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이해하고 싶어서 우울증에 관한 글을 찾아봤는데, 어떤 것도 너를 말해주는 책은 없더라.” 그 말에서 저는 책을 낼 용기를 얻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저처럼 아픈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들어올 엄두도 못 내는 고립된 공간에서 저와 같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죽을 힘을 다해 살아내고 있었죠. 그건 당연하지만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조금 불안한 보통 사람입니다」중에서
사실 저는 지금도 아픕니다. 거짓말처럼 나아서 희망을 얘기하면 좋겠지만, 지금도 아픈 시간을 보내며 하루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그런 제가 쓴 글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글을 보면서도 분명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갈 가치는 있다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아픈 사람을 주변에 둔 사람에게는 넓은 이해를 줄 수 있는 글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조금 불안한 보통 사람입니다」중에서
나는 투약을 마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도로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 동생이 투약 중이라 아무도 없는 간호사실로 가고 있었다. 자해할 물건을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동생을 잡아 말리며 간호사님을 불렀다. 잡은 손을 뿌리치며 어린 동생이 말했다. “언니, 저 말리다가 다쳐요.” “괜찮아요. 나 다쳐도 돼요.” 나는 누군가를 보살필 만한 처지가 못 된다. 자신에게 상처를 줘야만 풀리는 그 뭔가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나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곁에 있는 사람으로서 동생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동생의 모습을 보며 상처 주는 일이 지켜보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동생의 옷소매를 놓을 수 없었다. ---「때론 나도 나를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어요」중에서
남편은 전화를 끊고 바로 집으로 왔다. 집과 일터는 꽤 먼 거리였는데 삼십 분도 안 되어 도착했다. 내 얼굴을 본 남편은 그야말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말했다. “앞으로 한 달만 살자, 우리. 한 달 동안 마지막인 것처럼 그렇게 살자.” “너 정말 나빠. 진짜 나쁜 사람이야. 우리 살자. 나는 살고 싶어.” “미안해. 난 죽고 싶어.” ---「나아가지 못해도 살아갈 이유는 있습니다」중에서
나는 아직 아프고 나약하다. 더 나약해질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조금 더 자랐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더는 행복에목매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은 없지만, 그만큼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의 평온을 찾기도 했다. 지금도 일은 두렵다. 하지만 나를 믿기보다 나를 믿어주는 이들을 믿고 싶다. 그리고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온 힘을 다할 것이다. 한강 작가의 소설 『흰』에 나온 무너졌기에 새것인 사람. 나는 그 사람이 되려 한다. 늙은 석벽과 새것이 연결된 이상한 무늬를 가진 사람이. 나는 오늘, 죽음 속에서 살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