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한국 사회에 이미 엄마에 관한 이야기는 충분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또, 엄마 얘기야? 이젠 차라리 아빠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반론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찾아보려니, 아빠들의 활약상은 아직 미비해서 내용이 불충분하다. 현실적으로, 집안을 무대배경으로 할 때 자녀와의 관계에서 ‘엄마’가 아직은 키워드이자 중심 배우이기 때문이다. (중략) 엄마들이 힘들다는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 기울여 본 적이 있는지. 엄마들의 현실에 놓인 힘겨움과 그래서 ‘미쳐서 돌아버리겠는’ 위기감이 어떤 것인지 차분히 ‘들어보는’ 데서 시작하려고 한다. 엄마들의 힘겨움이 지속되면 엄마들만 ‘돌아’버리는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멘붕’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저자의 말」 중에서
미래 세대는 우리 사회의 누가 책임져야 할까? 교육자? 경찰? 정치인? 대통령? 이 모두가 연결되어 총체적으로 난국이다. 그런데 ‘총체적’이라 하니 누구 하나 콕 집어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려울뿐더러, 그 누군가가 적당히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꾀를 낸다. 엄마의 마음을 꿰뚫어 본 ‘사회’가 이렇게 해석하기 시작한다. “가장 많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사람을 책임자로 지목하자. 그래, ‘엄마가 문제야’로 덮어씌우자. 걱정이 너무 많으니 자신이 뒤집어썼다는 생각도 못할 거야!”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에 대한 책임과 걱정을 모두 엄마에게 떠맡겨 버리고 있다. 모두 나 몰라라 하는 사이에 엄마들의 걱정만 늘어나고, 그래서 엄마는 “확 뒤집어엎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계속 이어지지 않는다. 이런 심각한 상황을 그저 ‘엄마 뜻대로’ 되지 않는 토끼에 대한 고민 수준으로 보아 넘긴다. ---01 「엄마노릇?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 여러 번 했지」 중에서
직장을 다니거나 아니거나, 엄마가 곁에 없으면, 아이가 문제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말에 이런 분위기를 타면서 직장 다니는 엄마들에게 ‘무단파업’이라고 비난하며, 보모는 아이를 ‘감정적 불구자’로 만들고, 그렇게 사랑 없이 자라는 아기는 결국 마음속에 증오만 가득한 인간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고 한다.(워너, 2005: 145) 이런 분위기는 한국 저변에 깔려 있다. 아이가 잘못되면 일차적인 책임이나 원인은 엄마에게 있다. 그 다음에야 ‘엄마의 상황’이 평가받는다. 그런데 엄마에 대해 ‘박탈’ 운운하는 이런 논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다. (중략) 한국 사회는 아이가 어떻게 되든, 실은 그 원인을 엄마로부터 끌어내려고 엄청나게 노력한다. 아이가 잘못되면, 모두 아이를 그렇게 만든 엄마 탓이고, 책임이다. 엄마가 아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감당해야 하는 동안 아빠가, 가족이, 학교가, 이 사회가 보여준 방관자적인 태도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실 엄마들은 뭘 어떻게 하든 ‘욕’을 먹게 되어 있는 구조다. ---04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저주, ‘너 같은 자식 낳아봐!’」 중에서
‘엄마’가 되는 것이 어떤 건지 상상이 되는가? (중략) 전혀 모르는 또 하나의 생명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일종의 신이 할 수 있는 역할처럼 생각되기도 하는 경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한 생명을 세상과 연결하는 역할인데 어느 누가 감히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단 말인가! 생명을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신비로우면서도 낯선 경험과 과정이기 때문에 준비를 잘 할 수도 없고, 잘 모르는 경험일 수밖에. 그러니 따지고 들면, 이 엄마들이 육아 바이블을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엄마들의 ‘말씀’을 통해 바이블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중략) “솔직히 몰랐다”는 엄마들의 이야기에, 그 막막함과 당황스러움에, 위로를 건네고 싶다. 그리고 몰랐다는 말이 던지는 다층적인 의미의 결을 헤아려 알리고 싶다. “엄마라는 존재가 되는 경험이 어떤 건지 몰랐다. 그리고 그 경험을 같이 나눌 사람과 사회가 이리도 무관심할 줄 몰랐다. 그렇지만 아이마다 다른 경험이 주는 당혹감도 있고 또 색다른 재미도 있다. 그런 경험을 ‘모성’ 속에 가둬야 하는 것인지도 몰랐고, 심지어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더 나아가서 그런 엄마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스스로 생각했던 것과 이렇게 다를 줄 몰랐다.” 엄마들의 몰랐다는 이야기는 진심으로 몰랐다는 뜻이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엄마로서 무관심했다는 반성도 아니다. 오히려 이 엄마들의 이야기는 가감 없는 솔직한 ‘엄마’라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가 이다지도 엄마들에 대해 무관심할지 몰랐다는 항변이기도 하다.
---06 「엄마가 되는 것, 솔직히 몰랐어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