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열일곱 살 때 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14년 전에라도 먼저 만났더라면.. 그러면 적어도 나는, 지금의 나와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열여섯 살의 나는 세상에 두려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1등은 아니였지만 어느 정도는 내 노력한 만큼 성적도 나왔었다. 하는 만큼 나온다,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미 그때 알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절실하지는 않았었다. 말 그대로 그때의 나는 내가 노력한 만큼 뭐든 해냈었으니까.. 나의 첫 고비는 고등학교 첫 시험에서였다. 잘한다 잘한다 소리만 듣고 자라다 처음으로 부모님께 내밀기 부끄러운 성적이 나왔다. 워낙 시험이 어렵기는 했다. 다들 못 봤으니까. 하지만 뒤에 자리한 내 반 등수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전교 등수와 반 등수가 차이가 많이 안 난다는 게 그나마 쪼금 위안이 되긴 했지만, 뛰어난 아이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들러리서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학교 가는 것이 싫었고, 말수가 줄어들었으며,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종종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었다. 그때의 나는 이런 나를 그냥 성격이 바뀌어버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스물네 살의 나는 전화벨 소리가 너무 너무 싫어졌다. 하루에 수십 통에서 백 통 넘게 받는 전화 수화기 너머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거의 항상 짜증이 나 있었다. "언제 와요?", "왜 안 와요?", "전화를 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 ... 등 수화기를 듦과 동시에 전해오는 그들의 짜증과 화에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한숨을 쉬고 짜증을 냈다. 매일 매일 화가 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어느 날 화를 참다 못해 수화기를 던졌고 나는 이러다 정말 큰일내지 싶어 스스로 정신과 전문 병원을 찾았다. 병원가기 직전까지도 같이 일했던 상사는 니가 왜 그런 델 가냐면서 말리셨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라도 가지 않았으면 더 큰 사건으로 병원에 실려가지 않았을까 싶다. 그때 갔던 병원이 상담보다는 주로 약처방을 해주는 곳이였던 게 조금 아쉽긴 했지만 약을 안 먹었던 때와 비교를 해보면 그래도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 이미 열일곱 살때부터 조짐이 있었다고 했을 때,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우울증이 발병된 거라 말씀하셨을 때 나는 조금 안도를 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납득이 안 될 정도로 급속도로 성격이 바뀌기는 했었다. 그때 누군가 알아줬더라면.. 지금처럼 우울증이란 병이 좀 흔했더라면.. 나는 지금까지도 약을 먹고 있었을까.. 스물네 살때부터 지금까지 근 십오 년 가까이 약을 먹으면서 종종 회의가 들었다. 이러다 정말 죽을 때까지 약을 먹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정말 약 없이는 살 수 없는 걸까.. 나만큼 이렇게 꼬박 꼬박 약을 잘 챙겨먹는 사람도 없을 텐데 왜 이렇게 진전이 없는 걸까.. 나라는 사람은 정말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나 스스로도 나를 씁쓸하게 생각하고 자존감이 자꾸 자꾸 떨어지고 있을 때 만나게 된 이 책은.. 괜찮다고 했다. 괜찮아. 괜찮아. 마음이 아니라 내 몸의 문제라며.. 그건 내 잘못이 아닌 내 유전자의 잘못이니 탓할 수가 없다고.. 내 유전자 자체의 결함이니 약을 먹을 수밖에 없는 거라고.. 병을 자각하고 15년 가까이 치료를 받으면서 이 말만큼 위로가 된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먹는 약의 갯수가 늘 때마다 나는 내가 더 잘못하고 있는 것마냥 고개를 못 들었었는데.. 약의 수가 줄어도 언제 끊게 되냐는 질문에 초조하고 답답했었는데.. 내가 마음이 편하지 않는 건 내 마음이 아닌 몸이 결함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결함은 채워줘야 하는 거라는 작가님의 말씀은.. 내가 나 같지가 않아서 자꾸 작아져만 가던 나를 다시 똑바로 설 수 있게 일으켜주었다. 병의 종류는 조금 다르지만 그 어떤 정신과적 환자들보다 깊은 공감을 느끼고 큰 위로를 받았다.
내가 아픈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다만 언제부터 아플 것인가가 관건이였는데.. 너무 이른 때부터 아팠음에도 나 스스로도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어루만져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대견하기도 하다. 몇 번의 터널 시야가 있었고 두 번은 정말 큰 일을 낼 뻔 했음에도 지금 나는 아직 살아있다.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참 감사하다. 그것을 느끼게 해 준 안경희 작가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널뛰는 자신의 감정이 버거운 누군가가 주위에 있다면, 이 책을 권해주기를 감히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p.77 터널 시야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한순간을 넘기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면, 자신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적인 한순간이 왔을 때 그때만은 어떻게든 넘기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그 순간 내리는 결정은 당신의 전부가 고려된 결정이 아니라, 아주 일부의 감정이 당신을 휩쓸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이다. 입장을 바꾸어 만약 당신 곁의 누군가가 위태로운 상황이라면, 그가 터널의 끝에서 몸을 돌려 떨리는 손을 내밀었을 때 망설이지 말고 꽉 잡아야 한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주고, 그럼에도 나는 당신과 함께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고 확고하게 잡아주고, 지금 이 순간만 참고 내일 다시 생각해보자고 설득하는 것이다. p.81 병에 걸린 것은 잘못이 아니다. 조울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다. 부모가 원해서 물려준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는 큰 키 유전자를 물려받고 누군가는 금발 머리로 태어나듯이, 누군가는 기분 기복이 강한 유전자를 물려받고 누군가는 기분 기복에 취약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태어났을 뿐이다. 조울병 발병에는 유전과 환경이 함께 작용하는데, 자라온 환경 역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병에 걸린 것 자체는 환자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다. p.86 죽음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편안해진다는 생각에 매일 죽음을 꿈꾸었다.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던 이유는 죽으려다 죽지 못할까 봐, 죽는 과정에서 끔찍한 고통을 느끼거나 불구가 된 상태로 살아남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었다. 밤마다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며 '여기서 뛰어내리면 단번에 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순간 선을 넘으면, 한순간에 직장을 그만두었듯 순식간에 목숨도 거둬버릴지 모를 일이었다. p.114 제목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단언컨대 정신질환은 몸의 병이다. 생물학적 연구 및 뇌 MRI, PET 등 첨단영상의학 연구에서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등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의 변화, 뇌구조 및 부위별 활성도의 차이 등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뇌를 비롯한 신경계에 이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지배를 받는 행동면에서 증상이 나타날 뿐, 정신질환은 기분 조절 미숙이나 자유의지 결함으로 발생하는 심리적 질환이 아니다.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도 신체의 이상 중 일부인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인격적으로도 우월한 것처럼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p.184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당신. 강해야 한다고 채찍질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여린 당신.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전에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신을 탓하고 마는 착한 당신.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당신이 애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당신의 존재만으로 기쁨을 느낄 사람. 당신의 말에 위로를 받고 당신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을 사람. 이 넓은 세상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p.192 그래서 저는 '괜찮다, 다 괜찮다'의 힘을 믿습니다. 당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당신에게 이 말이 필요할 때, 저는 기꺼이 당신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겁니다. 당신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일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길과 수많은 기회가 그 사람만의 타이밍이 있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힘들었던 자신을 인정하고, 당신에게 잠재된 힘을, 또 다른 가능성을 믿어도 됩니다. 다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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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인 취약성을 가진 우리 가족..상담심리학을 공부하며 DSM-5로 증상에 대해..공부하고 들여다봐도..이렇게 마음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길잡이 책이 되었습니다 먼저 제가 읽어봤고, 다른 가족들도 함께 질병을 수용하고 이겨낼 수 있게 한권씩 읽어보도록 할 예정입니다. 정신과 진단은 이 책에서 짚어주셨듯이 가족들도 감정적인 이해와 대응을 하려해서 악순환이 되는데, 몸의 질병으로 받아들여도 감정적인 부분을 케어하는 것이기에 몸의 질병이란 본질이 자꾸만 흐려집니다. 완독 후에도 자주 읽어가며 맘의 병이 아닌 몸의 병으로 인식하도록 리셋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책입니다. |
나는 대학에 온지는 3년이지만 중도휴학과 학사경고를 반복하며 올해 겨우 학업을 시작한 양극성장애 2형 환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을 읽고 이제서야 내가 진짜 양극성장애라는 확신을 갖게 된 당사자이다. 우리나라는 조울증(양극성장애) 진단 기준이 빡세기 때문에, 양극성장애 진단을 잘 내리지 않는다. 하여 우울 증세와 감정 기복으로 병원을 다니면서도 나는 왜 내가 약을 먹어야하는지 납득을 잘 하지 못했다. 어디가 아픈지도 말 안해주면서 약만 먹으라니. 아빌리파이, 웰부트린엑스엘정 ... 그래왔던 내가, 이 책에서 설명된 여러 조울증 증세들을 보고 나와 딱 들어맞는다는 걸 깨닫고 양극성장애임에 확신을 갖게 됐다. 첫 증상이 발병하고 3년만에 내가 환자임을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서론이 길었는데, 한 줄로 정리하면 '이 책을 보고 내가 조울증 환자임을 깨닫고 인정했다.' 이다. 책에서 필자는 아주 진솔하게, 아주 아주 진솔하게 자신의 조울증 발병기를 고백한다. 덕분에 읽기 편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기도 했고, 나의 상황에 대입시켜보기도 편했다. 가장 놀라웠던 부분 세 가지이다. 1. '말을 빠르게 하면서 버벅거리는 것'이 조증 삽화에 있는 조울증 당사자들에게 자주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게 진짜 조울증 증상이었다니. 2. 조울증으로 인해 '사회적 자살'을 감행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니! 3.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애인)에게 했던 행동들이 알고보니 증상이었다는 것. 필자의 솔직한 고백에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그리고 꽤 많다는 유대감을 느끼게 되었고, 내가 갖는 죄책감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도 답을 얻었다. 당신이 조울증 환자라는 의심이 조금이라도 드는가? 또는, 요즘 평소보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는 기분이 드는가?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울증 의사가 쓴 조울증이야기다 의사가 쓴 글이여서 그런지 단순히 조울증을 겪는 감정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조울증에 좋은지, 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조울증에 대해 좀 더 자세 알 수 있고 조울증이라는 병이 생각보다 더 흔하고 쉽게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혹여나 안좋은 생각을 가진 조울증 환자들에게 책이름처럼 힘이 되주는 책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