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 마을 출신의 한 젊은이가 있다. 독자적인 재산도 없고, 강력한 가문 출신의 인맥도 없으며,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이 젊은이가 1580년 후반에 런던으로 상경한다.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그 자신의 시대뿐 아니라, 인류 역사상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가장 위대한 극작가가 된다. 그의 작품은 학식 있는 사람들과 문맹자들, 도심의 세련된 감상자들과 난생 처음으로 극장 구경을 나온 시골 촌부들을 동시에 매료시킨다. 그는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다. 그는 무거운 정치적 주제를 우아한 시로 바꿔 읊는다. 그는 천박한 어릿광대짓 속에 철학적 섬세함을 과감하게 버무린다. 그는 제왕과 걸인들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모습을 어느 한쪽에 편향되는 일 없이 공정하게 통찰한다. 그는 어느 한순간에 법학에 통달한 학자처럼 보이다가, 다음 순간에는 신학 부문에서 조예를 나타내고, 그다음 순간에는 고대사적 지식을 드러낸다. 동시에 그는 무지한 촌뜨기의 시골 억양을 아주 능숙하게 흉내 내고, 노파들 사이에서 흔히 떠도는 어리석은 미신이나 잡설을 묘사하는 일도 굉장히 즐겁게 받아들인다. 이렇게 드넓은 범위를 망라하는 위대한 성취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되었는가?
--- 본문 중에서
어릴 적부터 단어들이 지닌 마술에 사로잡힌, 그래서 언어에 잔뜩 매료된 소년 셰익스피어를 한번 상상해 보자. 그의 초기 작품에는 이러한 집착을 뒷받침해 주는 강렬한 증거들이 널려 있으므로, 그가 일찌감치 언어에 매료되었으리라 보는 것은 비약이 아닌 안전한 추정일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가 귓가에 나지막이 동요를 불러 주던 그 첫 순간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 연극 구경을 하러 아버지를 따라온, 영리하고 재빠르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공무관의 어린 아들이, 아버지의 다리 사이에서 일어선 채로 무대 위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 관람을 하게 된 것이다. (……) 셰익스피어가 런던 무대를 위한 극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는 어린 시절에 즐거움을 주었던 이러한 투박한 오락성을 떠올려 이용했다.
--- 본문 중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결혼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이 섞여 있다. 하나는 결혼 자체를 묘사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난항이고, 다른 하나는 공을 들여서 묘사한 두 결혼에서 풍기는 악몽 같은 인상이다. 긴 결혼 생활 동안 대부분의 기간을 아내에게서 떨어져 살기로 한 결정과 그에 얽힌 맥락을 배제하고 그의 작품을 읽어 내기란 어렵다. 아마도 어떤 이유에서건 셰익스피어는 배우자 또는 다른 누구에 의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가 완전히 예속되는 것을 두려워했을지 모른다. 혹은 그 자신이 누군가를 그토록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하게, 아마 그는 열여덟 살 때 원치 않은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고, 그 이후 돌아온 결과를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사람의 작가로서 감내하며 살아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커플들은, 심지어 사랑으로 결혼하는 연인들이라 할지라도, 서로 맞지 않는 결합이라고 믿으며 그는 혼자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절대 서둘러 결혼해서는 안 되며, 젊은 남자라면 연상의 여자를 피해야 할 것이고, 압박 속에 행해지는 결혼-“등 떠밀린 혼인” -은 곧 지옥이다. 이런 관점에 더하여 『햄릿』과 『맥베스』, 『오셀로』, 『겨울 이야기』를 떠올려 보면 그가 한 술 더 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부의 밀착된 친밀감은 위험한 것이며, 그들이 꿈꾸는 이상이란 곧 위협이다.
--- 본문 중에서
셰익스피어는 그의 믿음, 그의 사랑, 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들로 삶을 시작했다. 그는 동시대인들이 목숨을 바쳐 지켜 내려 했던 그러한 믿음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설령 한때나마 그런 헌신에 끌렸던 적이 있다 해도 그는 벌써 수년 전에 그것에 등을 돌리고 빠져나왔다. 확실히 그는 극장에서의 비전을 그러한 믿음의 잔해들과 활발히 뒤섞었지만, 단 한 순간도 무대의 비현실성을 지각하는 시선을 놓친 적이 없었고, 순교한 사람들(이를테면 에드먼드 캠피언)을 죽음까지 몰고 간 신념과 믿음을 문학적인 환상들로 단순히 대체할 수 있다는 듯이 가장한 적도 없었다. 그리고 분명히 짧게나마 황홀한 축복의 순간들을 경험한 적은 있었을 테지만,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강렬하게 쓰고 꿈꾸었던 사랑을 절대 발견하지도 실현하지도 못했다. 이 상실의 감각이라는 관점에서 보면-믿음과 사랑의 공허함에 대한 회의적 암시-평범한 신사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것은 그에게 중대한 성취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상을 포용한다는 것은 결코 상실과 보상에 대한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보편적인 위대한 상상력의 성취와 그 성격에 관한 문제였다. 배우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내내 셰익스피어는 이국적인 지리, 고대의 문화, 전설과 역사로 남은 인물들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은 익숙하고 친밀한 것들에도 가깝게 놓여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비범한 것들의 중심에서 평범성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 본문 중에서
셰익스피어는 일찍이 이런 판단을 했다. 아니, 어쩌면 이 판단이 그를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자기 안에 무언가 엄청나고 대단한 것이 있으나, 그것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어느 한 세계를 통째로 형성하는 신과 같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지닌 본연의 뿌리들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는 재능이라는 것을. (……)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잡담, 사소한 사건들, 바보 같은 놀이들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지루해하는 것처럼 보인 적이 없었다. 『태풍』의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행한 가장 고귀한 행위는 마법의 힘을 포기하고 자신이 왔던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