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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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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 가득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내가 마주할 미래가 아닐지라도 마냥 유토피아를 꿈꿀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지구가 온전히 인간을 위한 공간이 될 거라는 예측도 할 수 없다. 우주 그 어딘가에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것이 언제든 지구에 정착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초엽이 그려낸 『파견자들』의 모습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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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만 가득한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내가 마주할 미래가 아닐지라도 마냥 유토피아를 꿈꿀 수 없는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지구가 온전히 인간을 위한 공간이 될 거라는 예측도 할 수 없다. 우주 그 어딘가에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하고 그것이 언제든 지구에 정착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초엽이 그려낸 『파견자들』의 모습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지상이 아닌 지하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떤 조건을 통과한 후 지상에 나갈 자격이 주어지는 파견자들로 구분 짓고 지하 세계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미래의 모습은 얼핏 보면 SF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 그대로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게만 공개가 허락된 정보들, 현재의 환경과 체제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불확실한 어떤 세계로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 어찌 보면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 나는 어디에 속한 존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

 

소설로 돌아가 보면 주인공 '태린'은 어려서부터 파견자가 되고자 했다. 자신의 스승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어 그와 함께 지상으로 나가 탐사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모든 걸 참고 견뎠다. 기억 보조 장치 뉴로브릭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해야만 했다. 뉴로브릭과의 연결이 끊긴 게 한 번씩 말썽을 부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환청처럼 들리는 이상하 목소리가 태린은 익숙하고 친근해 '쏠'이란 이름까지 붙여주었다. 모든 과제를 통과하고 파견자가 된 태린의 첫 임무는 맡고 지상으로 나갔다.

 

범람체에 둘러싸인 인간은 광증을 유발한다고 보호소에서 치료를 받는 줄로 알았던 태린의 눈앞에 펼쳐진 지상의 모습은 숨 막힐 듯한 아름다운 그 자체였다. 놀랍게도 범람체의 일부가 된 늪인들은 스스로 그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범람체의 존재를 피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공존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기이한 모습, 그러니까 인간이라 규정지은 모습이 아니었지만 지하의 인간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진동을 통해 지하로 보내고 있었다. 여기, 자신들이 살고 있다고 말이다.

 

 

도시는 기이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색채로 일렁이는 세계. 곳곳에 강렬한 원색의 물감들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빠짐없이 찬란했다. 도시를 점령한 범람체들이 각가 경쟁이라도 하듯 빛깔을 드러내고 있었다. 색이란 색은 모두 사용한 거대한 유화 작품으로 지상을 덮은 것처럼, 마치 색이 그 자체로 살아 있어 도시를 통째로 움켜쥔 것처럼 범람체는 존재감을 발했다. (114쪽)

 

태린은 그 존재가 낯설지 않았다. 이상했다. 늪을 발견하고 늪인을 만났을 때도 혐오나 거부가 아니라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쏠이 그랬던 것처럼. 태린은 그제야 이제프가 파견자란 매료와 증오를 동시에 품고 나가는 직업이라는 말을 이해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보낸 파견자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돌아오지 않은 파견자들이 있는지, 왜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감추고 찾으려 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형체와 목소리가 다른 그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지상은 오직 인간의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지상의 범람체는 제거의 대상이었다. 이제프가 태린에게 보여주고 싶은 지상의 아름다움도 그러했다. 범람체는 인간과 함께 살 수 없는 존재, 지구에서 사라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태린의 생각은 달랐다. 뉴로브릭의 오류라 여겼던 목소리의 존재, 쏠과 함께 살아가는 게 나쁘지 않았다.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자아가 깃들 수는 없어. 네가 혹시나 그것에게 마음이 있다고 믿을까 봐. 난 그게 걱정이야.” (109쪽)라며 이제프는 걱정했지만 태린은 뇌 속을 침입한 범람체인 쏠과 지낼 수 있었다.

 

인간이기를 고집하지 않고 범람체와 결합한 삶이 있다는 걸 인정했다. 그것이 미래의 삶이라는 걸 태린은 알게 된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삶이지만 여전히 삶이었고 지상에 그런 선택을 한 삶이 있다는 건 숨기고 감춰야 할 비밀이 아니라 모두가 알아야 할 일이었다.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먼지로 인해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지구, 그리하여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다른 목소리로 살아가는 존재가 있다는 걸 말이다.

 

더 이상 지상과 지하의 구분할 이유가 없었다. 태린이 쏠의 자아를 인식하고 그와 한 몸에서 지낼 수 있는 것처럼 범람체와 인간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했다. 누군가 그것을 거부하고 누군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무조건 거부하거나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다. 그것은 선택과 존중의 문제니까. 지금까지 김초엽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유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 무엇과도 공존하며 동등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인공지능, 돌연변이, 사이보그, 동물, 식물, 범람체(균류)이든 말이다. 대로는 흡수되거나 때로는 일부가 되어 다른 형태가 되었을 뿐 삶은 이어진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김초엽의 단편에서 만난 문장처럼.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방금 떠나온 세계』 수록, 「숨그림자」)

 

신비롭고 아름다운 소설을 읽으면서 범람체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존재, 나와 다른 존재와 살아가는 모습은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삶이라고 해서 그 삶을 부정해서는 안 되고 부정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내 삶이 역시 다른 형태의 삶이라는걸.

 

 

r*********s 2023.11.30. 신고 공감 31 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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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장편소설『파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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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장편소설 퍼블리온 출판   사람들은 범람체가 끊임없이 창궐하는 지구의 지상으로부터 떨어진 라부바와라는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인공 태린은 기억을 보강하는 도구이자 두뇌 보조 장치인 ‘뉴로브릭’ 부적응자이다. 광증은 아니지만 환청을 일으키는 존재, 이 뉴로브릭이 목소리를 들려줄 때마다 '쏠'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아가 있는 존재인지 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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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견자들』

 

김초엽 장편소설

퍼블리온 출판

 

사람들은 범람체가 끊임없이 창궐하는 지구의 지상으로부터 떨어진 라부바와라는 지하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인공 태린은 기억을 보강하는 도구이자 두뇌 보조 장치인 ‘뉴로브릭’ 부적응자이다. 광증은 아니지만 환청을 일으키는 존재, 이 뉴로브릭이 목소리를 들려줄 때마다 '쏠'이라는 이름을 붙여 자아가 있는 존재인지 파악하려 애쓴다.

 

지상으로 갈 수 있는 파견자가 되기위한 테스트 과정 중 갱에 갇히게 되는데 '쏠'의 도움을 받아 은빛 거미줄로 탈출한다. 하지만 '쏠'은 태린이 마지막 통과 채집한 광증 아포 샘플을 사람들에게 흩날리는 사건을 일이키며 태린은 도시에서 추방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태린은 범람화 된 동물은 같은 상태의 동물을 경계하지 않는 점을 이용한 '양치기 늑대’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지상으로 나가게 되고, 히로모 늪인을 만나게 되면서 과일마저 범람체가 된 곳의 풍경을 보게된다. 인간을 흡수한 범람체. 외계인들은 진동으로 언어를 전달하고, 표면 진동과 분자의 확산을 통해 세상을 감지한다. 범람체가 되면 자아도,영혼도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가지들, 연결망들을 통해 의식을 지닐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시작에서 태린이 3년전 라디오 방송을 듣는 옆집을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이 방송은 범람체들의 소통방식 중 하나였다!

 

죽음에 대해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직 나도 인간이기에 조금 무서울 것 같지만 계속 의식이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쏠과 태린은 각자 자아를 갖고 서로 몸을 공유한다. 태린 자신이 범람화는 되지 않지만 쏠이 보여주는 진동과 냄새와 시각과 촉각으로 전달되는 감각들을 느껴보는데 온갖 공간의 감각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을 해보게 되었다.

 

모두가 아니라고 죽여야 한다고 하는 존재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라면 나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태린처럼 그들과 공존이 가능하다 말할까. 이 세계도 혼돈이지만 각자의 종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들은 외계인이라고해서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이 가상 세계가 현실과 닮아 있었다. 이도 저도 아닌 이방인 같은 존재.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고독한 현대가 마치 태린이 지상도 지하 사이 고민하는 괴로움이 가득한 곳 같다.

 


 


 

 

○ 책 속 밑줄 긋기

 

라부바와는 광증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도시이지만, 하라판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그 위험에 자주 노출되었다. P35

 

왜 증오를 품어야 하느냐고? 살면서 한 번도, 왜 범람체에 대해 증오를 품어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그건 마치 인간을 절멸에 이르게 한 거대한 지진이나 해일 따위를 왜 증오하느냐고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사람들을 죽였으니까. 문명을 말살했으니까. 자유를 빼앗아갔으니까. 우리를 지하 세계에 가뒀으니까. 그리고 또……. P43

 

자아란 착각이야. 주관적 세계가 존재한다는 착각. 너희는 단 한 번의 개체 중심적 삶만을 경험해 보아서 그게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착각하는 거야. 우리를 봐. 우리는 개체가 아니야. 그럼에도 우리는 생각하고 세상을 감각하고 의식을 느껴. 의식이 단 하나의 구분된 개체에 깃들 이유는 없어. P241

 

마치 수많은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적으로 ‘나’라는 감각이 하늘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동시에 흘러넘쳤다. P371

 

이 삶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달라지리라는 것도.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앞서, 우리는 지표면에 선 우리와 같은 존재가 우리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너희는 미쳤고,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죽어 마땅하다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없는 곳. 고독해서 자유로운 곳. 아무것도 없어서 살아갈 수 있는 곳. P394

 

#파견자들 #김초엽 #장편소설 #SF소설 #퍼블리온 #베스트셀러 #책추천 #책스타그램 #읽을만한책 #독서 #내돈내산 #서평

k****9 2024.01.08. 신고 공감 26 댓글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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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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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증명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기껏해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인데, 미성년자의 경우는 그조차 없으니 자신을 증명하는 게 쉽지 않다. 나는 나인데 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 나라는 사람, 몸과 정신을 분리했을 때, ‘진정한 나’는 결국 정신인 걸까? 어느 날 내 안에 다른 아이가 들어왔다. 곰팡이의 균주처럼 들러 붙어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씩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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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증명하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기껏해야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인데, 미성년자의 경우는 그조차 없으니 자신을 증명하는 게 쉽지 않다. 나는 나인데 왜 나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 나라는 사람, 몸과 정신을 분리했을 때, ‘진정한 나는 결국 정신인 걸까? 어느 날 내 안에 다른 아이가 들어왔다. 곰팡이의 균주처럼 들러 붙어 나가지 않는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확대한다. 그리고는 내가 아닌 자신이 라고 주장한다.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라고 어떻게 증명 가능할까? 김초엽 작가의 신작을 읽었다. 이 작가의 책이 완전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좋아 무조건 읽게 된다. 쉽지 않은 주제지만 인간이라는 혹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아포(芽胞)로 가득한 지상 세계는 이제 사람이 살지 못한다. 사람들은 어둡고 퀴퀴한 지하에서 산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태린은 지상의 세상을 갈망한다. 황홀한 노을빛과 아름답게 빛나는 별들. 이것을 알려준 사람은 스승 이제프. 태린은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어 지상을 탐사하고 싶다. 파켠자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필요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태린은 다른 이들처럼 뉴로브릭의 도움을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늦게 시술을 한 탓인지 부작용으로 뉴로브릭 연결을 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린에게는 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광증 저항성을 가졌다. 그래서일까? 파견자 과정을 모두 마치고 시험만 남겨 둔 상황이다. 이런 태린에게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누군가의 목소리. 태린은 이 목소리를 무시하고 지상에서 이뤄지는 최종 시험에 응한다. 그러던 중 태린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큰일을 저지르고 이후 죽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데...

 

드넓은 우주에 인간만 생명체로 존재할까? 나는 아닐 것 같다. 어딘가에 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한 생명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다만 만나고 있지 않을 뿐. 그러나 이건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 어딘가에서 우주인의 조정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을까? 태어나 지금까지는 나는 나라는 것에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나니까. 하지만 그게 무엇이 되었건 무언가가 내 머리를 지배하려고 나를 혼란하게 한다면, 그래서 평소의 내가 아닌 행동을 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라는 사람의 범위는 또 어디까지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범위를 생각하게 되었다. 먼 훗날 외계의 다른 생명체가 지구에 왔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을까? 아니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처절하게 살아가게 될까? 많은 영화나 책은 미래를 암울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그래도 나아지기를,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덮었다.

 
이달의 사락 k*****3 2023.11.13. 신고 공감 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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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낯설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파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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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은 하늘을 향해 열린 곳이었다. 바람이 불고 빛이 쏟아지고 물이 순환하며, 태양과 달이 함께 타원을 그리면서 계절을 바꾸는 곳, 이끼들이 땅에 몸을 납작 붙여 자라고 그 위로는 키 큰 나무들이 밀림의 지붕을 이루는 곳]                                                                            -김초엽의 <파견자들> 중에서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곰팡이 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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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은 하늘을 향해 열린 곳이었다. 바람이 불고 빛이 쏟아지고 물이 순환하며, 태양과 달이 함께 타원을 그리면서 계절을 바꾸는 곳, 이끼들이 땅에 몸을 납작 붙여 자라고 그 위로는 키 큰 나무들이 밀림의 지붕을 이루는 곳]

                                                                           -김초엽의 <파견자들> 중에서 

 

인간에게 광증을 퍼뜨리는 곰팡이 포자로 가득 찬 범람체에 오염된 지상세계를 떠나 지하도시에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둡고 퀴퀴한 지하 도시로 떠밀려와 반쪽짜리 삶을 연명해가고 있다.

오염된 지구와 지하 세계 경계 사이를 지키면서 인간에게 유해한 생명체들을 채집하는 파견자에게 주어지는 명예와 부를 모두 빼앗긴 채 라부바와에서 가장 낙후된 이곳, 하라판 지구로 온 자스완은 원래 유능한 파견자 였지만 동생과 관련된 명령을 상부에게 강경하게 맞서다 파면 되었다.

그는 어린 태린과 선오를 홀로 키워내는 동안 절대로 지상을 누비던 파견자 시절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 한 번만이라도 지상으로 올라가고 싶은 태린은 상대평가로 치뤄지는 파견자 시험 공부에 몰두한다.

총 삼년 동안 혹독한 훈련과 학습 과정을 모두 통과해도 마지막 최종 시험 선발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이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지하 도시에서 파견자가 되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다.

 

[범람체의 숲은 때로는 바다 같고 때로는 사막 같았다. 새벽 하늘의 형형한 푸른색을 담은 범람 그물망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돌연 부드러운 은색 모래를 닮은 그물망이 나타났다. 범람체는 계속해서 빛깔과 형태를 바꾸어가며 이어졌다.]

 

발이 닿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그곳에 파견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 질러 가거나 하늘을 날아서 별들 가까이 까지 다가 갈 수 있다.

태린은 지하 도시 거주민들 중 어느 누구보다 지상을 갈망하며 파견자들의 스승인 이제프처럼 일렁이는 노을의 황홀한 빛깔과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들의 반짝이는 지상을 탐사하는 큰 꿈을 갖고 있다.

가장 어려운 광증 저항성 테스트에서 태린은 범란체에 의한 광증을 견디지 못할 경우 자아가 해체되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스스로 인지 하지 못한 채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될지 모른다는 사실에 뇌 시술인 <뉴로브릭>을 받고 싶어 한다.

뇌 시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지상은 오염 물질인 범람체가 창궐하는 곳으로 방어벽을 넘어가면 죽은 동물의 사체와 배설물들에서 분비된 썩고 부패한 세균 덩어리들이 인간의 몸에 달라붙어 숙주처럼 기생해서 결국 뇌세포까지 파괴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지구가 되었다.

인간들이 살 수 없는 땅에는 울창한 밀림과 맹수들이 활보하며 웬만한 무기로도 생명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위협적인 생명체로 진화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지상의 세계 마침내 파견자 선발 시험에 응모한 태린은 마지막 최종 시험을 앞두고 지상으로 올라간다.

생존 시험 당일, 트램을 타고 긴 통로에 들어선 태린은 과거에 범람체 유입 사고 발생으로 폐쇄 된지 오래된 출입금지 구역인 센다완 남부의 폐쇄 구역으로 들어간다.

드디어 폐쇄 구역의 문이 열리고 선발대원들 중에 중간 대열에 서 있던 태린은 헤드 랜턴의 조도를 약하게 맞추고 불을 켠다.

거미줄 같은 생명체가 방어복에 달라 붙어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태린 2차 관측 지점에 도착하자 마자 톱날 같은 범람 산호에 습격을 당해 정신을 잃어 버린다.

파견자의 꿈을 버릴 수 없는 태린은 심기일전을 하고 다시 선발대원 후보로 나선다.

최종 시험 당일 두 번째로 지상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이제 해저 통로를 통해 누탄다라 대륙까지 이동하면 마지막 그곳, 지상의 세계에 도착한다.

 

[에메랄드 빛 강 맞은편에 맹그로브 나무들이 붉은 호흡근을 뾰족한 이빨처럼 드러낸 채 줄지어 서 있었다. 선명한 자주색 범람 기둥이 불쑥 솟아. 긴 갓으로부터 아포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후각을 마비 시켜버릴 정도로 지독한 악취가 사방에 퍼져 있는 습지에 다다른 태린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빠른 속도로 이동한다.

선발대원들과 이들을 이끌고 있는 파견자들을 공격하는 범람체는 군집 형태로 범란 산호나 그물망 같은 모습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가서 상호 연결된 군집체로 서로의 움직임과 외부의 신호를 교환하며 역동적이게 분열을 반복하며 지구에서 자생하는 모든 생명체들에 붙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범람체에 장시간 둘러싸여 있으면 인간의 감각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광증 저항성이 높은 파견자들 조차도 무감각 상태가 된다.

드디어 태린의 귀에서 환청이 들리기 시작한다.

벌레 울음소리, 새들의 날개짓 소리 짐승의 울음소리

여기서 들리는 소리 인지 아니면 뇌의 환각이 불러 일으키는 소리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중간 목적지에 다다르자 범랑 그물망을 더욱 빽빽하게 퍼져서 바닥과 지상에서 점액질이 물결처럼 흘러 넘친다.

서서히 선발 대원들은 무감각 상태에 빠져 버리고 첫 출발 지점부터 중간 지점 그리고 마지막 최종 목적지까지 어떤 길을 뚫고 나아가야 할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현재 몇시 인지 지금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는지 조차 인지 하지 못하게 된다.

오로지 이들의 눈 앞엔 물결처럼 일렁 거리는 거대한 범람 그물망만 보일 뿐이다.

오염된 늪지대의 움막에서 기이한 모습으로 몸 전체가 변이 된 인간들과 마주친 선발대원들은 늪인들에게 포위되고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선발 대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늪지대를 벗어나 최종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모두가 죽었으리라고 짐작했던, 명예롭지 못한 불온 파견자, 도시에서 추방되어 늪인이 된 자스완의 동생 스벤

그리고 마침내 태린은 변이 된 늪인이 된 스벤과 마주한다.

 

내가 범람화 되었을 때 나는 범람체 연결망의 일부로 간주 되었다.

때문에 원래 인간을 먹지 않는 맹수들은 더 이상 나를 공격하지 않았지.

늪인들 역시 나를 그들 무리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나를 '스밴'이라고 불렀지만 ,

그건 이전에 도시에서 스벤이라고 불릴 때와는 다른 의미였어.

 

늪인이 된 스벤과 이야기를 나눈 태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 본다.

 

지하도시 라부바와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었던 하늘,마치 유화 물감을 떨어뜨린 것처럼 화려한 색채로 빛나는 지상의 풍경에 압도된다.

 

[이곳 늪의 범람체들이 연결망을 이루고 그래서 지성을 지닌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까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왜 태린만 그들과 대화가 가능한 겁니까? 저 늪인들도 범람체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는 업지 않습니까?]

 

늪의 범람체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 태린은 자아를 훼손하지 않고 연결망의 일부로 만드는 법을 배우고 변화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을 집어삼켜 분해 시켜버리는 무서운 늪지대에서 선발대원들끼리 의견 충돌을 일으키며 살의를 보이며 분열하기 시작한다.

태린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늪 속으로 들어가 버린 스벤.

그의 몸이 범람체들에게 분해되고 해체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태린은 겨우 늪지대에서 벗어난다.

비밀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프로 젝트에서 그동안 범람체들이 어떻게 연결망을 통해 정보와 신호를 주고 받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데이터를 확보해 두었다.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광증이 이미 발현된 인간 중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 실험에 착수 하지만 인간의 뇌가 범람체로 인해 변형 되었을 때 아무리 어린 나이에 아이라도 자아를 멀쩡하게 유지 하며 살아가지 못한다 것을 실제 실험을 통해 알게 된다.

다만 선오라는 이름의 소녀 만이 살아 남았는데 연구원들은 뇌 스캔 오류 일거라며 연구소에서 살아남은 실험체인 선오를 없애 버릴 계획을 세우지만 전직 파견자인 자스완이 강력하게 항의 하고 그 아이를 입양하겠다며 데려 가버렸다.

이런 실험에서 살아 남은 또 다른 아이 정태린 어떤 범람체의 침입에도 견디는 강한 내성 세포를 갖고 있었다.

 

-그 애는 겨울에 도착한 불청객이었다.

 

센터에 맡겨진 한 아이, 이 아이가 이곳에 오게 된다는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던 선오는 자신처럼 위탁 되었던 곳에서 지냈던 아이라는 사실에 설레임을 안고 아이를 기다린다.

'같은 경험'을 공유할 친구라 생각하는 선오는 가령 이런 경험들 '지하의 공기에서 느껴지는 불편한 감각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벽을 타고 전해지는 소리를 듣는 법을 나눌 수 있는 아니면 함께 숨은 지름길을 가로질러 도시 곳곳의 비밀스러운 장소로 갈 수 있는 친구가 생긴다는 생각만으로도 그 아이에게 누구보다도 잘 해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아이는 선오와 어떤 경험도 나누거나 공유 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대화 조차 거부 했다.

결국 자스완이 나서서 아이를 달래며 곧 이제프가 도착하면 너를 데리고 갈 꺼라는 말에 아이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한다.

-있잖아. 너, 나랑 같이 밖에 나가지 않을래?

-밖으로 가자. 네가 살던 베누아와는 다르지만 이 동네도 재밌어. 내가 벽 소리랑 바닥 소리 듣는 법 알려줄게. 정비 통로를 찾아내는 법도. 그걸 알면 아주 멀리 나가도 길을 찾을 수 있는데...

아이는 선오의 이런 말에 단호하게 거절 한다.

-필요 없어. 이제프가 오면 여길 바로 떠날꺼야.

아이는 파견자인 자스완을 통해 이제프의 도착하는 날만 고대 하고 있다.

아이는 이미 두 달 전에 아카데미 기초 과정에 입학하기 위해 무리하게 뉴로브릭 시술을 했다.

아이는 이제프와 함께 살 수 없다는 사실 조차 받아 들이지 못한채 스스로 파견자가 되고 싶어 한다.

정작 파견자인 자스완은 자신의 직업을 경멸하고 있다.

어떤 시술도 하지 않은 선오는 아이의 이런 반응과 결심을 이해 하지 못하고 결국 파견자 자스완이 발견하기 전 선오는 아이가 써 놓은 쪽지를 찾아 낸다.

 

나는 너의 일부가 될거야.

어떤 기억은 뇌가 아니라 몸에 새겨질 거야.

너는 나를 기억하는 대신 감각 할 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제 모든 걸 함께 잊어버리자.


오염된 지구에서 인간이 생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쥐고 있는 선오와 태린

범람체가 뇌 속으로 침입해도 자아가 해체 되지 않고 살 수 있는 두 사람과 다른 실험체들의 몸 속에 분리 약물이 주입 된다.

분리 수술 후에 살아남은 태린은 범람체와 공생 할 수 있는 온갖 잔혹한 실험 대상이 되고 폐기 처분을 하려던 중에 이제프가 태린을 데리고 와서 함께 살기 시작한다.

 

'이 아이는 별을 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다시 별을 향해 가게 될 것이다.'

 

이제프가 태린에게 바라는 건 이것 뿐이였다.

파견자 최종 시험 선발 대원에 이름을 올린 태린과 선오

이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연분홍색 노을이 비추는 그곳에 도착해서 마침내 파견자들이 될까?

 

[축축한 바람이 불어왔다. 범람 산호들이 붉은색 아포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공기에 달콤한 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오전 내내 고요하기만 하던 늪에서 첨벙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 세 명이 늪을 헤엄치고 있었다. 바위에 앉아 무언가를 기록하던 태린은 먼 곳에서 미세하게 움직여 자신을 부른 지반 가까이의 기류에 고개를 들었다. 늪에 들어가 있던 아이가 태린을 부르는 것이었다.]

 

경계지역 인구를 관리하게 된 태린, 오염된 도시에서 범람체에 노출된 이들이 경계지역으로 넘어 와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을 하게 된다.

태린의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수많은 소리들과 움직임, 열기와 재잘 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파도를 따라 입자들이 흩어졌다 공기 입자들과 만나면서 허공 속에서 무수히 많은 원을 그리고 있다.

이 원들은 하나의 모습이 되었다가 일그러졌다가 어느새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린다.

태린은 이 모든 공기의 흐름, 바람의 속도, 구름의 움직임을 느끼고 있다.

부드럽고 날카롭고 서늘하고 따뜻한 공기

온몸으로 느껴지는 빛의 세기까지

여전히 낯설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주로부터 불시착한 먼지로 인해 낯선 행성으로 변한 지구를 탐사하고 마침내 놀라운 진실을 발견하는 파견자들의 이야기

작가 김초엽은 '범람체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체에 속해 있지 않은 존재, 인간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는 존재를 상상하며 지구의 다른 생물들의 감각 세상을 한 편의 이야기 <파견자들>에서 펼쳐 보였다.

 

[인간이 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낯선 행성으로 바꾸어보자는 생각으로 쓰게 된 이 소설에는 어쩔 수 없이 내가 늘 마음을 쏟게 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이 호기심, 앞으로 나아가는 힘, 자신을 직면하는 용기를 들여다보고 긴 모험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김초엽

YES마니아 : 플래티넘 f*******d 2023.10.18.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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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은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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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다양한 내용으로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오랜만에 장편 소설이라 너무 기대가 되었고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하였습니다. 그냥 너무 좋네요 ㅎㅎ 글이 너무너무 잘 읽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글이었고 너무 신선하고 좋았어요. 김초엽 작가님 책이 더 자주자주 나왔으면 좋겠네요 ㅎㅎ 장편도 단편도 에세이도 다 너무 좋은 내용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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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다양한 내용으로 책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오랜만에 장편 소설이라 너무 기대가 되었고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매하였습니다. 그냥 너무 좋네요 ㅎㅎ 글이 너무너무 잘 읽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글이었고 너무 신선하고 좋았어요. 김초엽 작가님 책이 더 자주자주 나왔으면 좋겠네요 ㅎㅎ 장편도 단편도 에세이도 다 너무 좋은 내용이고 좋은 글이었어요
YES마니아 : 골드 m****6 2023.10.1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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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이 마침내 다다른 평화와 공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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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버섯이지, 하며 거의 매일 버섯을 먹던 날 중 하나, 이 작품을 펼쳤다. 김초엽 작가의 세계에 순식간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건 예상하고 기대했던 일이지만, 문자 텍스트가 이토록 현현하게 영상처럼 펼쳐지는 건 놀라웠다.   굳이 찬사를 보탤 필요가 없는 작가의 필력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설정이 아주 근원적이고 거대한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낯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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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버섯이지, 하며 거의 매일 버섯을 먹던 날 중 하나, 이 작품을 펼쳤다. 김초엽 작가의 세계에 순식간에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건 예상하고 기대했던 일이지만, 문자 텍스트가 이토록 현현하게 영상처럼 펼쳐지는 건 놀라웠다.

 

굳이 찬사를 보탤 필요가 없는 작가의 필력을 제외하고 생각해보면, 이 작품의 설정이 아주 근원적이고 거대한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낯선 환경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한 지구를 낯설게 하기, 인간은 집을 잃고 지하에서 생존 중이다.

 

범람체들은 바로 저 우주로부터 왔다. 한때는 인간이 갈 수 있고 소유할 수도 있다고 믿었던 먼 곳의 행성으로부터. 우주를 갈망하던 인간은 우주의 한 조각이 지상에 불시착하도록 만들었다.”

 

이 서늘한 두려움은 현실이 될 것 같기도 해서 더욱 무섭고, 놀랍게도 읽는 동안 서서히 옅어지기도 한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보면, 지구에서는 오랫동안 범람체가 지구상의 물질 - 생명 - 을 부패와 분해를 통해 변환시켜왔다.

 

한 존재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서사를 인식하는 것, 그게 자의식이야.”

 

자의식과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의 미토콘드리아도 단일 존재가 아니다.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실은 인간의 몸에 공생 중인 다른 존재들이다. 심지어 총중량은 인간 이외의 것들이 더 많다. 과학 지식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을 거듭할수록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존재론적 질문에 짓눌린다.

 

너희는 이미 수많은 개체의 총합, 하나의 개체로는 너희를 설명할 수 없어. 네 안에는 다른 생물들이 잔뜩 살고 있어.”

 

그 존재들은 너와 같이 살 뿐만 아니라, 너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의식이야말로 주관적 감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야.”

 

감정이란 개체 단위로 존재하는 생물들이 주관적인 신체 감각을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화적 도구이니까.”

 

결별할 수 없다면, 단독자가 될 수 없다면, 이미 탄생부터 생존과 사멸까지 모두 다른 존재와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의 유일한 존재 방식이라면, 그 존재들과 전쟁을 통해 한쪽만 살아남자는 어리석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유일한 방법은 공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생은 인간을 살리게 하지만, 다른 존재들은 인간을 꼭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이 될 지도 모르는, 어쩌면 이미 현실인, 어쩌면 언제나 역사였던 생태계 자체를 소재로 삼아, 지독하게 낯설게도 하고, 저항할 수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작가와 작품이 가진 힘이 엄청나다.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완전히 설득 당했다.

 

낯선 조우가 어느새 오래된 꿈만 같았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인정의 문제였다. 변이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망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의 삶으로 진입했다는 것.”

 

지구 단위의 공동체로서의 경험과 훈련, 미래를 통해 현재에 전하는 경고, SF 문학에서 늘 바라고 찾던 모든 것이 이 작품에 있다. 단선적이고 일방적인 설정을 가뿐히 뛰어넘어, 지구의 모든 시간이 어우러지는 듯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환각처럼 펼치며.

 

그런데... 뜻밖에도 나는 읽는 내내 사랑 때문에 많이 아팠다. 저릿하고 욱신거렸다. 맹목이고 진심일수록 어긋나기도 하는 사람, 그럼에도 사랑, 그래서 사랑. 그 단절에 그 방식의 폭력이 꼭 필요했을까. 많이 슬펐다.

 

그럼에도 작품 속 격발이 그쳤듯,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길, 마지막 문장까지 기대하며 읽게 된다. 아름답고 슬프고 다정하고 아프고 촉각적인이 작품이 인류 문명에 각인되듯 읽히길 바란다.

 

지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 있냐고.”

 

그야 당신이 오직 당신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환상을 버린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k****k 2023.11.0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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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지만 또 행복할 줄 알려면 [한국소설-파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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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궁금했다 SF 소설의 초반은 궁금해야 한다. 내 생각이다. 내용이든 사건이든 작가의 의도든 하다못해 새롭게 보이는 낱말 뜻에 이르기까지 무언가가 궁금해서 알고 싶어지는 게 하나씩 늘어나야 하는데 이게 또 비슷한 속도로 하나씩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읽고 싶어진다. 이 균형이 맞지 않으면 시시해지거나 따분해진다. 채 읽지 않았는데 다 알아 버렸다 싶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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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 궁금했다

SF 소설의 초반은 궁금해야 한다. 내 생각이다. 내용이든 사건이든 작가의 의도든 하다못해 새롭게 보이는 낱말 뜻에 이르기까지 무언가가 궁금해서 알고 싶어지는 게 하나씩 늘어나야 하는데 이게 또 비슷한 속도로 하나씩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계속 읽고 싶어진다. 이 균형이 맞지 않으면 시시해지거나 따분해진다. 채 읽지 않았는데 다 알아 버렸다 싶어도 안 되고 읽을수록 더 모르겠는 걸 싶어도 곤란한, 그래서 읽기를 그만두게 되고 마니까. 

 

적절한 분량과 속도로 궁금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지도 궁금했고 이들이 장차 하려는 일들이 무슨 일인지도 궁금했다. 막연하게나마 인물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퍽 고달프고 힘들어 보였는데 이 상황을 좀 더 낫게 바꾸려고 한다는 의지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어떤 쪽으로 향하는 것인지 서서히 알아 나가는 게 소설의 방향일 것이고.      

 

2부 - 조마조마했다

1부 마지막에서 주요 인물인 태린의 행동이 소설의 분위기를 아주 큰 위기로 몰아넣었다. 2부에서는 태린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 행동 때문에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태린을 얼마나 큰 위험 속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를 다루고 있다. 결과는 모른 채 사건의 진행만 이어지고 있는 상황, 내가 참 견디기 힘들어 하는 대목이다. 소설을 읽다가 이런 조마조마한 상황을 못 참으면 나는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확인해 버린다. 결말을 알고서 과정을 읽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어서, 편한 마음으로 읽고 싶어서. 

 

마일라와 네샤트와 함께 위험한 탐사 업무를 수행하러 떠나는 태린. 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나, 각자 또 서로서로 어떻게 대응해 가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마주하기 힘든, 오로지 작가가 상상으로 만들어 낸 가상 세계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한 문장 한 문장씩 읽는 동안 내내 두근거렸다. 조마조마했다. 주인공인 태린이가 죽지는 않겠지, 아니다, SF에서는 죽을 수도 있겠다, 아니다, SF에서는 내가 알고 있는 죽음과는 다른 차원이 나타나곤 했으니 태린이가 죽었다가 살아났다가도 할 수 있겠지, 도대체 태린이가 업무를 처리하러 나선 이 지상은 어떤 세상이란 말인가. 범람체라니, 미생물이라니, 의식이 흐르는 세상이라니.     

 

연구일지 - 놀라웠다

태린이가 왜, 어떻게 파견자가 되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계기와 과정이 담겨 있는 부분이다. 과학자들의 연구라는 게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고 싶지는 않지만(찾아내는 답이 대체로 내 마음에 들지 않은 탓에) 이 글을 통해서도 이럭저럭 그들의 노고를 헤아릴 수는 있다. 누군가는 연구를 해야 할 테니까. 사람을, 생명을 살리는 연구이든 그렇지 못한 연구이든.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한 연구가 아주 명확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3부 - 신비했다

사람의 생각 또는 의식이라는 것. 개인이 스스로의 의식 세계에 대해 알고 느끼고 있는 범위와 한계를 짚어 본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 생각과 네 생각. 내가 읽는 내 안의 생각과 내가 읽었다고 여기는 네 안의 생각들. 입장을 바꿔 보기도 하면서. SF 소설이나 SF 영화에서는 다른 사람의 머릿속 생각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잘도 등장하던데. 이게 상상 밖에서 가능한 일인지. 작가는 참으로 세심하고 아름답게도 상상해 놓았다. 이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길 정도로. 

 

그리고 이 모든 길에 사랑이,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그리워하는 마음, 그와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 살아서든 죽어서든 서로의 영혼이 닿았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마음. 상상으로 세상을 확대시키는 재주와 능력은 사랑하는 힘마저도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겠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j***6 2023.11.3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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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체가 알려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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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평화의 시대라고 떠들기가 무섭게,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크고 작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듯하다. 문명의 역사는 보여준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적을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변화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에, 권력을 얻기 위해, 인간들은 끊임없이 무찔러야 하는 적을 만든다. 그리고는 적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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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평화의 시대라고 떠들기가 무섭게, 지구촌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크고 작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듯하다. 문명의 역사는 보여준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적을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에, 변화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에, 권력을 얻기 위해, 인간들은 끊임없이 무찔러야 하는 적을 만든다. 그리고는 적에 대한 공격을 합리화한다. 적으로 규정된 존재에게는 무차별적인 물리적, 정신적 폭력이 가해진다.

 

적을 향한 공격이 엄중하게 이뤄지는 것에 반해, 인간이 적을 결정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달라서 낯선 것은 적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다른 인종의 사람들, 다른 나라의 사람들,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 다른 성별의 사람들, 다른 행동 양식을 따르는 소수자들, 그래서 낯선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고 만다. 낯선 존재를 향한 적의와 분노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생존에 더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낯설고 불확실한 존재는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지도 모른다. 이런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생존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낯선 것이 눈앞에 있을 때 편도체에 불이 켜지도록 진화했다.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우리 몸에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난다. 이성은 마비되고, 시야는 좁아지고, 각성 상태에 빠지면서, 우리 몸과 마음은 낯선 것과 싸울 준비를 마친다.

 

그렇다면 우리는 늘 긴장 상태로 있으면서 무언가와 싸우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인류 전체가 평화롭게 사는 건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불가능한 일일까? 평화를 얻으려면 우리는 본성을 극복해야 한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를 풀어야 한다. 낯섦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일이긴 한 걸까 

 

파견자들의 배경이 되는 미래 사회에서도, 우리의 후손들은 내면에 깊숙이 새겨진 본능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파견자들속 인류는 이름도, 형태도 낯선 범람체를 적이라 여기고 살아간다. 범람체는 어느 날 갑자기 지상에 나타난 외계 생물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할 때, 범람체는 의식은 없고 번성하고 퍼져나가는 본성만 지닌 물질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군집을 이루면 하나의 고유한 의식을 가진 지적 생명체처럼 군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범람체는 지구에 나타난 순간부터 지상의 모든 것을 뒤덮기 시작한다. 어떤 물질이 범람체에 노출되면 범람화가 진행된다. <파견자들의 인류는 범람화를 죽음으로 여겼다. 다른 생명체와 달리, 사람은 범람체에 노출되면 신체가 아닌 뇌에서부터 변이가 일어난다. 이 변이는 자아를 해체시키다가 끝내 그 사람과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죽게 한다.

 

 

  “발현자들은 처음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고, 자신이 속한 곳을 잊어버리며, 급기야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자꾸만 달아나려 한다. 때로는 벽을 뚫고, 바닥을 지나서 가려고 온몸을 막힌 곳에다 부딪히고 또 부딪히다가 스스로 죽어버린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깨려는 것이 벽이나 땅이 아닌, 다름 이들의 머리통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서서히 미쳐버린다.”(p.187-188)

 

 

파견자들에서 인류는 낯선 범람체를 피해, 죽음을 피해 지하에 터를 잡는다. 지상 세계는 온전히 범람체들의 것이 되고 만다. 지하로 피신한 인류는 범람체와 그것이 점령한 지상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다시 범람체로부터 지상 세계를 탈환할 계획을 세운다.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하는 파견자는, 인간이 지상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만든 새로운 직업이다.

 

파견자들은 예외적으로 지상에 올라갈 수 있다. 범람체와의 접촉도 어느 선에서는 허용된다. 지상으로 투입된 파견자들은 지상 세계와 범람체를 조사하는 일을 수행한다. 범람체를 파괴할 방법을 연구하고,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것도 파견자들이 하는 일이다.

 

파견자들의 주인공인 태린은 파견자가 되고 싶다. 태린은 파견자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다. 느낄 수는 없지만 머릿속에 내가 아닌 존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태린은 급기야 환청과 환각을 일으키는 머릿속 존재에 의해 몸의 통제를 빼앗기기도 한다. 태린은 그 존재에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통제해보려고 한다. 하지만 태린은 파견자 시험을 통과하기 직전에 에게 몸의 통제를 빼앗기며, 자신과 관중들까지도 위험에 빠트린다.

 

그 일의 대가로 태린은 지상에서 기지 설립예정지를 조사하는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에 태린은 늪인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범람화된 사람들을. 사람은 범람화가 시작되면 뇌부터 변하지만 늪인들은 달랐다. 온 몸이 범람체로 뒤덮여도 뇌만은 멀쩡했다. 범람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는데도 자아를 갖고 살아가는 늪인들의 존재는, 태린이 갖고 있던 범람체에 대한 상식을 뒤흔든다.

 

늪인들을 만나기 전, 태린은 범람체를 보면 본능적으로 역겨움을 느꼈다. <파견자들의 인류 대부분이 그렇듯이 말이다.

 

 

  “성인 남성 정도의 체격을 가진 시체는 형형색색의 범람체로 뒤덮여 있었다. 보라색, 빨간색, 파란색의 범람 산호들이 빼곡하게 자라나 언뜻 보아서는 의도적으로 조형한 전시물 같았다. 안구가 있던 자리를 꿰뚫고 자라난 버섯 모양의 범람 산호. 한때는 뇌였던 것의 형태를 모방하여 머리를 덮은 범람체는 역겨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p.71)

 

 

그랬던 태린은 늪인들을 만난 순간, 그들이 아름답다고 느낀다. 본능적으로 느낀 감정이었다. 태린의 상식대로라면 너무나 기이하고 이질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범람체는 역겨워야 했다. 아름다울 수 없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자신을, 그녀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범람화된 인간의 모습은 충격적인 동시에 어떤 종류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태린은 그렇게 생각한 스스로가 경악스러웠다.”(p.188)

 

 

늪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태린은 점차 범람체에 대한 상식을 의심하게 된다. 범람체는 끔찍한 존재가 맞을까? 범람체가 지상을 점령한 게 끔찍한 파국이 맞나? 태린은 의 목소리를 따라 스스로 범람체 속에 뛰어든다. 그곳에서 태린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의식을 갖게 된 범람체와 대화할 기회를 얻는다. 범람체의 사고방식은 인간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인간이 개체와 자아를 중심에 놓고 사고한다면 범람체의 방식은 이와 정반대였다. 범람체는 라고 확정지을 수 있는 개별적인 존재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기에 너희는 단수체가 아니야. (...) 너희는 이미 수많은 개체의 총합. 하나의 개체로는 너희를 설명할 수 없어. 네 안에는 다른 생물들이 잔뜩 살고 있어.” (p.182-183)

 

 

그렇기에 범람체는 인간이 목숨처럼 여기는 자아가 허상이라고 여긴다. 사람이 범람화되어 자아를 잃더라도, 범람체는 그것을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살게 된 것일 뿐이다. 범람체는 태린을 비롯한 인간들의 방식을 지적하지만, 자기 방법만 옳다고 고집하지는 않는다. 인간들의 이상한 방식을 존중하기로 한다. 그렇게 늪인들이 탄생했다.

 

 

  “늪인들. 우리는 그들과 결합하며 그들의 자아를 완전히 침범하지 않는 법을 배웠어. 우리가 처음에 인간들을 늪의 일부로 흡수했을 때, 그들은 개별적 개체로서의 자의식을, 자아를 소중히 여긴다고 알려주었어. 네가 설명했던 것처럼, 어떤 인간들은 완전히 소화되지 않고 자신의 자아 뭉치를 유지하겠다고 고집했지. 그래서 다음에 또 다른 인간들이 늪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천천히 그들의 몸으로 들어갔어. 뇌를 피해서 신체에 자리잡았어. 그러면 그들은 자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지상에서 살아갈 수 있어.” (p.243)

 

 

범람체에게 자아는 허상에 불과하지만, 자아를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의 방식을 바꿔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인간의 방식과 범람체의 방식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건 범람체의 본능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범람체는 끊임없이 가지를 치거나 흡수해서 뻗어나가는 본능을 갖고 있다. 본능대로 한다면 범람체는 인간의 뇌에도 자리를 잡아야했다.

 

본능을 극복한 범람체는 늪에만 있지 않았다. 태린은 늪에서 머릿속에서 계속 말을 걸어오는 이 사실은 범람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태린은 어릴 때 불의의 사고로 범람체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그 사고로 어린 태린의 머릿속에 범람체가 자리하게 된다. 태린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은 실험실로 옮겨져 관찰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범람체를 견뎌내지 못했다. 다들 광증에 걸려 이른 나이에 죽었다. 태린만이 달랐다. 태린은 머릿속에 범람체를 지니고도 문제없이 건강했다. 그 차이는 범람체를 대하는 태도에 있었다. 태린은 범람체에게 이름을 지어준 최초의 아이였다. 태린은 머릿속 범람체에 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소중하게 대했다.

 

 

  “아무튼 쏠에게 하루 두 시간 정도는 확 열어주는 거예요. 빌려주는 거죠. 그러면 아주 이상하고, 근질근질한 느낌이 나요. () 기분이 썩 좋지는 않죠. 그렇지만 전 그게 효과가 좋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일단 그렇게 쏠에게 몸을 빌려주고 나면 쏠은 짜증을 덜 내요.” (p.287)

 

 

본부의 명령으로 태린을 비롯한 아이들에게 범람체를 분리시키는 약물이 투여된다. 태린의 범람체 은 약을 먹고 고통스러워하는 태린을 위해 스스로 사라지기를 택한다. 범람체의 본능을 거스르고서.

 

반면에 인간은 낯선 존재를 위협으로 간주하는 본능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파견자들속 사람들은 범람체를 공존할 대상이 아니라 무찔러야 할 적으로만 여겼다. 인간과 범람체와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늪인들에게서 인류는 어떤 희망도 발견하지 못했다. 범람체와 마찬가지로 불결하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늪인들과 범람체를 모두 물리치고 인간이 다시 지상을 독차지하는 것. <파견자들의 파견자와 그들을 관리하는 본부는 극의 말미까지 오직 그 목표에만 전념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낯설고 다른 존재들과 계속해서 전쟁을 하듯이.

 

인간에게 본능을 극복하는 건 대단히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태린같은 소수의 사람만 본능을 이겨낼 수 있는 듯하다. 그에 비해 범람체는 너무나 쉽게 본능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인다. 늪의 범람체는 자아를 유지하고 싶다는 인간의 말을 듣고서 곧바로 뇌를 피해 자기화를 시작한다. ‘은 태린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느끼고 곧장 사라지는 쪽을 택한다. 범람체가 이처럼 쉽게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인간에게는 있지만 범람체는 없는 것. 그것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범람체는 나와 너를 구분 짓지 않는 생물이다. 범람체의 가지들은 증식하는 본능에 따라 독립적으로 뻗어나가지만, 모든 가지들은 상호 연결된다. 범람체가 흡수한 존재들은 하나로 연결된 범람체와, 범람체에 흡수된 다른 것들과 또다시 연결된다. 범람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만물과 연결 의식을 가진 범람체에게 인간은 없애야할 적이 아니었다. 인간은 범람체의 일부인 동시에 범람체 그 자체였다. 범람체는 인간을 위해 본능을 포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위한 일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범람체는 기꺼이 본능을 거스를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에 인간은 나와 너를 철저히 구분한다. 인간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되지 못하고, 다른 것 또한 결코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다른 종과의 연결성뿐만 아니라 같은 종간의 연결성도 부정한다. 다른 사람은 결코 내가 될 수 없다고 여긴다. 나는 오직 나일 뿐이다

 

우리가 범람체와 같은 의식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본능적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저 낯선 존재가 실은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라고 여길 수 있다면. 그때 우리는 낯선 것에 대한 경계를 풀 수 있지 않을까. 낯선 것과 싸우기를 멈추고 공존하는 길을 택하지 않을까. 낯섦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범람체의 방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면 우리가 진화의 산물임을 떠올리자.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단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분화되어 나온 진화의 산물이다. 너와 나,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은 태초에 하나였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에게 낯선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낯선 것과 싸울 이유도 없다우리는 마땅히 평화롭게 지내야 한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s*********2 2023.11.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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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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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_김초엽 딸내미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님 신간이다. 야호~ 안에 싸인도 있다. 책표지와 같은 담요도 샀다.제목만으로 내용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동안 여러 ○○자들이 다 재밌었기 때문인지도. 얼마전에 발광증 소설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광증이다.지하도시에서 지상을 꿈꾸는 태린이 파견자가 되기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쏠과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로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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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_김초엽

딸내미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김초엽 작가님 신간이다. 야호~ 안에 싸인도 있다. 책표지와 같은 담요도 샀다.
제목만으로 내용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동안 여러 ○○자들이 다 재밌었기 때문인지도.

얼마전에 발광증 소설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광증이다.
지하도시에서 지상을 꿈꾸는 태린이 파견자가 되기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쏠과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로 처음부터 SF입니다..하고 시작한다.

태린의 법적 보호자이자 어린 태린과 선오를 혼자 키운 자스완은 원래 유능한 파견자였다. 동생의 죽음과 관련된 일로 맞서다 파면되었다. 명예와 부를 빼앗기고 가장 낙후된 하라판 지구로 왔다. 어쨌든 소중한 딸에게 파견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태린과 달리 선오는 파견자가 되기를 원치 않고 지상으로 갈 편법을 찾는다.

뉴로브릭 부적용자로 드물게 아카데미에 입학한 태린은 여러 차례 유급 위기를 넘기고 광증 저항성 검사를 받는다. 낯선 목소리에 실수를 하고 불안감을 느끼지만 파견자 자격 시험의 첫 관문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고 문득 미묘한 느낌을 받는데...눈앞의 모든것이 흘러 내리고 태린은 정신을 잃는다.

상담사에게 환각얘기는 빼고 아슬아슬하게 시험에 통과한다. 찾아온 이제프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현상을 솔직하게 말한다. 초조해하는 태린에게 광증이 아니란다. 뉴로브릭..오래전 태린도 뉴로브릭 시술을 시도했었는데적응에 실패하자 제거하는대신 연결만 끊어 두었다고.

태린과 선오가 채광창 청소에 투입된다. 비로 인해 선오의 신호 찾기는 중단되고 선오는 목소리에게 이름을 붙여주라 한다. 문득 떠오른 이름 쏠. 태린은 쏠에게 접근하고 여러가지 반응에 대해 알아내는데 자신이 뉴로브릭이라는 자각이 없다.

전투 시뮬레이션 시험을 앞두고 이제프에게 연락이 오지만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오해를 감내하게 하기 싦어서 거짓말을 한다. 꼭 파견자가 되어 솔직해지고 싶어한다.

쏠에게 협박은 통하고 시험은 통과한다. 하지만 자의식을 가진 쏠의 분노는 매일밤 악몽을 꾸게하고 자신이 뉴로브릭이라는 사실을 거부한다.

결국 쏠에게 사과한다. 자신은 보조장치가 아니라는..뉴로브릭이라는 느낌이 없다면서 쏠이란다. 과거를 보여준다며 태린의 환각을 불러온다. 고통에 소리치는 태린은 어째서인지 자신의 내밀한 기억임을 안다.

올해 생존 시험은 폐쇄 구역. 응시생들은 폐광에 두려움을 느낀다. 앞선 조교의 범람체 측정기기가 요란한 경고음을 낸다. 하위권인 태린의 목표는 폐광에서 나가는 길을 가장 먼저 찾아내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선택으로 수직갱에 갇혀 발목까지 꺾여 인대가 늘어난다. 절망감에 눌려있던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쏠이다.

쏠의 안내로 구멍에서 빠져나온 태린은 쏠이 된 것 같은 이상한 경험을 하고 탈출에 성공해 세 번째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제프는 하나의 몸에 두 개의 자아가 깃들 수는 없다고 전하며 솔직하게 이야기 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대로 솔직해질 수 없다.

마지막 최종 시험은 지상 위 뉴클라키 도시다. 범람체로 가득한 지상에서 버틸 수 있는지, 난도 높은 장소의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가 미션이다. 감독관의 장치에 접촉으로 출발 지점을 배정받는다.

태린은 긴장이 아니라 두려움과 설렘으로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제프의 경고가 떠오른다. 파견자는 언제나? 지상에 대한 경이와 증오를 동시에 품어야 한다던.

범람체들이 속삭인다. 어서 가까이와 만지고 냄새맡고 먹어보라고...태린은 쏠과 함께 길을 찾으며 이제프의 경고가 마음에 걸렸지만 쏠의 능력을 빌린다.

거품 형태의 범람체를 채집하고, 위험해 보이는 범람 산호도? 채집도 성공한다. 이제 도착 지점으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 주위 풍경이 점점 흐릿해지고 마치 캔버스 위를 달리는 느낌을 받는다.

몸을 움직이는 건 태린이지만 통제하는 건 쏠처럼 느껴진다. 첫 번째로 통과하고 샘플만 제출하면 되는데..태린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범람체를 든 봉투를 사람들을 향해 찢고 있는 태린. 마음속의 분노가 이 도시를 불태우고 싶어한다.

여기까지가 1부이다. 연구일지와 3부로 이루어져 있다. 도대체 쏠의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태린은 그토록 원하는 파견자가 될 수 있을까? 미래세계는 어쩌다 이토록 처참한 세상이 되었을까? 이번에는 지구를 낯선 행성으로 만들어버린 김초엽작가님은 우주 저멀리에 왔거나 머릿 속에 쏠이 있거나..이번 작품도 신선하고 독보적으로다 SF다웠다.

#파견자들 #김초엽 #내돈내산후기 #SF소설 #대박소설
YES마니아 : 골드 f*******1 2023.10.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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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재미있다. 최고!생명체, 혹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나에게 낯설다고 하여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낯선 공간이 되어버린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책에 묘사되는 형형색색의 존재들로 뒤덮인 지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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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재미있다. 최고!

생명체, 혹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나에게 낯설다고 하여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있을까? 두려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낯선 공간이 되어버린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흥미로웠다. 책에 묘사되는 형형색색의 존재들로 뒤덮인 지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YES마니아 : 로얄 s********7 2024.09.1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