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작가다.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를 통해 등단한 신인이다. 92년생인 작가의 언어가 깊이가 있다. 날 선 언어가 있는 반면에 그것을 에둘러 표현해 뜻하고자 하는 바를 잘 전달하고 있다. 반어와 역설이 주가 되는 언어의 모습을 보인다. 삶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기보다는 변죽을 올린다고나 할까? 그런 언어를 만나고 있다 보면 작가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 볼 수 있을 듯하다. 아직도 많은 생애를 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삶의 여정에서 만난 다양한 경험들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시달리는 와중에 ‘원수를 사랑하라’는 격언이 떠오르기도 했다. 원수가 생겨보기 전에는 깊이를 알 수 없었던 말이었다. 그러나 직접 해보니, 남을 미워하는 일은 좋아하는 일의 백 곱절로 고되었다. 아치 흉곽으로 하는 강제 노역 같았다. 사랑에도 많은 품이 들지만 증오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기약 없이 싫어하다 보면 내 심장이 아직 빛깔 좋고 통통한 자이언트 자두였을 때가 그리워졌다. p28
-관계 절취선을 찢고 나서 중에서
삶에서 원수야 왜 없겠느냐만 그렇게 다가가니 더욱 아팠다는 말이 가슴 아리게 다가든다. 저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원수를 응징하려는 밧줄로 내 목을 조르는 일을 멈추라고 하는 말처럼 들렸다고 한다. 즉 원수를 미워하고 응징을 하겠다고 나선 나의 모습은 나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고 있음을 보고 있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비난과 나에 대한 비판을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있음을 작가는 느끼고 있다. 원수를 만들고 미워하는 것이 자신의 부분을 찢는 아픔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하나의 말에서도 자신의 삶이 깊이 있게 각색되어 있다. 진한 의미의 애착과 깨달음이 ‘원수에 대한 사랑’이란 말에 체험으로 녹아 있다. 이 글들은 거의 모든 내용이 이런 깨달음과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글이다.
표현과 생각이 맛이 있다. ‘시간의 힘’ 옆에 빌린다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 깨달은 의미를 적고 있다. 시간은 내 것도 내 편도 아니지만, 언제나 나보다 힘이 셌다. 그리고 너그러웠다. 내가 빌리고자 한다면 이자를 붙이지 않고 여유를 내어줄 것이었다. 시간의 성격을 잘 규명하고 있다. 시간은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누구의 것도 된다. 개인이 물리적인 사간을 어찌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시간은 줄였다 늘이기도 가능하다. 이 시간을 빌린다는 표현을 통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표현 하나하나가 멋이 있다. 저자의 언어적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연인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애인들은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 묻지 않고 주구장창 자신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만 늘어놓는다고 한다. 상대의 의중은 생각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늘어놓는다고 한다. 그러기에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도 한다. 상대는 나를 기가 세다고 하면서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연애가 구슬퍼졌다고도 한다. 남자들은 자신들만 자존감이 있고 여성들은 고분고분 따라와야 한다는 구태의연한 생각들을 보이고 있음을 꼬집는다. 그러니 자연히 관계가 좋을 수가 없다.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이 되고 있는 연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한 번은 자신과 똑 같은 연인을 만나기도 했다. 그 연인을 통해서 자신이 싫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이야기도 한다. 그와 싸울 때마다 남자로 태어난 나와 그림자 복싱을 해대는 것 같은 허무함이 찾아왔다는 얘기도 한다. 잘 될 까닭이 없다. 그러면서 상실의 아픔을 자주 느낀다.
직장 생활도 얘기한다. 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것이 차근차근 붕괴되어 종말이 왔음을 인정하게 되는 때가 있다고 한다. 급여, 업무, 동료 등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다가온다. 그곳에 버틸 수가 없게 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직장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주고 있는 표현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시간 우리들은 반 강제적으로 직장을 내 집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서 부모들 같은 상사의 꾸중을 달게 받아야 하고 과중한 업무도 당연히 감당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의 직장인들에게 그것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직장은 하나의 잠시 머물면서 이익을 보장받는 곳이고,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쉽게 직장을 바꿀 수가 있게 되는 모양이다. 저자의 의식도 직장을 자신의 집처럼 생각하는 것에서는 멀어져 있다.
저자는 25에 ADHD와 우울증을 동시에 발견했다고 한다. 자신의 표현으로 반미치광이로 퇴행하고 있었다 한다. 안 미친 쪽으로는 둘째 딸, 회사원, 여자 친구 같은 역할을 연기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광증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병원의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한다. 그러니 모든 삶이 답답함의 연속이었고,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러고 연기는 착각을 불러왔고 삶에서 ‘나쁜’이란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죄다 만난 듯한 삶을 살았다. 나쁜 사장, 나쁜 애인, 나쁜 친구, 나쁜 나쁜........ 그리고 은희경의 말에서 위로를 받은 경험을 얘기한다. 악의를 악의로 대항하지 않을 수 있게 한 말 말이다. 삶이 내게 할 말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긍정적으로 주변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데도 저자는 천사가 될 수는 없었다. 폭발과 후회, 인내와 폭발로 이어지는 시간들을 보냈다. 저자의 참람한 삶을 그리고 있다. 이런 생각과 삶이 있었기에 폭이 깊은 언어들이 나타나지 않나 생각이 된다.
글은 3부분으로 그려져 있다. 1부에서는 <내가 사랑한 실망들>, 2부에서는 <세계와 세계가 부딪치는 소리> 3부에서는 <먼 나라 이웃 사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내가 사랑한 실망들>는 주로 자신의 삶을 통해 부정적으로 다가온 소재들을 맛깔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언어가 무척이나 지혜로운 감각으로 나타난다. 한 마디로 <맛있는 언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2부<세계와 세계가 부딪히는 소리>는 욕설에 대한 생각, 일기와 관련된 심리, 미워하지 않을 용기, 부모님, 죽음, 돌싱, 음주와 연예의 상관관계 등과 관련된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준다. 정말 언어의 매력에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저자의 솜씨다. 그 중심에 자조적인 호흡이 있다. 반어와 역설의 표현이 있다.
3부<먼 나라 이웃 사랑>은 몇 가지 얘기를 하고 있다. 트위터리안도 그중 하나다. 트위터리안들이 생산하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고 얘기한다. 이 책 속에서도 그런 어투가 많은 듯함을 느낀다. 날카로운 말장난이라고 할까? 트위터 세상에는 만담가들이 많았다. 그들의 어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 깊이 빠져 들었다. 저자는 그렇게 트위터에 오래 머문 시간을 지녔다. 이 글의 화법도 그곳에서 단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우스개, 자조, 유머와 위트, 과한 칭찬, 은근한 자랑 등 책에서 나타나고 있는 언어의 특징이 이 세계의 언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 이 부분에서는 친구, 가창력, 전업 작가 등을 소재로 얘기를 펼쳐내고 있다. 아직도 많은 연륜을 지닌 삶은 아니지만, 살아온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기에 짙은 마음의 단련이 보인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서른이 된 저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겸손한 척하면서 겸손 아닌 이유들로 자주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대책 없는 나 자신이 비렁뱅이 같고 창피했다. 그동안 어린 나이로 얼버무려온 여러 가지 격차가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p221 현재의 자신을 얘기하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난 사람들과 비교한 내용이리라 생각된다. 정규적인 과장을 거쳐 이름을 내고 있는 30의 인물들과 자신을 비교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저자의 입장도 그리 못한 것은 아니다. 이 글도 자신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유별한,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저자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꽤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미친다는 것의 다른 말이리라. 물론 미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열심과 광기기 그들이다. 이 둘이 절묘하게 저자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꽤 매력적인 책을 읽었다. 트위터의 언어 감각이 그대로 표현으로 이어져 멋진 감각의 언어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글들이다. 물론 삶이 소재가 되고 있다. 저자의 조금은 특별한 삶이 마음에 와서 부딪힌다. 하지만 삶보다 그것을 표현한 언어의 맛깔스러움이 이 책은 참된 맛이 아닌가 생각된다. 생각의 깊이, 그 깊이를 기발한 언어로 표현, 자신의 삶에 대한 끝없는 성찰 등이 책을 통해서 내가 만난 소중한 요소들이었다. 저자의 앞길에 무궁한 발전이 있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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