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흘러간다. 이라크인, 특히 야지디족 같은 소수 부족들은 새로운 위협에 잘 적응했다. 무너지는 나라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그래야 한다. 적응이라 하면 때론 아주 소소한 일들을 뜻한다. 우리는 꿈의 크기를 줄였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 농사일을 그만두고 덜 힘든 일을 하는 것, 제때 결혼식을 하는 것 같은 바람들 말이다. 그리고 애초에 그런 꿈은 이룰 수 없었다고 쉽사리 자신을 설득했다. … 집단 학살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적응하는 것도 야지디의 몫이었다. 사실 그건 적응이 아니라 왜곡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게 너무나 마음 아팠다. --- p.26~27
튀니지에서 시작된 반정부 시위는 곧 시리아로 퍼졌고,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즉시 가혹하게 진압했다. 2012년 시리아는 내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2013년 이라크전 이후 힘을 키운 ‘이라크와 알샴의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 of Iraq and al-Sham, ISIS)’라는 단체가 시리아의 혼돈 속에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ISIS는 곧 시리아 대부분을 점령하고 국경 너머 이라크로 시선을 돌렸다. 이라크 수니파 지역에서는 그들의 동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2년 뒤 ISIS는 북부의 이라크군을 완전히 격파했다. 군은 주둔지를 포기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약체였다는 것을 증명했다. 2014년 6월, 우리가 모르는 사이 ISIS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했다. 모술은 코초에서 동쪽으로 12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다. --- p.75~76
난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게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여자들의 울음소리도, 무장병의 무거운 발소리도, 작열하는 오후의 태양도, 더위까지도 사라져 버린 듯했다. 난 트럭에 태워지는 오빠들을 지켜봤다. 마소우드는 구석에, 엘리아스는 뒤쪽에 있었다. 곧 문이 닫히고 트럭이 학교 뒤쪽으로 굴러갔다. 잠시 뒤 우린 총소리를 들었다.
내가 창문에서 멀어지며 쓰러진 순간 휴게실에 비명이 난무했다. “저들이 남자들을 죽였어!” 여자들이 고함치자 무장병들은 욕하면서 조용히 하라고 다그쳤다. 어머니는 꼼짝 않고 바닥에 앉아 침묵했다. --- p.133~134
나 같은 소녀들은 버스 두 대에 태워졌다. … 아부 바타트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다시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소녀들을 골라서 빈번하게 다가와 더 오래 만졌다. 어찌나 세게 주무르는지 몸을 찢어 놓을 작정인가 싶었다. 탈 아파르를 떠나 10분쯤 지나자 난 도저히 더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다시 어깨를 만지자 난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적막을 갈랐다. 곧 다른 소녀들도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버스 안은 대학살 현장처럼 변했다. 아부 바타트는 얼어붙었다. “닥쳐, 모두!” 그가 외쳤지만 우린 계속 악을 썼다. ‘저자가 죽인대도 상관없어. 죽고 싶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투르크멘족 운전수가 차를 길가로 붙이면서 급정거했고, 난 앉은 채로 몸이 젖혀졌다. 잠시 뒤 앞에서 달리던 흰 지프도 멈추었다. 그 차에서 한 사람이 조수석에서 내려 우리 버스로 걸어왔다. --- p.150·155
“너희가 왜 끌려왔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너희는 선택권이 없다. ‘사비야’가 되려고 여기 왔고,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 너희 중 누가 다시 비명을 지르면, 장담컨대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될 거다.” 아부 바타트가 여전히 내게 총을 겨눈 상태에서 나파는 버스에서 내렸다.
그 아랍어가 내게 적용되는 것은 그때 처음 들었다. ISIS가 신자르를 점령하고 야지디를 납치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인간 전리품을 사비야라고 불렀다. 그들이 성 노예로 사고파는 젊은 여인을 의미했다. 이게 우리를 이용할 방안이었다. … 버스에 탄 우리 모두가 그런 운명에 처해 있었다. 우린 이제 인간이 아니었다-성 노예인 사비야들이었다. --- p.156~157
지난 3년간 야지디 여자들이 ISIS에게 잡혀 성 노예가 된 사연을 많이 들었다. 대부분 같은 폭력을 겪은 피해자들이었다. 우린 시장에서 판매되거나, 신병 혹은 고위 지휘관에게 선물로 건네졌다. 그러면 그의 집으로 끌려가서 강간당하고 모욕을 받았으며, 대부분 폭행당했다. 그런 뒤에는 다시 팔리거나 선물로 건네져서 강간과 폭행을 당하고, 또다시 팔리거나 선물로 건네져 강간과 폭행을 당했다. 쓸모가 다하고 죽기 전까지 이런 식이었다. 탈출을 시도하면 지독한 벌을 받았다. 하지 살만의 경고처럼 ISIS는 검문소에 우리 사진을 붙였고, 모술 주민들은 노예를 가까운 IS 센터에 신고하라고 지시받았다. 그러면 5,000달러를 보상금으로 받는다고 했다. --- p.206
때로 집단 학살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오직 야지디 여성이 당한 성 학대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저항한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강간뿐 아니라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내 오빠들이 살해당한 일, 어머니의 실종, 소년들이 세뇌당한 것까지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난 여전히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겁난다. 다른 여자들처럼 버티지 않았다고 해서 다에시가 저지른 짓을 인정한 것은 아님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 p.208
모르테자 이후 다른 경비병이 날 강간했다. 난 어머니와 카이리 오빠를 불렀다. 코초에서 그들은 내가 필요로 할 때마다 곁에 있어 주었다. 손가락만 조금 데어도 내가 부르면 도와주러 달려왔다. 그러나 모술에서 난 혼자였고 내게 그들은 이름으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떤 행동이나 말로도 모르테자를 비롯한 이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것은 내게 다가온 경비병의 얼굴이다. 그는 강간할 차례가 되자 안경을 벗어 탁자에 얌전히 내려놓았다. 안경이 깨질까 봐 걱정되었던 거다. --- p.222~223
하지 아메르가 문을 잠그지 않고 경비병도 없이 집에 날 혼자 둔 것은 깜빡해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내가 너무 오래 폭행당하고 병과 허기로 약해진 시점이라 탈출할 엄두를 못 낼 거라고 짐작해서였다. 그들은 나를 영원히 소유할 줄로 알았다. ‘너희가 틀렸어.’ 속으로 중얼댔다. 난 눈 깜짝할 새에 가방을 밖으로 던진 다음 몸을 담장 위로 날렸다. 곧 담장 너머에 탁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 p.254~255
왜 나세르는 선량한데 모술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리 잔인했는지 모르겠다. 마음 깊이 선량한 사람이라면 IS 근거지에서 나고 자라도 여전히 선량한 것 같다. 강제 개종을 당해도 내가 그 종교를 믿지 않고 여전히 야지디인 것처럼. 그런 인품은 내면에 달려 있다. 내가 나세르에게 말했다. “조심해요. 몸을 잘 챙기고, 가능한 범죄자들과 멀리 지내요. 자, 헤즈니의 전화번호를 받아요.” … 그가 말했다. “행복하게 살기 바라요, 나디아. 지금부터 쭉 멋진 인생을 살아요. 우리 가족은 당신 같은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쓸 거예요. 모술에서 탈출하려는 여자들을 알게 되면 우리에게 전화해요. 우리가 도와주려고 노력할게요.”
나세르가 다시 말했다. “어쩌면 언젠가, 모든 여자들이 해방되고 다에시가 이라크에서 없어지는 날, 다시 만나 이번 일을 이야기해요.” --- p.345
검문소에서 사내들에게 성폭행당한 일이나 하지 살만에게 담요 위로 채찍질당했던 일을 말할 때면, 다시 그 순간과 공포로 돌아가는 듯하다. 도와줄 사람들을 찾아 어두워지는 모술 하늘 아래를 헤매던 이야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 진솔하고 담담하게 전하는 사연은 내가 테러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다. 나는 테러범들을 법정에 세울 때까지 이 무기를 사용할 계획이다. … 난 우릴 유린한 남자들의 눈을 똑바로 보고, 그들이 벌받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나 같은 사연을 가진 마지막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p.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