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알았어. 원래 책은 재미없단 말이지.”
기둥이가 가슴 앞으로 팔짱을 끼더니 그것 보라는 듯 턱을 삐죽 내밀었어.
“모든 책이 다 재미있지는 않다는 것 인정! 게다가 공포 동화라면, 좀 무섭기라도 해야 하는데 많이 아쉽네.”
리지가 오랜만에 기둥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어. 기둥이는 리지와 대화가 통한다는 생각에 조금 신이 났어.
--- p.31
탁! 실망한 리지는 책을 있는 힘껏 책상에 내려놓았어. 그러자 그 순간 표지에 있는 할머니의 흐리멍덩했던 눈이 갑자기 번뜩였어. 소름이 쫙 끼친 리지는 처음으로 이 책 이 무섭다고 느껴졌어.
그때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 닥쳤어. 멀쩡하던 도서관 창문 커튼이 마구 펄럭였고, 커다란 도서관 책상이 아래위로 흔들렸어. 책상뿐이 아니야. 이제는 도서관 전체가 들썩들썩 움직이는 느낌이었어.
책상 위에 놓인 『홍콩 할매의 피 흘리는 저주』의 책이 살아 움직이듯이 저절로 마구 펄럭거리더니, 그 안에서 희한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어.
“오홍홍홍! 오홍홍홍!”
--- p.33
“너희! 내 책이 재미없다고 했지? 시시하다고 비웃었지? 그 말을 듣고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알아? 도대체 뭐가 재미없다는 거야!”
홍콩 할매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버럭 소리까지 질렀어. 그러자 기둥이가 눈을 크게 뜨더니 번쩍 손을 들고 말했어.
“맞다! 혹시 할머니가 오싹오싹 공포 책꽂이 시리즈를 쓴 오삭한 작가 아니에요? 작가가 귀신이라서 더는 책을 내지 않는다고 했는데…….”
--- p.42
홍콩 할매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조금 진정하기로 했어. 밉건 곱건 이 아이들은 자신이 초대한 첫 번째 손님이었으니까.
“마침 쥐 꼬리 차를 끓여 마시려던 참인데, 너희도 한 잔씩 마시겠냐?”
으악, 쥐 꼬리라니!
“아, 아니요!”
--- pp.44~45
“홍콩 할매라는 귀신이 주인공일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단 말이지.”
기둥이가 어깨를 씰룩이며 그 와중에 한마디 했어.
“너, 말이지, 말이지 좀 하지 마!”
리지가 기둥이를 노려보았어. 탈출하는 위급한 상황에도 장난만 치려는 거 같아 한심했지. 아직 여기가 정확히 어딘지 모르니 리지는 안심할 수 없었거든.
“어, 이게 뭐지?”
가장 먼저 잔디밭을 밟은 리지가 소리 질렀어. 잔디밭 옆에 빽빽하게 뭔가가 있지 뭐야. 그건 글자 같았어. 까만 색 글자가 바닥에 가득 채워져 있었어.
“무슨 장식인가?”
--- p.49
“마침 가지고 있던 쥐 꼬리와 쥐 대가리가 오래돼서 싱싱한 게 필요하던 참이었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너희에게 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귀신인지 알려 주마.”
세 아이가 뭐라고 변명할 틈도 없었어.
“에잇, 모두 생쥐로 변해라!”
--- pp.62~63
“으악! 호, 홍콩 할매 귀신이다! 아이고 무서워라!”
하지만 말과 달리 할아버지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어.
“……내가 이럴 줄 아셨소? 할로윈인지 핼러윈인지 뭔지 다가온다고, 일찌감치 구닥다리 귀신 분장하셨구먼!”
--- p.11
“너, 너희, 이거 봤어?”
시우가 부들부들 떨면서 들고 온 건 빨간색 쪽지였어.
“뭔데 그래?”
리지가 얼른 쪽지에 쓰인 글을 읽었어.
꼬맹이들 잘 지냈느냐?
일은 제대로 하는 거지?
할매는 무시무시한 2편을 기다리고 있단다!
--- p.27
홍콩 할매는 마음이 급했어. 시계를 보니 5시가 다 됐어. 이제 곧 꼬맹이들이 올 시간이 됐지. 사서 선생님이 옆에 있으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기가 성가실 것 같았어. 또 자신을 믿지 않는 사서가 귀찮기도 했지.
“사서 선생, 잠깐만 쉬시구려. 내 실력이 어떤 건지 보여 줄 테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사서 선생님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눈을 크게 뜬 순간, 홍콩 할매는 주문을 걸었지.
“에잇, 생쥐로 변해라!”
--- p.71
“작가님이 쓴 걸 베낀 건 아니지?”
리지가 수첩을 넘겨 보며 의심했어.
“아니거든! 이거 다 내가 쓴 거거든.”
얼굴이 벌게서 어봉이가 버벅거렸어. 그러더니 지금까지 자신이 받은 글짓기상을 끝도 없이 늘어놓는 거야. 어린이찐문학상, 어린이창작대빵상, 전국최최고글짓기상, 무서운이야기대박상, 진짜로잘쓰는어린이상, 등등.
--- p.91~92
그날 밤. 피를 마시다 잠이 든 준이는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누구세요?”
준이는 입언저리에 묻은 피를 닦으며 물었다. 그러자 방문은 소리 없이 저절로 열렸다. 문 뒤에서는 도서관 할머니가 반인반묘의 모습으로 준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헉, 할머니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반은 고양이고 반은 사람이라니?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 모습이 다시 완전한 거인 고양이로 변신을 하는 거였다.
야오오옹호호호홍홍홍. 이런 변화무쌍한 존재가 과연 가능한가?
…….
--- p.108~109
“그치? 유명하지 않은 귀신들이 떼를 쓰는 거야. 게다가 오 작가가 이 안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만에 하나 책 속에 작가가 없으면 우린 그냥 돌아오면 되고. 오홍홍홍!”
--- p.28
홍콩 할매가 방문을 열자, 눈앞에는 머리를 바닥에 박고 거꾸로 서 있는 귀신이 보였지.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진 머리카락은 길고 시커먼데, 그걸로 바닥 먼지를 모두 쓸면서 콩콩 소리 내며 다가오는 거야.
“어봉아, 우리가 거꾸로 서 있는 거냐? 아니면 여기 세상이 뒤집한 거냐?”
--- p.38
“흠, 저 친구는 멋쟁이 귀신같네. 요즘 유행하는 시커먼 안경도 쓰고 말이야.”
홍콩 할매가 키가 크고 머리가 긴 여자를 보고 말했어.
“할머니, 저 귀신 선글라스 쓴 거 아니에요. 자세히 보세요.”
--- p.48
어봉이는 얼른 주변을 살폈어. 여긴 앞의 두 방과 공기가 달랐어. 알래스카 얼음을 분쇄해서 공중에 뿌린 것처럼 스산하달까. 바로 그때 찢어질 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렸어.
“얘, 나 이뻐?”
--- p.58
처음부터 느꼈지만, 여기 귀신의 집은 평범하지 않아. 귀신들이 방 하나씩을 가지고 있는 귀신 기숙사처럼 보인달까?
--- p.75
오 작가의 질문에 인형 귀신은 세상 서럽게 울었어. 어깨를 들썩이며 머리를 흔들면서 흐느꼈지. 오 작가는 인형 귀신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어.
--- p.89