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 교수님의 저서 《뉴노멀의 철학》(동아시아, 2020)을 읽고 독서 감상문을 씁니다. 그간 소설책 아니면 시집에 편중되었던 독서를 반성하며 오랜만에 집중해서 읽은 책입니다. 항상 철학 관련 도서를 읽어봐야지 다짐만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의 안목과 선택을 칭찬하고 싶네요. 철학이라는 학문이 익숙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코로나19에 철학적 사상 및 토대를 접목하여 여러 방면에서 현 시국을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생각해보게 하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보통 책을 읽게 되면 목차고 작가의 말이고 첫 장부터 꼼꼼히 읽는 성향이라 들어가는 말(<유예된 시간의 도래>)부터 찬찬히 느린 호흡으로 읽어보는데 첫 장부터 감탄했습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니체의 《선악 너머》, 들뢰즈&과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서 인용해온 구절로 시작하는데 단순히 인용문일 뿐일 서두가 정말 멋있고 책의 포문을 제대로 열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들어가는 말부터 이토록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글솜씨라니 부럽기도 했네요. 게다가 이 책은 편집도 정말 깔끔하고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주석도 바로바로 확인이 가능하도록 논문처럼 읽고 있는 장의 하단에 바로 표기해놓은 것도 마음에 든 부분 중 하나입니다. 각설하고, '코로나 팬데믹 시리즈2'라는 부제를 달고 있듯이 들어가는 말에서도 코로나 이야기가 빠지지 않습니다. 서문에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두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하나는 "어떤 변화는 일시적이면, 어떤 변화는 돌이킬 수 없다. 모두는 코로나 19가 가져온 변화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직감한다. 세상은 다시는 전과 같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사상이 탄생하는 곳이 선진국이다."라는 말씀을요. 이 책의 표제이기도 한 '뉴노멀의 철학'의 중심에는 인공지능, 기후변화, 감염병 대유행 이 세 가지가 놓입니다. 아울러서 이 책은 탈근대의 철학을 세우려는 시도와 학문과 교육의 새로운 체계에 대한 제안을 담고 있습니다. 제1장 <영토의 발견>에 자주 등장하는 영토, 재영토화, 거버넌스, 노모스와 같은 철학적 개념들이 사실은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인문학적 교양이 빈곤한 탓이겠지요. 그러나 코로나19와 연관지어 풀어나가셔서 명확히 이해가 가지 않는 와중에도 흥미로움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슈를 코로나 혁명이라고 명명하신 것이 특이한 지점이었습니다. 혁명의 본질을 '한 체제가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다른 체제로 급격히 변화하는 사건'으로 보았을 때 코로나19도 넓은 의미로 봤을 때 충분히 그러한 혁명적 사건이 될 수 있다 여긴 것입니다. 김재인 교수님은 이렇듯 코로나 혁명이 바꿔 놓게 될 가치와 개념이 탈근대를 지향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코로나19는 국경을 비롯한 각종 세상의 경계를 들춰냈다고 볼 수도 있는데 필연적으로 영토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동물의 영토는 자연적 인위며 이는 노모스의 원초적 의미와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노모스의 의미 변화를 소개하면서 김재인 교수님은 동물에게 영토의 구성이 자연적 인위인 것처럼, 인간에게 정부의 구성도 그와 유사한 게 아닐지?, 본래 노모스가 초월적 강제성을 포함하지 않듯 정부를 구성하려는 집단 의지도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을 아닐지? 근대적 개념인 '정부'는 탈근대적 개념인 '거버넌스'로 전환해야 하는게 아닐지? 현재 드러나는 것은 인민이 구성한 '자연적 경계'며 그것이 곧 새로운 통치 형태, 새로운 거버넌스가 아닐지? 그것은 곧 자기 통치라는 형태의 새로운 민주주의가 아닐지? 이것이 근대 대의민주주의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건 아닐지? 이렇게 연쇄적으로 수많은 의문을 던지는데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이 철학자란 사람들이구나 새삼 생각의 깊이가 남다름을 느꼈습니다. 코로나19는 자연적 인위로서의 영토를 드러냈고, 영토란 안전한 삶의 터전이나 공동의 안식처에 다름 아닌데 안전한 영토를 구축하는 것은 구체적 자유의 발현을 위한 필연의 수순이라는 김재인 교수님 말씀에 크게 공감하였습니다. 제2장 <새로운 거버넌스의 맹아>는 다행히 1장보다는 이해하기가 다소 수월한 편이었습니다. 사실 코로나19를 겪으며 방역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여기에 인권 논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저를 당혹스럽게 하였습니다. 개인의 인권vs.공동체의 안전을 놓고 국내 시민단체, 서양 언론의 시각 차이가 사뭇 대조적입니다. 한국인은 스스로 감시 사회와 빅브라더를 걱정하는 반면 서양은 한국의 보건 의료 시스템과 민주주의 저력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 말입니다. 개인의 자유도 중요하고 코로나 19를 확산을 막는 것도 중요한데 우위를 점칠 수 있는 가치 논쟁인가 싶지만 김재인 교수님은 자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의 문제이며 영토가 망가지면 개인의 자유도 없다고 단호히 이야기합니다. 감염병 유행이라는 공중 보건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동료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대, 호혜성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의사결정의 투명성, 솔직한 소통, 신속한 대안 마련 등을 통해 시민들과 새로운 거버넌스의 실험을 함께 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말합니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방역의 성공 요인으로 4T, 즉 진단, 추적, 치료, 투명을 꼽는다고 하는데 여기에 김재인 교수님은 신뢰를 덧붙입니다. 한국 방역은 '과학'과 '신뢰'에 기반을 두었기에 잘 작동하고 있는 것이기에. <문화 강국론과 세계시민주의>라는 소제목에서는 김구의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소개하며 대한민국의 지향점을 이야기하는데, 김구의 글이 왠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이상향 같은 느낌이라 울컥했습니다. 언젠가 전문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3장 <탈근대적 가치의 기초>에서는 장자크 루소의 계약론(정부계약), 데이비드 흄의 정치철학(계약론을 넘어 경험적 묵계로) 등을 소개하는데 사실 제게는 어려웠습니다. 그냥 이 분들이 '생명, 자유, 소유'와 같은 인간 본성을 탐구하였다는 정도는 알겠습니다. 김재인 교수님의 강조점은 이제는 지구가 하나의 공동체화로 거듭났으니 지구 시민들 모두가 협심하여 새로운 지구적 거버넌스를 만들어내야 하며, 그 속에서 서양 근대의 가치들이 재편&재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난파 직전의 지구를 가라앉게 하지 않으려면 함께 새로운 묵계를 만들어야 하며 빼앗는 것이 아닌 나누어주는 것이 새로운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인데요, 장재인 교수님은 이러한 거버넌스를 가르켜 '공동주의'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 제일 관심 있게 읽은 것은 니체의 '권력의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빼앗는 힘보다 주는 힘이 더 위대하고 근본적이라는 것입니다. 빼앗는 힘을서의 권력은 하급이고 주는 힘이야말로 최상의 권력이라는 말이 시사하는 점이 강렬하게 와닿았다고 해야 할까요? 니체는 정의론에 있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몫'이라는 통상적인 정의에 대한 해석을 수혜자 중심의 논리로 보고 시혜자의 관점에서 정의를 재구성하려 하며 관점 전환을 하였다고 합니다. 어쩐지 니체라는 철학자에게 조금 많이 빠져들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에는 장마다 짚어가는 글이라고 해서 토막글이 있는데 이 토막글마저 굉장히 생각의 저평을 넓혀주는 내용이 글이 많아 유익합니다. 가령, 3장 끝에 니체의 영원회귀의 윤리학을 소개한 글을 보고 내 삶을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들뢰즈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해석하길 "네가 하고자 하는 모든 것에서 '나는 그것을 셀 수 없이 여러 번 하고자 하는 식으로 하려는가?'라는 물음이 최대 주안점이라고 말합니다. 김재인 교수님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미련이 남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힘의 끝까지 행해야지만 영원한 반복을 각오하고 행해야만 삶을 해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며 만약 '그때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 회한으로 인해 삶은 가벼워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행동하되 영원히 반복되리라는 걸 전제하면 최선의 행동을, 후회없을 행동을 하게 되리라 니체는 말합니다. 철학적 소양이 얕은 제가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단순하게 이해한 것인지 몰라도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정신적 토양으로 삶기 좋은 사상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아주 곧은 뼈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요. 인생 교훈 같은 글을 찾으려고 이 책을 펼친 건 아니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이런 부분에 가장 감화되고 마는 현실이 고달픈 현대인이라 해도 아무렴 어떤가요. 제4장 <앎의 조건과 변화와 학문의 응수>에서는 인공지능, 기후위기, 감염병 대유행의 조건 앞에서 더 이상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새로운 학문과 교육과정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김재인 교수님은 객관적 지표(세계 강대국 순위 9위, 제조업 세계 5위, 교역량 세계 10위)를 들어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아직 후진국 딱지를 떼려면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지라 다소 부끄러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의 대처가 선진국의 대처보다 많은 방면 뛰어나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만큼 좀더 자부심을 가져도 될 텐데 김재인 교수님 말씀처럼 개발도상국적 인식의 타성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들뢰즈에 따르면 '재인식'은 이미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고 '배움'은 처음으로 알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선진국적 앎이 바로 배움과 종합, 즉 발명하고 창조하는 앎, 즉 첨단의 앎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금번 코로나19 사태로 선진국들이 한국에 매뉴얼을 요청하고 있다는데 이러한 것이 선례를 만들어간다는 것이고 그간 한국이 서양에 기대왔던 일이기도 합니다. 아직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라 애매하긴 하여도 지금껏 선례를 만들어온 것에 대해서는 한국이 긍지를 가질만한 일이라고 저부터 인식을 전환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제5장 <과학을 품은 인문학>에서는 인문학의 윤리와 관련해 인문학이 과학을 배워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왜 갑자기 윤리 이야기를 하는가 의아하였더니 곧바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시기를, 과학 활동 자체가 실증적인 검증과 비판을 내포하고 있기에 더 윤리적일 수 있으며(인문학은 사실과 해석을 오가는 활동이기 때문에 은폐가 쉬움), 인간이 자연에 대해 가장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쟁취한 앎의 총체 및 그 앎을 유지&보수하고 갱신하는 태도들의 집합이 곧 과학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인간과 삶에 대해 논하는 게 가당치 않음을 피력합니다. 그리고 과학으로부터 정량적 사고 방식과 비판적 자세를 배워야 함을 순차적으로 짧고 임팩트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대망의 마지막 장인 제6장 <인문x과학x예술:뉴리버럴아츠의 탄생>입니다. 철학서는 어려워서 책 읽는 속도가 더딜거야 짐작했던 것과 달리 하루에 약 1장 정도씩 읽어서 일주일 만에 마지막 장에 도달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시의성 있는 소재와 철학을 엮은 점이 흥미가 안 돋을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하니까 더 재미있게 읽혔던 것 같습니다. 제6장에서는 창조성의 개념부터 묻고 있습니다. 창조성이란 새로운 무언가를 최초로 만들어 내는 데서 성립하는 것인데 이때 사회가 그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창조성은 실험의 위험성을 이겨내는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용기와 힘, 그리고 그것이 실천될 수 있는 자유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패해도 괜찮아야 하며 개인도 사회도 크게 상처 입지 않을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실험이 허용된다는 말이 어쩐지 위안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더 나아가 김재인 교수님은 창의성 교육에 대해서도 진지한 논의를 던지고 있습니다. 뉴리버럴아츠로서의 인문학 갱신을 제안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 닿아 있다 볼 수 있겠습니다. 문과와 이과 이분법적인 제도 안에서 더 많은 개념과 언어를 이해할 기회를 놓치고 편협한 지평을 갖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 아닌지요? 이렇듯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는 뉴리버럴아츠 교육이 필요하는 데에는 저도 김재인 교수님의 생각에 적극 동감입니다. 과거 그리스 철학자들이 철학자인 동시에 과학자,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것을 한번 떠올려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재인 교수님의 말씀하셨듯 이제는 탈근대를 준비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많은 것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홍수에 휩쓸리듯 강대국들 혹은 선진국들이라고 칭하였던 나라들의 틈바구니에서 과거 갈팡질팡 우왕좌왕하면서 선례를 뒤쫓기 급급하였던 때를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 사태로 한국이 배울 점이 있는 선례를 만들어가고(창조해나가고) 있듯이 그를 뒷받침하는 새로운 사상이 대두되어야 탈근대를 안정적으로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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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Covid19)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전망이 짙다. 이 전염력 강한 질병이 인류의 생활을 바꿔 놓은 것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강 건너 불 구경'은 이제 곤란하고, 함게 불을 꺼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내가 아무리 조심한다 해서 감염 노출을 피할 수 없는 복불복의 상황, 또 내가 아무리 주의한다 해도 타인에게 감염할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 저자는 인류는 한 배를 탄 운명 공동체, 이 난파를 함께 막아야 하는 존재로서 공공성을 언급한다. 대전환의 시대를 구축할 철학적, 사상적 토대, 뉴 노멀의 철학으로서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종교에 대해 살벌한 편견을 가진 저자에게 이미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신천지의 종교의 자유 언급이나, 원고 집필 시기상으로 집필 이후 벌어진 전광훈을 위시한 사랑제일교회 사태는, 공공성을 무시한 처사라는, 종교의 무용론을 더 강화시키게 되었을 것이다. 종교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필자는 동의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조되었던 '나'라는 존재의 허상을 짚으면서, 실상 '나'라는 존재는 수많은 타자들에 의존하는 존재였음을 밝힌다. 이제 인류는 코로나19와 함께 그 다음 행보를 대비하고 준비해야 하는데, 20세기까지 유효했던 체계는 더는 통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면서 인문학, 사회과학, 수학, 자연과학, 공학, 예술(인문 X 과학 X 예술) 등의 지평융합을 이룬 '뉴 리버럴 아츠'(New Liberal Arts)를 핵심 개념으로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