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에 올바른 지견을 세우는 일은 본분사를 결정 짓는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 된다. 그러나 불법대의佛法大義는 바다에 비유될 만큼 이치가 깊고 넓어서 대승요의大乘了義를 잘 아는 일이 그다지 용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수행의 묘리를 잘 터득하고자 한다면 『능엄경』를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진감 스님은 『능엄경』을 가리켜 “법화의 곳집이요, 화엄의 열쇠이다”라 하고 이전 열 분의 주석을 모은 『십가회해』를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새롭게 주해를 냈는데, 이것이 바로 『정맥소』이다. 『정맥소』는 구해舊解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전의 모든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는 데서 추동력을 얻고 있으므로, 그 뿌리는 구해를 주석하신 여러 스님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학문 역량이 축척되는 궤적軌跡을 유감없이 보여준 절집안의 아름다운 역사일 뿐, 허명虛名을 내고자 억지 쓰는 범부의 미적迷跡이 아니다. 덕분에 후세의 우리 말학들은 『능엄경』이 유식론과 기신론과 중관사상 등에 의해 철저하게 분석되어져 요의了義 핵심을 다 드러낸 훌륭한 주석서를 만나게 되었으니, 법상 교학을 아우르고 대승교학을 밝게 천명하여 이를 바탕으로 종문의 선禪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관점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구참 선지식들은 한결같이 사교입선捨敎入禪에는 『정맥소』가 가장 좋다고 말했나 보다. 『능엄경정맥소』는 일찍이 여러 스님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으니, 운허 스님은 『능엄경강화』에서 크게 활용하였고, 각성 스님은 『능엄경정해』에서 이를 바탕으로 강설하였다. 정작 여러 스님네가 입을 모아 『정맥소』야말로 『능엄경』의 심오한 이치를 잘 천명했다고 말은 했으나 불행히도 전모를 다 살펴볼 수는 없었다. 탄허 스님의 『능엄경』 번역에 일부 풀이가 있고, 각성 스님은 현시만 옮겼고, 현진 스님에 의해서 그 이후 일부가 번역되었을 뿐 완역된 것은 없었다. 이는 한글세대인 우리들에게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정맥소』가 밝히는 『능엄경』은 한국 불교의 중요한 수행체계인 화두선에 대한 철학적 교학적 입지를 제시한다고 평할 수 있다. “어째서 화두선을 최상승선이라 이름하는가” “많은 불교 수행체계 중에서 왜 화두선만을 고집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사실 한국불교 수행자라면 명확히 인지해야 할 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며, 이는 곧 자기 수행체계를 흔드는 역작용을 낳기도 했다. 화두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므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일이 생기고 심지어는 십수년을 참구한 이도 다른 방편을 찾아 헤매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오늘날 절집안의 실정이다. 이런 사실은 실로 작은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제방 여러 스님들의 걱정을 사는 일이 되어 이런 저런 대안과 노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들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대승요의를 바탕으로 한 교학적 철학적 답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정맥소』의 완역은 그런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종단의 수행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근간이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그렇다고 『정맥소』가 수행 측면의 정리를 돕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전통 교학인 대승요의를 수립하고 이해하는 데 확고한 근거를 제시한다. 『능엄경』을 크게 3단으로 구획하면 ‘사마타’ ‘삼마제’ ‘선나’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사마타는 바로 대승요의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교학의 핵심이다. 공여래장과 불공여래장과 공불공여래장인 3여래장으로 경문을 분석하여 대승시교부터 대승원교까지 모두 아울렀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수증悟修證으로 대변되는 전체 수행체계가 사마타에 의한 해오와 사마타를 바탕으로 한 문으로 심입하는 삼마제와 사마타를 근간으로 중중유입 닦아 나아가는 선나를 시설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마타를 정리하는 부분은 바로 대승사상의 결정체이며 대승철학의 요점이다. 대소승의 교학적 한계와 구분을 극명하게 보여주며, 무르티가 『불교의 중심철학』에서 변증법적 발전으로 언급했던 대승철학을 분명하게 지시할 것이다. 『정맥소』는 선과 교 양쪽으로 모두 크게 발양한 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정맥소』 전문이 온전히 변역되어 세상에 출현해야 되는 당위성을 필연이라 여기면서 매진해 왔다.
『정맥소』를 번역한 역자는 사실 학문하는 자가 아니다. 출가 후 줄곧 걸망 메고 제방선원을 역참하며 때때로 산천골골에 은거 참구하던 선배들의 아란야에 깃들기를 좋아했을 뿐이다. 그러다 각성 스님의 『능엄경정해』를 통해 정맥소의 존재를 알게 되어 부산에 계시는 노스님을 뵙고 원본을 얻게 되었다. 개심사 보현선원에서 방선만 하면 40권으로 된 장구한 문장의 바다를 헤엄치면서 한 구절 한 구절 한문의 울타리에 갇혔던 의미가 살아나기 시작해 다음이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다. 머리는 찬 얼음물로 씻은 듯 시원했고, 가슴은 장원심이 일어나 세세생생을 시원찮은 하근기 수행자로 살아도 견딜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한 듯했다. 이러한 대승요의를 어찌 나만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도반들에게도 보여주고 선후배 스님들께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충천으로 일어나 이런 무모한 짓을 하게 되었다.
『정맥소』는 소승의 모든 법상과 유식론·기신론·중론 등 대승교학이 망라된 논서인지라 전체를 파악하는 일부터 용이하지 못했다. 본문에 달린 각주 중 『능엄경정해』에서 발췌한 것들이 있다. 특히 10습인과 6교보에 나오는 내용 중 지옥 형벌 등은 『능엄경정해』에서 옮긴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일부는 불교대사전을 인용하였고, 기신론과 유식에서 온 것도 있다. 특히 재량으로 한 것이 많은데, 경문을 정리하기도 하였고, 난해한 것은 설명도 하였다. 칠처파심의 내용은 인명론의 논증식으로 정리하였고, 10번현견 등 이후의 난해한 경문과 소문의 해설은 도표로 정리하여 이해를 돕고자 했다. 독자제현의 깊은 양찰諒察과 지도편달을 바라는 대목이다.
--- 「『능엄경정맥소』 ‘역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