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고통의 순간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는 질문을
담은 엔도 슈샤쿠의 『침묵』을
읽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가장 인자한 얼굴을 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찌나
섬찟하던지 아직도 그 느낌이 잊혀지지 않는다.
험악한
얼굴을 한 사람은 경계라도 하지만,
어떤 의도를
가진 사람이 인자한 얼굴에 따뜻한 말로 위로를 건내며 더욱이 신뢰까지 쌓는다면 그 수중에서 빠져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런 사람을
장르 불문 사기꾼이라 하는데,
그런
사람에게 걸리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며,
심지어 자신
같은 사람도 걸리면 빠져나가지 못하니 제발 당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의 직업은
검사다.
검사라…우리 사회는
검사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검사를 단지
직업군의 하나로 보았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반응을 뒤집으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반증일 테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말일 테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검찰 수뇌부가 '뼈를 깍는
심정으로 새롭게 하겠다'는 말을
하도 많이 써서,
더 이상
깎을 뼈도 남아있지 않다는 어느 검사의 자조적인 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웅도 일부 검사 때문에 싸잡아 욕 먹는 상황을 꽤 억울해 한다.
한데 참
재미있는 현상은 그렇게 욕을 하면서도 사람들이 검사가 글을 쓰면 읽어준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궁금증의 발로는 아닐까 싶다.
그러면 나는
왜 읽었느냐,
소개 글 중
생활형 검사라는 말에 꽂혀서이다.
요즘 들어
새롭게 추가된 내 삶의 기준 중 하나가 재미인데,
『검사내전』은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충족시켜준 책이었다.
김웅은
자신을 가리켜 당청 꼴찌,
팔랑귀,
맹탕,
또라이라
칭하며 선배 검사에게 또라이에서 '집요한 또라이'로 승격되어 불렸다는 것도,
피의자에게
'의식없는 검사'라 불렸다는 것도 적는다.
자신의 수사
스타일을 보고 동료 검사가 '구걸수사의 달인'이라 불러주었다는 것도 서슴지 않는데,
이 뿐
아니다.
자신이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요,
안다니
똥파리'라는 우스꽝스러운 말도 능청스럽게 한다.
게다가
자신은 어릴 때부터 온갖 병을 두루 섭렵했으며,
백만 문청
중 하나라 출판사가 책을 내자는 제의를 했을 때 회가 동했음도 솔직히 고백한다.
김웅은
자신이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 직장 생활이 늘 순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검사를 하면서 별 탈이 없었던 것은,
검찰이라는
조직 문화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김웅은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이 되어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하겠다'는 선배
검사의 소박한 이야기를 가슴에 담은 듯 하였고,
그 또한
자신의 위치를 생활형 검사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생활형
검사는 형사부 소속의 검사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말인듯 하다.
"검사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또 남의
말을 절대로 안 듣는 직업이기도 하다.
검사라는
직업이 참 맹랑한 게,
어서 말을
하라고 하고서 정작 말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윽박지르곤 한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는 것이다.
늘 술래
역할만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나는 수사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남의 말을 잘 듣는 능력을 가졌다.
의심스럽겠지만
'경청하는
법'이라는
주제의 강의도 했다."
(138쪽)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경청이
중요하니 어쩌니 해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검사실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사받는
피의자의 말도 거짓말이고,
돈을 바라고
고소한 것은
아니라는 고소인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하면 다
밝혀진다고 위협하는 검사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해서 다
밝혀질 거라면 굳이 사실을 실토하라고 수고롭게 설득할 리 없다.
그래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무렵 나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139~140쪽)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남의 말을 잘 믿고 잘 속는 나로 복귀했다.
잘 믿고 잘
속는 것은 그리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비웃었던
남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많이
부끄러웠다.
그래서 나는
말도 많은 편이지만 어떤 사람의 말도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잘 쳐준다."
(140쪽)
잘 읽히는
책이다.
편하게
읽히기도 하고,
주의 깊게
읽으면 더 좋은 곳도 꽤 많다.
읽다보니
검사직의 애환도 조금 알겠다.
조직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건데,
김웅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다면 억울하게 해를 입은 사람들은 위로를 받겠다 싶다.
물론 안
마주치는 게 좋겠지만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지않는가.
그런데 그
자리는 지푸라기가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의 사회적 생존권을 쥐고 있는 자리 아닌가.
나는 사람이
답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람이
재앙인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사람이 답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답이다.
이렇게
사람이 넘쳐나는데도 늘 사람을 찾는
걸 보면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서두에
말했듯 인상 좋고 원하는 것을 다해줄 것처럼 말 풍년인 사람을 나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좋은 자리에 있음에도 자신의 별 볼 일 없음을 편히 말하는 사람이 좋다.
그렇게
말한다고 그를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겠는가.
세상 물정
모르고,
실속
없기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나지만 자신을 소탈하게 말했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조차 모르진 않는다.
"나는 그녀의
어리석음에 왈칵 짜증이 났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그녀의 진심에 그만 부끄러워졌다.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운 사람임에도 그녀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그녀에게 "아이고
죽네,
죽어"라고 말했던
경박함이 부끄러워진다.
어릴 때
동네 아이들로부터 따돌림 당한 기억 때문인지,
주변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무작정 흉내내보려 하다 보니 점점 경박해졌다.
사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나 반응을 보이더라도 내 얕은 수준에서 쉽게 판단하기보다 좀 더 기다려보고 존중하는,
성숙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남의
말을 잘 믿어주는 것과 달리 그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165쪽)
김웅만
그렇겠는가.
누구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이제 나도
마무리를 해야겠다.
김웅이
그다운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으니,
나는 기가
막히게 내 마음을 표현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저자이며
이 책의 추천사를 쓴 김민섭의 글로 대신하련다.
"아,
역시 잘하는
놈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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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가 쓴 [개인주의자 선언]과 [판사유감]을 읽고 나니, 이번에는 현직 부장검사의 책이 손에 들리게 되었다.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현직 판사의 글이 전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읽힌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는데, 이제는 현직 검사의 책이라니. 다음에는 변호사의 책을 읽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법연수원 성적으로는 단연 판사가 검사보다 뛰어나겠지만, 이 책 [검사내전]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검사를 직업으로 가진 저자의 글은 얼마전에 읽었던 현직 판사의 글에 비해 상당히 인상적이다. 전에 읽었던 책을 떠올리자면, 김 훈의 [라면을 끓이며]가 떠오를 정도로 치밀하고 탁월한 묘사와 표현은 읽는 내내 밑줄을 치게 만든다. ‘필사라도 해서 이런 표현을 내 것으로만 만들 수 있다면’ 하는 바램이 들 정도로.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더 킹]에서 나오는 검사들의 힘(?)과 ‘가오’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생활형 검사]의 사람과 세상 공부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소박한 직업인으로서의 검사를 재미있게 소개한다. 4대 권력기관에 속하는 검찰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을 깨는 일종의 폭로(?)일지도 모르는 글에서 저자의 인간적인 품격과 소신이 느껴진다. 저자에 따르면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의 모습과 현실 사이에는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할 수 있을’ 만한 간격이 있다고 한다. 그런 검사들의 실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법의 수호자로서, 범죄를 단죄하는 심판자로서의 직업적 소명을 가지면서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저자에게서는 사람 냄새가 진하게 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철학이 몸에 밴 까닭일까. 아니면 범죄로부터 정신적 물질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모습에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되어서일까. 저자는 검사라는 직업을 통해 많은 사건을 접하면서 특히 사기공화국이 된 우리나라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사기 피해자 뿐 아니라 죄를 짓게 된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들도 풀어 나간다. 사기를 저질러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해 재수(?)없이 걸려서 받는 법적 처벌이 크지 않다는 가성비의 논리가 사기범이 범람하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내용에서는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검사로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된 범죄의 단면과 속성을 자세히 설명한다. 국민들이 어떤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지를 통계적 숫자를 통해 알려주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의 심리와 범행동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독자들에게 그것과 연관되는 방어기제를 제공한다. 법을 집행하는 일의 특성상 범죄자와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에 있겠지만, 중립적인 관점에서 범죄자의 모습과 삶, 그리고 범죄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동시에 지켜보면서 느끼는 인간적인 고뇌를 엿보게 된다. 휴머니스트라고 해야할까? 이런 고민의 흔적에서 냉철한 이성과 판단으로 단죄하는 검찰의 모습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얻게 되는 압박감과 고민을 공감하게 된다. 검사의 사생활과 검찰청 내부에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는 현실 속의 검사의 모습을 독자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재미를 자아낸다. 나름 성실하지만 일만 하는 것을 불신하고 늘 게으른 것을 동경한다는 저자 김 웅. 저자는 고백하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지만 싫어하는 것은 명확해서 [떼로 하는 것]은 거의 다 싫어한다면서 밥도 구내식당에서 혼자, 술도 혼술, 등산도 혼자한다는 일종의 ‘독고다이(?)’체질인 듯 하다. 그런 성향의 검사가 폐쇄적이면서도 위계질서가 명확한 검찰조직에서 좌충우돌하며 겪게 된 체험기를 들려주면서, 자신이 이룬 검찰 조직에서 대형 사고(?)를 친 전설적인 일화도 소개한다. 성장과정에서의 일화, 검찰이라는 조직내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읽는 내내 웃음과 공감을 동시에 얻게 되는 재미있는 대목들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법의 본질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검찰의 일이 많다고 하지만 결국 우리 사법 제도의 핵심이자 대들보는 법원이라고 단정한다. 아무리 큰 보름달이라도 흐린 해보다 밝을 수는 없다면서, 검찰의 업무가 형사 사건에 국한된다면 법원은 민사, 형사, 행정, 특허, 가사, 소년 사건 등을 모두 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에 대한 존중과 그 지위를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그런 취지가 아니었다. 형님이 먼저 본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었다. 우리나라 사법 제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제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사법 제도 개혁의 핵심은 법원의 개혁이라 강조한다. 대들보 썩어 가는데 마루만 바꾼다고 새 집이 되는 건 아니라면서. 법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한 이유로 법원의 순혈주의와 무오주의를 꼽으면서, 특히 우리나라 재벌의 횡포가 이렇게 극에 달하게 된 데에는 법조계의 책임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최근 10여년 동안 10대 재벌 그룹의 총수 중 7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실형을 산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모두 집행유예로 나왔고, 더욱 놀라운 것은 재벌들 모두 법원에 가기 전에는 대부분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중병이 들었는데, 재판이 끝난 후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멀쩡해졌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전에 상영된 영화 [내부자들]에서 휠체어 탄 재벌 총수의 모습이 떠오르게 된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 법원은 앉은뱅이도 일으켜 세운 예수님과 동급이라고 돌직구를 날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국민들 사이에서 의심이나 확증이 아닌, 당연한 것으로 체념의 단계까지 이르면 그 사회는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는 반칙과 편법이 무언가를 이루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강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사회는 대중의 분노를 견디지 못할 것이고, 결국 그 사회는 위태롭고 존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저자 김웅 검사의 견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정치적 신조를 국민앞에 약속하지 않았나 싶다. 중요한 가치이자 건전한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밑줄을 친 이유는 공감하는 대목만이 아니라, 나중에 꼭 한번 참고해 써볼만한 기발한 표현과 비유, 적절한 묘사가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교본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유려한 문장들이 매우 많다. 표현의 미학을 넘어 묵직한 임팩트가 실린 저자의 글은 공감과 재미,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검사에 대한 편견과 무지를 걷어버리게 되고,생각해 볼만한 현실 속의 주제에 대한 비평적 시선을 갖게 해주며, 참신한 표현에 미소지으며 저자의 가치관에 수긍하게 되는 의미있는 독서였다. |
'검사'는 판사보다 변호사보다 냉철하고 기름기 없으며 권력지향적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제목까진 영화 제목 패러디 느낌 물씬 나는 것이 뭐라도 진지하면서 긴박한 법조 이야기가 담겼나 싶을 무게를 느꼈지만 표지를 보는 순간 훨씬 가볍고 내 주변에 있을만한 평범한 인물이 법복만 걸친 느낌이랄까. 부제목에 달린 '생활형 검사'라는 말을 보니 그걸 참 잘 나타낸 그림이구나 싶다.
에세이에 빠져살고 있는 요즘이지만 의학에세이나 법조에세이는 접하기 어려운 분야여서 읽어본 적이 없었다. 특히 법조계 쪽은 변호사의 에세이는 많은 편이지만 현직 검사의 에세이는 보기 드물다. 예전 금태섭 정도? 아마도 현직에 있다는 부담감과 정말 바쁜 직업군이기도 한 이유가 클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 검사는 권위와 권력과 명예의 상징이다. 그래서 아무리 젊은 검사라할지라도 그 앞에선 정치인도, 나이 많은 사람도 고개를 숙이고 잘 보이려한다는 걸 영화 또는 드라마를 통해 배웠다. 검사가 주는 무게감이 익히 배인 나는 그 바쁘신 검사 나리님께서 어이한 일로 책까지 쓰셨나 싶어 읖소하며 읽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첫 이야기부터 휘리릭 빠져들며 내내 낄낄대며 읽었다. 영화에서 보던 그런 멋짐은 없는 검사 이야기였다. 김웅 검사의 유머는 본인이 묘사한 글을 통해선 도저히 상상이 안되는 그런 재능이었다. 평상시에도 유머가 있는 분일까? 글에서 뿜어대는 웃김과 허당기질은 영화가 만든 허상의 검사에 내가 이제껏 놀아났구나 하는 허탈감을 느끼게도 하였다.
첫 장부터 나오는 사기꾼들의 이야기는 사기 몇 번 당해본 나로서도 아, 이정도야? 싶을 정도로 집요하고 천연덕스럽다.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사람이 검사일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생 노가다 같기도 한 직업이었다. 수천 페이지, 수만 페이지의 사건 일지와 증거자료를 읽어대는 것, 무식하게 자료 수집하고 복사해서 퍼즐을 맞추는 것, 김웅 검사 말처럼 시간과 체력만 있으면 수사할 수 있다는 단순함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내고야 마는 집념으로 투영되기도 했다. 그의 수사 방식이 단순무식하다고만 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후반부로 가면 법철학적인 이야기가 자칫 에피소드, 사건 위주 이야기로 가벼울 뻔한 책에 무게감을 가득 안겨주었다. 진지하다 못해 하품까지 나긴 했지만 진짜 김웅 검사의 모습이 여기에도 담겨있다 생각하며 억지로 활자라도 읽긴 했다. 반은 알아 듣고 반은 흘리면서. 어쨌든 검사라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은 대단하신 분들 맞다는 것은 확실히 확인했다. 그리고 냉철함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미도 있다는 것도.
수사가 끝나면 늘 쓸쓸하다. 수사 과정에서 직면해야 하는 인간의 비열함과 추함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54쪽) |
검사내전 김웅 부키/2018.1.9. sanbaram 우리 주변에는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검사와 같은 특정한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직업인이지만 그들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생활이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요즘처럼 미투 운동으로 각계각층의 성차별적인 비리가 불거져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때는 경직되고 위계질서가 뚜렷한 권력을 가진 집단의 생활이 주목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용기를 내서 <검사내전>을 세상에 내놓아 20년 가까운 검사생활의 애환과 실상을 일부분이라도 공개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된다. 저자는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창원지검 진주지청 등을 거쳐 현재는 인천지검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검사내전>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거악을 일소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나사못 역할이나 제대로 해보자고 선의를 불태웠던 시절 아쉬움의 일부를 기록한 것이라면서 4부로 나누어 경험을 기술하고 있다. 1부 ‘사기 공화국 풍경’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기 수법과 그런 일이 생기게 되는 원인을 짚어본다. 그리고 2부 ‘사람들, 이야기들’에서는 잘못된 선택으로 범법자가 된 사람들의 예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3부 ‘검사의 사생활’에서는 검사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의 기술을 통해 잘못된 일면을 바로 잡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4부 ‘법의 본질’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으로 3권 분립된 우리의 헌법이지만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지만 행정부 수반의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 좀 더 발전된 사법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치타는 그 경주에서 지더라도 또 뛸 수 있지만 가젤은 그렇지 않다. 경주에서 지면 다시는 뛸 수 없다. 먹기 위해 뛰는 것과 죽지 않기 위해 뛰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p.23)” 사기꾼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죽지 않기 위해 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백 명의 사기꾼을 상대하는 검사와 단 한 명의 검사만 상대하는 사기꾼의 싸움은 녹록한 승부가 아니라고 검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라들을 노린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냐고 안심하지 마시라.(p.86)”고 말한다.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알아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주변의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주는 것은 없다. 대신해주겠다는 사람은 대개 브로커다.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청년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교수나 종교인도 정작 관심은 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정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기의 주연일지 모른다고 한다. “평소처럼 밤늦게 야근을 하고 있는데 차장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장검사가 법원 판사들과 회식을 한 모양인데, 2차로 간 술집에서 흥이 과했던지 법원 수석부장판사와 내기를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각자의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를 내기한 것이다.(p.239)” 부르기만 하면 마냥 달려오는 것을 바랄 거면 개를 기르면 된다. 아무튼 차장검사는 저자에게 검사들에게 연락해 나오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각 부처 총무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뒤에 계속 사무실에 남아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권위주의적인 행태는 사라져야 할 관행이라 생각된다. 이제 검사 사회도 유연하게 변하여 창조적인 조직이 되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법률가들의 비판 중에는, 과학기술은 소수가 독점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소수가 독점하기 때문에 비민주적이라고 한다면 법조야말로 가장 비민주적이지 않은가?(p.299)” 기계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신성모독이라는 위협은 이미 인쇄술 논쟁에서 허구라는 것이 밝혀졌다. 신호등이나 등대를 따른다고 설마 인간의 존엄성이 상처 입겠는가. 악마의 속삭임이라는 인쇄술이 인류에게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주었듯 인공지능은 인류에게 공평한 법 적용이라는 신천지를 최초로 선사해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말한다. “헌법과 달리 우리는 국민이 행정권과 입법권만 행사하는 3분의 2민주주의인 것이다. 그래서 어떤 대법원장은 판결과 판사에 대한 비판은 사법부의 독립에 대한 공격이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어떻게 주권자인 국민이 판결을 비판할 수 없는가?(p.355)” 그러나 서구 법조인들은 우리나라 법조 체계를 보며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판사 임명 제도에 대해 놀라워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워하는 것은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이라는 핵심 사안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상황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27조에서는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고 있고, 재판에는 당연히 헌법소원도 포함된다. 따라서 헌법소원에서 법원의 판결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은 헌법에서 정한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또한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법원에 특권을 부여한 것이고, 재판으로 기본권을 침해받는 국민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다.(p.360)” 이와 같이 지적하면서 사법개혁을 하려면 이제는 모두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도록 장치를 갖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원의 판결, 결정에 대해서도 불복할 수 있어야 하고, 헌법재판소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재판소원이 부당한 속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사처벌은 진통제와 같다. 자꾸 먹다 보면 내성이 생기고 점점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너무 많은 형사처벌로 인해 범죄 간의 경중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기 쉽다.(p.376)” 그래서 처벌 대상은 줄이고 정작 본질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공평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것을 법대로 하자고 하는 우리의 의식을 비판한다. 앞으로는 화해와 합의를 먼저 시도하는 관행이 다시 활성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에서 저자는 검사조직사회에서 약간은 다른 견해를 가진 생활을 통해 우리의 잘못된 인식이나 관행을 지적한다. 좀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기의 정당한 권리를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불로소득을 노리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좀 더 나은 내일의 사회를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
<검사내전>의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거악을 일소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나사못 역할이나 제대로 해보자고 선의를 불태웠던 시절 아쉬움의 일부를 기록한 것이라면서 4부로 나누어 경험을 기술하고 있다. 1부 ‘사기 공화국 풍경’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사기 수법과 그런 일이 생기게 되는 원인을 짚어본다. 그리고 2부 ‘사람들, 이야기들’에서는 잘못된 선택으로 범법자가 된 사람들의 예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3부 ‘검사의 사생활’에서는 검사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의 기술을 통해 잘못된 일면을 바로 잡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4부 ‘법의 본질’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으로 3권 분립된 우리의 헌법이지만 사법부의 독립이 필요함을 역설하면서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지만 행정부 수반의 영향을 받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 좀 더 발전된 사법부가 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치타는 그 경주에서 지더라도 또 뛸 수 있지만 가젤은 그렇지 않다. 경주에서 지면 다시는 뛸 수 없다. 먹기 위해 뛰는 것과 죽지 않기 위해 뛰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p.23)” 사기꾼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죽지 않기 위해 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백 명의 사기꾼을 상대하는 검사와 단 한 명의 검사만 상대하는 사기꾼의 싸움은 녹록한 승부가 아니라고 검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라들을 노린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냐고 안심하지 마시라.(p.86)”고 말한다.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나름대로 알아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주변의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주는 것은 없다. 대신해주겠다는 사람은 대개 브로커다.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청년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교수나 종교인도 정작 관심은 돈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정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기의 주연일지 모른다고 한다. “평소처럼 밤늦게 야근을 하고 있는데 차장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장검사가 법원 판사들과 회식을 한 모양인데, 2차로 간 술집에서 흥이 과했던지 법원 수석부장판사와 내기를 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각자의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를 내기한 것이다.(p.239)” 부르기만 하면 마냥 달려오는 것을 바랄 거면 개를 기르면 된다. 아무튼 차장검사는 저자에게 검사들에게 연락해 나오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각 부처 총무 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뒤에 계속 사무실에 남아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권위주의적인 행태는 사라져야 할 관행이라 생각된다. 이제 검사 사회도 유연하게 변하여 창조적인 조직이 되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
'마주한 사람과 만난 세상을 통한 검사의 인생공부' 검사내전이라니?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전국적으로 하나의 통일적인 조직체의 일원으로 상명하복의 관계에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검사동일체 원칙의 검사조직에서 왠 내전이란 말인가? 하지만 검사들간의 전쟁은 아니다. 검사내전은 저자이자 검사인 '김웅'의 전쟁같은 검사생활을 통한 사람공부, 사회공부의 이야기다. 검사란 사건을 수사하고 범죄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피의자를 법원에 기소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법관이다.
쉽게 생각하면 범죄를 지은 자에게 판사로 하여금 구형을 요청하는 정의의 사도이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 소설등의 대중매체에서 접하는 검사의 이미지는 정의의 편이라기 보다는 악의 수족이 되어 힘없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존재에 가깝다. 나만 그런가? 순전히 나의 주관적 판단일수 있지만 '검새, 떡검'이라는 풍자어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것 같다. 김웅 검사의 '검사내전'은 현직 검사인 그가 만났던 수많은 사건, 피의자, 피해자의 이야기, 검사라는 조직생활의 에피소드, 그가 생각하는 법의 본질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책의 특징은 김웅 검사 특유의 위트 넘치는 문장들과 폭넓은 지식체계이다. 특히 얼마나 재치가 있던지 독서시간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한다. 도서관,독서실같이 정숙을 요구하는 장소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주의바란다. 또한 자칭 또라이라는 김웅 검사의 표현대로 이 책에는 검사 내부의 불합리에 대해 직설적으로 성토하는데 읽는 내가 다 움찔할 정도로 적나라하다. 이렇게 약자를 챙겨줄 수 있도록 타인에 대한 공감력이 좋은 사람이 오래오래 높은 직위까지 검사생활을 해야 되는데 걱정이 될 정도다. 이 책의 수많은 사건과 사람을 통해 나는 여러가지 감정의 흐름을 경험한다. 내가 사는 세상속에 만연한 나쁜 인간들에 대한 분노, 나쁜 인간들로 인해 고통받는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 다행히도 나는 나쁜 인간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김웅 검사를 비롯한 사법조직의 역할에 대한 대리만족이 그것이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엿본 검사조직,업무,인간관계를 보니 '일반적인 회사생활과 큰 차이가 없이 검사도 결국 사람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경계심이 풀어진달까. #김웅 #부키 #검사내전 #검사 |
솔직하게 말하겠다. 나는 추천사부터 읽는 사람은 아니다. 그 정도의 기다림마저 인내할 수 있는 위인이 못 된다. 책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곧바로 본문으로 넘어가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 몇 장을 채 넘기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본문을 아직 읽지도 않았는데, 벌써 책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게 될 줄이야! 김웅 검사를 통해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나는 어떤 물음표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 어떤 눈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있다. 현직 검사가 말하는 검사의 삶이라고 해서 관심이 있었던 <검사내전>. 심플한 표지. 아무 표정 없는 일러스트로 처음 만난 검사의 삶이 궁금해서 집어 들었다. 대한민국 ‘검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사실 몇 개 있었다. 두꺼운 안경 너머로 벽돌보다 더 두꺼운 책들을 밤늦은 시간까지 스탠드 하나 딱 켜놓고 읽는, 진한 다크서클에 커피 없이는 못 사는, 그런 사람. 그런데 <검사내전>을 읽으니까 생활형 검사라고 박박 우기기는 하지만, 공부만 잘할 것 같은 이미지의 검사에게 엄청난 유머 감각과 필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빌 게이츠의 명언을 기억해냈다. Life is unfair! 삶은 불공평하다는 걸.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불쾌해진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 들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검사내전>은 유쾌했다. 피식 웃을 수 있을 만한 아재 개그도 있었다. 확실히 비꼬는 김웅 작가의 어마무시한 필력 때문인 걸까, 아니면 무릎팍 도사도 무릎 탁 치고 갈 만한 표현력 때문인 걸까. 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유쾌함 속에 숨겨진 씁쓸한 이 감정은, 꼭 다크초콜릿 같았다. 자가 치유 능력을 가진 김 씨나 엉덩이에 정맥이 있는 플래시도 돌연변이였지만,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공감과 책임감을 완전히 벗어버린 그야말로 진정한 돌연변이였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만 같은 돌연변이들을 마주하고 그들과 함께하게 되면, 정말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은데. 김웅 검사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놓아버리지 않았다. 정말 뻔하게 들리겠지만, 그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다. 돌연변이들에게까지 믹스커피를 타줄 만큼 인간적이었고, 돌연변이를 돌연변이라고 부를 만큼 대범하기도 했다. 참 감사하게도 검사를 마주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가지고 있었던 검사의 이미지를 좀 더 사람다운,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준 <검사내전>. 제발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마시라. 피해자도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된 우리나라 국민이지만 실제로는 2등 국민이다. 안타까운 현실도 있는 그대로 그려내고, 때론 사실로 뼈를 때리는 김웅 검사. 현직 검사가 법률서비스는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며 안 받을수록 좋다고 말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고, 법의 속성이자 한계, 숙명까지도 얘기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여러모로 내가 그려온 검사와는 꽤 거리가 있었다. 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검사내전>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대한민국 법조계의 현실이 생각했던 것보다 각박하다는 것, 하지만 김웅 검사와 같은 생활형 검사도 존재한다는 것일 것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세계 평화처럼 허무맹랑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부디 피해자가 빛을 보고, 가해자가 응당한 벌을 받아 정의가 구현되는 날이 오길. 진 꽃은 다시 필 수 있지만, 꺾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하니까. |
기선에서 밀리면 끝까지 밀리는 법이다. 병아리 때 쫓기면 장닭이 돼도 쫓긴다. 케네스애로가 말하길 모든 상거래에는 신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신뢰관계는 경제활동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데, 상호 신뢰가 결여되면 세계 경제까지 지체된다는 것이다. 가젤은 목숨 걸고 뛴다. 그래서 치타라도 잡기 힘들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뛰지만 때때로 가젤을 놓친다. 그래도, 가젤과 결탁해서 일부러 놓아주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정치와 권력의 힘은 성층권에서 행사되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무서운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지구의 왕인 개미를 잡아먹는 개미귀신이라는 벌레가 있다. 개미귀신은 모래 속에 굴을 파고 개미가 빠지기를 기다린다. 재수없는 개미가 함정에 빠지면 개미귀신은 끊임없이 모래를 뿌려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 후 잡아 먹는다. 사기꾼에게 걸리면 어떤 사람도 벗어나지 못한다.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마땅히 쉼 없이 구멍을 메우고 차오르는 욕심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욕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논리와 이성을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 검사내전 피해자도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된 우리나라 국민이지만 실제로는 2등 국민이다. “오류의 중요한 본질적 요소는 오류의 형식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려는 의도, 즉 여러 가지 형태를 통해 그것을 관철하려는 의도이다” 어려운 말인데 내 수준에서는 오류에 빠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원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특이한 증후만으로 경험적인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생각하는 ‘과잉일반화 Overgeneralization’, 자신이 믿는 것과 일치하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바라보는 ‘선택적 관찰 Selective observation’ 자기의 해석을 거치면서 부정확해지는 ‘부정확한 관찰 Inaccurate observation’ 성급하게 결론에 도달하거나 타당하지 않은 전제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비논리적 추론 Illogical reasoning’ 상대방의 치밀한 수에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욕심에 당한 것이다. 인식의 오작동을 낳는 것은 그보다 재빠른 감정, 즉 욕심 때문일지 모른다. 헌 가마니에 더 들어가는 법이다. 늙는다고 욕심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생각은 감각의 노예다.” 사람들은 감정이 가자는 대로 가면서도 꼭 합리적이었다고 변명한다. 흔히 사람들은 여럿이 모이면 좀 더 나은 판단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집단지성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18급 100명이 머리를 짜낸다고 이창호 국수를 이기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여럿이 모일수록 그 집단이 빠진 오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진화타겁 (軫火打?) 불난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는 것. 불난 집을 약탈한다는 뜻으로 강한 무력을 배경으로 약한 적을 정복할 때 사용하는 계책이다. 적이 위난(危難)의 상황에 처해 있을 때를 틈타 출병해 승리를 거두는 것이 그렇다. 이는 “강한 양의 기운으로 부드러운 음을 제압한다”는 뜻을 지닌 〈쾌괘(?卦)〉의 강결유야(剛決柔也) 단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정의와 이익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정의를 택하는 사람이 많을 수 있지만, 정의와 손해보전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 압도적일 것이다. 만만한데 말뚝 박고, 생가지 보다 마른 가지 꺽는 법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니까 사기치는 것이다. 제인 구달의 연구(Jane Goodall). 탄자니아에서 침팬지 연구 침팬지 무리가 다른 무리를 공격할 때는 영토를 침범 당하거나 위협을 당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 무리가 약할 때라는 것이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서글픈 두 번째 공식이다. 거지고 묵은 거지보다 햇거지가 어렵다고 하니 그냥 하던 일이나 하라고 했다. 제대로 충고하려면 애정을 빼고, 주저하지 말고, 심장을 향해 칼을 뻗듯 명확하고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감안해서 애매하게 할거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 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진 꽃은 다시 필 수 있지만, 꺽인 꽃은 다시 피지 못한다. 청년에게 희망을 주는 말도 사기라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식들에게 희망이 아니라 특혜를 준다. 선배란 겨우 1-2년 더 삼 사람들이다. 그런 선배들의 조언을 받는 건 63빌딩에서 뛰어내리면서 우산 대신 파라솔을 드는 것만큼 허망하다. 잘못된 조언과 도움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옛말에 병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나 약은 사람을 죽인다고 했다. 이타심은 건물의 장식품과 같다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그것이 없다고 해서 사회가 무너지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정의는 건물의 기둥과 같은 거라서 그것이 없어지면 건물이 무너지듯 사회도 무너진다고. 칵테일 파티 효과. 시끄러운 와중에도 가장 잘 들리는 말은 자신의 이름이고 그 다음은 성적인 대화라고 한다. 생존 본능과 종족유지 본능 때문이다. 에릭 데젠홀 (Eric Dezenhall). 뉴스 매체는 결코 타락할 수 없는 공명정대한 존재가 아니라 진실과 아무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려는 강한 욕구를 가진 영리 기업일 뿐이다. 짖는 개는 물지 않지만 우는 모기는 문다. 일반 긴장이론: 기대와 열망간의 괴리와 같은 긴장상태가 사회적 계층이나 빈부격차와는 무관하게 부정적 감정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반사회적/ 폭력적 행위를 증가시킨다. 범죄의 일반이론: 범죄나 그와 유사한 일탈행위가 모두 자아통제를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두에게 책임을 돌리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피상적인 말 잔치로 포장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짓밟힌 쪽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한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폭탄은 떨어진 데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낙숫물은 떨어진 데 다시 떨어진다. 도박죄를 처벌하는 이유.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아니한 재물의 취득을 벌함으로써 경제에 관한 건전한 도덕법칙을 보호하기 위한 것’ 무엇이 범죄로 분류되는 것일까? 첫째, 공리주의적 해석이다. 공동체 전체의 효용을 떨어뜨릴 수 있는 행위는 범죄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둘째, 해악원리이다. 타인에게 해악을 주는 행위는 범죄이고 그렇지 않은 행위는 모두 합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셋째, 공격원칙 이론. 타인에게 해악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 행위로 타인을 분노케 한다면 그것을 죄로 분류된다는 설명이다. 넷째, 법도적주의 이론. 부도덕과 부정의 정도가 심한 것을 범죄로 분류한다고 설명하는 이론이다. 원래 법이란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가 죄지은 사람 쪽으로 가서(去) 그 사람을 물어 죽인다는 뜻이다. 성질이 더러워서인지 해태는 그 글자가 너무 복잡했기 때문에 결국 물 수 변으로 줄인 것(法)이다. 물이 아니라 해태가 가는 것처럼 우연적이고 응보적이며 냉정한 것이 법이라는 뜻이다. 양념과 아부는 비슷하다. 재료가 좋으면 별로 필요 없다. 원물의 질이 떨어지거나 양념으로 미각을 속이는 것이다. 게다가 양념과 아부는 한번 넣기 시작하면 점점 더 많이 들어간다. 사람이 스스로에게 취해 뭔가 얼토당토 않은 말을 앞뒤 분간 못하고 열정적으로 토해내고 있을 때는 절대 토를 달거나 합리적인 반박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오직 가설을 만드는 데에만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빈토플러는 세상이 복잡해지고 정보가 폭증하면 그것들을 미처 분석하지 못한 채 자신을 방어하고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정보들만 선택하여 세상을 단순하게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것을 정보과부하(Information overload)라고 표현했다. 나이 먹어서 읽는 책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생각이 아집으로 굳어버려 그에 맞는 책이 아니면 불편해진다. 무쇠 솥이 검다고 밥까지 검은 것 아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유척(鍮尺). 길이를 재는 자인데 암행어사는 이것으로 각 고을마다 죄인을 매질하는 태(苔), 장(杖) 등 형구의 크기가 동일한지 측정했다. 규칙(Rule)은 일정한 규범을 정해놓고 그것에 위배되면 잘못된 것이라고 선언하는 방법이다. 기준(Standard)는 일정한 지점에서부터의 거리로 잘잘못의 부담을 정하는 방식이다. |
검사의 꿈을 가진 사람에게, 혹은 다른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깊고도 넓은 생각을 가지게 해주는 책이다. 한 번만으로는 이 책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와 이 속에 담긴 의미를 모두 알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 책을 다시 천천히 곱씹으면서 진정으로 더 알고 싶은 욕심에 다시 한 번 더 읽으려고 한다. 책 읽을 때 마음 속이 고요해지는 느낌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책. 이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감정 중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을 갖게되는 것은 왜일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더욱이 성장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해주는 책이라서? 그렇다고 하기엔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닌데. 앞으로 많은 책들을 접해보면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냥 나는 너무 행복하다. 이 책 속의 한 구절구절이. 묘하게 빠져들고 닮아가고 싶은 그의 문체와 생각이 나는 너무 기분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