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랑 한 집에서 살겠다고? 돼지는 음식이잖아! 돼지는 더럽잖아!”(사실 에스더는 더럽지 않다. 에스더는 경이로울 정도로 깔끔하다.) 가족들은 항상 우리를 지지하고 우리 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데릭의 할머니는 집안에서 돼지를 키운다니 믿을 수 없다면 할아버지가 무덤에서 한탄하고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무엇이 돼지를 다르게 만들었을까? 개와 고양이가 집에서 사랑받고 가족으로 대접받는 동안, 왜 돼지는 잡아먹히기 위해 사육되고, 갇히게 됐을까? 겉모습의 차이를 제외하면, 우리는 에스더와 우리 집 개, 고양이와 어떤 점이 다른 지 알 수 없다. 에스더는 흔들만한 꼬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꼬리가 있다면 분명 대부분의 시간 동안 행복하게 꼬리를 흔들었을 것이다. 왜 돼지는 운이 나쁜 동물이 된 것일까? 왜 우리는 돼지가 매력적인 성격과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그리고 만일 에스더가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면 에스더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스토브 위에 놓인 프라이팬에서 베이컨이 바삭하게 익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맛있는 베이컨 냄새 솔솔 풍겼다. 그런데 그 순간 냄새가 갑자기 끔찍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냄새 같았다.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스더의 얼굴과 베이컨을 굽고 있는 데릭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데릭은 요리를 하면서 꿀꿀거리는 에스더를 상냥하고 행복하게 가끔씩 내려다보았다. 맙소사.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만약에 내가 고기를 먹을 수 없다면 뭘 먹어야 하지? 나는 샐러드를 싫어한다. 맛이 이상한 채소를 싫어하는데, 거의 모든 채소가 나에게는 이상한 맛이 난다. 그럼 내가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남지? 곡식과 견과류만 먹고 살아야 하나? 그러다가 새가 되는 거 아냐? 등등. 하지만 이런 생각을 데릭에게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이야기만 나눴다. 우리는 진화하고 있는데 내 유별난 입맛이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에스더와 살게 되고 에스더의 성격이 활발해질수록 “그저 동물일 뿐이잖아.”라는 생각이 허튼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스더는 매일 우리에게 특별한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중에는 ‘찬장 열고 음식 훔치기’처럼 나를 무지하게 화나게 하는 것도 있지만. 에스더의 높은 지능은 우리를 변화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었다. 우리는 알게 되었다. 에스더가 이렇게 영리하다면, 모든 돼지가 영리한 것이다.
-비건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비건이 되기 위해서는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도 많고, 짜증나고 성가신 일도 있다. 처음에는 장보는 시간도 더 걸린다. 제품의 성분표시를 꼼꼼히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없고,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변명거리를 만들지만, 솔직히 그건 힘든 일이라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 익숙해진 것들을 조금 덜어내고, 새로운 것을 조금 배우면 된다.
-에스더가 자랄수록 배변 패드도 점점 더 큰 것을 사용해야 했다. 여기서 크다는 의미는 소파 크기만 한 패드를 말한다.
-화장실 청소는 악몽이었다. 화장실은 돔 구조였기 때문에 서서 삽(고양이 화장실용 삽이 아니라 일반 삽)으로 오물을 퍼낼 수가 없었다. 지붕이 있었기 때문에 화장실 안으로 기어 들어가서 청소를 해야 했다. 꽤 힘든 육체노동이었고, 무척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틀에 한번 꼴로 화장실로 기어 들어갔다.
-에스더는 손잡이가 달린 거대한 식물성 기름통을 쓰러뜨린 후 뒹굴어서 온몸에 기름이 번들번들한 상태로 돌아다녀서 온 집의 바닥과 벽을 온통 기름으로 덮어버렸다. 벽에서는 기름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식물성 기름을 가득 실은 유조선이 지나가다가 우리 집에서 기름 유출사고를 일으킨 것 같았다.
-에스더는 내내 우리를 가지고 놀았다. 어이없게도 에스더는 지적이고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는 녀석이다. 에스더를 두 단어로 설명해야 한다면 ‘영리함’ 과 ‘주도면밀함’이다. 돼지가 개나 고양이보다 영리하다고 말하곤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영리한 것 그 이상이다. 음식을 훔쳐 먹으면 혼난다는 걸 알게 된 에스더는 그만두지 않고 발각되지 않고 도망치는 법, 들키지 않는 훔쳐 먹는 법을 생각해냈다. 에스더는 치밀했다. 유명 절도범이라도 에스더에게 배울 점이 분명 있을 정도다.
-에스더가 최대한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비빌 때면 그건 에스더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에 그보다 좋은 게 있을까. 에스더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아니, 그 이상이다.
-에스더의 소식만 전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하나 만들었다. 돼지 전용 온라인 공간을 만드는 일이 웃기고 쓸데없는 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에스더와 함께 하는 삶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우리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다. 이때만 해도 나는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한 건지, 에스더 페이지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건지 예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에스더를 알게 되고,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왜 채식을 하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에 대해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채식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랄하고 혹독한 표현이나 마음을 괴롭히는 사진과는 거리를 뒀다. 따뜻함과 행복함, 마음에 여운 남기기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것이 ‘에스더 운동The Esther movement’이 성공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방방곡곡 수많은 사람들이 돼지가 얼마나 깨끗한지, 얼마나 영리한지 몰랐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일을 그들이 다시 그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에스더가 우리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에스더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똑같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우리는 이래라 저래라 설교하지 않았다. 에스더가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킨 요인은 유머와 친절함, 친근한 에스더의 사진을 이용한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는 접근법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걱정하고 염려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단체한테 두 달 안에 50만 달러를 모으라는 임무를 준다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단체도 아니었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는 데릭과 스티브, 에스더와 친구들이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꿈이 전부였다. 그런데 해낸 것이다.
-이제 에스더는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 것이다. 에스더가 우리 덕분에 행복한지는 자신이 없다. 하지만 에스더가 알려준 ‘따뜻함은 전염된다.kindness is contagious ’는 삶의 태도 덕분에 우리의 삶 전체가 바뀐 것은 확실하다. 이 모든 것이 돼지 한 마리와 그 돼지의 미소에 우리가 사랑에 빠져서 일어난 일이다.
-폴 파머(건강의 동반자Partners In Health의 공동설립자이자 하버드 의과대학 국제보건 및 사회의학부 교수로 20년 넘게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돕고 있다.) 박사의 말이 맞다. “어떤 생명은 덜 중요하다는 생각, 이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다.” 에스더는 우리가 이 문장 속에서 진실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우리는 300킬로그램짜리 돼지를 집에서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보호소로 만들 농장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전 세계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도울 거라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렇게 됐다. 따뜻함은 마술과 같다. 에스더의 웃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