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가끔 회사에 나간다. 오가며 차 안에서 항상 듣는 강의가 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 자기계발분야 대가다. 오디오를 반복해 들으며, 대가의 성공 비법을 새기고 또 새긴다. 수십 번은 돌려 들은 내용인데도 들을 때마다 자극이 된다. 같은 내용을 듣고 또 듣는 이유는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것을 일상 생활에 녹여 낼 수 있느냐가 차이를 만든다. 성공 비법의 핵심은 간단하다. 목표를 정하고 매일 실천하라는 것. 비법이라기 보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비법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다 아는 내용일 때가 많다. 자기계발서 몇 권만 읽어보면, 정리되는 내용들. 그래서 몰라서 성공 못하는 사람은 없다. 알지만 성공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는 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을 별개로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아는 것을 실행하려면 노력이 필요하지만, 여유 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그게 안 된다. 일상을 자주 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 늘 같은 날이 반복된다. 멈춰야 비로소 해낼 수 있는데 말이다.
공감. 얼마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인가. 그런데도 안되는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알기만 하고 못하는 것, 공감도 기술이라고들 한다. 배워야 하고 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익숙한 단어라 해서 쉽거나 그냥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감의 시대를 살면서 제대로 공감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워서 알게 된 것을 일상으로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그러려면 늘 생각하고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일상으로 가져오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나 다름 없다.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서문에 '적정기술'이란 말이 나온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정기술이 필요하다. 해결책이 있는데 사용하지 못해 문제로 남아있는 것들이 주변에 많다. 가정에서나 회사에서 몰라서 쓰지 못하거나 알면서 못 쓰는 적정기술들이 있다. 그런 의미로 심리학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바로 적정심리학이다. 이 책 <당신이 옳다>가 말하는 심리학의 적정기술이란 바로, 누구나 아는 것 같지만 제대로 쓰지 못하는 '공감',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공감'을 말한다.
누군가 고통과 상처, 갈등을 이야기할 때는'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된다. 충조평판은 고통에 빠진 사람의 상황에서 고통은 소거하고 상황만 인식할 때 나오는 말이다._(p.106)
힘들어 하는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고민부터 한다. 무슨 이야기로 조언을 해줄까? 그러면 상대가 하는 말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리고 어설픈 조언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이도 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해답은, 말하기 보다 우선 공감하라는 것이다.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해줄 말은 별로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 말이 아니라 그의 말이 필요하며, 그의 존재, 그의 고통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람 마음은 외부에서 이식된 답으로는 절대 정돈되지 않는다. 답은 밖에서 오지 않고 언제나 내 안에서 발견돼야 내게 스미고 적용된다._(p.152)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는 공감가가 되려면 내 견해를 말하지 말고, 상대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 심지어 상대도 몰랐던 마음의 실체를 떠올리게 해주는 것이 공감자가 할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전문가가 아닌 이들에게 이런 대화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공감은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다. 공감 기술을 깊이 이해했을 때 가능해지는 것이다. 공감은 재능이나 자격증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된다.
감정은 판단과 평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내 존재의 상태에 대한 자연스런 신호다. 좋은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내 감정은 항상 옳다._(P.219)
감정은 나와 상대를 점검할 수 있는 신호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감정을 대하는 자세가 바뀔 거라 믿는다. 우리는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을 단순하게 구분해 나쁜 감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모두 옳다고 말한다. 감정은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드러나는 모습만 가지고 감정에 대한 편견을 가지는 것은 공감으로 가는 길에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쉽지 않은 접근이란 걸 안다. 부정적인 감정을 대하며 차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사람을 평면으로 본다고 한다.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과 생각을 가진 입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런 편견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다. 때론 죽고 싶도록 힘들게도 한다. 이 책 <당신이 옳다>는 그런 편견을 버리게 한다. 사람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편견이 깊을수록 이해하기 힘든 내용일 수도 있다. 무조건 당신이 옳다고 믿고 대하는 것, 부정적인 감정도 그 사람을 이해하는 신호로 삼는 것. 모두가 내 생각을 바꾸게 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방법들이다.
진심으로 공감하는 법. 책을 읽고, 머리로는 알아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책을 읽고 또 읽는다. 브라이언 트레이시를 듣고 또 듣는 것처럼. 새기고 또 새기다 보면, 내게도 변화가 있을 거라 믿으며. 무조건 실행해보자고 마음 먹은 게 한 가지는 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아내에게 몇 번 이렇게 물었더니, 또 무슨 책을 읽었냐고 묻는다. 이렇게 묻고 상대가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하면, 이 말이 갖는 힘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 같다.
공감은 내 생각, 내 마음도 있지만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도 있다는 전제하에 시작한다. 상대방이 깊숙이 있는 자기 마음을 꺼내기 전엔 그의 생각과 마음을 나는 알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공감의 바탕이다._(p.267) |
편입한 대학교에서 교수님의 추천으로 이책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나는 2년 전부터 불과 몇 달 전까지 공황장애 약을 먹었던 사람이다. 어느 날부터 글씨가 날아다니고 잘 읽혀지지 않고, 새벽에 자고 있다가 갑자기 죽을 것 처럼 숨이 막혀서 아파트 단지 아래로 뛰어나가서 쓰러지고 말았다. 심리치료도 열심히 받았고 이제 좀 살 것 같다 할 때 왠 날벼락인가 처음엔 심리치료 전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무서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너무 살고 싶어서 바로 병원을 찾아갔다. 심전도 검사 뇌파검사 이틀간 기계를 달고 움직이는 검사 스스로 공황장애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는 공황장애였다. 지금은 많이 호전되어 글씨도 읽게 되고 정상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했고 남편과 아이가 둘이다. 6년 전 남편의 실업상태로(물론 우리 둘 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이혼을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서로에게 투명인간이였다. 누군가 조언하기를 격렬하게 싸워보라고 하는데 둘 다 말을 안하는 걸로 싸움은 시작된다. 누가 누가 오래 버티 나로 싸움은 끝이 나곤했다.) 나 혼자 쓰리잡까지 뛰면서 가정을 꾸리다 보니 둘째가 아프고 있다 걸 눈치 채지 못했다. 갑자기 둘째는 생각지도 못한 희귀성 난치병에 걸려있었고 내가 사는 곳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아이를 서울 큰 병원에 입원시키고 지방에서 서울까지 돈을 아껴보겠다고 매일 한 달 가량을 왕복 일반고속버스을 타고 병간호와 회사생활을 병행하게 되었다. 물론 날이 밝을 때는 남편이 밤에는 회사 일을 마치고 내가 간호를 해야 했기에 몇시간씩 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 서로 말을 하게 되고 서로의 상처를 보게 되었다. 아이는 나쁜 병을 얻고 우리 부부는 평화를 얻었다고 할까. 큰 위기가 닥치면 더 싸우기 바빴던 우리 부부가 아이의 아픔 앞에서는 신기하게도 서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이는 다행히 약을 먹고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밤에 자기 시작하면 옆에서 기도하고 밤새 울고 지켜보느라 5년이라는 시간을 거의 뜬눈으로 버티고 회사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내 형편을 안타깝게 여긴 지인의 소개로 남편도 직장을 잡았지만, 여전히 서로 마음이 겉돌기만 하는 우리 부부는 아이를 위해서 더 노력해보자라고 맘을 먹고 남편과 무료 부부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우리나라의 복지 서비스 혜택을 처음 받아 보게 되었고 서비스의질 부분에서 많이 놀랬다.) 아이는 유료 상담치료를 받고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되고 좋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갑자기 쓰려졌다는 것이다.(잠을 못자서, 내가 완벽주의라서 공황장애가 발병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의사선생님께서...)) 점점 나는 멍들어가고 있었고, 공황장애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부부 상담을 마치고 다행히 내 형편을 안타깝게 여기신 심리치료사님께서 개인 무료 상담을 해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그분이 온 힘을 다 싣어 나를 공감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상담선생님 본인도 힘들게 사셔서 본인을 알고 싶으셔서 늦은 나이에 심리 상담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더 마음이 쓰인다고 따뜻하게 항상 안아주셨다. 그때는 그 공감 긴가 민가...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내가 되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말씀하나하나 행동하나나가 나를 감싸 안아주고 공감해주고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완전히 알아버렸다.
당신이 옳다 책을 중반정도 읽을 때 한 장 한 장 책을 넘기는게 힘들었다. 여러 스토리들이 모두 내 이야기인 것 만 같았다. 눈물이 매 장마다 나오고 다시 읽어보게 되고 한참 책을 덮고 또 다시 읽어보고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대단한 공감을 받고 있었다. 그래 너 동그라미가 안된다 못난 뽀족뽀족한 돌이여도 “너 참 예쁘다 사랑스럽다“라고 위로 받는 것 같았다. 글 솜씨가 없어서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 내가 했던 행동들 생각들은 다 의미가 있었구나. 난 그 아픔마저도 옳았구나. 이혼하지 않고 죽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살아 냈구나. 너 참 옳았다. 잘했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격은 일들을 토대로 사람들에게 충조평판을 날리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어설픈 충고는 뒤돌아서면 나도 힘들게 하고 그 사람을 힘들게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충고보다 온몸에 힘을 빼고 “그랬구나라는....”말 한마디가 이렇게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 상담 치료사 선생님께서 “누구엄마 참 잘하고 있어요..... 오늘 고생했겠네..” 이러한 말들이 날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다는 것도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되고 “공감”이라는 말이 봄바람이 살랑 살랑 불어오는 마루 위해서 따뜻한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낮잠을 자는 느낌이랄까...나는 이 평화를 위해서 많은걸 잃고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라는 무지함에 헛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적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고 딸들을 혼자 키우신 아버지가 감당하지 못해 화가 나시면 딸들에게 욕을 하시고 죽어버려야겠다는 아버지를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 앞에서 포장했다. 휼륭하신 아버지시죠.... 딸들을 대학을 다 나오게 했어요.... 단 한 번도 재혼을 안하셨거든요... 그런데 난 속으로 아버지가 독하다 차라리 재혼을 하지 손을 올리며 때리는 시늉을 하는 아버지를 이해해야한다고 저분도 우릴 버리지 않고 힘들게 살아내고 있다고 알아줘야한다고만 생각하고 철저하게 결혼생활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랐으니 난 독하게 살아낼 수 있다. 아이 둘을 절대 버리면 안된다. 더 독해져야한다는 다그침 속에서 살아냈다. 그러나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옳지 않다는 것을 이 책 중반부에 “누구나 그 한사람이 될 수 있다”라는 부분이 있다. “그 한사람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 전체에 대해서 신뢰한다.“ 나는 심리치료사님을 통해서 세상이 지금은 내편이구나.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많이 걱정하고 안쓰럽게 생각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남편과의 관계도 내가 바뀌어야 남편도 바뀌는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가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나는 바뀐 게 아니였구나. 남편도 바뀐 게 아니였구나. 우리는 단지 서로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구나. 그래서 관계가 좋아졌구나를 깨달게 되었다.
나의 중심은 항상 작은아이가 아프기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를 더 중시했기 때문에 큰아이는 항상 뒷전 이였다. 큰아이가 “나 너무 힘들어 지금 죽을 것 같이 숨이 안쉬어져” 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은아이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남편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 져야해서 큰아이는 당연히 괜찮을꺼야 였다. 그러나 집안에서 제일 아프고 힘들었던 사람은 큰아이였다. 부부 사이가 나빴을 때도 동생을 돌봐야했고, 부부사이가 좋아졌을 때도 진짜인가라는 의심을 품고 살아야했고, 아픈 동생을 위해서 항상 양보를 했어야했으며 아프다고 소리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가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단다. 큰아이도 2년 전 갑자기 친구관계와 집안문제로 심리치료를 1년 동안 받았다. 작은 아이가 아프기 전에 나라면 심리치료를 받기 전 나라면 책에서 그랬듯 나에게는 “배터리 3%로 영원을 끌어 모아 살아가는 내가 버티지 못하면 모든 게 터져버리고 무 너 진다“라고만 살았기에 아이의 ‘죽을 것 같다’ 라는 말은 사치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를 받고 책을 읽은 나는 아이의 몸부림에 그랬었구나. 미안하다가 온몸을 싣어서 자동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건 진심이였다. 나도 알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가슴에 올라오는 기분은 느껴보지 못하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말을 듣는 아이는 눈에서 눈물이 고여 있었다. 서로 우리는 치유가 되고 있구나. ‘고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홀가분하고 자유로워진다. 라는 책의 표현이 맞는 말이구나... 포근하다. 내 이런 감정도 옳구나. 나는 심리치료를 받고 생활을 하고 있을 때는 ‘정서적 공감’ ‘인지적 공감’(책 내용)을 나누웠을 때 인지적 공감을 더 노력하는 사람이였다. 그러나 책을 보는 내내 울고 있고 치료받는 생각이 드는 나는 이미 정서적공감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큰아이에게는 그 한사람이 엄마였으면 했을 것이다. 항상 엄마에게 “ 힘들어 하지마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잖아 괜찮아” 했던 아이도 공감해주고 위로자가 엄마였으면 했을 것이다.
생계유지를 위해서 다니는 회사도 나를 더욱더 피폐하게 만드는데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관계를 끊는 힘도 필요하다.(책 내용) 일전에는 생계유지를 위해서 상사에게 부당한 대우도 참아 내야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할 말은 한다. ‘너도 소중하면 나도 소중하다‘라는 말은 나를 존중해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마음이 있지만 나도 마음이 있다‘(책 내용) 라는 문구는 또 한 번의 위로가 되어주웠다. 상담치료를 끝내고 소장님하고 면담을 하는데 소장님께서 언제든 다시 와요 무료 AS해줄께요. 항상 누구누구 엄마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힘들게 하면 싫다는 말을 크게 외치세요. 그리고 혹시라도 못하겠거든 그 말을 못하는 나를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해주셨다. 책에서도 똑같은 내용을 본 듯하다. 그 말을 못하는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안아주란다.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 책을 통해 완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를 안아 줘버렸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내가 아닌 외부적인 상황이나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 때문에 내가 일일이 갈대처럼 흔들린다면 나는 아마도 가루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흔들리고 쓰러질 때도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마음이 어떠세요? “공감“ 당신은 항상 옳아요! 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짱짱하게 버티고 살아 낼 것 같다. 내 고통을 오롯이 내다 볼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책이 분명하고 , 몇 번을 다시 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마음이 아파하고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오랫동안 기다렸던 보물지도를 찾은 느낌이예요. 보물을 찾으려면 지도가 있어야하는데 이젠 이 지도가 있으니 찾을수 있을것 같아요. 이틀만에 다 읽고 다시 한번 읽고 있네요. 지인들에게도 여럿 선물했어요. 정말 좋은 책이예요. 개개인을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보려고 노력해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감 할 필요도 없고, 무슨말을 할지 고민하지도 말고..다만 상대방을 집중해서 보면서 궁금해 할것. 그리고 공감은 배우고 익히는 것이라는것도 내게 희망을 줍니다. |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의 글을 처음 접한 건 십수년전 어느 웹사이트에서 보고 읽게 된 칼럼을 통해서였다. 부부사이 혹은 남녀사이의 역할과 성에 대한 글이라 기억되는데 비정기적으로 올라오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남자의 마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기억되던 그녀를 다시 접하게 된 것은 국가폭력의 현장에서였다.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현장에 어김없이 그녀가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 강연내용을 묶어 엮은 책 [사람공부]와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를 읽으면서 그녀의 글이 여느 심리학자의 글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이 책 [당신이 옳다]를 오래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으면서도 차일피일 하다 보니 이제야 읽게 되었다.
최근 15년간 국가폭력의 피해자들과 함께 있었다는 저자는, 그 현장에서 심리치유관련 자격증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숱하게 목격했다고 한다. 오히려 현장에서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며 그들의 치유를 도운 것은 일반 자원봉사자들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피해자들이 자신을 환자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으로 보아주길 원하지만 정작 정신과 의사들은 이들의 증상을 중심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전문가들의 심리학이 아닌 적정한 심리학이 필요하다는 자각을 하였고,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심리학을 일컬어 적정심리학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책의 부제는 바로 ‘정혜신의 적정심리학’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공감의 힘과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공감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물론, 그런 공감이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기위해서 넘어야 할 허들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망정 모두 아프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힘에 부치는 경우가 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다 퇴직을 하게 되면 무력감에 휩싸이고, 그런 자신을 보면서 당연히 짜증이 늘 수밖에 없다. 남들은 우울증이라고 하지만 저자는 ‘모든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주목이나 집중을 받지 못하니 아플’ 수밖에 없고, 퇴직 후 겪는 ‘무력감이나 짜증, 피해의식은 우울증이 아니라 우리가 흔하게 마주하는 삶의 일상적 숙제들이고 서로 도우면서 넘어야 할 우리 삶의 고비’라고 말한다. 그래서 가장 절박하고 힘에 부치는 순간에 그 사람에게 필요한 건 충고나 조언, 평가나 판단(충조평판)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에 진심으로 주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의 언어는 거기서 길을 잃는다. 그 이상의 언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충조평판을 날리게 되고, 그 사람의 고통에 공감을 하고자 했지만 상처가 치유되기는커녕 덧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감을 상처받은 사람들과 마음을 섞고 감정을 공유한 끝에 얻는 깨달음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들은 흔히 누가 이야기할 때 중간에 끊지 않고 토 달지 않고 끄덕이며 긍정해 주는 것, 잘 들어 주는 것을 공감이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공감은 감정적 반응 그 자체가 아니라, 한 존재가 또 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 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의 어울림 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학습이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상대방의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으레 던지는 말은 그것이 공감적인 단어라 할지라도 상대방은 공감 받는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다며, 잘 모르면 우선 찬찬히 물어보라고 한다. 공감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 주는 것,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듣고 상대방의 존재자체에 내려앉는 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의 고통을 마주하면서 내가 공감한다며 던진 말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어쩌면 나는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찾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기에 공감은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누군가의 고통에 함께 하려는 사람은 동시에 자신에게도 무한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상대에게 공감하는 도중에 내 존재의 한 조각이 자극받으면 상대에게 공감하는 일보다 내 상처에 먼저 주목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내가 알고 있는 공감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본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공감을 막는 허들이 된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저자의 글을 읽어나가면서 경쟁과 관계의 갈등으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우리사회에서 아프고 지친 이들을 치유하고 관계의 질마저 높여주는 공감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알게 된다. 또한 나 자신에게도 공감하지 못하면서 타인을 공감한다는 것이 때로는 무책임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녀가 해주는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말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따듯하게 만들어 준다. 그녀의 말들을 다시금 쓰고 읽으면서 공감 공부를 해야겠다.
‘공감은 상대에게 전하는 말의 내용 자체가 따뜻한가 아닌가가 핵심이 아니라 그 말이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 말이 어디에 내려앉는 말인지가 더 중요하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향하고, 존재 자체에 내려앉는 말이 공감이다.’(140쪽)
‘너와 나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지 경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너를 공감해야 할 순간인지 내가 먼저 공감을 받아야 하는 건지 알아야 너와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감을 할 수 있다. 경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공감에 대한 정확성이 높아진다.’(179쪽)
‘너를 공감하는 일과 내가 공감 받고 싶은 일이 있을 땐 항상 내가 공감 받는 일이 먼저다. 내가 공감 받아야 비로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너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274쪽)
‘상처를 떠 올리고 말해서 힘든 게 아니라 내 상처가 거부당하는 느낌,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아픈 것이다.’(282쪽) |
당신이 옳다 정혜신 해냄/2019.3.25. sanbaram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이 아프다. 외래환자의 80∼90%가 생물학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심인성 환자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만이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고, 술이나 게임 심지어는 마약의 힘을 빌리고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에 의지할 때 남는 것은 망가진 몸과 허무한 마음뿐이다. 공감에 의한 마음 치유의 길을 제시하는 <당신이 옳다>의 저자는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최근 15년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속마음을 나누는 일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찾아낸 ‘적정심리학’은 그녀가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린 ‘공감과 경계’를 기본으로 한 치유법이다. 저서로 <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등 다수가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자신을 환자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들어주기 어려운 자신의 끔찍한 고통에 집중하고 깊이 이해하고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의 의사들은 약물 처방을 우선한다. 그러기에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적정심리학’이 필요하다고 <당신이 옳다>의 저자는 말한다. 어떤 마음이 들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당신 마음은 항상 옳다고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다른 말은 모두 그 말 이후에 해야 마땅하다. 그게 제대로 된 순서라고 한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고 말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어째서 우울증인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의 불안과 공포가 왜 우울증인가. 은퇴 후의 무력감과 짜증, 피해 의식 등이 어떻게 우울증인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의 우울과 불안을 뇌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초래한 우울증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들은 비정하고 무책임하다.(p.90)” 이런 문제들이 흔하게 마주하는 삶의 일상적 숙제들이고 서로 도우면서 넘어서야 하는 우리 삶의 고비들이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은 드러난 증상만을 가지고 진단을 확정한다. 다른 어떤 요소도 진단에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진단 체계를 만들었다. 표면적인 증상만 같으면 같은 질병이라 한다. 우울증 진단을 내릴 때는 원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을 중심으로 하면서, 진단이 확정되면 갑자기 우울증은 생물학적 원인으로 생기는 거라며 약물치료가 치료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약물의 도움으로 증상이 줄어 한결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약물이 우울증 치료의 전부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 저자는 기존의 정신의학 체계의 허점을 지적한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9)”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존재가 소멸된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빠르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방법이 폭력이다. 폭력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적 존재가 되는 순간 사람은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자기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걸 느낀다. 그래서 현재 우리사회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p.125)”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돕는 자로서의 ‘내’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그’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그에게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의 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p.239)”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좋은 질문은 따로 있지 않다. 그 사람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 그 태도가 더 공감적이고 치유적 이라고 한다.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p.310)” 그럴 때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하는 질문을 통해 말을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상태가 공감 혹은 공명이라고 말하는 저자처럼, 이 책의 독자들도 나와 너에게 공감하며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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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군가 나에게 "넌 틀렸어" 그러므로 "넌 고쳐야 돼"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떨까. 그 말에 즉각적 반응은 하지 않게 되더라도 속에서 끓어오르는 반발심과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분노를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틀렸으니, 내가 고쳐야 한다고 말해주는 그 상대방에게 오히려 "내가 맞고, 네가 틀렸어"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꾹 참았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당신이 옳다』는 그런 나에게 나의 분노가, 나의 반발심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으며, 더불어 나에게 틀렸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당신이 이 글을 보고 있는 이 순간,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감정은 옳다. 내 글을 보고 욕이 나올 수도 있고, 또는 감탄사가 나오는 순간, 혹은 내가 쓰는 글을 보고 부러워할 수도 있고, 때로는 질투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 극히 드물곘지만 - 나를 선망의 대상으로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 나는 그런 당신의 감정에 찬물을 끼얹을 생각은 없다.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 그 감정은 무조건 옳다. 당신의 감정이 옳듯이, 내가 쓰는 이 리뷰도, 내가 이 리뷰에 담아내는 감정들도 옳다. 내 리뷰를 당신은 틀렸다고 느낀다면 그것도 옳고 나는 내 리뷰가 옳다고 생각하니, 나도 옳다. 정혜신의『당신이 옳다』는 얘기는 그런 얘기다. 옳다고 하는 얘기. 그래서,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는 이야기.
2.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기만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 p.160
아이가 누군가를 때렸다, 참고 참다가 때렸다.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봐주지 않는다. 그저, 때리는 현상에만 집중하기에 일어난 사실이다. 때린 것은 분명 잘못한 것이지만, 아이의 마음을 봐주지 못한다면, 아이가 성장할 때는 상당한 난항을 겪게 된다. 누군가의 마음을 돌본다는 것은, 어른에게든 아이에게든 중요하다.
3. 물론, 나는 상담이론의 대부분을 안다. 상담의 이론을 안다고 해서 상담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건 아닌다. 이론은 이론일 뿐, 실제 현장에서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상담에 관한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도, 내가 그것들에 대해서 다 안다고 말하는 이유도, 대부분의 상담관련책이 기교적인 부분이나 이론을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거나 혹은 사례를 실어놓았더라도 기법에 치중해서 어렵게 소개해 놓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아니면 볼 수 없게 만들어놓은 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생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담관련 책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당신이 옳다』는 다르다. 상담현장에서 겪었던 전문가들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실세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쉽게 일반독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풀어놓았다. 그래서 읽는 데도 어려움 없으면서도, 나의 감정들을 돌보게 되고, 나아가서는 힘들어하는 아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4.
딸에게 사과해도 된다고 믿었고 딸이 옳다는 사실을 믿었다.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딸도 옳고 엄마도 옳다.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옳다. - p.288
그러므로 나도 옳다.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 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공감. 그 공감이 사람을 살리는 힘이 돨 수도 있다. 아이에게 건네는 한마디의 말. 그래서, 네 맘은 어떘는데? 그 한 마디가 아이의 미래를 바꿀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는 한마디의 힘. 당신이 옳다. 그 한 마디가 당신과 그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당신이 하려는 선택과 는 별개로, 당신의 마음은 항상 옳다. 그러므로 내 리뷰는 감동적이야, 라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도 옳다. 나의 마음에 당신의 마음을 포개어 보고 싶어하는 나의 그 마음에 공감을 얹어주기를 바라는 나의 마음은, 언제나 옳다. 당신의 지금 마음이 옳듯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언제나 옳다. 물론, 때로는 동물의 마음까지도 옳다. 마음은 모두 옳다. |
"당신이 옳다."
3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으며, 책 제목이기도 한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마주했는지 모르겠다. 앞, 뒤 없이 담백하게 다가오는 이 짧은 문장, “당신이 옳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이내 그 문장을 읽을적 마다 마음이 아프기도 따뜻하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인이 있어야 사람은 그 다음 발길을 어디로 옮길지 생각할 수 있다. 자기에 대해 안심해야 그 다음에 대해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p.49
당신이 옳다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는 솔직히 적절치 않다 생각했었다. 어떻게 누군가가 항상 옳을 수 있을까, 무작정 옳다고 말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그르치게 할 수 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옳다‘가 달리 말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다‘의 뜻이라는 설명에는 작은 감탄이 나왔다. 누군가 내 생각과 행동의 이유에 귀 기울여 준다면, 결과만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고 그 아래 숨겨진 과정을 함께 들여다 봐준다면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p.50
서로가 가진 고민의 끝에 해결책을 제시해 주려 노력하는 이에게 종종 “객관적인 해답은 다른 사람들도 해줄 수 있어. 나는 그냥 내 편이 필요한 거야.”라고 울음 섞인 투정을 부리는 것 역시 그런 맥락일 것이다. 우리는 합리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 객관적인 해답을 내려주기 전에 그래, 힘들었구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 네가 그럴 수도 있었겠다..라고 먼저 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제발 시비에 대한 판단은 그 다음에 해 주었으면).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공급이 끊기면 심리적 생명도 서서히 꺼져간다. p.48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저자가 건넨 “당신이 옳다”는 말에 위로는 받았다면,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는 나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는 동시에 내 주변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물음이었다. 잘 지내지? 어떻게 지내? 많이 바쁘지? 물론 서로에게 건네는 인사 속에는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지, 기분은 괜찮은지에 대한 물음이 들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요즘 마음이 어때?”라 물어보면, 글쎄..나는 순간 멈칫하지 않을까? 그 세심함에 한 번, 그리고 정말 요즘 내 마음이 어떤지 들여보기 위해 또 한 번.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p.58
누군가 나의 마음에 대해 신경쓰고 물어봐준다면, 적어도 이 각박한 사회에서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기분은 덜하지 않을까.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공감이 화두인 사회이다. 그만큼 나의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일게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때때로 ‘너는 네가 알아서 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 봐달라’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감정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좋게 해석해 남에게 모진 말을 못하고, 달리 해석하면 혼자 끙끙 앓는 편인 나는 이런 경우가 어렵다. 무언가 한마디 해야지, 하다가도 그래, 내가 잘하면 되지 하면서 접어두기 일쑤다(이러다가 혼자 폭발하기도 하지만).
너를 공감하는 일과 내가 공감받고 싶은 일이 있을 땐 항상 내가 공감받는 일이 먼저다. 내가 공감받아야 비로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너를 제대로 공감할 수 있다. pp.275-276
우리 모두는 자기 보호를 잘해야만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상처 입은 존재들이다. 예외가 없다. 공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기준을 내게 묻는다면 단연코 자기 보호에 대한 민감함이라고 말할 것이다. pp.193-194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오만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과연 타인에게 진정으로 공감하고 그를 포용할 수 있을까? 저자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서로가 감당해야할 몫이 있는 것이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주변과도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겠다.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지만 나만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도 있다. 그것까지 내가 짊어질 이유는 없다. 너도 있지만 나도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납득할 수 없는 심리적 갑을 관계가 일방적이고 극단적으로 계속된다면 이런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것이 더 건강하다. 우선 내 건강성을 지켜야만 나중을 기약할 수도 있다. p.171
다시, "당신이 옳다."
저자가 온 체중을 실어 전한 이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아 지친 날 위로를 줄 것 같다. 어쩌면 저자가 해주고 싶었던 것도 그 말이 아니었을까? 책에 빼곡이 적힌 여러 가지 내용은 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저 그 한 문장, 당신이 옳다는 그 말을 기억하고 위로 받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당신이 옳다” 온 체중을 실은 그 짧은 문장만큼 누군가를 강력하게 변화시키는 말은 세상에 또 없다. p.53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일주일에 한 번은 나에게 ‘마음이 어떠한지’ 물어보기(적용기한 : 지속) 두울. 쑥스럽지만..친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어떠한지’ 물어보고 함께 이야기 하기(적용기한 : 지속)
*기억에 남는 문장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急電)이다. “내가 희미해지고 있어요. 거의 다 지워진 것 같아요.”라는 단말마다. p.39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도 예외 없이 변하게 하는 그 지점이 바로 ‘자기’다. 사람은 자기에 공감해 주는 사람에게 반드시 반응한다.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다. p.47
고급 정장에 계급장이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 나를 주목하고 인정해 준 사람보다 내가 맨몸이었을 때 나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극진히 보살펴 준 사람은 뼛속에 각인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 p.68
사람들은 누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그 마음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 여긴다. 아니다. 정반대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심각한 내 고통을 드러냈을 때 바로 그 마음과 바로 그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물어봐 준다면 위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된다. 무엇을 묻느냐가 아니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p.80
인간의 마음이나 감정은 날씨 같다. 춥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화창하고 맑다가 바람이 불기도 하고 태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예고 없이 지진이 일어나기도 하고 쓰나미가 덮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무지개가 걸린다. p.86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감정들은 삶의 나침반이다. 약으로 함부로 없앨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약으로 무조건 눌러버리면 내 삶의 나침반과 등대도 함께 사라진다. 감정은 내 존재의 핵이다. p.92
치유란 특정 문제에 대해 외부에서 던져주는 전문적인 코멘트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안개가 자욱한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뒤엉킨 자동차들처럼 상처 입은 자기 마음결을 누군가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보고 만지고 확인하고 느끼며 분리해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뒤엉켜 있던 마음결을 안개가 걷힌 후의 풍경 보듯 하나씩 또렷이 보는 일이다. p.152
사람 마음은 외부에서 이식된 답으로는 절대 정돈되지 않는다. 답은 밖에서 오지 않고 언제나 내 안에서 발견돼야 내게 스미고 적용된다. p.152
공감하는 일의 전제는 공감받는 일이다..(중략)..타인을 구심점으로 오롯이 집중하지만 동시에 자기 중심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아야 가능하다. p.189
경계가 무너지면 많은 것을 희생하고도 오히려 비난과 공격을 더 받게 된다. p.198
’내가 그렇게까지 애쓰면 그래도 고마워하겠지, 내 노력을 알아주겠지‘ 하는 A의 기대가 물거품이 된 건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자신을 스스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은 상대방의 인식 속에서도 사라진다. 회피도 충성도 답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p.204
감정 통제를 잘해야 어른이고, 그래야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이성으로 얼마든지 통제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다. 마음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잘못되고 위험한 통념이다. p.217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 건 좋은 일인가. 좋을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얼마든지 있다. p.219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고 그래서 모든 감정은 옳다. 불안을 느낀다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할 게 아니다. ’내가 지금 불안하구나, 왜 그런 걸까?‘ 곰곰이 나와 내 상황을 짚어봐야 한다. p.220
상대방의 감정과 똑같이 느끼는 것이 공감인가..(중략)..아니다. 공감은 똑같이 느끼는 상태가 아니라 상대가 가지는 감정이나 느낌이 그럴 수 있겠다고 기꺼이 수용되고 이해되는 상태다. p.270
공감이란 나와 너 사이에 일어나는 교류지만, 계몽은 너는 없고 나만 있는 상태에서 나오는 일방적인 언어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고 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들이다. 그래서 계몽과 훈계의 본질은 폭력이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렇다.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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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옳다 정혜신 해냄/2019.3.25.
무한경쟁에 내몰리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이 아프다. 외래환자의 80∼90%가 생물학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심인성 환자라고 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자기 자신만이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를 찾고, 술이나 게임 심지어는 마약의 힘을 빌리고 폭력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물질에 의지할 때 남는 것은 망가진 몸과 허무한 마음뿐이다. 공감에 의한 마음 치유의 길을 제시하는 <당신이 옳다>의 저자는 30여 년간 정신과 의사로 활동하며, 최근 15년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과 속마음을 나누는 일을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찾아낸 ‘적정심리학’은 그녀가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을 살린 ‘공감과 경계’를 기본으로 한 치유법이다. 저서로 <당신으로 충분하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등 다수가 있다.
트라우마 피해자들은 자신을 환자가 아닌 고통 받는 사람으로 바라봐주길 바란다. 들어주기 어려운 자신의 끔찍한 고통에 집중하고 깊이 이해하고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현실의 의사들은 약물 처방을 우선한다. 그러기에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그러려면 나와 내 옆 사람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적정심리학’이 필요하다고 <당신이 옳다>의 저자는 말한다. 어떤 마음이 들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러니 당신 마음은 항상 옳다고 우선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다른 말은 모두 그 말 이후에 해야 마땅하다. 그게 제대로 된 순서라고 한다. 자기 존재에 주목을 받은 이후부터가 제대로 된 내 삶의 시작이다. 거기서부터 건강한 일상이 시작된다. 노인도 그렇고 청년이나 아이들도 그렇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고 말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어째서 우울증인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사람의 불안과 공포가 왜 우울증인가. 은퇴 후의 무력감과 짜증, 피해 의식 등이 어떻게 우울증인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아이의 우울과 불안을 뇌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초래한 우울증 탓으로 돌리는 전문가들은 비정하고 무책임하다.(p.90)” 이런 문제들이 흔하게 마주하는 삶의 일상적 숙제들이고 서로 도우면서 넘어서야 하는 우리 삶의 고비들이다. 그러나 현대 정신의학은 드러난 증상만을 가지고 진단을 확정한다. 다른 어떤 요소도 진단에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진단 체계를 만들었다. 표면적인 증상만 같으면 같은 질병이라 한다. 우울증 진단을 내릴 때는 원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을 중심으로 하면서, 진단이 확정되면 갑자기 우울증은 생물학적 원인으로 생기는 거라며 약물치료가 치료의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약물의 도움으로 증상이 줄어 한결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약물이 우울증 치료의 전부를 책임질 수는 없다고 저자는 기존의 정신의학 체계의 허점을 지적한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자기 존재 자체에 대한 수용이다.(p.59)”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존재가 소멸된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빠르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방법이 폭력이다. 폭력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적 존재가 되는 순간 사람은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자기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걸 느낀다. 그래서 현재 우리사회에서 여러 형태의 폭력이 난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p.125)”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돕는 자로서의 ‘내’ 견해를 말하거나 주장하기보다 ‘그’에게 주목하고 그의 마음에 대해 그에게 물어야 한다. 그의 세세한 속마음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알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비로소 그에게 질문을 시작할 수 있다. 그만이 아는 그의 마음에서 혼돈을 끝낼 그만의 길이 나온다. 당사자가 그것을 속속들이 느끼고 만질 수 있을 때까지 그의 손을 놓지 않는 것이 공감자의 일이고 그것이 치유의 길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옳은 말로 인해 도움을 받지 않는다. 자기모순을 안고 씨름하며 그것을 깨닫는 과정에서 이해와 공감을 받는 경험을 한 사람이 갖게 되는 여유와 너그러움, 공감력 그 자체가 스스로를 돕고 결국 자기를 구한다.(p.239)” 공감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질문을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좋은 질문은 따로 있지 않다. 그 사람의 대답에 집중하고 궁금해 하는 태도가 어떤 좋은 질문보다 더 좋다. 그 태도가 더 공감적이고 치유적 이라고 한다.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p.310)” 그럴 때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하는 질문을 통해 말을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런 상태가 공감 혹은 공명이라고 말하는 저자처럼, 이 책의 독자들도 나와 너에게 공감하며 마음을 치유하고 행복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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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서 얼마나 속상한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p.160 친구를 때린 아이의 행동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때 아이의 마음을 알면 마음에는 금방 공감할 수 있다. 그것이 공감이다. 자기 마음이 공감을 받으면 아이는 자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빠르게 인정한다. p.161 |
존재에 집중해서 묻고 듣고, 더 많이 묻고 더 많이 듣다보면 사람도 상황도 스스로 전모를 드러낸다. 그랬구나. 그런데 그건 어떤 마음에서 그런 건데. 네 마음은 어땠는데 핑퐁게임 하듯 주고받는 동안 둘의 마음이 서서히 주파수가 맞아간다. 소리가 정확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공감 혹은 공명이다. p.310 안전하다는 느낌만 있으면 상처받은 사람은 어떤 얘기보다도 그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 자기 얘기를 잘 들어줄 것 같은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낯선 상황이나 낯선 사람이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서다. p.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