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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수많은 발명들이 개발도상국 사람들 곁에는 아예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개발도상국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개발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발명들도 많다. 지금 우리가 쓰는 수세식 화장실은 2백 년 전에 개발된 것이지만, 이런 화장실은 하수도 시설 등의 기간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들에는 보급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결국 그런 지역들에서는 야외 배변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 해마다 무려 150만 명의 아이들이 오염된 음식과 물 때문에 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가난한 사람들이 과학 발전의 1순위 수혜자가 되게 할 방안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야 한다.─ 2013년 4월, 빌 게이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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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화장실이 없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까? 위생의 문제로 인한 건강의 문제는 물론이요,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잠깐 살펴보자. 우선 분뇨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처리하지 않은 채 아무 곳에나 버려두면 분뇨는 지하수나 강, 호수 등으로 스며들어 물을 오염시킨다. 우리는 오염된 물이라도 정화시켜서 깨끗한 물로 만들어 먹지만 가난한 지역에는 오염된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수처리 시설과 상수도망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거나 비싼 값을 치러야만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있다. 아무데나 방치되거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분뇨는 병균이 번식하는 온상이 된다. 분뇨는 물을 오염시키고 오염된 물을 섭취한 사람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해마다 무려 340만 명이 오염된 식수로 인해 병에 걸려 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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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 1인당 물 사용량은 280리터. 1인당 물 사용량 가운데 업무용 사용량을 제외한 1인당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은 하루 약 180리터. 이 가운데 52퍼센트가 욕실에서 사용하는 물이고, 이 욕실 사용물 중 절반 이상이 수세식 변기에 사용하는 물이다. 하루 물 사용량의 약 4분의 1, 곧 45리터는 수세식 변기가 삼켜버린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에 쓰는 물의 양을 비교해보면, 아프리카 말리 사람은 평균 8리터, 잠비아 사람은 4.5리터에 불과하다. 우리는 날마다 귀한 자원인 물 45리터를 수세식 변기에 쏟아버리고 있다……. 선진화된 하수도가 보급된 도시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에서 발생하는 분뇨는 다른 생활하수와 섞여 하수처리장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수질 기준에 맞게 처리한 후 공동 수역으로 방류한다. 하수처리장에서 많은 에너지가 들어갈 뿐 아니라, 하수처리장을 거쳐 나온 부산물들을 그대로 생태계로 내보내면 생태계가 오염되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에너지를 들여 다시 처리해야 한다. 하수처리장은 엄청난 에너지를 먹는 하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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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기술의 핵심은 지속가능성이다’라는 말에서 지속가능성은 단지 적정기술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지속가능성이라는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겨냥한 말이다.
많은 나라들이 수십 년에 걸쳐서 경제 성장 위주 발전 정책을 다그쳐 오면서 인권이 무너지고, 사회적 불평등과 환경 파괴 등의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되어 왔다. 최근에 국제 사회는 눈앞의 풍요를 얻기 위해 다른 공동체나 집단을 희생시키거나 지구의 미래와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발전을 경계하자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다. 국민 소득 등 표면적인 경제 수치의 성장에만 집중해서 인간의 권리를 짓밟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활동을 한다면 지구는 지속가능할 수 있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세대의 필요까지 충족시키는 발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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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지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키는 기술은 아주 높은 곳이나 아주 먼 곳에 있지 않다.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는 동물 똥을 농사용 거름과 연료로 사용해왔다. 가까이 있는 물건, 끊임없이 생성되는 물건을 이용해서 필요한 것을 얻는 기술, 이것이 바로 적정 기술이다. 적정 기술이란 이름은 20세기에 출현했지만, 인류는 태곳적부터 일상생활 속에서 적정 기술을 갈고 닦으며 사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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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발도상국 상황을 떠나서 생각해도, 인류는 오랜 세월 석탄과 석유를 캐내 연료로 쓰면서 지구온난화를 심화시켜 왔다. 각종 기상 이변과 생태계 변화가 점점 심각해지는데도, 물과 에너지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수세식 변기를 최고의 변기로 여기고 사용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화장실 혁명은 환경 혁명이고 자원 혁명이다. 자신이 싼 똥이든 남이 싼 똥이든 더럽다고 역겨워하지 말자. 물이 하늘에서 땅으로 바다로 순환하는 소중한 자원이듯이, 똥과 오줌 역시 우리 몸에서 자연으로 순환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출판사 서평
갈라진 세상, 망가지는 지구
영화 엘리시움은 두 개의 세상으로 갈라져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선택받은 소수는 대기권 밖에 유토피아를 세우고 최첨단 과학 및 의학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가지만, 환경오염, 자원 고갈, 인구 과밀로 만신창이가 된 지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기아, 자원을 차지하려는 분쟁 속에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이처럼 갈라진 세상은 영화 밖 우리의 현실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을 공유하고 있지만, 인류의 일부는 최첨단 과학, 의학의 혜택을 누리며 더욱 풍요롭고 편안한 삶을 기대하며 환호하고 있지만, 인류의 또 다른 일부는 기본적인 과학, 의학의 혜택은커녕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누리지 못한 채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공유재산인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환경오염과 자원 탕진이 계속되면서 지구 생태계와 인류에게 지구온난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빌 게이츠, 화장실 혁명의 필요성을 절감하다
빌 게이츠는 아내 멜린다와 함께 빌 엔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가난한 지구촌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걸 돕겠다고 나선 지 오래다. 빌 게이츠의 고민거리 중 하나가 지구촌의 화장실 문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행성 지구는 소득을 기준으로 해도 갈라져 있지만, 화장실을 기준으로 해도 갈라져 있다.
이 지구상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포함해서 위생적으로 안전한 화장실을 쓰는 인구비율은 약 39퍼센트에 불과하다. 세계 인구의 29퍼센트는 화장실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분뇨를 그냥 강물로 흘러 보내는 비위생적인 화장실을 사용하며, 나머지 32퍼센트는 우리 같으면 결코 사용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비위생적인 화장실을 쓰거나 그마저도 없어 아예 야외에서 볼일을 본다.
화장실은 특권이 아니라 인권이다.
분뇨에 의해 오염된 식수를 먹은 아이들은 질병에 감염되거나 설사를 자주 앓는다. 이 아이들은 병 때문에 영양 섭취가 부실해져 영양실조에 걸리고 결국 사망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지금 지구상에서는 만 5세 이전 어린이가 설사와 관련된 병에 걸려 60초마다 한 명씩 사망한다. 화장실의 문제는 질병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볼일을 보러 가던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일도 적지 않다.
깨끗하고 안전한 화장실은 수세식 시설처럼 돈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빌 게이츠는 이런 지구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빨리 화장실 혁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혁신적인 화장실 공모 및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수세식 화장실은 최고의 해법이 아니다.
지구촌의 화장실 문제가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대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만 있으면 걱정할 것 없잖아.’ 과연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을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편의시설로 여긴다. 하지만 수세식 화장실은 얼핏 보기엔 안전하고 효율적인 것 같지만, 태생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빌 게이츠는 혁신적인 화장실을 공모할 때 몇 가지 기본 조건을 내걸었다. 그 중 하나가 배설물을 물로 씻어내 하수로 흘려보내는 방식을 제외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수세식 화장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어낸다.
분뇨는 소중한 자원을 품고 있는 보물 창고다.
자원 고갈과 환경오염으로 망가져가는 지구 생태계를 되살리는 것은 우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의 과제다. 다행히도 분뇨의 자원 가치에 주목하고 이 자원을 회수하는 여러 가지 기술들이 개발, 보급되고 있다. 심지어는 똥을 이용해 음식을 만드는 기술까지 개발되고 있다. 이제는 분뇨를 역겨운 쓰레기로 보는 시선을 버려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분뇨 자원화 기술을 갖춘 화장실 혁명은 곧 환경 혁명이자 자원 혁명이다.
‘지구촌’이라는 표현에는 지구에 깃들어 사는 모든 생명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는 인류가 공유하는 자산이기에 함께 지켜가야 하는 하나의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책이 장차 지구촌의 주인이 되어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물론, 기성세대에게도 소중한 계기가 될 거라 기대한다. 이제는 고급 기술을 이용해 개인적인 안락만을 추구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첨단 자동화 기술의 혜택에서 배제된 지구촌의 이웃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돕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태야 할 때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화장실 혁명은 환경 혁명이고 자원 혁명이다. 자신이 싼 똥이든 남이 싼 똥이든 더럽다고 역겨워하지 말자. 물이 하늘에서 땅으로 바다로 순환하는 소중한 자원이듯이, 똥과 오줌 역시 우리 몸에서 자연으로 순환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인간의 건강을 보호할 뿐 아니라, 환경을 더럽히지 않고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는 화장실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임무다.(123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