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 증상 중 가장 흔한 증상 중의 하나가 더러운 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병에 걸려 죽지 않을까 하는 심한 불안감이다. 이 때문에 밖에 나갔다 오면 비누로 30분 이상 손을 씻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몇 시간씩 샤워해서 균을 씻어 내야만 안심한다. 외출 후에는 집에 들어 오자마자 현관에서 옷을 모두 벗고 갈아입는다. 외부인의 방문을 극도로 꺼리고, 어쩔 수 없이 외부인이 다녀가면 그가 머문 자리를 모두 소독하고, 심지어 카펫까지 세탁해야 불안감이 줄어든다. 진료실에 들어올 때도 손잡이를 만지지 못하고 누가 문을 열어 주어야 들어올 수 있다. 영국의 한 여대생은 강박 증상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씻어서 피부에 문제가 생기고, 이로 인한 감염증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그 학생의 부모가 기소되었다. 딸을 방치하고 치료받도록 하지 않았다는 죄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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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을 보다가 주부들이 외출 후 가스며 전기, 물 단속 등을 제대로 하고 나왔는지 의심쩍어 몇 번씩 확인해 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부들은 자신이 건망증에 시달린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증세를 건망증이라고만 하기는 어렵다. 건망증은 기억력이 떨어져 자신이 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이지만, 늘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은 건망증과는 좀 거리가 있는 강박 증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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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긴 셔츠를 입고 목 위까지 단추를 모두 잠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고, 지하철을 타면 몇 번째 칸, 몇 번째 문에 서 있어야 곧장 입구로 연결되는지 정확하게 역마다 계산해서 늘 그곳에 서 있어야 마음이 편한 사람도 있다. 수건은 가로로 먼저 접어 세로로 두 번 접을 것인지 아니면 세로로 먼저 접어 다시 가로로 두 번 접을 것인지, 자신이 늘 하던 방식대로 접어야만 직성이 풀리고 다른 사람이 접은 것도 다시 펴서 그렇게 접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행동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도 언뜻언뜻 나타나는 가벼운 강박 증세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습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매사를 편하고 여유 있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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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들은 대체로 이런 질환이 생기면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보다는 일단 신앙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 하므로 증세가 아주 심해진 다음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아 의사로서 안타깝다. 강박 증세가 나타나면 무조건 신앙의 힘에만 의지하려 할 것이 아니라 일단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무슨 병이든 증세가 심각해진 다음에는 치료가 더 힘들어진다. 요즘엔 목사님이나 신부님, 스님들도 현대 의학에 관심이 있고 이해도도 높은 편이라 신자들에게 병원 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많지만, 과거에는 이 환자처럼 종교적 강박증이나 죄책감 때문에 상담을 받을 경우 신앙심이 부족해서 그렇다면서 더 열심히 기도할 것을 권고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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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너무 사소한 것에 집착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성격을 가만히 되돌아보자. 그런 사람은 대개 매사에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완벽 지향적인 사람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사회 규범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범적인 인간형이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융통성이 없고 원리 원칙만을 고집하는 사람이기 쉽다. 이런 경향이 심할 경우 의사들은 ‘강박적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내리는데 흔히 이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른바 ‘일벌레’가 많다. 이들의 성격은 대개 감정 표현이 별로 없고, 결정을 빨리 하지 못해 항상 우유부단하며, 너그럽지 못하고 인색한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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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 증세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조절하려고 하므로 강박적인 생각이 들면 이를 억누르려고 한다. 물론 잠깐 동안은 억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곧 강박적인 생각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생각을 억누르려고 할수록 오히려 그 생각이 반복적으로 강화될 따름이다. 따라서 불안한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가면 그것을 억누르려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강박 증세를 치료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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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에 걸린 사람은 보통 현실감이 없고 자신의 증상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본인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인격 파탄이 나타난다. 반면에 신경증은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고 불합리하다는 점을 환자 자신이 잘 알고 있고, 현실감이 있으며, 인격이 온전하게 보존된다. 강박증은 그 누구보다도 환자 자신이 가장 고통스러우며 자신의 증세로 인해 불편함을 느낀다. 스스로 자신의 증상을 조절할 수 없고, 마치 어떤 큰 힘에 의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측면에서 강박증은 신경증, 즉 노이로제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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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도 많은 환자가 강박증이 생긴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심지어는 자신을 범죄자로 여기기도 한다. 강박증 환자가 너무나 쉽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강박증은 뇌의 신경 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진 신체적인 질환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환자 자신이 책망받을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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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처럼 불안을 일으키는 강박사고를 잡기 위해서는 그런 증상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여 헤쳐나가야 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강박증과 강박증을 앓고 있는 사람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강박증은 치료해야 할 병의 일종이지 그 사람 자체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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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유대감이 끈끈한 가족이 있다는 건 환자가 병을 극복하는데 있어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환경이다. 그러므로 환자를 비난한다거나 윽박지르기보다는 환자 스스로 저항하며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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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은 잠깐 쉬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을 하거나 무언가를 한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빈둥빈둥 거리거나 멍하게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 동안에 뇌는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기획하며, 사람들과 관계와 자아를 강화할 힘을 키운다. 멍때리기가 필요한 이유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과제를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뇌가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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