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매개체인 ‘시장’은 디지털 거래 플랫폼으로 대체되었다. 디지털 거래 플랫폼은 마치 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차라리 봉건시대의 영지라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자본주의의 엔진인 이윤은 봉건시대의 할아버지라 할 수 있을 지대(rent)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특히 플랫폼과 클라우드에 더욱 폭넓게 접속하려면 내야 하는 어떤 유형의 지대가 있다. 나는 그것을 ‘클라우드 지대(cloud rent)’라 부른다. 전통적인 자본가는 클라우드 자본을 소유한 ‘신흥 봉건 영주’라는 새로운 계급의 가신이 되었고 우리 대부분은 새로운 지배 계급의 권력과 부에 무임금 노동으로 봉사하며, 기회가 주어질 때 간간이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이전 계급인 ‘농노’로 전락하고 말았다.
--- 「서문」 중에서
클라우드 자본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자고요. 스마트 소프트웨어, 서버 팜, 무선 송수신탑, 수만 킬로미터에 이르는 광케이블 등등.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콘텐츠’가 없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 클라우드 자본의 주가를 이루는 가장 값진 요소는 그 물리적 구성 요소가 아니에요. 페이스북에 올라온 게시물, 틱톡과 유튜브에 업로드된 비디오, 인스타그램의 사진, 트위터에서 오가는 농담과 욕설, 아마존에 남아 있는 리뷰들, 혹은 단순히 우리가 오가면서 만들어내는 신호들도 거기 포함되죠. 그런 신호를 모아서 구글 맵은 교통정체 구간이 어디인지 파악해 사용자에게 알려줘요. 이렇듯 우리는 게시물, 비디오, 사진, 농담, 이동 기록 등을 제공하면서, 클라우드 자본의 가치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해내는 중입니다.
--- 「3장. 클라우드 자본」 중에서
아버지는 어떤 마을로 전송되었습니다. 옷, 신발, 책, 노래, 게임, 영화 등 온갖 것들을 거래하는 사람들로 꽉 찬 마을이에요. 처음에는 모든 게 그저 평범해 보여요.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들어 옵니다. 모든 가게, 사실 모든 건물이 제프 베이조스라는 녀석의 소유라는 거죠. 가게에서 파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은 제프의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제프는 상품이 판매될 때마다 수수료를 받으며, 무슨 상품이 팔릴 수 있고 팔리지 않을지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소유하고 있어요. 이 이상한 마을에서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 심지어 볼 수도 없는 그 모든 것들이 제프의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되고 있어요. 아버지와 제가 나란히 걸으면서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고 해보자고요. 그런데 우리의 눈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보여요. 제프의 의도에 따라 알고리즘이 섬세하게 골라놓았으니까요. 아마존닷컴을 거니는 모든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유도하는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제프가 기준을 정하고 그의 선택에 따라 조절하는 알고리즘에 따라야만 합니다.
--- 「3장. 클라우드 자본」 중에서
클라우드 자본은 우리의 관심을 묶어놓고, 욕망을 만들어내며,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을 채찍질하며, 클라우드 농노들로부터 엄청난 양의 공짜 노동을 뽑아냈죠. 아마존닷컴의 클라우드 영지처럼 완전히 사유화된 디지털 거래 공간이 생겨났는데, 그곳에서는 판매자도 구매자도 통상적인 시장이라면 누렸을 그 어떤 선택지도 가질 수 없게 되었고요. 그 결과 클라우드 영지의 소유자, 클라우드 영주들은 에디슨, 웨스팅하우스, 포드와 그 후손들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본가들을 사회의 피라미드 가장 높은 곳에서 밀어낼 혁명 계급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죠.
--- 「4장. 클라우드 영주의 등장과 이윤의 종언」 중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의 집에 놓이는 것, 그래서 우리의 관심을 더 가져가는 게 진짜 목적이거든요. 이렇게 우리의 주의를 붙잡아놓고, 그 힘을 지렛대로 삼아서 그들은 가신 자본가들에게 클라우드 지대를 받죠. 우리에게 그들의 상품을 파는 건 바로, 여전히 구식 장사를 하는 가신 자본가들인 거예요. 클라우드 영주들의 투자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시장 내에서의 경쟁을 지향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다 함께 자본주의 시장에서 탈출하도록 만드는 게 목표죠.
--- 「5장. 테크노퓨달리즘의 본질」 중에서
테크노퓨달리즘의 알고리즘은 가부장제, 편견, 기존의 억압을 강화하는 성향이 있다보니, 소녀들, 정신이상자들, 한계에 몰린 사람들, 그리고 물론 당연하게도 가난한 이들까지, 이 모든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정신을 각자의 것으로 지키려면, 우리는 클라우드 자본의 집단 소유로 나아가야만 합니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그것, 클라우드 자본을 행태 조작 수단에서 인간적 협력과 해방의 수단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이니까요. 만국의 클라우드 농노, 클라우드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클라우드 가신들이여, 눈을 떠라. 우리는 우리의 정신에 채워진 족쇄 외에는 잃을 게 없노라!
--- 「7장. 테크노퓨달리즘에서 벗어나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