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냈거나 견뎠거나… 마흔아홉에 돌아보는 삶
김민광은 시각디자이너다. 20여 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니 정체성에 변화는 없다. 다소 엉뚱한 면이 있다는 것도 바뀐 게 없다. 여기서 엉뚱하다는 말의 의미는 일상적인 상상의 틀을 여지없이 깨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그것은 그저 엉뚱함에 그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책을 펴낸 것은 후자 쪽에 속한다. 카툰 에세이 『안녕달씨』는 그 ‘엉뚱함’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태어나서 49년 동안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일러스트를 직접 그렸는데, 이야기에 그림을 입힌 건지 그림에 이야기를 곁들인 건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일체감이 단단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달팽이 캐릭터를 처음 스케치한 게 1995년이라니, ‘달씨’는 25년 동안 김민광의 마음속에 살다가 세상에 나온 셈인가?
‘달씨’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안녕달씨』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이,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길거나 짧은 46편의 연작은 개인의 기억과 경험에서 도출한 다양한 주제를 ‘양면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 놓는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물과 불, 이런 모순적인 가치들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철학적 고민이 코믹한 은유(隱喩) 속에 녹아 있다.
집도 나침반도 없는 세상에 던져진 달씨의 행보는 사각의 링 위에 오른 49살 가장(家長)의 고독함과 같은 것이다. 처음엔 유치원 가방처럼 노란색이었다가 군대를 다녀와서는 파란색, 중년이 되어서는 주황색으로 바뀌는 달씨의 가방은 대한민국 사회를 통과해 가는 보통 사내들의 행로를 잘 보여준다. 그 고단한 이야기는 저세상으로 진입하면 끝날 거라고 상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언젠가는, ‘억겁의 세월’ 후에라도, 다시 반복되리라는 암시가 선명하다. 엉뚱하고, 달달하고, 무서운 책을 읽고 나면 ‘한세상 살아간다는 게 결국 이런 것인가?’ 하는 질문이 진한 여운처럼 남는다.
- 류정환 (시인, 도서출판 고두미 대표)
안녕달씨의 그림책은 당당히 껍데기에서 나와 속살을 드러내는 민달팽이의 입장에서 등가죽이 따갑도록 시린 현실을 그림과 글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지나간 삶의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와 현실의 목마름을 자신의 아바타 달씨의 독백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림이 메꾸는 여백으로 군더더기 없는 글이 위로를 받고, 짧은 글의 직설적 의미를 그림으로 완곡하게 표현한 달씨의 이야기는 어쩌면 어른들의 처량한 동화처럼 보인다. 또 언어의 양면성이라는 유희를 빌어 고된 삶의 이면에는 아마도 행복이 존재 할 수 있다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독자의 가슴에 설정하기를 바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작가 달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한 자신의 일상고독을 처음으로 용기 내어 말하면서 스스로에게 칭찬과 위로를 하고 있다.
- 이종현 (커뮤니티스페이스 653예술상회 대표)
민달팽이를 꿈꾸는 달씨
책갈피는 책장과 책장 사이를 부르는 말인데 읽던 곳을 표시하기 위한 물건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아마 나중에 생긴 말이 오히려 사전 앞으로 갔을 거란 생각이다. 인도인들로 부터 존경을 받는 학자 간디는 ‘바프(아버지를 다정하게 부르는 말)’라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정원에서 일을 보는 것이었단다. 인도국민들로부터 온 많은 글들과 편지를 보는 것이 일과인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편지글을 읽고 편지는 버린 뒤 편지를 고정하였던 클립을 빼어 선물처럼 보관을 하였다고 한다. 자신을 모욕한 미안한 마음에 클립을 선물한 것이라는 해석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안녕달씨를 받았을 때 가장먼저 꺼내 든 것이 달씨 캐릭터 책갈피였다. 내가 본 달씨는 분명 민달팽이가 맞는 듯하다, 등에 매고 있는 집은 평생지고 다녀야 할 지식의 똬리 이었을 것이다. 어는 시인은 ‘달을 따듯 책한 권을 사서 겨드랑이에 끼었다’라고 했다. 책갈피의 캐릭터는 그렇게 안녕달씨를 겨드랑이에 끼었다. 나는 간디의 클립이 문득 생각이 났다. 달씨는 인생의 한 갈피를 겨냥하고 있다.
- 김기현 (화가, 교육자, 미술칼럼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