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까지 학습은 사람만 하는 것이었죠. 내가 글로 쓰거나 타이핑해서 디지털화하면 기계는 카피만 했는데 지금은 사람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기계가 대신합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기계가 지식을 생성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 겁니다. 그리고 그 지식을 다시 사용합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듭니다. 다만 아직 잘 못하는 것은 행동입니다. 물리적 세계에서 기계가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것은 아직 어렵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한 아이러니지요. 사람한테는 너무 쉬운 일이 기계한테는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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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슈가 된 것이 IBM의 인공지능 ‘왓슨’의 의료용 영상 판독 능력이죠. 영상 전문의가 몇 년 내지 몇십 년이 걸려야 할 수 있는 것을 짧은 시간 내에 대신해 줍니다. 그러면 무엇이 달라지느냐 하면, 의사들이 수련 기간 동안 영상 판독을 하기 위해 쓰는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인간 의사는 또 다른 영역에서 쓰면 됩니다. 결국 인공지능은 뇌에 주어진 도구입니다. 엔진이 육체에 주어진 도구였고 그래서 육체를 확장시켜 주었다면 인공지능은 뇌를 확장시켜 주는 도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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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영역에서는 투명성과 연대성, 포용성 개념들이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일 합의가 어려운 개념은 공정성입니다. 인공지능, 컴퓨터 사이언스 쪽에서 이야기하는 공정의 개념과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사회 정의 개념은 완전히 다릅니다. 기술 차원에서 말하는 공정은 절차적 공정, 할당에 있어서의 공정, 데이터에 대한 중요 변수의 불인식적 관점에서의 객관화 정도로 정의돼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공정의 개념은 정의론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죠. 미디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이것이 합의되기 어려운 공정 개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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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3가 각광을 받으니까 나온 문제이기도 한데,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는 현상입니다. 사전 학습 모델이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학습하는 것이다 보니까, 인터넷에는 잘못된 정보도 굉장히 많고 누군가 악의적으로 올려 놓은 데이터도 많은데 이런 것들을 구분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잘못된 정보도 정답인 것처럼 내놓는 문제가 생깁니다. 원 데이터가 잘못된 경우도 있고, 학습 데이터는 문제가 없지만 연관성 있는 답변을 만들다 보니 사실이 아니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을 모두 합쳐서 할루시네이션이라고 총칭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잘못된 정보를 그럴듯하게 내놓는 경우는 이것이 할루시네이션인지 아닌지 알아차리기도 어렵기 때문에, 이 내용이 논문에 실리고 다시 인용되는 등 파급 효과까지 문제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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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서 B까지 가는 경우, 보통 거리가 멀 경우에 할증이 붙습니다. 그 경우에 추가 배송비를 플랫폼 업체가 제공해야 되는데, 이때 ‘거리 깎기’라는 것이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실제 거리가 3.4km인데 알고리즘이 2.1km로 계산을 해서 오차가 1.3km가 생기고, 그에 따라 140원 정도 배달료 차이가 나는데 그것을 지급하지 않는 거죠. 이런 점을 개별 라이더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라이더유니온에서 여러 팀을 짜서 검증하고 실험해서 이런 ‘거리 깎기’가 있다는 것을 밝혀 냈는데요. 이런 사례뿐만 아니고 플랫폼 업체가 운영하는 배달 지도상의 연산적 거리 측정 방식 자체가 굉장히 많은 문제를 가집니다. 겨울의 혹한기라든지 여름 장마철과 같이 계절과 날씨에 따른 상황을 고려하지 않기도 하고요. 층고가 높거나 오토바이가 지나갈 수 없는 장애물, 도로 공사 등의 상황들을 반영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니 실제 거리를 측정한다고 해도 오차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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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회사에서 일하듯이 오전 9시~오후 6시 체제로 똑같이 일하면 될 것 같지만, 사실 집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낮 시간대에 아이를 돌본다든지 가사와 관련한 일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왔는데 간식을 주고 잠시 돌봐 주는 일도 할 수 없다면 재택근무를 하면서 돌봄 노동자를 고용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져야 하는 거죠. 이런 문제 때문에 코로나19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서 재택근무를 했을 때 남녀 노동자들의 만족도에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남성들은 일도 차질 없이 할 수 있고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늘어나서 좋다고 하는 응답자가 있었던 반면, 여성들은 일은 일대로 온전하게 할 수 없고, 돌봄과 가사노동의 요구는 늘어나서 양쪽을 감당하느라고 번아웃이 온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택근무는 일의 시작과 끝 시간을 앞뒤로 조절할 수 있다거나, 연속되지 않아도 하루 노동시간의 총량을 채우기만 하는 식의 유연근무제와 병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 p.165
플랫폼 노동이라는 게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존에 이뤄져 오던 노동의 연장선상에서 대체돼 가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기존 노동시장이 어떤 상태였는가, 그리고 플랫폼 노동으로 대체되는 양상에 대해서 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따라서 확산 속도와 양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인데요. 우리나라에는 지금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흔히 ‘특고’라고 부르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많죠.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지들이 많은 것입니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 통제를 안 하기로 사실상 약속하는 것이고 실제로 통제가 들어가면 그것이 알고리즘을 통한 통제라 하더라도 나중에 법원에 갔을 때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기업들은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처럼 비정규 노동이 팽배해 있는 사회에서는 플랫폼 노동의 장점이 적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달리 말하자면 그런 사회는 노동자에 대한 보호가 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이 더 쉽게 들어올 수 있습니다.
--- p.205
저희가 행복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구성원들로 하여금 매일 행복을 기록하게 해서 그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는데요. 2022년에는 구성원들에게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분석하는 연구를 6개월 동안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로 ‘자율’이라는 코드가 나왔습니다. 가장 큰 비중으로 나온 단어들을 순서대로 말씀드리면 성장, 자율, 관계, 워라밸, 보상 등인데요. 어떻게 보면 평이한 단어들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세부 정의로 들어가서 보면 의미가 조금 다릅니다. 구성원들은 자신이 일하는 방식을 직접 설계하고 선택하는 것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율’이 상당히 중요한 코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결과에서 나온 다음 연구 질문은 ‘그렇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구성원의 행복을 높이는 길이며, 이를 통해 조직 관점에서 어떤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가?’였습니다.
--- p.243
새로운 기술이 현실이 되고 상업화될 때마다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기술 자체를 포기해서는 그다음도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잘파세대들이 이 기술 없이도 살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기성세대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뭐.” 할 수 있고 또 국가의 경계를 비교적 중요하게 여기죠. 그렇지만 잘파세대의 경우는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기술의 활용이 가능하고 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 가는 쪽을 택하지 않겠는가, 그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 p.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