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garden)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원(庭園)’이라는 말과 통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입되었을 때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불고기 집 같은 식당을 칭할 때 ‘가든’이라는 말을 썼거든요. 서양의 가든파티 문화를 접하고 단어가 풍기는 행복한 느낌 때문에 음식점들이 이 말을 빌려온 모양입니다. 이 책에서는 ‘가든’과 ‘정원’ 두 단어를 혼용할 거예요. 그러니 가든이라는 말이 나와도 숯불화로 고기집 말고 아름다운 뜰과 정원을 떠올려주세요.
가드닝(gardening)은 정원의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입니다. 가드너(gardener)는 정원사와 같은 의미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을 말해요. 정원사는 식물의 생리와 토양 환경에 맞게 식재(植栽)하고 가꾸는 일을 합니다. 가든 디자인(garden design)은 정원이라는 공간에 환경적·조형적·미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에요. 땅 모양을 설계하고, 생태 조건에 맞는 식물을 공간별로 배치하면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까지 고려하여 설계하는 일이죠. 공간 디자인, 식물(식재) 디자인 후 시공 단계를 거쳐 정원의 완성과 관리에도 관여하는 사람을 가든 디자이너(garden designer), 조경가(landscape architecture)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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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장관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의 지원 아래 조성된 보 르 비콩트(Vaux le Vicomte) 성은 각기 흩어져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는 축선, 화단, 연못, 분수를 조화롭게 구성해낸 정원으로 평가 받습니다.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한 건축가 루이 르보(Louis Le Vau)가 설계를 담당했고 샤를 르 브룅(Charles Le Brun), 피에르 미냐르(Pierre Mignard) 등의 화가, 피에르 퓌제(Pierre Puget), 앙투안 쿠아즈보(Antoine Coysevox), 장 자크 카피에리(Jean-Jacques Caffieri) 등의 조각가가 내부 장식에 참여했지요. 작가인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과 몰리에르(Moliere, Jean Baptiste Poquelin), 스카롱(Paul Scarron) 등이 이곳에 머물며 집필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왕에게 바칠 생선이 도착하지 않자 자살해버렸다는 일화로 유명한 바테르가 요리사로 있었답니다. 일 드프랑스 지역 최고의 정원으로 꼽히는 성 주변 정원은 조경 전문가 앙드레 르 노트르가 담당했습니다. 당대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건물과 정원, 내부 인테리어 설계에 참여해 천정화를 그리고 조각을 세우고 분수를 만드는가 하면 성에 대한 찬가를 쓰고, 흥을 돋우는 음악과 발레 공연을 하기도 했지요. 6m 높이의 천 개가 넘는 물줄기가 정원 분수에서 뿜어져 나왔다니 당시 보 르 비콩트 성의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었을까요? 성이 완공되자 푸케는 왕을 위해 성대한 연회를 열었는데요. 정원을 구경한 다음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하고 발레 공연과 화려한 불꽃놀이까지 선보였다고 해요. 하지만 푸케의 사유지가 루이 14세의 궁전보다 화려하고 장엄하며 아름답다는 이유가 치명적인 죄가 될 줄 그는 몰랐겠죠. 푸케는 부정 축재 등 온갖 죄목으로 체포당해 유배됩니다. 연회를 연 지 3주가 지난 날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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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든 디자이너가 도면을 볼 줄 아는 게 어디에 도움이 되는 거죠?”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건축물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동선을 잡는 데 필요합니다. 또 건축 도면을 보면 지하 콘크리트 기반이 표시되어 있는데요. 콘크리트는 인공지반이므로 토심이나 배수 등을 살펴 옥상과 같은 시공법으로 작업해야 합니다. 도면을 몰라 콘크리트 지반 위에 자연의 땅처럼 시공해버리면 안 되겠죠?
창밖 뷰(view) 포인트를 찾아 풍경을 구상할 때도 유용합니다. 대지의 구배(지표면 경사도)와 건축물의 높이 등을 고려해서 계단 경사도도 구상해야 하죠. 식물이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요소인 채광이나 일조량도 건축물이 앉은 방위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체크해야 합니다. 건축물과 대지의 규모에 따른 공간과 구조물의 크기도 고려해야 하고요. 대지도 크고 건물 규모도도 큰데 길이 좁거나 대문이 작고 조잡하면 우스꽝스럽겠죠? 비례와 균형을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옥상 정원을 시공할 때는 건물 기둥 위치를 파악해두어야 해요. 하중을 견딜 수 있는지 고려해 정원에 쏠리는 무게를 분산해야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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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 디자인은 정원에 들어가는 교목과 관목, 초화류를 좀 더 조화롭고 아름답게 심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그림이나 표시, 표기로 나타내는 단계입니다. 식재 디자인에서 우선 고려되어야 할 내용은 공간의 목적에 맞는 식재 스타일을 정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기후와 환경을 고려하면서 4계절 정원의 모습을 예측해보는 거죠. 식물의 컬러감, 질감, 키, 잎과 줄기 모양을 헤아려 식물을 선택하고 배치합니다. 디자인을 할 때도 심는 순서와 같이 큰 나무 교목부터 다음 관목, 다음 초화 순으로 그립니다. 식물은 침엽수나 활엽수 같은 언어처럼 분류별로 약속된 심벌(symbol)이 있습니다. 도면 축적비율(ex. 20:1, 100:1)을 자유롭게 정하고 난 후에 나무 규격도 심벌의 크기를 도면과 동일한 비율로 줄여 배치도를 그리지요. 이름과 사진을 넣고 학명이나 일반 명을 적은 뒤 규격과 수량을 표시합니다. 연중 개화시기를 도표로 만들거나 정원에 피는 꽃의 색상을 정리하기도 하고요. 봄에 어떤 색의 꽃이 피는지 알고, 무슨 색 꽃으로 포인트를 줄지를 결정하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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