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Johann Gottfried von Herder(1744 - 1803)
모룽겐이라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헤르더는 어릴 때부터 문학, 신학,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열여덟이 되던 1762년에 칸트의 강의를 듣고부터 지리학, 인류학, 비판적 연구에 흥미를 가지게 된 그는 칸트의 친구였던 하만을 통해 시와 평론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해 여름 카톨릭 학교 보조 교사로 리가에 간 그는 이곳에서 목사이자 교사로서 활동한다.
그러다 스물셋에 첫 저서인『새로운 독일 문학에 대한 단편』을 집필한다. 이후 사회적 불만족과 왕성한 상상력으로 이제까지 간과해왔던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 리가를 떠난다. 파리와 독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교육, 철학, 문학, 종교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윤곽을 그려본다.
그리고 인류 역사의 기원, 진행 과정, 목표 등을 연구하기로 결심한다. 여행을 마치고 독일 뷔케부르크에 머문 그는 민족 문학과 관련된 새로운 문학 운동을 격려하고, 논쟁적인 종교 저작과 철학 저작을 발표한다. 이때의 활동은 질풍노도라고 불리는 독일 문학의 부흥을 알리는 운동의 서막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후 괴테의 도움으로 바이마르에 정착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모든 국가와 시대가 발견할 수 있는 인간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문학의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게 된다. 동시에 칸트의 정신 과정의 분석적 분리는 물론 종교에 대한 위협, 그리고 인간은 근본적으로 악하다는 칸트의 견해를 비판한다.
헤르더의 역사철학, 중세에 대한 관심, 동양학, 언어에 대한 관심, 비교 문학 연구, 본능에 대한 강조, 민요 예찬, 비판적 방법 등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특히 독일 사회를 연구하는 횔덜린, 장 파울, 노발리스, 슐레겔 형제들, 셸링, 헤겔, 슐라이어마허 등 많은 문필가들이 이러한 영향을 받음으로써 그의 영향력은 문학뿐만 아니라 독일의 철학 사상과 정치 사상, 동유럽의 국민성 발전에까지 미쳤다
조용한 지방 소도시 생활을 벗어나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대도시의 일상에 부대끼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일찍이 인간과 사회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특히 글을 쓰는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면서 읽은 많은 책들은 학교 성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나름의 가닥을 잡아가는 데 많은 길잡이가 되었다.
문학과 역사 둘 다에 관심이 많았는데, 결국 역사를 선택한 것은 역사가 세상을 좀더 넓고 구체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역사 사상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처음 만나게 된 유럽의 역사 사상은 역사와 세계에 대해 보편적인 시야를 갖게 했다. 또한 1970년대 후반 안암 캠퍼스 에서 활발하게 움트던 인문학적 분위기도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역사를 바라보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헤르더의 역사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을 거치면서 역사학과 현실의 관련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마르크스 역사 사상에 대한 연구로 나타났다. 그 후 다양한 역사 사상들을 검토함으로써 변화된 상황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비코와 헤르더의 역사 사상, 베른슈타인의 유기적 진화론, 월러스틴의 세계 체제 이론, 독일 통일 이후의 독일 역사학의 성격, 그리고 포스트모던 역사학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강사와 자유베를린대학 비교사회사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국립 순천대학교 사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또한 한국 서양사학회 학술정보이사, 한국사학사회 지방이사, 그리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과 역사 발전론』,『근대 세계 체제론의 역사적 이해:브로델과 월러스틴을 중심으로』(공저),『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공저)이 있다. 번역서로는 아그네스 헬러의『역사의 이론』과 이사야 벌린의『비코와 헤르더』(공역)가 있다. 그 외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