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장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 영어교육에 미칠 전반적인 영향에 대하여 논의하고 관련하여 영어교육이 그에 어떻게 대응하여야 할지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논의한다. 1절에서 사회가 점점 더 ‘초연결성’, ‘초지능성’, ‘초융복합성’의 특징을 지닐 것이라는 예측을 수용적으로 논의하면서, 현 영어교육 체제가 지닌 어두운 측면을 조명한다. 제2절에서는 사회/경제체제에 요구되는 ‘윤리화’와 ‘유연화’ 및 개인에게 요구되는 21세기 역량에 대하여, 제3절에서는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영어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이해와 변화하는 사회/문화 맥락에 따른 비판적 다중문해력 교육 등의 필요성을 검토한다. 제4절에서는 지금까지 논의된 요구에 대한 영어교육의 전반적 대응 방안을 제시한다. 기계와 인간의 상호보완성을 통하여 기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과, 영어교육에 대하여 실존적/인간주의적 접근이 필요함, 그리고 이러한 것이 융복합 영어교육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제안한다. 마지막으로 제5절에서는 이러한 영어교육적 상황이 체계기능언어학과 같은 형태의 융복합적 영어 연구를 요구하고, 영문학 연구/교육가 지역성을 담아내면서 영어 문학 창작을 강조함으로써 언어/문화 연계성을 좀 더 부각하며 학습자들의 비판성/창의성/인성 함양에도 기여하여야 할 것임을 제안한다.
I. 초연결성, 초지능성, 초융복합성의 세상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등을 포함한 여러 분야의 기술혁신으로 인하여 현재 산업, 경제 그리고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를 일컫는다. 이는 지금까지 세계화로 인하여 계속되고 있는 금융, 언어(지식, 아이디어, 주제어, 내러티브), 기술, 사람과 문화 그리고 미디어(정보, 이미지)의 흐름을(Appadurai, 1996) 가속화할 것이다. 이는 교통·통신·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사람?문화의 상호 연결과 교류가 강화되며 기계들이 ‘사물인터넷’ 등을 통하여 상호 연결되는 ‘초연결성’을 실현할 것이다. 또 기계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하여 조만간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초지능성’을 지닐 것으로 예측된다. 결과적으로 세계는 언어, 사람, 문화 등에서 ‘초융복합성’의 특징을 지닐 것으로 예측된다. 즉 다언어문화사회가 확산될 것이다(슈밥, 2016).
제1·2차 산업혁명이 인간의 육체노동을 상당 부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었다면, 제3·4차 산업혁명은 인간의 정신노동을 기계로 대체해 가는 것이다(김대식, 2016). 그런데 지금까지의 경우와는 달리, 4차 산업혁명은 그 성격상 사라지는 직업의 숫자만큼 새로운 직업을 새로 생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2020년 미래고용보고서’는 2020년까지 선진국 및 신흥 시장 15개 국가에서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으로 예측한다(권영선, 2016, 37쪽). 이런 예측들이 맞는다면, 이 새로운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엄청난 도전을 제기한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적 진보는 이렇게 사회체제와 인간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관심 분야인 영어교육과 관련하여서는, 거시적으로, 양질의 영어 학습 교보재, 로봇 교사 등이 개발되고 지식과 정보의 흐름이 증가하며 외국인의 방문이 늘어남에 따라,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EFL 상황에서 좀 더 실제적인 영어에 접하는 것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EFL과 ESL 환경의 구분이 미미해질 것으로 예측되어, 우리나라에서의 영어교육은 ‘혁명’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그에 따라 한국어와 영어 간의 수준 높은 기계 번역·통역(이노신 외, 2016; Siciliano, 2017)이 영어 관련 직종을 크게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영어 관련 전공에서는 교사, 교수, 통번역사의 수요가 상당히 감소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미시적으로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가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의 당면 문제에 대하여 어떤 해결방안을 찾도록 도와줄지에 대하여도 질문해 보아야 한다(Kern, 2006).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그 구조적 부적절성으로 인하여 실패의 조짐이 역력하다. 교실이 붕괴되(었)고(엄기호, 2013), 학습자들이 교실에서 잠을 잔다(송현숙, 이혜리, 2013; Ahn & Lee, 2017).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신분주의’(Fuller, 2014)로 인한 ‘갑질’, 왕따, 배척의 문제도 끊이지 않아, 학교는 불행하다(전성은, 2010). 도시/농촌 간의 그리고 사회계층 간의 ‘영어 격차’의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새로운 도전과 기존 문제의 맥락에서, 우리는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의 본질 및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와 그에 따른 방향 전환의 필요성을 예측할 필요가 있겠다. 제2절에서는 4차 산업혁명의 전망과 관련한 사회체제적, 개인적 요구에 대하여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고 그 교육적 함의를 논의할 것이다. 제3절에서는 영어교육 내부에서 일어난 성찰들을 검토한다. 제4절에서는 직전 문단에서 언급된 기존의 문제들과 제2-3절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 4차 산업혁명의 도움을 받아 영어교육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그 방안을 스케치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5절에서는 마무리를 하면서 이러한 영어교육적 상황이 시사하는 영어학과 영문학 등 인접 내용학문의 조정 필요성에 대하여 간단히 고찰하고 논의를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II. 윤리화, 유연화 그리고 ‘융복합 역량’
전 절에서 기술한 예측과 관련하여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사회체제의 측면이요, 다른 하나는 개인의 역량 측면이다.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어떤 사회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개인은 어떤 역량을 지니는 것이 필요한가?
1. 사회체제적 요구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회에 대하여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쟁점 중 하나는 사회체제의 ‘윤리화’이다. 윤성민(2016)에 따르면, 다가오는 시대에는 기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과 기계에 일자리를 위협 받거나 기계가 규정하는 일을 할 사람들 간의 빈부격차가 심화될 것이고, 그에 따라 ‘비인간화’가 가속되어 사회 통합이 저해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본성적으로 개인적 성공 및 자아실현과 함께 공동체 구성원과의 소통을 통한 ‘인정받음’을 추구한다. 이는 우리에게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이 반드시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구성원 간의 ‘결속’을 필수요소로 한다. 따라서 사회체제의 윤리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가장 기본적인 과제 중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 발전의 기본적 추동력은 이윤 추구이다. 기술 혁신을 통한 이윤 추구는 경제적 성장을 가져오기 때문에, 각 나라는 이를 필요로 하고 격려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를 방치하면 사회문화적 ‘그늘’이 확장될 개연성이 높다. 빈부격차, 소비/문화의 차별화, 상대적 박탈감이 공동체의 결속과 지속가능성을 저해할 것이다.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로 인하여, 윤성민은 ‘과학기술 개발이 어떤 패러다임을 지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면서, ‘인간 중심의’ 과학기술 발전을 통하여 사회 시스템을 윤리화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사생활보호 안전장치, 빅 데이터의 공공인프라 구축 등이 논의되고 있다(양혁승, 2016).
둘째 쟁점은 노동/교육/사회 제도의 ‘유연화’이다. ‘혁신’의 원천인 과학기술이 혁명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그에 따라서 산업구조가 원활하게 조정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기술과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을 결합·활용하여 혁신을 가져올 “융합적 경계인”이 필요하고, 그들이 그 혁신의 결과로 사회경제적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환류’가 쉽게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사회공동체는 한 편으로 청년 세대를 지원하고 창업을 활성화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다른 한 편으로 노동·교육·사회 제도를 ‘유연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권영선, 2016). 그리고 이러한 혁신 시도와 제도의 유연화를 지원하는 “국가 사회보장 제도” 등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여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양혁승(2016)은 지속적 학습과 다방면에서의 혁신이 가능하도록 3M이나 Google 등에서와 같은 법정 근무시간 단축 등 인력운용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또 경제적 양극화 해소를 위한 ‘기본 소득제’(basic income) 등을 고려·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2. 개인적 요구: 21세기 핵심 역량
실제적으로, 로봇이나 인공지능 기계가 어떤 직업을 가장 먼저 잠식할 것인가? 기계적·반복적인 단순 작업을 필요로 하는 노동직부터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좀 더 고등 사고능력이나 직관력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슈밥(2016)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 개인은 “맥락적contextual 지능”, “정서적emotional 지능”, “영감적inspired 지능 그리고 “신체적physical 지능”이 필요하다. 첫째, 맥락적 지능은 새로운 동향의 예측, 네트워크의 가치 존중, 총체적 접근, 유연성, 적응력, 다양한 이해관계와 의견의 통합 등을 가능하게 한다. 둘째, 정서적 지능은 자기인식, 자기규제, 동기부여, 감정이입, 사회적 기량 등의 토대가 된다. 셋째, 영감적 지능은 “의미와 목적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능력”(255쪽)을 의미하는데, 창작열, 공공의 도덕의식, 상호연계와 팀워크에 필요한 공유(sharing)와 신뢰의 토대가 된다. 그리고 “신체적 지능”은 “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가꾸고 함양하는 능력”(256쪽)이다. 이들은 인간의 지/정/의 그리고 신체의 측면에서의 필요성을 의미하는데, 소위 ‘21세기 역량’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되었던 논의들(OECD, 2005; Trilling & Fadel, 2009)의 연장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회체제·개인적 요구는 모두 사회와 개인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것으로 중요한 교육적 함의를 지닌다. 교육은 우선적으로 미래 인재들이 인간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가치체계와 태도를 내면화하여 주체적으로 가장 적절한 사회체제를 구축·개선해 나갈 수 있는 민주적 역량과 ‘비판적 주체성’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제대로 판단하고 감시하며 투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현상·문제에 대한 총체적 안목을 배양하며 ‘융합적 경계인’으로 자라나서 혁신 역량을 갖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권영선, 2016). 이는, 그들이 테크놀로지 문해력(literacy)이 있어서 인공지능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도전·실험 정신, 창의적 사고력, 기업가 정신을 고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2차 산업혁명 시대의 산물인 표준적·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의 재능과 호기심에 의거하여, 창의적 사고력, 도전 정신, 리더십, 협동심 등의 함양 등이 필요하다(양혁승, 2016; 이승주, 2016).
흥미로운 것은 21세기에 필요한 사회체제를 논하는 학자들이 이같이 궁극적으로는 교육기관에 그것을 실현해 낼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해 주길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학습자들에게 이를 위한 준비 경험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바람직한 사회체제를 구성해 갈 역량은 어떻게 갖추어야 하며, 영어교육이 이러한 역량을 배양하는 데 얼마나 적절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현금의 영어교육 문제와 아울러 최소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탐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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