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서술을 접하는 독자는 내면에서 어떤 ‘형상’의 세계를 재현하고 체험하며 스토리를 형성 혹은 구성한다. 이 과정에는 지적·정서적 반응과 그 반응들의 재구성을 통한 의미 탐색이 동반된다. 그것이 바로 독자가 ‘이 소설은 도대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라는 질문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한편 서술을 읽는 쪽에서 하는 쪽으로 국면을 바꾸어 살펴보면, 스토리는 작자 혹은 서술자가 대상의 어디를, 어떤 관점과 맥락에서, 어떤 스타일로 서술함에 ‘따라’ 형성된다. 초점화 작업 혹은 서술 행위의 ‘초점’이 스토리의 형상화와 의미 형성을 좌우하는 것이다.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주로 스토리시간에 주목한다. 독자는 작품 외부 세계의 현실과 자신이 경험했거나 상상한 세계의 현실을 바탕으로,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사건의 연쇄인 스토리를 떠올리고 구성한다. 이 ‘서술된 시간’ 차원의 실상에 비해 ‘서술하는 시간’, 즉 서술시간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심이 적고, 둘의 관계에 관한 연구도 빈약한 편이다.
소설의 시간을 두 차원으로 살피는 것은 소설에 존재하는 행위를 두 차원으로 구별하여 살핌을 뜻한다. 하나는 스토리 차원에서 행동 주체(인물)가 하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그 행위를 서술 주체(서술자)가 인식하고 서술하는 행위이다.
소설로 대표되는 허구적 이야기, 특히 시간변조anachrony가 심한 작품을 읽는 독자는 시간상 중심적이고 의미상 지배적인 사건을 기준으로 자연적 시간 질서에 따라 스토리를 ‘낯익게’ 재배열하고 구성한다. 즉, 인과관계를 설정하고 통일된 사건과 의미 맥락을 구축한다. 이때 독자는 기준사건이 발생하는 지점(스토리 기점)과, 서술자가 서술을 시작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지점(서술 기점)을 설정하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게 된다. 가령 염상섭의 「만세전萬歲前」은 ‘만세 후’가 서술 기점이다. 이 작품은 그 전의 일만 다루므로 스토리에 3·1만세운동은 등장하지도 않는데, 서술 기점이 이러하기에 주요 의미소들이 일단 모두 그 사건에 수렴된다. ‘만세운동의 원인과 뜻’ 같은 문제 중심으로 주제적 맥락이 잡히는 것이다. 서술 기점의 역사적 의미가 스토리의 중심사건과 그 의미를 형성하는 셈이다. -79~80쪽
한국 소설사에서 공간의 기능이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사건이나 인물처럼 중요한 요소로 활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근대소설 형성기인 20세기 초의 약 20년 동안으로 여겨진다. 이는 근대소설이 이전의 소설과 구별되는 점으로 배경의 기능 변화, 장면적 서술의 등장, 서술구조 전반의 ‘공간화’ 현상 등을 지적한 여러 연구들에서 확인된다. 또한 소설 제목이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혈의 누’, ‘치악산’, ‘쓰러져가는 집’ 등의 공간 또는 사물로 바뀐 현상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언 와트Ian Watt도 주장했듯이, 소설의 근대성이나 근대화 과정을 살필 때 공간은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그가 말한 ‘다원묘사’가 많다. 서술자가 매우 권위적, 작자적인 것이다. 또한 묘사가 적으며, ‘나’가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하는 액자적 서술방식이 많이 사용된다. 액자적 서술방식은 김동인의 시점론에는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특히 여기서 창작을 통한 그의 모색을 엿볼 수 있다. 그는 경험적 자아와 허구적 자아가 뒤섞인 ‘나’가 권위적으로 개입해도 화법과 플롯의 통일성이 깨질 위험이 적으며 서술도 입체성을 지닐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나중에는 매우 안이하게 이 형식을 사용했다. 바꿔 말하면, 서술자의 기능을 제한하지 않고도 그런 효과를 낼 수 있으며, 구성상의 무리를 감추면서 비교적 쉽게 박진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액자적 형식을 많이 쓴 것이다. 이는 그가 근대적 서술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이야기의 기본 서술상황을 다소 변형하는 데 그쳤으며, 궁극적으로 특정한 세계관이나 이야기 대상, 가령 당대 사회 현실과 그것이 요구한 사상에서 산출된 어떤 형태를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요컨대 이문구는 허구와 비허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거나 무시하고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서술자라는 대리인을 내세워 허구적인 담화 상황과 세계를 구성하기보다, 실제 담화 상황과 같이 청자(독자)에게 직접 구술하여 체험을 전달하려는 경향, 즉 미적 형상화 충동보다 직정적·고백적·경세적經世的 충동이 지배적인 서술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어떤 때는 사건의 상황과 인물의 처지는 제쳐놓은 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에 이르렀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할 정도이다. 서술의 구술성, 서술행위의 비간접성으로 요약되는 이러한 특징은 근대소설의 일반적 규범과 부합하지 않지만(부합하기를 거부한 결과라고 할 수도 있지만), 판소리 사설처럼 ‘구술적인’ 이야기의 ‘이야기체’ 서술방식, 채만식의 『태평천하』나 김유정의 소설에 등장하는 서술방식과 통한다.
_____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