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를 편찬한 지금,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는 한평생을 보내고 나서야 그것을 쓸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느 날 저녁, 어린 소년이던 내가 키드론 골짜기에서 입은 상처가 어떤 열망을 품게 만들었다. 그 열망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날 밤에 마주친 사람,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나의 나약함을 꿰뚫어 본 그 사람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열망! 내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서야 모든 위선을 떨쳐 낸 필사본이 형태를 갖추었다. 그 글에서 나의 보잘것없는 인생, 내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혹독한 교훈을 거치지 않고서 기록된 장면은 하나도 없다.
--- 「에필로그」 중에서
야이로는 여전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나의 눈가가 축축해졌다. 나는 이야기하면서도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며칠 후에 베드로가 제게 세례를 주었어요. 3년 동안 그분은 아버지 같았어요. 하지만 상처는 여전히 벌어진 채 남아 있어요. 저는 길들여졌지만, 영영 상처를 입은 사자예요. 저는 예슈아를 믿고, 앞으로도 영원히 믿을 거예요. 그분은 저를 바라보셨고 저를 사랑하셨어요. 하지만 예슈아께서 저와 같은 사람을 두고 무엇을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는 몇 번이나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그분께 청했어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어요. 상처는 여전히 생생해요. 어르신, 이런 제가 어떻게 따님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겠어요?” “오직 하느님만 그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실 수 있을 거라네.” 야이로는 더없이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4장 잠복」 중에서
“마르코, 알렉산드로스, 자네들도 갈 건가?” 우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바오로가 끼어들었다. “두 사람은 데려가지 않겠네. 어쨌거나 마르코는 안 되네.” 나는 비수에 찔린 것 같았다! 칼은 나의 마음속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르나바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바오로는 분노하지 않고 결의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알렉산드로스는 바오로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며 놀란 모습이었다. 바르나바는 신중하되 확실히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왜 그런지 말해 줄 수 있나?” “나는 선교 여행 도중에 우리를 저버린 사람과 다시 함께 떠나지 않겠네.”
--- 「9장 대립」 중에서
“저더러 떠나라고요? 그럴 수 없어요! 알렉산드리아는 제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저의 도시라고요.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껴요. 알렉산드리아에서 저는 행복하고 또 결실을 맺습니다. 베드로가 저를 보낸 곳이 바로 이곳이에요. 그리스도께서 저를 보내신 곳이 바로 여기란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계속 움직이셨고 제자들에게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하셨네. 자네도 그렇게 할 때가 온 것이라고 보네.” 나는 항변했다. “만일 제가 떠나면,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저에게 죄가 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적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그 덕분에 공동체가 다시 평화로워질 걸세.” 몽둥이로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버렸다. 나는 악의와 가식의 제단 위에서 희생되었다. 마치 나의 목소리가 아닌 듯한 텅 빈 목소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 「11장 패거리」 중에서
바로 그때, 내가 쓰는 이야기의 초반부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깨달았다. 글의 초반에 곧바로 예수님의 친숙한 점과 놀라운 점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한다. 예수님이 인간의 일상을 함께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동시에 영영 이해할 수 없는 그분, 우리가 포착할 수 없는 그분, 인간적인 것으로만 축소할 수 없는 그분의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야 했다. 이야기 초반의 장면들을 예수님이 내가 카파르나움에서 만난 사람들과 평범한 일상을 함께하는 단 하루로 구성하리라. 그 일화에서 예수님은 친근한 인물로 보이겠지만, 사람들은 그분의 권능과 결의, 자유로움에 매료될 것이다. 베드로와 그의 동반자들이 호숫가에서 부름을 받은 다음에 그랬듯이 사람들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 「15장 발자국」 중에서
부두에서 선주는 배가 이집트에 도착하면 에리트리아해에서 온 화물을 선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화려하게 장식된 아마포, 소합향나무, 산호, 황옥, 심지어 향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마치 그곳에 가 있는 듯 갖가지 색채가 눈앞에 어른거렸고 마리우트 호수의 내항에서 나는 내음이 느껴졌다. 북부 아프리카 시장의 화려한 색채와 대조되는 석회 칠을 한 건물 전면의 하얀 빛깔을 상상했다. 그곳에서 나는 마치 고향에 와 있는 듯 느끼리라. 내가 끊임없이 선망하는 대상인 알렉산드리아! 우리가 지닌 화물은 바로 복음서의 필사본들이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한 부를 티토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에페소와 알렉산드리아 공동체에 전할 필사본까지 더하여 그것들은 매우 소중한 짐이었다.
--- 「16장 먹잇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