해져 있기에 조금은 생각을 해야하는 내용이다. 다행이 여러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이기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적절한 사랑 이다. 근 미래의 이야기. 보험에 얼힌 과학의 비인간적인 면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소재가 상당히 독특하다. 사고를 당한 남편. 하지만 신체 복제가 일반화되어 있는 사회. 하지만 보험은 완벽하지 않았으니, 새로운 몸을 준비하는데 2년의 시간이 걸리지만 그 기간 뇌를 살려두어야 하는데...
옴니버스 형식으로 많은 단편들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소설인줄 몰랐는데 미래세계를 상상해서 쓴 소설이었네요.ㅎㅎ 주제는 결국 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미래시대에 기계나 인공지능같은 것들이 인간성을 대신하면서 생기는 여러 갈등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작가가 상상하는 가상세계에서 자본에 의한 삶의 질의 격차는 어마어마해집니다. 결론은 그래도 진정한 행복과 인간성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다인 것 같습니다.
'내가 행복한 이유', 내가 읽은 그렉 이건의 두번째 책이다. 중단편 소설집이다.
그렉 이건은 풍부한 상상력과 전문 지식을 갖춘 SF 작가다. 테드창이 칭찬했다고 하는데 그럴 만하다. 그 둘의 소재나 플롯 스타일도 비슷하다.
이번 소설에서 테마는 양자역학, 평행우주, 그리고 생명공학이다.
이 책에는 여러 개의 중단편 소설이 있는데 소재별로 카테고라이징 해 보았다.
크게 '뇌'를 소재로 한 스토리, '생명공학'(바이러스 벡터, 질병, 식물 테라포밍)을 소재로 한 스토리, 그리고 '양자역학'과 '평행우주'에 관한 스토리 정도로 나뉜다.
1990년대에 뇌-컴퓨터의 뉴럴링크와 임베디드를 상상하고 이를 소재로 현실성 있는 소설을 쓰다니 놀랍다.
바이러스 벡터(viral vectors)와 바이오 해커(bio-hacker)를 소재로 한 소설들도 그렇다. 나는 미생물학 및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세부전공으로 바이러스를 공부했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저자가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용이 전문적이고 충실하다.
특히 남미 아마존 근처에 집단 지능을 갖추고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식물군집에 대한 소설, 'Chaff'는 기발하다. 수학 문명을 갖춘 두 평행우주가 조우하는 내용의 루미너스 또한 소름끼치게 신박했다.
저자는 그의 소설에서 단순히 SF적 상상력으로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또한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내가 행복한 이유', '내가 되는 법 배우기', 그리고 '적절한 사랑'에서만 해도 그렇다.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행복 전달 물질을 수용하는 뇌 신경 세포의 변화로 무조건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 나의 본질을 무엇인가?(내가 행복한 이유)
뇌에 설치된 보석이라는 저장 매체가 학습을 통해 발현시키는 나와 원래 생물학적 뇌를 갖는 나,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간의 본질은 뇌라는 조직일까? 학습하는 기억에 의해 형성된 정보만 있으면 그 실체가 무엇이라도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내가 되는 법 배우기)
남편의 뇌를 내 뱃속에 보관했다가 그의 클론에 이식하여 만든 남편은 원래 내가 사랑했던 남편인가 아닌가? 내가 아들이라고 느껴야 하는 것인가?(적절한 사랑)
인간 본질의 탐구라는 인문 철학적 주제에 생명공학적 소재 등을 곁들여 깊이 사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훌륭하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그의 신작이 나오길 기대한다. 테드창 님도 빨리 신작을 출간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