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신약성경의 예수와 다른 예수를 마음대로 꾸며 낼 자유가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신약성경에 사복음서가 있다고 해서 예수에 관해 알아야 할 내용을 모두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 담긴 자료는 물론이고 이보다 방대한 다른 저술들이 잘 보여 주듯, 기독교 전통들은 종종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상(像)을 근본적으로 오해해 왔기 때문에, 힘겨운 역사적 작업을 통해야만 사복음서가 말하려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_서문 중에서
“역사적 연구는 결코 사복음서를 갖다 버리고 우리가 꾸민 다른 이야기로 대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복음서 이야기에 대한 기존 해석은 심각한 도전과 의혹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텍스트를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해석하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안건은 은사주의 운동은 물론이고 프로테스탄티즘, 가톨릭, 복음주의, 자유주의 등 모두와 관련이 있으므로 모든 교단이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텍스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기 위해서는 당연히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분명히 당신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을 것이다.”
_1장. 예수 연구의 도전 중에서
“예수께서 동시대인들을 비판하신 것은 내부로부터의 비판이었다. 그분은 유대교를 버리고 다른 것을 시도하라고 권하신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하나님의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백성다운 모습을 되찾으라고 촉구하셨다. 그분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재구성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오염시킨 악에 도전하고 또 그 악을 다루려 하셨다. 그분은 시온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가 될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강경파의 단순한 혁명적 메시지가 아니라, 혁명의 의제까지 포함하면서 다른 모든 의제를 뒤엎을, 이중의 혁명적 메시지를 전하셨다. 4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그분은 메시아의 역할과 구속적 고난의 소명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셨다. 그리고 5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바로 그분의 소명이라고 주장하셨다.”
_2장. 하나님 나라의 도전 중에서
“그분[예수]은 이스라엘의 행로가 멸망을 향하고 있다고 경고하시며 급진적인 전환을 촉구하는 예언자셨다. 그분의 목적은 자신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재구성하는 것, 포로 상태에서 귀환하는 것, 하나님 나라를 출범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그분의 두 가지 위대한 상징적 행동이 가리키는 결정적인 사건들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성전에서 하신 행동은 그분의 메시아 직분을 선포했고, 최후의 만찬은 십자가를 가리켰다.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두 가지 개념의 생소한 조합, 우리가 이제껏 살펴본 모든 것보다 더 의미심장하지만 1세기 유대교 내에서 더욱 전복적인 성격을 지닌 두 사건이다.”
_3장. 여러 상징의 도전 중에서
“이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부각시키고 싶은 것은 ‘예수의 도전’에 비추어 오늘날 세상에서 수행할 우리의 과업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거론할 때는 다름 아닌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죄는 용서해 주되 이후에는 잊어버려도 무방한 그런 번잡한 사건에 불과하지 않았다. 십자가는 살아 계신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을 비춰 주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진실하고 가장 심오한 창문이다. 우리가 그 모든 역사적 차원과 신학적 차원에서 십자가에 대해 더 많이 배울수록, 우리는 (우리를 그 형상으로 만드신) 하나님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십자가를 지는 백성이 되라는 소명, 우리의 삶과 섬김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려야 할 우리의 소명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_4장.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 중에서
“나는 지난 20년 동안 역사적 예수 연구를 진지하게 수행한 뒤에도 여전히 기독교 신조들을 성실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란 단어는 물론이고 그 신조들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생각한다. 하나님의 초상화를 다시 그린 것이다. 성경에 밝혀진 대로 그 중심에는 가시관에 둘러싸인 한 인간의 얼굴이 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실현되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고, 그 구원이 유대인의 왕으로부터 임했다. 언약을 지키는 하나님의 신실성은 예수의 좋은 소식 안에서 드러났고 온 우주에 구원을 가져왔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