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고픈 얘기는, 이 작품은 절대로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상권의 한 삼십페이지 쯤에서 "뭐가 이리 복잡해?"하고 그냥 놓고 싶더라도 계속 차분히 읽어가면, 절대로 실망하지 않을 거란 것이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읽은뒤 책을 잡고 울기로는 이 작품이 처음이다. 잠깐 시간이 나서 이 책을 들고 읽다가도 가슴이 차도록 '호'가 안쓰럽고 걱정되어서, 그리고 그외 착한 사람들이 의도치 않은 운명의 파도에 휩쓸리게 되는 것을 보면서 작품 외 다른 것을 잊었다. 그리고 하권의 마지막을 달리는 순간엔, '제발..죽지 말기를..어쨌든 그 모든 사연에도 불구하고 죽지만 말기를..그래서 앞으로도 습자도 계속하고, 셈도 하고 그렇게라도 살아가기만을'바랬다.
중앙정부 막부와 지방정부인 번간의 부와 권력 경쟁이 미묘하던 에도시절, 에도시내 문짝가게 요로즈야의 도련님이 건드린 하녀가 아이를 낳고 죽는다. 그 아이는 아무도 반기지 않던 신세라 사람들의 심술에 따라 이름이 바보 '호'라고 불리게 되었다. 고생과 눈치만 보던 신세인 그 아이는, 주인장 부자가 앓아눕게 되자 저기 멀리 아래 신사에 기도드리러 가게 되고 시코쿠 사누키노쿠니 마루미번이라는 바다마을에서 버려진다.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는, 아무것도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이 여자아이에겐 그래도 따뜻한 남쪽의 태양만큼이나 조금은 따뜻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주고, 그리고 마음따뜻한 아가씨인 고토에의 가르침도 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마을의 의사선생님인 겐슈의 딸이자, 게이치로의 여동생인 고토에는 바다에 토끼가 뜨고 날씨가 험한 날 연적인 미네, 즉 이마을의 수장인 가지와라 집안의 딸에게 독살을 당한다.
그러던차 쇼군의 현금흐름과 재산을 관리하던 브레인, 재정부교인 후나이 가가노, 이른바 가가님은 주변의 무사들을 베고 아내와 두 자녀의 시체 속에서 미친체로 발견되고, 쇼군은 그를 처형할 수도 그냥 둘 수 없어 눈에 가시이던 마루미번으로 유배보낸다.
그가 머물 곳은 마루미성에서 서쪽아래 먼 계곡의 마른폭포저택. 이는 수년전 이 번의 최고가문의 요양지이기도 해서 많은 이들이 기피하던, 음산한 장소였다. 더러운 것은 더러운 것으로 피한다는 듯, 그는 비바람이 심하던 날 마루미번에 도착하곤, 어떤 이의 눈길도 닿지 못한채 마른폭포저택에 가둬진다.
왜 쇼군의 사랑을 받아서 그의 여자까지 하사받았던 가가님은 아내와 사랑하는 두 자녀, 그리고 주변의 이들을 베고 피바다로 만든걸까? 아무것도 모르고 스스로 바로바고 여기는 가엾은 아이, 호는 자신의 보호자인 고토에가 살해당하고 입막음이 된채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복수를 하고 싶지만 번의 운명을 위해 비겁하게 입을 다문 고토에의 오빠 게이치로, 그러나 분노에 타서 어리석게 감정을 남발하는 와타베는 어떻게 될까? 미네는, 그리고 호를 맡게된 우사는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런 이야기들을 위한 작은 복선들이나 장치들이 세밀하게 짜져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그랬군"하게 만들지만, 이런 미스테리들은 그다지 궁금하진 않았다. 아니, 뭐라고 말해야 하나. 이제까지 그냥 트릭이나 궁금한 것들을 해결하는 퍼즐이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심하게 몰입해서 그들과 같이 애가 타고 화가 나고 했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많이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으면 삐뚤어져도 뭐라고 안하겠건만.. 언제나 착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아이 호, 어부의 아내가 되기싫어 히키테 (일종의 방범대원, 포졸격)가 되어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좋은, 그런데 자신의 신분보다 훨씬 더 높은 마을의 사지 (의사) 게이치로를 연모하는 우사, 자신과 도장을 같이 다닌 친구 게이치로의 여동생이건만 가문의 차이가 있어, 그리고 급한 성격상 아무 표현도 못했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웃어주던 코토에를 연모하던 와타베, 하녀지만 주인이 걱정되어 사지이자 당주인 겐슈에게 야단을 치던 무서운 시즈, 다이묘가 머무는 여관가문의 장남이지만 신처럼 받느는 물건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며 집을 뛰쳐나간 에이신스님, 그러나 그는 우사에게 그런 물건도 다 중요한 것이며 받들 가치가 있음을 말해준다. 작은 일이라도 남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밥짓는 공동주택의 주인 하치로베, 그리고 남들이 하잖게 여기는 호를 염려해주는 이들, 그리고 번역자만큼이나 나도 가장 좋아했던 슬픈 운명의 가가님. 흑.
독을 품은 사람들은 사는데, 왜 꼭 열심히 사는 착한 사람들은 슬픈 운명을 맞이해야 했는지 책장을 닫으면서도 슬펐다.
두려워하는 것을, 머리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공포로 뭉뚱그려 받아들이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해는 가지만 답답하였다. 그러기에 바벨탑이 하늘에 닿기전에 무너뜨린 인간이지만, 결국은 스스로에게 돌아올 것을... 모든이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왜곡된 사실을 호에게 강요하지만, 결국 죄지은 자는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진실은 태양과 같아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고 피했다고 어리석게 말하더라도 진실은 곳곳을 비춘다. 외면하는 이의 얼굴에도. 그리고 두려움의 대상을 그저 두렵다고만, 무리지어 소문을 부풀리고 낮은 차원으로 대응하지않고, 이성적으로 바라볼 때엔 오히려 단순하지 않던가 (결국은 지역특성에 따른 재해이며, 음모이지 않던가).
잠깐 물건을 사러나가서 뜨거운 햇빛 아래 횡단보도 앞에 서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도움이 될때 누군가에게 쓸모가 되어 도움을 줄 때라고.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아니 (일부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 조금 약하게 수정해서), 꽃만큼이나 아름답다, 아니 자신을 잊고 타인을 위할때 가장 아름답다 (그래서 안타까움을 놓기 힘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가가님도 하실 일은 다 하셨고 그리고 가장 좋은 순간에 가장 좋은 결론을 내신거라고, 이번 만큼은 운명을 받아들인게 아니라 스스로 택한거라고, 슬픈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마음을 쓴다'는 한국말,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핵심을 찌르는 표현이자 다른 '배려한다' 등의 말보다 아름답다. 사람들 속에 섞여있어도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보다, 작은 절제가 더 아름답다.
가능하면 책을 읽고난 뒤의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 오타가 나더라도 좀 말이 안되더라도 책을 덮으면 마음에 차면 리뷰를 쓴다. 아직까지도 마음이 아프다. 조금 앞부분이 지루하고, 시대물이라 생소한 직위나 외우기 어려운 인명이 나오더라도 이 작품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픽션의 인물들이지만, 놓치기 아까운 이 사랑스러운 멋있는 인물들, 사람이라서 실수를 하고, 그래서 더 잘해보려고 애쓰는 이 사람들을 꼭 만나봤으면 좋겠다.
p.s: 상권과 하권의 맨 앞에 시대배경과 직위, 그리고 지도가 나와있다. 맨처음엔 나도 메모를 따로했는데, 급하게 줄거리를 따르지 않고 한문장씩 보다 보니 어느새 다 눈에 익어있었다.
가가님이 그랬다. 어디에나 비가 오는 것이고 비는 피할 수 없다고. 하지만, 비는 꼭 그친다고. 바보에서, 방향을 알 수 있게 되고, 스스로 보물이 되버린 이에게 따뜻하게 말씀해주셨다.
아이가 있습니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죽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바보라는 뜻의 이름, 호가 지어졌습니다. 짐짝처럼 노인의 집에 맡겨졌고, 야비한 이유로 다시 불려가지만 결국 버려집니다. 의원 가문인 이노우에 가에 거둬져서 행복해지나 했는데 무서운 일이 벌어집니다. 순진무구해서 바보처럼 보이는 아이는 그 깨끗한 눈으로 복잡하고 지저분한 어른들의 세계를 차분하게, 때로는 울먹이며 지켜봅니다.
어른이 있습니다.
그는 에도 시대 일본을 통치했던 쇼군의 최측근으로 요직에 중용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을 독살하고, 가신을 베어죽이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악령, 귀신으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악령을 무서워하는 쇼군은 그를 죽이지 못하고 가둬두기만 합니다. 결국 어른은 아이가 사는 마을, 마루미 번으로 유배가 됩니다.
살아 있는 악령인 가가 님을 떠맡아야 하는 마루미 번은 괴롭습니다. 제대로 모시지 못하면 쇼군의 불호령이 떨어질 테고, 그렇다고 죄인인 그를 지극정성으로 모실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불호령이 떨어질 테니까요. 마루미 번은 두려움과 걱정에 휩싸여 가가 님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헌데 아직 그가 오지도 않았는데 살인이 일어나고, 불길한 징조들이 줄줄이 발생합니다. 그 파장은 가가 님과 아무 상관없는 호에게까지 밀려옵니다.
그리고 아이와 어른이 만납니다.
가가 님가 호는 외딴 섬 같습니다. 그들이 외딴집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동안 마루미 번은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외딴집은 봉건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입니다. 글을 읽다보니 이 작품보다 훨씬 후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가 생각났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근대와 전근대의 인습이 충돌해서 비극이 발생합니다. 외딴집은 봉건체제 때문에 비극이 발생하죠. 상황은 외딴집 쪽이 훨씬 더 심각해 보입니다. 긴다이치 쪽은 근대라는 희망이 있지만 외딴집은 그런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끝의 안도감은 외딴집 쪽이 더 낫습니다. 긴다이치는 진즉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 같은 뻘소리를 해대지만 외딴집은 존재로서 희망을 보여주니까 말입니다.
전 글을 읽을 때 누군가를 응원하면서 읽습니다. 그런 식으로 읽으면 글이 훨씬 재밌어지거든요. 외딴집에서도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마조마 했습니다. 사람들이 마구 죽어나가서 말이죠. 내가 응원하는 사람이 죽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마음을 졸였습니다. 다행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외딴집의 사건은 비극적이고 현실은 서글픕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안고 살아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사는 게 이기는 겁니다.
외딴집의 저자 미야베 미유키는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계속 쓸 테니 외딴집을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국내에 번역된 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란 말은 할 수 있습니다. 호와 같이 마루미 번을 여행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이 작품은 내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중에서 제일 재미없게 읽은 작품이다. 편집자가 뒷날개에 밝힌 대서 알 수 있듯이-편집자는 이 작품에 대해 '끈기를 가지고 읽는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텐데...'라고 써두었다.-이 작품은 정말 지루하다.
인물들을 묘사하는데 있어 최고의 기량을 가진 미야베 미유키이기 때문에 인물들은 개연성이 있게 움직인다. 그러나 서사로서, 독자를 고려한 소설로 보기에는 처절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가 없다.
[외딴집 일본 원서]-장편이라는 말을 넘어서 거편(巨篇)이라고 지칭하고 있다. 일본 편집자 조차도 '길다'는 걸 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충분히 한권에 쓸 수 있을 분량을 두권으로 늘여쓴 듯한 기분이다. 일문학을 하는 분들의 경우에는 일본 정취를 느끼면서 즐길 수 있을 작품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그저 지루한 작품이다.
몇년전에 [반지의 제왕]이 번역되어 나왔을 때, 남들 다 읽으니까, 고전이니까 이를 악물고 읽었었다. 서양문화권에서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세계관이 구비문학으로 꾸준히 전승되어 오는 토양이 있었기 때문에 서양사람들에게 그 작품이 재미있고, 감동적일 수 있고, 작품성있게 와 닿을 수 있었을 터이다. 그리고 [해리포터]라고 하는 작품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만약 그 책이 전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 어른들까지 원서를 사서 보며 읽을 정도로 한국인들에게 대중성을 확보할 만한 작품일까? 세계적으로 유행이었고, 큰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에 그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서양의 구비문학 전승, 신화체계까지 덩달아 관련서적이 만들어지고 번역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입안이 씁쓸해졌었다. 한국의 구비전승에 기반한 소설이 히트를 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들에게는 이 작품이 정말 재미있게 읽힐 수 있고, 감동적으로 읽힐 수 있다(과연?).
이 작품은 사회파 미스터리를 쓰는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인간들이 비이성적인 사고, 미신적 사고를 하고, 또 그럴 수 밖에 없는 시대 배경을 바보라고 불렸던 한 소녀를 앞세워 고발한 작품이다. 그 구조자체는 흥미롭지만 디테일을 채우고 있는 것은 지극히 일본적인 신화나, 역사나, 인물, 사회이기 때문에 읽는 내내 고문을 받는듯한 심정이었다는 것을 밝혀둔다.
'끈기를 가지고 읽는다면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텐데.'
라고 고맙게 써두셨는데 다 읽었을 때 내 마음 속에 남은 것은 허탈감 뿐이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자기가 오래 시간이나 돈이나 노력을 투자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경향성이 있다. 그러나 그 건강한 경향성조차 이 작품은 붕괴시켰다.
이야기가 나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의도 괜찮고, 그리고 자료 조사도 잘 되어 있어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을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서사성의 측면에서 보면 글쎄 난 이 작품이 균형감각에서 실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딱히 긴장이 고조되는 부분도 없고 긴장을 만들어낼 만한 중심적 갈등도 드러나 있기는 하지만 드라마틱하지 않다.
단적인 예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호이고, 또다른 주인공은 가가님인데. 그 가가님은 상권(무려 400페이지)에서는 분위기만 풍기고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다가 하권 100페이지가 지날 무렵에야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신다. 그리고 한 200페이지 남짓 활동하다가 사라진다. 허무하다.
골격은 잘생겼지만 살이 쪄서 이목구비가 모호한 남자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참담한 기분이었다. (비교할 만한 게 아니기는 하지만 차라리 이야기성에 있어서는 [부엉이와 밤의 왕]이라고 하는 라이트 노벨이 훨씬 재미있다. 거기서도 어리석은 소녀가 나와 세상을 치유하는데, 그 작품은 서정적인 문체로 지극히 겸손한 분량으로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류의 사회반성, 정보의 통제를 통한 권력자들의 지배방식을 에도 시대 버전으로 심도 있게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뭐 나름 괜찮을 수도 있겠다.
나름 방대한 분량이었던 [모방범]을 걸신들린듯 신명나게 읽어치웠던 나였지만 이작품만큼은 800페이지짜리 고문이었다. 끝나지 않는 고전문학 강의를 듣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시대물이든 현대물이든 잘 쓰는 모양이다. 어떤 작가는 단편을 더 잘 쓰고 어떤 작가는 장편을 더 잘 쓰고 어떤 작가는 시대물만 쓰고 어떤 작가는 현대물만 쓰기도 하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그 모든 것을 다 잘 소화하는 보기 드문 대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작품을 읽고 더욱 작가에게 반했다.
때는 에도 시대, 마루미 번이라는 작은 지방에 에도에서 귀향을 오는 이가 있어 시끌시끌하다. 사람을 여럿 죽인 악귀라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갑자기 호가 기거하고 있던 이노우에가의 아가씨가 돌아가시는 일이 발생한다. 처음에는 모두 독살이라고 범인도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가씨의 죽음은 심장병에 의한 급사가 되고 호가 본 것은 환상이라고 말한다. 이를 믿지 못하기는 어부 마을 출신으로 여자 히키테가 되고자 하는 우사도 마찬가지고 아가씨를 연모하던 하급관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기로 한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적으로 중앙 집중이 아닌 쇼군과 지방 번의 영주로 정치적으로 나뉘었던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있기 쉬웠을 것이다. 이런 정치구조라면 누구나 한번쯤 모반을 꿈꾸고 계기를 틈타 잠재되어 있던 사악한 마음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어떤 형태로 꾸미느냐와 그것을 어떻게 일찍 알고 방어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런 윗사람들의 정치적 생각은 아래에서 고생하는 백성들에게는 부당한 음모의 희생과 먼지와 같은 희생과 파리처럼 어느 때 죽어도 상관없는 존재일 뿐이다. 정치의 형태는 다르지만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는 맨 아랫사람에게 희생만을 강요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치 계급 사회인 냥 아닌 척 하면서 휘두르고 휘둘리고 있다.
세상에 정치가 있는 한, 인간이 존재하는 한, 아니 법칙이 존재하는 한 이것은 사라지지 않을 희생이다. 그 희생을 알면서 하기도 하고 모르면서 강요당하기도 하는 것이 民이라는 이름의 우리네들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천진난만한 호를 따라 눈물을 흘리게 한다. 정말 잔인하다. 호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런 마음을 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 또한 호의 천진함을 이용한 눈가림뿐이지 않는가.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이런 작품을 읽고 눈물만 흘리고 그러면서 어쩌면 지금과 이렇게 다르지 않을 수 있는지 마치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영혼을 훔치는 사람들>을 읽고 있는 느낌도 들고 지금 우리 정치를 보는 것도 같아서 씁쓸했다.
호의 의리와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마음과 우사의 도전 정신과 책임감은 이 작품의 백미다. 이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미스터리를 진정으로 읽었다고, 안다고 말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 작품도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외딴집.
대강의 줄거리조차 모른채 그저 미야베 미유키의 책이라는 점과
내마음에 드는 책의 표지와 두께,그리고 종이의 느낌..
단지 그런 이유때문에 책을 집어들었다.
종종걸음으로 도서관에가서 책을 빌려 집으로 오는 발걸음은 가볍기 그지없었다.
책소개글에 이런글이있다.
고통스러운 전개라는 이야기.
대체 뭐가 고통스러운 전개라는건지.. 그저 지나가는 소개글을 읽고 펼쳐든 외딴집.
하지만.. 웬걸.
책의 이야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마음아프고 안타깝다.
에도의 요로즈야 가문에서 도련님이 하인과 잠시 즐기다 얼떨결에 태어나게된 어린여자아이 호.
자신을 지켜줄 어머니마저 출산후 씨름씨름 앓다 돌아가시고.. 결국 아무도 돌봐주지않는 상황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여자아이.
식구들의 무관심에 이름조차 바보라는 뜻의 "호"로 지어진 가여운 아이.
그나마 호를 키우기 싫어 돈만 밝히는 노부부의 손에 떠넘겨져 거의 사육되다싶이 자라는 호를 집안에 병환과 저주라는 이유로 머나먼곳의 절에 홀로 보내버리는 무심한 요로즈야집안..
어린 호를 돌봐주기위해 딸려보낸 하녀는 호의 돈을 들고 도망가버리고..
오갈곳없어진 호를 가여이 여겨 고용살이로 거둬들이는 이노우에집안.
그리고 이노우에가에서 정성스러운 보살핌을 받으며 점점 사람이되어가는 호.
하지만 호가 지내고있는 마루미번(마루미마을)에 가가님이라는 높으신 신분의 죄인이 유배되어오면서 사건이 일어난다.
호를 정성스럽게 돌봐주시던 이노우에가의 따님이신 고토에님이 같은 마을의 높은 집안의 딸에게 독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호는 정서적 혼란에 빠지게 된다.
줄거리는 충분히 재미있다.
옛날 이야기라고해서 전혀 재미없다거나 지루하지않았다.
호가 어린시절 살아가면서 받았던 냉대와 천대,
그리고 마루미번에서 만나게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
책을 읽으면서 호가 불쌍해 가슴이 너무 아팠다.
하지만 사람들이 악귀라며 치를 떠는 가가님이라지만.
호를 사랑하는 마음을 볼수있었고,
이노우에가에서 고용살이를 하지만 호를 아끼는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볼수있었고
우연히 알게된 우사와의 관계속의 마음을 볼수있었다.
분명 이책은 상당히 마음아픈 내용이다.
하지만 그속에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볼수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아이 호.
그아이를 만날수있어서 참..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