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나 가치관은 성장하는 시기에 따라서 영향을 끼치는 주체가 다르다. 개인이 자신의 신념, 가치 및 행동 방향을 결정할 때 행위나 규범의 표준으로 삼는 집단을 준거집단(Reference Group)이라고 한다. 준거집단이라는 말은 1942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하이먼(Herbert Hyman)의 논문 “지위의 심리학”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다. 준거집단은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는데, 나와 동질성을 느끼는 집단을 내집단이라 하고 나와는 배타적인 집단을 외집단이라고 한다. 따라서 내집단은 준거집단과 같은 의미이며, 외집단은 거부나 반대하는 준거집단으로 평가되는 집단을 말한다.
이러한 준거집단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개인에게 행위의 기준을 설정하는 기준이 되고, 또 하나는 개인이 자기 및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평가의 기준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태어나서 자아 정체를 결정하는 사춘기 이전까지는 대체로 유전적 소인과 부모의 양육 태도에 따라서 자아 및 가치관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받지만, 사춘기 이후부터는 스스로 선택하는 친구와 교사 및 사회 문화적 규범에 따라서 크게 영향을 받는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선비정신이 강한 민족이다. 그래서 힘이 들어도 자식이 공부를 많이 해서 장원급제하기를 기대한다. 과거 봉건주의적인 교육 불평등 문제가 해방으로 해소되면서 교육열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선비주의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 부모의 욕구 성취를 위한 대리만족, 가족과 가문의 대표선수 등 개인의 적성이 완전히 무시되는 오직 출세와 권력과 돈벌이에만 집중하는 교육만이 강조되고 있다. 자녀를 인격을 겸비한 완전한 인간으로 교육하려는 욕구는 저버린 채 오직 결과 지상주의적인 사고에 집착하여 부귀영화에만 집중하고 있다. 자녀가 성장하여 사춘기가 되면 정신적으로 자아정체성 확립을 위한 중요한 시기가 된다. 이때 부모는 자녀에게 진정한 삶의 철학을 심어주어 완전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녀가 인생 문제를 물으면 철학자가 되어야 하고, 종교에 관해 물으면 종교학자가 되어야 하고, 경제에 관해 물으면 경제학자의 역할도 해야 하는 만능학자가 되거나 적어도 정보를 다양하게 공급하는 도서관 사서 역할을 해야 하고, 때로는 속 이야기를 주고받는 심리상담자나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사춘기 이전까지는 가정의 교육환경과 부모의 가정교육 방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러한 교육이 사춘기 이후 삶의 철학에 결정적인 기본 설계도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배경과 부모의 가정교육 철학을 보면 그의 인간성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 사춘기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어린 시절의 기초적인 가정교육의 영향 때문에 쉽게 삶의 철학을 바꾸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대부분 부모는 살아보니 뭐니 뭐니해도 돈이 최고라든지, 권력이 최고라든지 하는 부모 개인의 가치관과 태도를 강요하는 경향이 강하다. 많은 부모는 자녀의 인생길을 밝혀주는 스승의 자리에서 벗어나 밥이나 먹이고 학비나 대주는 하숙집 주인이라는 이방인과 같은 존재로 추락하고 있다. 자녀를 출산했다고 곧바로 부모 자격증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녀를 훌륭하게 키우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능력이 있어야 진짜 부모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우리 부모의 역할을 시대 변천에 따라 뒤돌아보면 1950년대에는 경제 지원형, 1970년대에는 부모 주도형, 2000년대에는 부모 기대형, 2020년대에는 상담 지도자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부모의 역할을 마라톤 선수를 지도하는 감독으로 비교하여 설명한다면 1950년대에는 감독이 몸에 좋은 보약을 먹이고 좋은 운동화를 준비해 주는 역할과 같았고, 1970년대에는 감독이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리며 미주알고주알 일일이 지시하는 감독과 같았고, 2000년대에는 감독이 전체 구간에 대한 전술을 선수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하여 지시하는 감독과 같았다면, 2020년대 이후에는 감독이 선수의 장점, 특성, 기술과 컨디션을 고려하여 선수 스스로 최적의 전술을 실천하도록 심리적 상담과 지원에 집중하는 감독과 같다고 이해된다.
이제 자아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따라 중요한 준거집단의 역할에 관해 알아보겠다. 영유아기에 가장 중요한 준거집단은 당연히 부모라는 준거집단이다. 전통적으로 아버지의 역할과 어머니의 역할이 구분되어 있었다. 대체로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이고, 자녀 양육의 책임은 어머니에게 있었다. 어머니는 가정생활을 맡으면서 가족 간의 애정과 감정 문제를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세기 서구사회가 산업화, 도시화, 가족의 핵가족화, 여성의 취업률 확대, 여성 해방운동 등으로 부부간 역할의 평등과 양성성의 발달로 어머니의 역할과 아버지의 역할 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이제 오늘날에는 자녀의 건전한 성장과 발달을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의 역할이 양분되어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상황에 따라서 서로 역할을 보완하고 교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대적 의미에서 부모의 역할을 정교하게 기술한 최초의 심리학자는 1962년에 고든Thomas Gordan이 실시한 부모를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다. 고든 박사가 제시한 효과적인 부모 역할 대화법은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되는데 구체적인 대화법은 다음과 같다.
1. 있는 그대로 모습을 받아들여라.
2. 하나가 되기보다 “함께” 하라.
3. 적극적인 듣기로 말문을 열어라.
4. 나를 주어로 한 메시지를 보내라.
5. 윈-윈(win-win) 게임을 즐겨라.
부모는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는 말과 같이 자녀에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물질적 풍요와 사치를 남겨주면 금방 써버리고 없어지기 쉽지만 삶을 살아나가는 정신적 유산을 남겨주면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부모와 가족들은 다른 준거집단에 비해 가장 중요한 준거집단이 된다. 가족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하는 사회적 환경으로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과정이 곧 가족관계의 방법을 반복하는 것이 된다. 예를 들어 아버지와의 관계가 힘들었던 아이는 성인이 된 후 사회나 직장에서 자기 상사와의 관계에서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가족은 처음으로 인간관계를 배워나가는 환경이다.
따라서 가족은 인간관계에서 상대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배워가는 첫 번째 환경이 된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터득한 믿음과 신뢰를 세상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부모님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를 위해 희생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분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세상에 대한 관계에서 근본적인 믿음과 신뢰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가족은 나의 영혼이 자라게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가족의 의미에서 부부가 자녀를 양육한다고 해도 사실 자녀는 부부 양가 부모를 포함한 6명의 가치관을 배우는 곳이다.
부부의 결혼이 둘만의 결합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으므로 결혼 전에 상대방 부모의 가치관과 양육 철학에 대해서도 신중히 점검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우리 집은 안 그래, 우리 엄마는 안 그랬어”라는 부정적인 말을 듣거나, “참말로 수고했어, 너는 좋은 아이야, 수고했어, 나는 언제나 네 편이야”라는 서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으로 격려하는 상반된 말을 듣고 자란 아동은 그렇게 배운 그대로 사회적 관계를 맺기 쉽다. 그래서 가족은 인품과 인성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배움의 장소가 된다. 따라서 아이들이 집에 들어와서 “아빠 수고했어요, 엄마 애쓰셨어요”라는 격려와 믿음의 정신이 살아있다면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족관계가 될 수 있다.
--- 「자아관 형성에 영향을 주는 준거집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