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하 인간적인> 2권은 니체가 1879년에 출간한<여러가지 의견과 잠언들>과 1880년 출간한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를 묶어 발행된 책이다. <인간적인> 2권도 1권과 마찬가지로 잠언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총 765개의 독립적 단편으로 구성돼 있다. <인간적인> 2권은 <인간적인> 1권을 보충하는 의도로 쓰여졌으며 1권에서 다뤘던 주제와 겹치는 부분(도덕, 종교, 예술, 가치관, 인간관계 등)이 많지만 세부 내용은 다르게 쓰여졌다.
니체는 <인간적인>을 그의 철학에서 "위기의 기념비"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인간적인>을 집필할 당시의 니체는 고질적인 건강 문제, 절친이었던 바그너와의 결별, 정신적인 고독, 철학적 사유의 고통 등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니체가 처했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니체에게 필요했던 것은 <인간적인> 전반에 깔려있는 '자유정신'이었다. <인간적인>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니체의 냉철하고 신랄한 비판적 사고는 니체의 '자유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적인> 2권도 1권과 마찬가지로 특정 주제를 다루는 하나 하나의 단편이 모두 사고(思考)를 격려하는데 독자에 따라 관심이 쏠리는 문장이 달라지라라 생각한다. 어떤 단편은 읽기도 쉽고 사유해보기도 쉬운 반면, 어떤 단편은 읽기는 쉬워도 내용을 되새김질하는 과정에 벽을 느끼게 하며, 간혹 읽기조차 어려운 단편 또한 수록돼 있다. 한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읽기에는 너무 버거운 책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이런 책에 관심을 갖게 되면 처음 읽었을 때와 두번 째 세번 째 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바가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적인>에서 느끼는 버거움은 부끄러움 보다는 후일 얻을 성취에 대한 기쁨을 기대하게 된다.
총 765개의 단편 가운데 몇 개를 예로 들어 이 책이 가진 '생각을 장려하는 힘'을 소개하고 싶다.
이중으로 불공정하게 - 우리는 때때로 이중으로 불공정하게 진리를 구한다. 즉 우리가 동시에 볼 수 없는 사물의 양편을 차례차례 보고 묘사할 경우와 나아가 매번 우리가 보고 있는 쪽이 완전한 진리일 것이라는 망상 속에서 다른 편을 오인하거나 부인하는 경우가 그렇다.
- 니체는 우리가 진리라 믿는 것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인간은 누구나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다 내가 원하거나 추구하는 것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진실'이 아닌 '진실이라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믿는 것들에 대해(그것이 종교적이든 도덕적이든 혹은 과학적이든지) 이성과 자유정신을 바탕으로 철저한 회의를 해보는 것은 우리의 정신에 도사린 편향된 것들을 바로잡아주고 오류를 오류로 받아들이고 진실을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곧음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의지와 자유에 대한 이론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 - (중략) 사회적-정치적인 영역에서는 강자가 자유인이고 기쁨과 고뇌의 생생한 감정, 드높은 희망, 대담한 욕구, 강렬한 증오는 지배자와 자유인의 부속물이다. 반면에 예속된 자와 노예는 억압되어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 의지의 자유에 관한 이론은 지배 계급의 발명품이다.
- 트라쉬마코스는 '옮음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니체가 회의적으로 사유했던 모든 분야들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들이며 힘을 가진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인데, 그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의심도 품지 않고 순응해 살아가는 모습은 니체에게 역겹고 경멸스러운 모습이었다. 니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지배자와 자유정신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은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체제에 굴복하여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삶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어떠한 새로운 사슬도 느끼지 않는 것 - 우리가 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있지 않다고 느끼는 한, 우리는 자신을 독립적이라고 간주한다.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교만하고 지배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오류 추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상적으로 독립해서 살고 있고 만약 그가 예외적으로 그 독립성을 잃게 되면 그 반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인간은 구속당하자마자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반대가 진리라면 어떻게 될까? 즉 인간은 항상 여러 가지 구속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오랜 습관으로 인해 사슬의 무게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때에만 자신을 자유롭다고 간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만 새로운 사슬에서만 인간은 여전히 구속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의지의 자유'란 본래, 어떠한 새로운 사슬도 느끼지 않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생각하며 우리가 생각하고 행하는 것들 또한 우리가 가진 자유의지에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규제 아래에서 살아갈 뿐이다. 그런 규제들은 경우에 따라 도덕이라는, 종교라는, 덕이라는, 법이라는 이름 등으로 불리우며 부지불식간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품고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환경에 온순히 적응한 인간은 스스로를 자유롭고 독립적이라고 오해하고 기존의 질서에 반하는 어떤 새로운 것(설령 그것이 자유라는 측면에서 더 옳다고 할지라도)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으로 대응한다. 니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란 이성의 도움으로 스스로 쌓아올린 것들에 대해서조차 희외하고 불신할 수 있는 용기와 날카로움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습에 얽메이지 않을 뿐 아니라 새로운 것에 대해서도 이성 외의 도구로 예단하지 않는다.
무절제한 자들이 말하는 동정의 도덕 - 자기 자신을 충분히 통제하지 못하고 또 크든 작든 도덕성이란 끊임없이 실천되는 자기 통제이며 자기 극복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하고 동정심 많으며 친절한 감동을 찬미하는 자기 될 뿐만 아니라 분별력 없이 단지 마음과 도움을 베풀 손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본능적인 도덕성을 찬미하는 자가 된다. 사실 그들의 관심은 이성의 도덕성에 의혹을 품고 본능적 도덕성만을 유일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있을 뿐이다.
- 니체는 선과 도덕이란 지배자나 사회의 이익이며 과거에서 밀려온 유산에 불과하다. 그런데 세대를 거치며 온갖 치장이 더해져 현대 사회의 선과 도덕은 불가침의 영역이고 진리라 여겨지게 됐다. 또한 철저한 사유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동정심을 가지고 선한 행동을 하고 도덕적으로 사는 것을 본받아 마땅한 것으로 추앙하고 있다. 니체는 이런 사회풍조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개인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옳은 것이며 상대를 허락없이 동정하고 시혜를 베풀는 행위는 상대를 자신보다 아래로 보고 있음을 드러내는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인 동시에 동정과 시혜를 받는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부도덕한 행위이다. 상대를 나와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는 사람(사회, 혹은 국가)이라면 동정이 아닌 계약이 필요한 것이다.
웃음과 미소 - 정신이 즐거워지고 확실해질수록 인간은 커다란 웃음을 더 많이 잃어버린다. 이와 반대로 정신적 미소는 끊임없이 그의 얼굴에 떠오르게 되는데, 이 미소는 무수한 즐거움이 훌륭한 삶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대한 그의 놀라움의 표시이다.
- 흔히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마흔쯤에 이르면 그 사람이 지나온 삶과 그의 내면에 담김 정신이 얼굴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인데 니체는 이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견해를 가졌던 것 같다. 커다란 웃음은 어떤 것들에 대한 큰 즐거움의 표시인데 보통 이런 커다란 웃음은 일시적이며 일회적이다. 반면 얼굴에 드러나는 정신적 미소는 그가 가진 내면의 정신이 건강하고 자유롭고 훌륭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지속적이고 재창조가 가능하다. 자유로운 영혼과 건강한 이성을 갖춘 이라면 자신과 주변 모든 것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감탄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얼굴에는 끊임없는 미소가 피어오르게 된다.
<인간적인>을 읽다보면 니체는 어떻게 이런 다양한 분야를 구체적으로 사유해보게 됐을까 하는 의문과 존경이 생긴다. <인간적인> 1권에서 다뤘던 가치관, 도덕, 종교, 예술, 인간, 사회 등에 대한 주제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2권은 좀 더 함축적인 느낌을 준다. 많은 단편이 한두 문장으로 표현되어 짧게 읽히지만 그 속내를 파악하며 읽고자 노력하다 보니 여러번 반복해 읽어야하는 부분이 많았다. 니체가 <인간적인>을 집필하며 겪었을 고독과 고통 그리고 거기서 나온 사상적 결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인간적인>은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것들에 대해 크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니체를 알기 위한 용도 뿐 아니라 '잠언집' 그리고 '생각을 장려하는 힘'이 있는 책으로써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은 읽어봄직한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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