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된 수십억 종의 생물을 대표하는 스물다섯 종의 화석을 선정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나는 진화사에서 중요한 경계를 나타내는 화석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이 화석들은 중요한 분류군이 처음에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관한 결정적 단계를 보여주거나, 한 생물군에서 다른 생물군으로 일어나는 진화적 전이를 증명한다. 생명에서는 단순히 새로운 분류군의 발생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크기, 생태적 틈새, 서식지에 대한 적응에서 놀라운 다양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지구에 살았던 가장 큰 육상동물과 가장 큰 육상 포식자부터 대양을 누볐던 가장 큰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생명이 이룰 수 있었던 가장 극단적인 사례들도 선정했다. --- p.10
찰스 다윈이 1859년에 『종의 기원』을 발표했을 때, 화석 증거의 부족은 그의 주장에서 취약한 부분이었다. 당시에는 만족스러운 전이화석transitional fossil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이 책에서 다룰 화석들 또한 하나도 없었다. 최초의 훌륭한 전이화석은 1861년에 발견된 아르카이옵테릭스Archaeopteryx였다(제18장). 더 큰 골칫거리는 고생대에서 가장 오래된 시기인 캄브리아기(약 5억 500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이전의 화석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19세기 중반에는 화석 기록이 빈약했고, 화석의 세세한 순서에 주목하기 시작한 지는 겨우 60년밖에 되지 않았다. --- p.13~14
삼엽충은 키틴질로 이루어진 크고 복잡한 껍데기를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게, 가재, 새우, 곤충, 거미, 전갈, 그 밖의 모든 절지동물도 키틴질 껍데기를 갖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쉽게 분해되는 이런 껍데기를 방해석 광물층으로 강화하기도 했다. 그래서 삼엽충의 화석 흔적은 캄브리아기의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화석화되기 쉬웠다. 광물화된 껍데기를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무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단단한 껍데기를 가진 삼엽충의 겉모습 덕분에 아트다바니아조의 화석 기록에는 삼엽충이 지나치게 많이 남아있었고, 톰모티아조와 아트다바니아조 사이에 생명의 ‘캄브리아기 대폭발’이 있었다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었다(그림 3.4를 보라). 굳이 따지자면, 이 시기에는 광물화된 골격을 가진 동물의 ‘폭발’이 있었을 뿐이다.--- p.52~53
우리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어떤 식의 평가에서도 지구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동물은 언제나 절지동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구 전체의 동물종 수는 약 140만 종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그중 85퍼센트 이상을 100만 종이 넘는 절지동물이 차지하고 있다(그림 5.4). 곤충은 거의 90만 종에 달하고, 그중에서도 딱정벌레만 34만 종이 넘는다. 위대한 생물학자인 J. B. S. 홀데인은 생물학 지식을 통해서 창조주에 대해 무엇을 배웠느냐는 질문에, “신은 딱정벌레를 유별나게 좋아했음이 분명하다”라고 답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가 속한 척삭동물문Chordata은 약 4만 5000종에 불과하며, 그중 절반 이상이 어류다. 포유류는 4000종이 조금 넘을 뿐이다.--- p.72
우리는 지구의 숲과 초원을 바라보면서 온갖 다양한 동물의 생활을 지탱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의 식물질이 자라는 ‘초록빛 행성’을 찬양한다. 그러나 지구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구는 45억 년 역사의 대부분 동안 척박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혹독한 지표면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육상식물은 없었다. 그래서 암석은 극심한 화학적 풍화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유기물을 흡수할 해양 유기체가 하나도 없는 바다로 모든 양분을 흘려보냈다. 생명 역사의 처음 15억 년 동안, 광합성 유기체는 남세균(시아노박테리아)뿐이었다. 남세균은 얕은 바닷물에 살면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형성했다(제1장). 그 후 약 18억 년 전, 진핵세포(DNA를 보관하기 위한 별개의 핵과 광합성을 하는 엽록체 같은 세포소기관들을 갖고 있는 세포)로 이루어진 진정한 식물인 조류의 증거가 처음으로 나타났다.--- p.90~91
최근에 에밀리 스탠든이 이끄는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는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는 일이 얼마나 쉽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들이 실험한 동물은 대단히 원시적인 경골어류硬骨魚類인 아프리카의 비처bichir(폴립테루스Polypterus)였다. 비처는 철갑상어sturgeon와 주걱철갑상어paddlefish 같은 원시적인 조기어류의 먼 친척이다. 비처의 지느러미는 초기 육기어류의 지느러미와 다르지 않았고, 따라서 비처는 육기어류와 조기어류 사이의 연결고리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이 물고기를 정상적인 물속 서식지가 아닌 땅 위에서 키웠다(비처는 공기 호흡을 잘한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몇 세대를 거치자 비처의 지느러미는 발생 가소성developmental plasticity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서 더 강해지고 땅 위를 기어다니기에 더 적합해졌다. 발생 가소성 덕분에 동물은 배 발생embryonic development이 일어나는 동안 스스로 몸을 변형해서 새로운 도전에 적응할 수 있다. --- p.154
18세기 초반의 학자들은 화석의 특성과 기원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그들은 암석 속에서 이런 특이한 형체가 발견되는 까닭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을 내놓았다. 화석을 뜻하는 ‘fossil’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인 fossilis(발굴로 얻은 것)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원래는 암석을 파내서 나온 것(결정, 결핵체concretion, 그 밖의 다른 비생물학적 물체도 포함된다)은 모두 화석이라고 불렸다. 어떤 과학자들은 화석이 악마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악마가 신실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고 의심을 퍼뜨리기 위해서 화석을 암석 속에 넣었다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은 화석이 신비한 ‘형성력plastic force(비스 플라스티카vis plastica)’의 영향을 받아서 암석 속에서 자란다고 주장했고, 어떤 과학자들은 생명체가 암석의 틈새에 비집고 들어갔다가 납작하게 눌려 죽은 후에 그 골격이 돌 속에 남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수의 학자들만 화석화된 조개와 고둥의 껍데기를 그 후손들과 연결시켰다.--- p.157~58
1830년대가 되자, 사람들은 익티오사우루스와 수장룡 멸종에 숨겨진 의미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괴물들이 바다에서 헤엄을 치던 무시무시한 ‘대홍수 이전의 세계antediluvian world’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그림 14.3). 몇 년 후, 이 이야기에 공룡이 추가되었다. 1820년대와 그 이전에도, 조지 퀴비에 남작은 매머드mammoth와 마스토돈과 거대한 땅늘보giant ground sloth가 멸종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익티오사우루스와 수장룡 같은 거대한 동물이 멸종했다는 엄청난 사건이 사실로 드러남으로써 마침내 과학자들은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 p.212
우리는 최초의 아르카이옵테릭스 화석이 발견된 이래로 먼 길을 왔다. 아르카이옵테릭스는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에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조류의 기원과 비행의 기원에 관한 모든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이제 아르카이옵테릭스는 공룡 시대에서 나온 수백 점의 놀라운 화석 조류 표본 중 하나일 뿐이다. 이 표본들은 공룡, 특히 조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공룡은 멸종하지 않았다. 공룡은 바로 지금 당신의 새장 속 횃대에 앉아 있거나 당신의 마당 위를 날아다니고 있다. 그러니 다음에 깃털 달린 공룡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면, 벨로키랍토르 같은 무시무시한 포식자가 타조에서 벌새에 이르는 놀랍도록 다양한 새들로 변모한 진화의 경이로움을 음미해보자. 모든 새는 살아있는 깃털 달린 공룡이다.--- p.308
일각에서는 본능적이거나 종교적 이유에서 거부감을 느끼지만, 인간은 정말로 유인원과 거울을 비춘 듯이 닮았다. 생물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했다. 외계 생물학자가 지구에 왔는데,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생물 표본이 DNA뿐이었다고 상상해보자. 그들은 인간과 두 종류의 침팬지를 포함한 여러 다양한 동물의 DNA 서열을 분석했다. 이 자료 하나만 토대로 볼 때, 그들은 인간을 제3의 침팬지 종이라고 결론내릴 것이다.
--- p.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