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회가 넘게 어르신들의 집 문지방을 넘나들며 알게 된 것들이 있다. 목 디스크로 팔이 저린 김 할머니의 침실에서 너무 낮은 베개를 보았을 때, 허리 디스크로 다리를 들 수조차 없던 박 할아버지가 앉은뱅이 밥상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식사하는 걸 보았을 때, 무릎 관절염으로 오전에 통증주사를 맞고 온 송 할머니가 쪼그려 앉아 방에 걸레질하는 걸 보았을 때 어르신들에게는 ‘집이 곧 병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 p.13
처음 시내 인근 지역으로 왕진을 갔을 때는 그래도 집의 형태를 갖고 사는 분들을 만났다. 방으로 들어가는 번듯한 문도 있고 창문도 있고 간소하지만 부엌도 있는 그런 집. 시내에서 멀어질수록 방과 방의 경계선이 점점 사라졌다. 여기가 안방인지 부엌인지 거실인지 알 수 없었다. 먹다 남은 찬거리와 음식들이 펼쳐놓은 이부자리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러다가 집과 집 아닌 것의 경계선도 점점 사라졌다. 멀리서 보면 집인데 가까이서 보니 움막이었던 곳도 있었고 컨테이너에 살고 있는 분들도 만났다. 컨테이너 옆에 간이 천막을 쳐놓고 부엌 대용으로 쓰고 있었다. 장마가 끝나고 한여름이 되면 땡볕에 데워질 컨테이너 안이 벌써부터 걱정스러웠다. 그러다 마지막엔 제발 컨테이너라도 하나 장만하시라고 권유해드리고 싶은 할아버지를 만났다. 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닐 포대 더미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곳이었다.
--- p.52~53
최 실장이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빈곤층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병원 직원들이 빈곤층’이라고. 백만 원 월급으로 네 식구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부터 파산 신청을 한 사람까지. 하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최 실장도 병원에서 겨우 교통비나 타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누군가 귀띔해줬다. (…) 돈 없는 환자에 돈 없는 병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나는 내게 물었다. 만약 중환자실 입원 기간이 길어져서 입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 감당할 수 있는가. 자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수술을 못할 것 같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릴 용기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 p.69
진료실에서 나는 환자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질환과 마주한다. 질환이라는 ‘정체불명의 무언가’에게 질문하고 청진하고 촉진하며 그것의 정체를 밝히는 데만 집중한다. 정체를 밝히는 데 성공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간혹 실패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실패에서 ‘사람’을 궁금해하지는 않는다. 궁금해할 여력도 없다. 진료실이라는 창백한 멸균 공간에 환자가 들어올 때 그는 자신의 맥락을 모두 버리고 들어온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곳에서 살고 무엇을 하는지와 같은 삶의 맥락은 진료실에 들어온 순간 모두 사라진다. 모든 것이 마술처럼 사라지고 오직 한 가지, ‘증상’만 남는다.
--- p.88~89
촘촘히 싸놓은 신문지를 열어보니 산나물이었다. “양이 얼마 안 돼서 병원 직원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할 수가 없어갖고 병원에 못 들어가고 원장님을 밖에서 기다린 거야.”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밖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셨다 한다. “이 귀한 걸 왜 저에게….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 거듭 인사하고 헤어져 주차장에 세워둔 내 차에 타려는데 멀찍이서 할아버지가 낡은 자전거를 끌고 가면서 내가 가는 걸 지켜보고 계셨다. 너무 오래돼서 제대로 갈 수나 있을까 싶은 녹슨 자전거는 엔진을 장착한 상태라 그나마 가동이 가능한 듯 보였다. 갑자기 내 차가 낯설어졌다.
--- p.130~131
할아버지가 진료실을 나가면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내 가슴이 여자처럼 나와서 대학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다시 들어오시게 해서 확인해보니 여성형유방(gynecomastia)이었다. 이미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치료제(타목시펜)도 처방받은 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남자의 가슴이 여성처럼 나오는 경우,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는 약물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전의 약들을 그대로 복용하고 있었다. 복용하는 약을 모두 가져오도록 했다. 여성형유방을 유발하는 약품 목록과 일일이 대조해보면서 원인이 될 만한 약들을 빼고 대체약을 처방했다. 시간을 보니 20분이 넘게 걸렸다. (…) 아마도 할아버지를 위한 20분 진료가 허락되지 않았을 대학병원은 약 부작용을 약으로 치료하려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실력 없는 의사보다도 시간 없는 의사가 더 많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처럼 시간이 많은 의사도 필요하다.
--- p.162~163
가래가 차서 숨을 헐떡이는 아버지의 가래 흡인을 부탁해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던 간호사. 생명징후가 흔들리고 산소포화도가 90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얼굴 한번 내비치지 않던 당직 의사. 호흡이 불규칙했던 아버지에게 다가가 청진을 해보거나 맥을 짚어주었더라면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의사에게 돌봄을 받고 있다 느끼고 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그런 의사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장의사처럼 나타나서 사망 선고를 하고 가버렸다는 전공의. 그는 결국 그런 수련 과정을 통해 무엇을 체득하게 될까.
--- p.181
‘3, ·8, ·12, ·4, 9’ ‘5, ·11, ·4, ·9, 2’. 달력의 큼지막한 날짜 앞에는 알 수 없는 숫자가 깨알처럼 쓰여 있었다. 30년 넘게 당뇨를 앓아오신 김 할아버지는 콩팥 기능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하지 마비 상태였다.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 혼자 할아버지 병 수발을 몇 년째 해오고 계셨다. 임대아파트에 두 분만 덩그러니 살고 계셨다. “할머니, 달력의 저 숫자가 무슨 뜻이에요?” “할아버지 그린비아 드신 시간이요.” 그린비아는 밥을 넘기지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캔으로 된 유동식이다. “그럼 숫자 앞의 점은 뭐예요?” “그때 혈당 쟀다는 표시요.”
--- p.205
병원 진료가 예약된 날은 아침 일찍 콜밴을 부르고 요양보호사가 오면 나갈 준비를 한다.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업어 콜밴에 옮겨 태운다. 할머니의 뼈는 귀한 도자기나 다름없다. 옮기다가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바로 골절된다. 오죽하면 다리를 주물러드리고 싶어도 뼈가 부러질까 봐 못 한다고 요양보호사가 얘기할까. 대학병원에 도착하면 이 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며 휠체어로 옮겨 탄다. 순환기내과에 갔다가 3분 진료, 내분비내과에 가서 또 한참을 기다려 3분, 다시 정형외과에 가서 또 3분, 그렇게 몇 분짜리 진료를 보기 위해 하루를 다 쓴다.
--- p. 218~219
대학병원에 인턴 수급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떤 파국적 상황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도 의대생들이 잘 알고 있다. 의대생들이 승리를 자신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 의료가 공공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의사들의 힘은 의료의 공공성에서 온다. 아무나 의사가 될 수 없어서 의사가 힘이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의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다. 정부가 의사들에게 군 입대를 공중보건의로 대체할 수 있게 허용한 것도, 의대생들이 의사고시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도 공공의료에서 일할 단 한 명의 의사가 아쉽기 때문이다.
--- p.228
나는 ‘의사 놈들’이 될 수도 있고 ‘의사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아무런 접촉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 속에 갇혀서 오직 자신의 욕망, 자신의 고민만 들여다보는 사람. 그것이 내가 있었던 의사들의 세계다. 진료실은 의사를 자폐적 세계에 가둔다. 타인의 고통에 누구보다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둔감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에 가능해진다. 왕진을 갈수록 의사들의 진료실을 혁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진료실이란 공간은 단순히 환자를 증상의 덩어리로 보게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 하여금 환자들의 삶에 눈을 감게 만드는 눈가리개 역할도 한다.
--- p.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