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 부립 대학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으며,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세상의 끝에 머물다》,《여섯 번째 가족》,《바람을 본 소년》,《불교우화》,《고마워 챔프》,《오늘도 살아있습니다》,《다시 만날 날까지》 등이 있다.
“나는 외로운 사람이지만 어쩌면 자네도 외로운 사람이 아닐까? 나는 외로워도 나이를 먹었으니 흔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아직 젊은 자네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거야.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이고 싶겠지. 움직이면서 무언가와 부딪쳐 보고 싶을 테지…….” (본문 26쪽)
“자네는 지금 저 남녀를 보고 농담을 했지? 그 농담 속에는 자네가 사랑을 하고 싶어 하면서도 상대를 구하지 못한 불만이 섞여 있을 거야.” “그렇게 들렸나요?” “그렇게 들렸네. 사랑의 감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좀 더 따뜻한 말을 던지지. 그런데…… 그런데 자네, 사랑은 죄악이야. 알겠나?” (본문 39쪽)
내가 따분해서 자꾸 몸을 비틀기 시작할 무렵, 아버지와 어머니도 처음에는 오랜만이라서 반가웠던 내가 차츰 식상해지는 듯했다. 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극진하게 대해 주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가족들의 환영 열기가 점차 식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전락한다. 나 역시 고향 집에 머무르는 시기가 길어지면서 그런 존재가 되었다. 게다가 나는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해할 수 없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옛날로 비유하면, 유교 집안에 기독교 냄새를 가지고 들어온 것처럼 내가 도쿄에서 가지고 돌아간 분위기는 아버지나 어머니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본문 67쪽)
나는 인간 세상의 어두운 그림자를 숨김없이 자네에게 보여 주고자 하네.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는 말게.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는 말게. 그 어두운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중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걸 얻으면 되니까. 내가 말하는 어둠은 윤리적인 부분일세. … 나는 지금 스스로 나 자신의 심장을 도려내어 그 피를 자네 얼굴에 쏟아 부으려고 하네. 내 심장의 고동이 멈추었을 때 자네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싹틀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네. (본문 161쪽)
‘나’는 여름방학에 놀러 간 해변에서 ‘선생님’을 우연히 만난다. 왠지 모르게 선생님에게 끌린 나는 여행지에서 돌아오고 나서도 선생님 댁에 자주 방문한다. 선생님은 대학까지 졸업하고도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부인과 하녀와 함께 조용히 살고 있었다. 선생님은 너무나도 비사교적이었지만 선생님을 감도는 뭔가 비밀스럽고 쓸쓸한 분위기가 나의 흥미를 끌었다. 또 사람을 믿지 않는다든가 사랑은 죄악이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수수께끼 같은 언행에, 도대체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선생님께 약간의 여비를 빌려 고향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버지의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의 생각과 시골의 풍습에 그는 불편함을 느낀다. 취직을 핑계 삼아 도쿄로 가려고 짐을 싸던 날, 갑자기 아버지가 위독해지면서 나는 고향에 남게 된다. 어머니의 독촉에 선생님에게 취직을 부탁하는 편지를 썼던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전보를 받지만 병상의 아버지를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 후 선생님에게 장문의 편지를 받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