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종사자도 아니면서 우연히 알게된 유유출판사의 책을 관심있게 살펴보고 자주 구매하고 있다. 주제넘다 싶긴 한데 나오는 책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든다. 사실 ~말들 시리즈는 기획의 승리라고 보는데 단순한 기획같지만 쉽게 쓰지는 못할 것 같은 내용들이다. 우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어야하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이 많은 사람, 거기다 자신의 말로 글을 써낼 수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살 때마다 100개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읽고 있다.
이번엔 습관의 말들이란다. 습관이라. 보통 습관 하면 "좋은"과 "나쁜"이라는 단순한 부사가 붙기 마련이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무엇에 좋다는 것이고 나쁘다는 것일까.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는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습관을 고치는 구체적 방법이나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한 실천법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라 매일이 모여 만들어지는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계기는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유성용 작가는 <다방기행문>에서 "아무래도 인간은 '나'로 태어나서 평생토록 '나'가 아닌 다른 것이기를 꿈꾸지만 끝내 '나'로 죽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다"라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계속 뭔가를 고치려고 하고 현재의 나를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존재로 변신하기 위해 내가 가지지 못한 습관을 익히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을 아무도 강요한 적이 없다는 거다. 저자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혼자 목표를 세우고, 또 그 목표를 피할 명분을 마련하느라 궁리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요지경같은 존재라고 했다. 게다가 아무도 몰라도 내가 안다는 사실을 끝끝내 외면하지 못하니 그마저도 짠하단다.
난 아직도 부사를 습관적으로 쓴다. 초고에서는 쓰고 싶은대로 쓰고 퇴고할 땐 부사부터 솎어낸다. 우선, 대개, 다소, 어김없이, 틀림없이, 가까스로, 완벽하게, 그러니까, 넌지시, 무심코, 시종일관, 부디, 거의, 때로...... 이런 것들이 매번 끝도 없이 나온다.
은유 <쓰기의 말들>
말을 하면서 또는 글을 쓰면서 가지고 있는 습관들이 다들 한두가지씩 있을 것이다. 예전에 한 과장님이 '사실은'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셨는데 한번은 그분이 하시는 말씀은 제대로 안 듣고 몇번이나 쓰시는지 세어본 적도 있었다. 그분이 사실은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셔서 그런지 그분 말씀이 오히려 더 미덥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은유 작가처럼 부사를 습관적으로 쓴다. 다행인 것은 부사가 많아서 좀 부끄러운 글이긴 해도 나는 직업작가가 아니니 퇴고를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 심플하지 못한 문장은 늘 진심을 가리는 법이라 생각하면서도 부사를 쓰게되는건 왜인지 모르겠다.
누구나 저마다 살림의 콘셉트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체크인한 호텔방'이다. 퇴근 후 돌아온 집이 체크인한 호텔방처럼 아무런 생활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김교석, <아무튼, 계속>
체크인한 호텔방처럼 깨끗한 방은 아니지만 나도 누군가 들어와서 내가 허겁지겁 나간 흔적을 보게하는 것은 싫다. 직장이든 집이든 나가기 전에 꼭 정리를 해놓고 간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가끔 그런 이상한 생각도 한다. 갑자기 내가 사고를 당해서 다시 못돌아올 수도 있는데, 너무 어질러져 있으면 나의 마지막을 얼마나 이상하게 기억할까. 직장에서 휴가라도 하루 가게되면 더 부산을 떤다. 일단 치울 수 있으면 책상 위를 깨끗하게 거의 다 치운다. 이런 습관은 정말 추천할만 한 괜찮은 습관이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선호하는 나만의 특별한 버릇, 취향, 성취, 색깔의 이미지와 '상관없는' 모습으로 내가 타인에게 새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습관이나 버릇에는 긍정적인 것만 있는 건 아니라서 오히려 들키기 싫고 없애고 싶은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으니 말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OO만 보면 네가 생각나"라는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응? 왜?"하며 당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을 때도 있다.
"OO만 보면 니가 생각나"는 나도 가끔 듣는 이야기인데 이유를 잘 모르는 상황일 때가 많다. 자신도 모르는 습관과 버릇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당황스러운건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에게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문제는 다 읽지도 못한 책이 쌓여 있는데도 온라인 서점에서, 오프라인 서점에서 자꾸 책을 사는 습관이다. 이제 독서가 취미가 아니라 책 사는 것이 취미라고 해야 할 판이다. 이런 죄책감이 쌓이던 중 한 출판사의 책갈피 굿즈에 쓰인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것이다.", "덮어놓고 사다보면 언젠간 읽는다!"라는 문구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마운 말이다. 덧붙여 "나는 이미 우리나라 출판계의 부흥을 위해 할 만큼 했다고 자평한다. 책을 살 만큼 샀다"는 애서가 박균호 선생님에 비하면 나는 퍽 양호하다.
주로 생활하는 공간 여기저기에 책을 흩뿌리고 살다가 최근 1~2년 사이에 내가 가진 책의 양을 실감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번 가졌다. 나는 그저 "책이 많다"고만 생각했는데, 직장에도 수백권의 책이 있었고, 부모님 집에 있던 책이 이천 권 정도, 우리 집에도 그 정도의 책이 있었던거다. 직장을 옮기면서 직장에 있던 책을 팔고 나눠주고, 부모님 집과 우리집을 합치면서 책을 또 많이 줄이긴 했지만 지금도 내가 가진 공간에 비해 턱없이 많은 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가지고 있는 책을 볼때마다 읽었던 책은 내용이 다 기억나지 않아서, 읽지 못한 책도 꽤 많아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나도 모르게 슬금슬금 새책을 사들이는 습관은 고치지를 못하고 있다. 저자처럼 나 역시 많은 면피용 문구들로 위로를 받는데, 나도 우리나라 출판계를 위해 할 만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를 만드는 습관은 어떤 것이 있나 생각하게 했던 유유출판사의 새책 , <습관의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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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말들. 김은경 ☆☆☆☆ ? "습관"과 관련한 에세이. 습관 (習慣)?: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어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습관인지라, 공감이 되는 부분도 많고, 쉽게 읽혀서 좋네. ? . 골디락스는 영국의 시인이자 동화 작가인 로버트 사우스가 쓴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에 등장하는 금발 소녀의 이름이다. 숲에서 길을 잃고 혜매던 골디락스는 아무도 없는 오두막에 들어가 식탁에 차려 놓은 세 그릇의 수프를 발견한다. 막 끓인 듯 뜨거운 수프, 식어서 차가운 수프, 뜨겹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히 따듯한 수프 중에서 먹기에 적당한 따듯한 수프를 주인의 허락 없이 먹어 버린다. 수프를 먹은 뒤에는 딱 적당한 의자를 골라 앉고, 피곤에 지쳐 딱 적당한 탄력이 있는 침대를 골라 낮잠에 빠진다. 이 동화에서 유래해 완벽하게 딱 적당한 이상적인 상태를 말하는 용어인 '골디락스 'Goldlilocks는 경제, 마케팅, 의학, 천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는 말이다. - 골디락스(Goldilocks)는 '뜨겁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상태를 일컫는다. 금(Gold)과 머리카락(Lock)을 합성해 만들어진 골디락스(Goldilocks)라는 말은 고성장 속에서도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은 경제 상황을 나타낼 때 쓰인다.? . 유정용 작가는 [다방기행문]에서 "아무래도 인간은 '나'로 태어나서 평생토록'나' 아닌 다른 것이기를 꿈꾸지만 끝내 '나'로 죽는 우스꽝스러운 존재다"라고 했다. . 이렇게 우리가 어쩌다 저지르는 실수에 몇 날 며칠 이불킥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보면 수백만 년에 걸친 우리 뇌의 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신경심리학자 릭 핸슨은 자신의 저서 "행복뇌 접속"에서 인간의 뇌는 생존을 위해 부정적인 성향을 진화시켜 왔다고 말한다. 생존에는 낙관하는 것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오늘 스무 가지 일을 해내고 단 한 가지 실수를 했더라도 잠들기 직전까지 줄곧 그 한 가지 실수만 떠올리는 것이다. 우리 뇌의 부정적인 성향을 긍정적인 성향으로 바꾸는 것은 행복과 회복탄력성 같은 내면의 힘으로 가능하다 . 오늘은 팟캐스트 '책읽아웃'에 출연한 김연수 작가의 이야기를 듣느라 또 셋길로 빠졌다. 대화 주제가 글 쓰는 방식이었는데 한동안 글을 쓸 때 타이머를 이용했다고 이야기했다. 25분 동안 원고지 2매를 빠른 속도로 채우고 5분을 쉬는 거다. 이런 걸 ' 포모도로 기법'이라고 하는데, 1980년대 말에 프란체스코 시릴로라는 이탈리아의 대학생이 고안한 시간 관리법이다. '토마토'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포모도로'라는 말이 붙은 것은 프란체스코가 토마토 모양의 주방 타이머를 이용해 시간을 맞추었던 것에 기인한다. . 버릇처럼 쓰는 부사에 서 내가 드러나는 것 같을 때다. '사실', '실제', '진짜로'와 같은 부사는 희한하게 말에 솔직함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라 솔직함을 강요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그러니까' 같은 부사는 지금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나조차 명확하지 않아 중언부언하고있나 의심스럽게 만든다. '어쨌건, '여하튼' 같은 부사가 되풀이되면 논리적이지 않은 나의 영성함을 뭉개려는 것 같아 비겁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뚜렷한 메시지는 간결하다. . '일과 삶의 균형'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경제적으로 먹고 살 격정이 없지 않은 이상 보통 사람에게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분리될 수 없는 두 가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은 사람마다 다르다. 문제는 그 적절한 균형점을 자신도 모를 때가 아닐까? 내 노동으로 어느 만큼의 좋은 성과와 평가를 받고 싶은지, 그것을 위해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어디까지 포기하거나 감내할 수 있는지, 어느 것의 만족감에 비중을 더 둘 것인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해서 더 피곤해진다고 해도 나는 이 방식이 좋다. 첫 알람 때 잠깐 잠이 쨌다 아직 더 자도 된다고 안심하고 다시 자는 맛이 좋다. 아침형 인간이 될 생각은커녕 어떻게 해서든 안심하고 '한 번 더' 자는 즐거움이나 찾는 것이 좀 한심해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즐거운 기상 시간을 위한 나만의 방식이다 . 작가 제니퍼 루덴은 "쾌락을 주면서도 실제로는 에너지를 소비하고 감각을 마비시키는 행동"을 '그림자 위안' (Shadow comforts)이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불안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우울하다고 느낄 때 도피를 위해 습관적으로 찾는 술, 단 음식, 줄담배, 게임, 스마트폰 같은 것들이 주는 가짜 위안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순간의 쾌락이나 위안은 되어도 문제의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그림자 위안이라는 허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위안을 찾아야 한다. 늘 '참된' 것을 분간해 길 잃지 마시길, . 자신만의 작업 습관이어도 그것이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된다면 어떤 방법이들 새로이 강구해야 한다. 시해설을 의뢰했던 원로 평론가께 몹시 황당한 방식으로 크게 뒤통수를 맞은 경험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언제든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어도 최소한 예의는 지켜야 한다. 그것은 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거친 언사만 무례가 아니다. 일의 방식 자체가 무례한 것일 수 있다. 기본적인 룰은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솔직함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하다. . 사치에 대한 욕구는 보들레르식으로 말한다면 인간 정신의 불결정에 관한 증거다. 이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생존밖으로 넘치는 것이 하나라도 있어야 삶이 삶이다. 하다못해 연필이라도 좋은 것을 사서 써야한다. (황현산. 때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