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고대인의 생활 모습
초기의 인류는 거대한 자연에 맞서 씨족집단을 형성해 저항했다. 氏(씨)는 구부러진 칼의 형상으로, 씨족의 대표가 사냥으로 잡은 고기를 나눠주던 공찬의식을 자형으로 만든 것이다. 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손의 번창이었다. 生(생)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고, 이것이 옆으로 넓게 펴지면 世(세)가 된다. 인간의 世(세)가 옆으로 확장한 것이 姓(성)이다. 다시 말해 姓(성)이란 혈연집단을 말한다. ‘어릴 적 이름’을 뜻하는 字(자)는 조상 사당에 자식을 데리고 들어가 조상 신령께 키워도 되는지 물어보고 이름을 지어주던 의식을 보여주는 글자다.
집 밖 거리는 고대인들에게 살벌한 곳이었다. 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거리에서는 다양한 주술들이 성행했다. 변방을 뜻하는 塞(새)는 주술도구를 땅에 파묻어둔 형태다. 塞(새)를 파묻어둔 곳에서부터는 역병신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術(큰거리 술)은 행로에서 동물 정령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저주를 행하는 것이다. 상징적인 방법으로 余(여)를 사용하기도 했다. 余(여)는 바늘 침 모양의 주술도구다. 이것을 땅에 꽂아 땅 밑에 숨어 있는 저주의 영들을 몰아내는 데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정화된 것이 途(길 도)다. 除(섬돌 제), 徐(천천할 서), 敍(차례 서) 등도 동일 계열의 글자들이다.
이렇게 도로에 주술을 행해도 부족 간의 전쟁은 끊일 날이 없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대에도 족맹의 방법으로 부족을 하나로 묶어, 타 부족과 전쟁을 벌이거나 강화를 맺었다. 族(겨레 족)은 깃발 아래에 화살을 그려둔 모습이다. 이때 깃발은 씨족의 휘호며 화살은 그 아래서 행하던 족맹 의식을 상징한다. 旗(기), 旌(정), ?(조) 등은 모두 부족의 상징 문양을 그려놓은 깃발의 상형자고, 族(겨레 족), ?(깃발 유), 旅(군사?여행 여) 등 갑골문이나 금문에 용례가 없는 글자들은 회의자로써 깃발의 뜻을 받아들인 글자들이다.
부족이 결집하면 적군을 추격했다. 追(추)는 ?(축) 위에 군대의 수호정령이 깃든 제육을 받들고 추격하는 형상이다. 군대를 파견하는 것을 나타낸 글자는 遣(견)으로 이 제육을 지니고 출발하는 모습이다. 전쟁이 끝나고 개선할 때는 가지고 갔던 고기를 다시 사당에 안치했다. 歸(돌아올 귀)는 이 제육을 사당에 안치하는 예식을 상형한 글자다.
和(화)는 휴전조약을 뜻하는 글자다. 왼쪽의 禾(화)는 벼가 아니라 군문이고 口(구)는 축문을 담은 그릇이다. 고대에는 도시의 큰 길에 신간(神竿 : 솟대)이라는 나무를 세워뒀는데 여기에 신이 강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신간 옆에 축문 그릇을 두고 휴전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로운 시기가 찾아오면 고대인은 생업인 농업에 종사했다. 신에게 한 해의 풍년을 빌었고, 병충해를 제거하기 위해 농기구에 숨어 있는 사악한 기운을 제거하는 의식을 행했다. 그 의식의 흔적이 力(력), 嘉(가), 靜(정) 등에 남아 있다. 力(력)은 호미의 상형자다. 加(가)는 호미와 축문 그릇의 상형자로 이뤄졌는데 호미를 정화하는 의례를 나타낸다. 여기에 북의 형상 鼓(고)를 더한 것이 嘉(좋아할 가)다. 호미에 깃든 사악한 기운을 쫓아내는 데는 북소리가 크면 클수록 좋아했다. 靜(고요할 정)은 호미에 색을 칠해 사악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신과 인간의 만남
말과 글에 담긴 고대인의 인식은 신과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言(말씀 언)과 書(글 서)는 모두 신에 대한 맹세, 즉 자기 맹세를 뜻하는 말이다. 갑골문?금문에서 言(언)은 신에 대한 맹세를 그릇 속에 넣고 주술 능력을 보존하기 위해 그릇 위에 바늘을 세워둔 형상이다. 書(서)는 者(자)와 聿(율)로 이뤄진 회의자다. 聿(율)은 뒷날 첨가된 부분이고 者(자) 자체에 본래의 의미가 있다. 者(자)는 신에게 바라는 것을 그릇 속에 넣은 모습인 曰(왈) 위에 나뭇가지나 흙을 덮어서 그것을 숨겨 놓은 형상이다.
고대인이 신과 만나는 장면은 陟(오를 척)과 降(내릴 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왼쪽의?는 신이 오르내리는 사다리의 상형자다. 이렇게 신이 내려와서 서는 곳이 地(땅 지)이다. 옛날에는 墜(추)라고 적었으니 그것이 정자다.
그 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릇 자연계는 현상일 뿐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현상은 어떤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라고 여겼다. 신령 그 자체를 가리키는 명사가 어떤 것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새, 번개 등에서 고대인들은 신의 모습을 보았다. 고대인들은 새를 ‘신의 사자’ 혹은 ‘정령’으로 인식했다. 奪(빼앗을 탈)은 ‘손에 지닌 새를 읽어버린다’는 뜻이라고 간주되어왔다. 그러나 새를 손에 지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금문의 자형에는 ?(추)가 옷 속에 그려져 있다. 조상의 영혼인 새가 옷 속에 있다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 외에도 신은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召(소)에서 보듯 축문 그릇에 신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고, 소리를 내거나 바람을 일으킴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한자의 형성 과정
갑골문?금문 시기는 은나라 무정(武丁) 때부터 춘추 전기까지 약 600년에 이른다. 이 시기에는 문자가 본래의 형상과 표기의식을 잃지 않고 전승되던 시기였다. 필기자에 따라 다양한 자형이 존재했지만 자형이 표시하는 본래의 표상은 정확하게 파악되고 표현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은 선각(線刻)이라서 간략한 것이 많고, 심지어 필의조차 표시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에 비해 금문은 빈약하게 적거나 풍성하게 적거나 한다든가 점을 찍는다든가 휘게 한다든가 하여 글자의 형상을 충분하게 베껴내었으므로, 그것을 보면 글자의 의상(意象)을 잘 알 수가 있다.
춘주 중엽에 이르면 금문의 글자체가 지역적으로 분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문자 양식이 가장 크게 변한 곳은 주 왕조에 극렬하게 대립하던 초(楚)나라가 있던 남방이었다. 초나라의 문자는 열국의 왕조가 사용하던 우아한 글자 모양과 달리, 웅혼한 기백을 느끼게 하는 면이 있다. 초나라의 뒤를 이어 패권을 잡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에서는 그 지방에서 나던 양질의 재료를 바탕으로 금을 아로새긴 조전(鳥篆)체가 발달했다.
전국시대에는 이전처럼 제기에만 사용하던 글자를 지방의 세금을 걷기 위해 만든 도량형에도 사용했다. 이 시기에 이르러 문자는 실용 목적을 지니게 된 것이다. 진(秦)나라 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고 각국의 문자를 폐지하고 진전(秦篆) 즉 소전(小篆)체로 문자를 통일했다. 이 시기에는 복잡하고 쓰기에 어렵던 한자가 보다 간략해졌다.
전국시대라는 동란기를 거치면서 필기체 양식의 글자가 탄생했다. 이후 한자는 자형이 무너지고 불안정해졌으며, 필획에서도 갖가지 차이가 생겨났다. 한자가 이렇듯 문란해지자 당(唐)나라 때는 통(通)?속(俗)?정(正)의 세 글자체를 정했다. 그러고는 경서에는 정자를 사용하고 세간에서는 통자와 속자를 사용해도 좋다고 규정했다. 당대에 구양순, 우세남, 저수량, 안진경, 육간지, 서호 등의 서법가가 배출된 것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송(宋)나라 때에 목판 기술이 발단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명조체가 사용되게 되었다. 새기기 편하고 일정한 틀에 맞추는 것이 고작인 글자체로 변모한 것이다.
한자의 구성 원리
고대 문자의 구조는 형상의 상징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즉 최소한으로 필요한 의미 요소인 형체소를 적절히 이용해서 명확한 표현을 완수했다. 그렇게 하여 한 점, 한 획 속에 글자의 형의(形儀)가 기탁된 것이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상형자다. 그러나 단순한 상형에 그친 것이 아니라 각각을 합치기도 하고, 음을 빌리기도 하고, 뜻을 빌리기도 하면서 새로운 글자들을 만들어갔다. 상형자에 지사기호를 사용한 지사자, 상형자들을 복합해 만든 회의자를 합치면 그것들을 기본 한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기본 한자들의 수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약 1,400자로 나온다. 고대인의 사유체계가 작동하면서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의 짜임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기본자와 의미의 확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한자가 얼마나 정연한 체계를 가지는지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상형자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각각을 구분할 필요가 생겼다. 이를 위해 상형자에 한정부호를 더한 지사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씨족의 이름에는 ?(경), ?(조)처럼 女 변을 붙이는 것이 많으며, 강물의 이름에는 洹(원)이나 ?(상)처럼 水 변을 더하였다. 이러한 글자들을 지사자라고 한다. 한정부호는 형성자에서처럼 음소로 기능하지도 않고 회의자에서처럼 형체소로도 기능하지 않는다.
회의자는 형체소의 복합으로 이뤄진다. 涉(섭)은 水(수)와 步(보)로 이뤄진 글자로 이때 水(수)는 단지 한정기호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물을 건넌다’는 뜻을 만들어낸다. 沈(침)도 갑골문에서는 소를 물에 던지는 형태를 나타낸 것으로 회의의 짜임이다. 형성자는 글자를 표음적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魚(어) 부수의 글자는 대부분 魚(어)를 음을 이루는 한정부호로 사용한다. 魚(어)는 단지 분류상의 범주를 표시할 뿐이다. 따라서 魚(어) 부의 글자는 모두 형성자로 물고기의 이름을 음으로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
전주는 종래 정설이 없었다. 시라카와는 전주란 방을 중심으로 문자가 계열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命(목숨 명)은 에둘러 친 목책의 형태로, 전체 모습은 서로 대립하는 것의 통일을 의미한다. 倫(인륜 륜), 淪(잔물결 륜), 輪(바퀴 륜)은 모두 서로 상대하는 것들이 이루는 질서를 말하는 것으로 방을 중심으로 계열을 형성한다. 글자의 본래 뜻이 상실되고 음이 통용되는 뜻으로만 사용되는 것을 가차라고 하고 그 글자를 가차자라 한다. 烏呼(오호), 嗚呼(오호)는 까마귀와 새를 쫓는 울림판의 상형자인 呼(호)가 합쳐진 글자다. 그러나 이런 뜻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烏呼(오호), 嗚呼(오호)는 단지 감탄사로 사용될 뿐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