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스며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 숲 속 오두막 ‘백오산방’을 손수 짓고 스스로에 충실한 삶을 따른 지 어느덧 10년, 그간 숲 바닥에 명이나물 농사짓는 농부로, 숲을 스승으로 섬기며 철학하고 글 쓰고 강연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는 여전히 숲에서 살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산다. 『숲에서 온 편지』, 『숲에게 길을 묻다』 등의 책을 썼고, ‘여우숲’의 ‘인간 대표’이자 숲학교 ‘오래된미래’의 교장 역할을 맡고 있다. 최근 ‘자연스러운삶연구소’를 세우고 연구원들을 선발해 ‘자연스러운 삶’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는 삶을 시작했다.
하지만 놓치지도 말고 잊지도 말아야 하는 점이 있어요. 숲의 긴 흐름과 아름다움은 바로 체념하지 않는 생명들이 이룬다는 거예요. 그들은 자기 꽃으로 피려 하고 자기 날개로 날아보려 하는 존재들이죠. 체념하지 않는 생명들은 모두 저마다의 한계에 놓여 있어요. (…) 하지만 그들은 그 한계 속에서도 체념하지 않아요. 끝내 자기를 이루어내려 하며 또한 숲이라는 전체 운행에 기꺼이 참여하는 존재들이죠. (…) 나요? 나는 체념하지 않아요. 나는 원래 절망과 희망이 한 뿌리인 것을 아니까요. ---「그런 날이 오겠느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중에서
처음엔 더 험했던 그 길을 오르며 ‘세레스’를 세 번이나 망가뜨렸고, 그 과정을 통해 나는 하나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느 길로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오직 도로의 경사나 노면의 상태 등 자연이 요구하는 속도에 순응해야 하는 때가 있구나. 아무리 급해도, 또 아무리 거센 비가 몰아쳐도 걸어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구나. 주저 말고 차에서 내려 비바람 속에 머리를 숙이고 헉헉 숨을 몰아쉬며 걷는 방법밖에 없는 때가 있구나. 삶도 그런 것이겠구나.’ ---「허락된 속도를 지켜야 하는 때」중에서
고백하지만 나 역시 도시로 되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었습니다. 숲으로 삶의 기반을 옮기고 3년의 시간을 이렇다 할 소득 없이 보내던 중 딸 녀석에게 자전거 하나 사줄 돈이 없는 형편이 되었을 때, 아내에게 생활비가 없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을 때, 나는 한참을 홀로 울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가 어디든 일자리를 찾아볼까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어떤 도모가 곤란에 처하거든」중에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상황이 그리 나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종일 비질을 해대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픕니다. 다른 일을 할 시간을 내기도 어렵습니다. 기름을 통에 담아 지게로 져서 올려야 하는 상황도 낭만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이런 상황들이 암담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의 내면은 ‘이만하면 족하지?’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내가 또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래 이만하면 족하다. 족해. 패놓은 장작이 있어 다행이고, 물 데울 편리한 보일러가 있어 다행이고, 어둠 밝힐 전기가 아직 있으니 또 다행이다. 물이 얼지 않아서 다행이고, 눈이 허리까지 쌓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만하면 족하다」중에서
사람이 실수 혹은 실패가 주는 두려움에 갇혀 발을 내딛지 못하는 동안에도, 숲에 사는 나무들은 주저하는 법이 없습니다. 도피할 수도 없는 붙박이의 숙명을 받고 태어나 평생 빛과 양분을 향한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야 하는 생명이지만, 나무는 오직 자신이 열고 싶은 하늘을 바라보며 순간을 살아낼 뿐입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새 가지를 뻗어내면서도 나무는 도달하고 싶은 하늘에 닿을 수 있을지 닿지 못할지를 염려하지 않습니다. (…) 어쩌면 나무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성장 중에는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가지들이 있고, 그것들이 발 아래로 떨어져 썩어야 비로소 다시 힘이 되어 더 단단한 줄기를 성장하게 도울 것이라는 사실을. 본래 실수이거나 실패라는 놈은 그렇게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