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되지 않으려면 틈틈이 자신만의 오두막에 들어가야 한다. 그 오두막은 자신의 방일 수도 있고 근처 공원의 한적한 벤치일 수도 있다. 일상의 자극이 차단되고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오두막이 될 수 있다. 오두막에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더 많이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안에서 긴장을 풀고 명상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삶의 동기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렇다고 묵언수행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생각도 그래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고여 있는 웅덩이가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관조하며 휴식을 취하라는 것이다. 앞만 보며 달리기만 했던 삶이 내게 의문부호로 다가올 때, 몸과 마음이 지쳐 있을 때, 나만의 오두막에서 ‘잠시 쉼’을 선택하는 것은 성공을 위해 무조건 달리는 것보다 훨씬 현명한 일이다.
--- pp.19~20 「아무것도 하지 않기」중에서
고대 서양 전설에 따르면,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는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악어의 눈물’은 이 전설에서 유래된 말로 거짓 또는 위선적인 행동을 일컫는다. 셰익스피어도 여러 작품에서 이 전설을 인용했지만, 정작 악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악어가 흘리는 수분은 눈을 보호하려는 생리적인 현상이지 눈물이 아니다. 감정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동물은 오직 사람뿐이다.
이어령 교수는 생전에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물 한 방울”이라고 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그는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 같은 지식인들이 외치는 백 마디 말이 트로트 한 곡이 주는 위로를 당하지 못해요. 무대 위 가수의 노래를 듣고 우는 객석의 청중을 보고 시청자들이 다시 울지요. ‘아직 사람 사는 세상이구나’ ‘막간 세상이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에…. 분노와 증오, 저주의 말이 넘쳐나는 시대, 누군가는 바보 소리를 들을지라도 날카롭게 찔리고 베인 상처를 어루만져줘야 해요”라고 했다.
--- pp.146~149 「악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중에서
가난은 잘못이 아니다. 타고난 가난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누군가가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이 처할 수도 있는 가난을 그 사람이 대신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가난을 대하고, 가난한 사람의 서러움과 좌절을 깊은 마음으로 공감하며, 그들의 힘겨운 밥벌이를 함께 보듬고 위로해야 한다.
--- pp.184~185 「함께 맞는 비」중에서
효율적 이타주의는 ‘세상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이성과 실증을 통해 모색하고 실천하는 철학이자 사회운동’이다. 개인의 만족보다는 사회 전반의 선을 추구하는 데 기부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프린스턴대학의 피터 싱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타까운 사연이나 불쌍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이타주의를 발현시키고 있다”며, 타인을 돕는 데 있어서 이제는 더 이상 “감정이 아닌 이성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심금을 울리는 곳에 기부하는 것보다는 가장 많은 선을 이룰 수 있는 곳에 기부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자신의 이익보다 모르는 사람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효율적 이타주의자는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누릴 시간과 자원을 유지한 채 나머지 잉여 시간과 자원을 기부한다. 자녀를 우선하되 특별하게 대우하지도 않으며, 가진 것을 다 자녀에게 물려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애완견이나 애완묘를 위해서 적정한 수준의 시간과 자원을 제공할 뿐, 나머지는 사회의 전반적 이익을 위해 기부한다.
--- pp.188~189 「효율적 이타주의」중에서
나이 들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시계의 시간과 마음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의 시간은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 낙엽이 지는 것을 보고 겨울이 왔음을 알듯이 자신이 인지한 이미지가 바뀔 때 시간의 변화를 감지한다. 이미지는 감각기관의 자극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나이가 들면 뇌가 자극을 처리하는 속도가 느려져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물리적 시간 속에 저장된 이미지 수가 젊은 사람보다 더 적다. 같은 시간을 보내건만 감지한 이미지가 적은 노인이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많은데, 뇌가 늙지도 않고 자극이 들어오는 족족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면 늙은 몸으로 어찌 그것을 감당하겠는가.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다행이 아니라, 나이 들면 뇌도 늙는다는 것이 다행이다.
--- pp.197~198 「노인이 어때서」중에서
50년간 정신과 의사로 살아온 이근후 교수는 “죽음은 두렵지요. 그게 정상이에요. 정신분석에서 보면 죽음을 대면하기 무서워 자살하기도 합니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해서요. 최근엔 관에 들어가는 체험도 하더군요. 눈 뜨고 관에 들었다가 나오는… 하지만 그조차 오만입니다. 헛소리죠. 아무런 준비 없이 오는 게 죽음이에요. 죽음은 올 때 경건하게 받아들이면 돼요. 연습으로는 알 수 없는 게 죽음입니다”라고 했다.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어스름해질 무렵 죽음이 찾아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작할 기회는 늘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에 온 힘을 다해 맞서라.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나 맡겨라.” 니체의 말이다.
---- pp.248~249 「죽음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중에서
서로 연대하고 사랑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기만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는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각자도생의 원리에 갇혀 경쟁만을 일삼는 개별주의적 존재론으로는 안 된다. 관계가 먼저 존재하고, 그렇기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관계론적 존재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사람이 되어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내 힘으로, 스스로 보살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과 그의 아내가 나를 위해 사랑과 온정을 베풀어주었기 때문”이라는 톨스토이의 말을 다시 새겨야 한다.
--- p.281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